039화 전조(3)
아카데미 내 강당.
그곳에는 1,2,3학년 학생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웅성웅성.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오늘이 불의 둥지로 진입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작도 전에 긴장하는 학생들부터 첫 실전에 기대하는 학생들까지.
학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야. 넌 준비 제대로 했냐?”
“몰라. 근데 좀 떨리기는 하네.”
그중에서도 1학년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은 특히 말이 많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1학년은 이 정도로 대규모로 움직이는 건 처음이며 던전에 직접 들어가는 것도 처음인 학생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2, 3학년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은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던전을 겪어봤기 때문일까.
2, 3학년 학생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에 한숨을 내쉬는 학생들.
그게 아니면 이번에는 꼭 좋은 점수를 얻겠다고 전의를 불태우는 학생들.
그렇다면 현성은?
현성은 그 두 부류 중 아무데도 속하지 않았다.
그저 침착하게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도 그럴게 현성은 불의 둥지를 앞두고 진즉에 모든 준비를 끝냈다.
화산지형에서 활동을 위한 빙결환.
보스를 처리하기 위한 헌리스의 창.
마지막으로 불의 둥지에 출몰하는 몬스터의 패턴까지.
거기다 혹시 몰라 하린에게도 빙결환을 나눠준 상태.
만약 지금 당장 불의 둥지에 진입한다 해도 현성은 아무런 문제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걱정했던 건 하린이랑 시연과 그룹이 나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1,2,3학년 전부가 한 던전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 적당히 인원을 나눈 뒤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룹이 갈리는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그대로 현성이 저 멀리 1학년 무리에서 보이는 금발의 소녀와 자신과 같은 3학년 무리에 속한 흑발의 소녀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모두 모인 거 같군요.”
강당 위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카데미의 교장 미하일.
그의 등장에 강당에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위를 쳐다보았다.
단 한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바로 현성.
현성은 미하일이 등장함과 동시에 아무 말 없이 몸을 숙여 신발 끈을 꽉 동여매기 시작했다.
‘…이제 곧 시작이겠군.’
그 와중에 미하일은 학생들을 향해 이번 불의 둥지에서 펼쳐질 시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 내용은 현성이 알고 있던 내용과 일치했다.
‘이번 불의 둥지에서 펼쳐질 시험은 크게 1라운드와 2라운드 나뉜다.’
그것은 바로 서바이벌과 보스 격퇴였으며, 순서대로 진행되는 시험의 룰은 간단했다.
우선 1라운드 서바이벌.
여기에서는 총 30포인트를 먼저 획득하는 학생들만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총 2가지.
‘불의 둥지에 서식하는 몬스터를 잡거나, 혹은 다른 학생들을 잡거나.’
몬스터를 잡든 학생을 잡든 자유였다.
요지는 어떻게든 30포인트를 모으는 것.
한 마디로 1라운드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는 철저한 개인전이었다.
그렇다면 2라운드는?
‘2라운드는 1라운드와는 다르게 단체전.’
30포인트를 모아 2라운드에 진출한 학생들은 상호합의하에 3인 1조를 이루어 행동하게 된다.
여기서 목표는 불의 둥지의 보스 샐러맨더를 격퇴하는 것.
그리고 먼저 보스를 잡는 쪽이 이기는 방식이었다.
‘…한 마디로 그냥 다 때려잡아라 이거지.’
그대로 5분 정도 지났을까.
설명을 마친 미하일이 학생들을 향해 외쳤다.
“자, 그럼 모두 준비됐죠? 이제 곧 불의 둥지로 이동할 겁니다!”
이에 몇몇 학생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이동한다고?”
“뭐 단체로 버스라도 타고가나.”
“저번에는 학년별로 나눠서 게이트로 이동했지 않냐. 이번에도 그러겠지. 뭐.”
그 순간이었다.
미하일이 학생들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그의 의미심장한 한 마디.
동시에 강당을 타고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쿠구궁.
그 진동에 당황한 학생들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들은 자신들의 발밑에 새겨진 커다란 마법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간이동 마법진.
“…어?”
“마법진?”
학생들이 마법진과 미하일을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이쯤에서 그에 대한 설명이 빠질 수 없었다.
미하일.
아카데미의 교장이자, 대마법사의 제자.
주 분야는 중력마법.
거기다 주 전공이 중력인 만큼 그의 부 전공은 공간마법.
그 중에서도 가장 잘하는 것은 중력마법과 공간마법을 결합시켜 특정 공간에 물체를 떨어트리는 것.
그리고 이 물체에는 당연히 사람도 포함된다.
이 말은 곧.
‘…곧 불의 둥지에 드랍된다는 소리지.’
이에 뒤늦게 교장의 간악한 수를 알아차린 몇몇 학생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설마…아니겠지?”
“오. 하느님.”
그리고 현성은 그런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슬픈 예감은 항상 들어맞는 법.
그대로 현성의 옆에 있던 학생하나가 낭패라는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제, 제길, 당했다!”
그는 재빨리 주변을 살피며 잡을 것을 찾았지만 이미 늦었다.
그 와중에 공중에 떠있던 미하일은 그런 학생들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자, 학생 여러분.”
그대로 미하일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살아서 봅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법진이 발동하며 밝은 빛이 강당 전체를 집어삼켰다.
-파아아앗!!
아카데미의 교장.
미하일.
그는 의도가 그리 순수한 사람은 아니었다.
* * * * *
그렇게 현성의 눈앞이 흐려지더니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처음 보인 것은 사방이 온통 붉게 물든 화산지형이었다.
하지만 느긋하게 풍경을 관람할 틈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현재 현성은 공중에서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귓가를 타고 맹렬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휘이잉!
이에 현성이 재빨리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 뒤.
그의 손을 따라 딸려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초록색 베개였다.
일명 슬라임 베개.
이는 슬라임을 잡아 만든 베개로, 아카데미에서 절찬리에 판매하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그 용도는 당연하게도 머리에 베고 자는 것.
하지만 이 베개에는 숨겨진 효과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1회에 한해서 모든 낙하 데미지를 무시하는 것.’
그대로 현성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그가 히죽 웃으며 두 손에 들린 슬라임 베개를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슬라임 베개가 바닥에 충돌한 순간이었다.
-퍼어엉!
슬라임 베개가 급속도로 팽창하며 풍선이 터지듯 뻥 터졌다.
이에 사방으로 자욱한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연기가 걷히고 그 사이에서 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의 몸에는 아무런 생채기도 나있지 않았다.
현성이 태연하게 먼지를 털어냈다.
-툭툭.
그러면서 그가 발밑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방금 터진 슬라임 베개의 잔해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에 현성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성능 확실하구만.’
방금 전 급속도로 팽창했던 슬라임 베개.
그 원리는 간단했다.
본디 슬라임 같은 경우에 <이스페리아>에서 유일하게 낙하 데미지, 즉 낙뎀을 받지 않는 몬스터로 유명했다.
그 이유는 특유의 탄성과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 직전 자신의 몸을 부풀리는 특성 때문.
그리고 이 특성은 슬라임을 잡아 그 부산물로 만든 슬라임 베개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덕분에 예전에 많이 사용했지.’
현성이 과거 <이스페리아>를 플레이할 당시를 떠올리며 작게 웃었다.
이는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지만, 현성 그가 무기 대신 베개를 들고 싸우면서 밝혀진 설정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무기 대신 베개를 들고 싸웠던 이유는 무엇이었느냐.
‘…그냥 심심해서.’
원래 모든 발견은 우연치 않게 찾는 법이다.
당시 현성은 <이스페리아>에 더 즐길 컨텐츠가 없다며 급기야 가장 약한 무기로 보스를 잡는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그가 심사숙고 끝에 고른 무기가 바로 베개였으며, 현성은 이를 일명 베개 싸움 메타라고 불렀다.
그리고 현성은 베개를 장착한 상태에서 오직 순수 스텟 빨만으로 보스를 원샷원킬내는 미친 짓거리를 성공시켰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단련된 그의 육체와 스텟은 푹신한 베개를 단숨에 살상무기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 이것도 같이 찾은 거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기 그지없었다.
보스가 한방에 죽음과 동시에 슬라임 베개가 터지길래 혹시나 싶었는데, 진짜로 슬라임 베개에 슬라임과 같은 특성이 있을 줄이야.
‘…그때의 나는 도대체 무슨 정신머리였을까.’
개발사도 이런 건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어느 미친놈이 무기 대신 베개를 들고 싸울 것이며,
원샷원킬을 띄우는 것도 모자라서 이런 숨겨진 설정을 발견했을까.
하지만 그도 잠시.
“흐음.”
추억에 젖어있던 현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튼 이렇게 불의 둥지에 도착했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포인트를 얻기 전에 움직일 차례였다.
‘…1라운드에서 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대로 그가 몸을 풀며 걸어갔다.
현성이 향할 곳은 다름 아닌 몬스터가 모여 있는 장소.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는 이미 포인트를 얻기에 최적인 꿀스팟 정도는 줄줄이 꿰고 있었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불의 둥지 안쪽으로 꽤나 들어왔을 때.
현성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걸음을 멈춘 곳은 다름 아닌 용암이 폭포처럼 흐르는 절벽지형.
-부글부글.
그 아래로는 당장에라도 타오를 것 같은 시뻘건 용암이 부글거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주변에는 여기저기 화산 늑대가 모여 있었다.
이곳이 바로 현성이 찾고 있는 꿀스팟이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현성이 품속에서 빙결환을 꺼내 그대로 삼켰다.
-꿀꺽.
그러자 잠시 뒤.
온 몸을 타고 차가운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현성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정도면 주변의 열기를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다음 현성이 화염늑대들이 모여 있는 곳을 체크했다.
‘…화염늑대들이 모여 있는 곳은 총 3군데. 그중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중앙’
중앙에 있는 화염늑대의 수는 어림잡아 10마리 정도 되어보였다.
곧 현성이 화염늑대와 용암폭포를 번갈아보고는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그가 늑대무리와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는 판단이 들 때 쯤.
‘대충 이쯤이면 되겠고. 그렇다면 이제….’
현성이 사방에 널린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대로 주워든 돌멩이를 냅다 늑대무리 정 가운데를 향해 던졌다.
그리고 그가 날린 돌멩이는 정확히 화염늑대의 머리를 가격했다.
-빠악!
이에 현성이 히죽 웃었다.
완벽한 스트라이크.
동시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화염늑대가 현성을 발견했다.
“크르르….”
늑대 한 마리의 주의를 끌었다.
그럼 이제 대놓고 어그로를 끌 시간이었다.
현성이 화염늑대무리를 향해 손을 까닥이며 말했다.
“짖어봐. 멍하고.”
그때였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늑대의 하울링이 울려 퍼졌다.
“아우우우!!”
어그로가 끌렸다는 표시.
그와 함께 늑대무리가 일제히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