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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36화 (36/240)

036화 얼음무덤(8)

그대로 현성이 잠든 하린을 조심스레 바닥에 눕혔다.

하린은 방금 전 벤시 퀸을 처리하면서 갑작스레 많은 신성력을 소모한 상태.

아마 당분간은 이대로 두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그럼 이제….”

현성이 벤시 퀸이 쓰러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밝은 빛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선천강에서 데일런트를 쓰러트렸을 때와 똑같은 이펙트.

즉 보상이었다.

이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손을 뻗었다.

-파앗!

동시에 빛이 퍼져나가며, 그 사이 책 한 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그의 눈앞에 설명창이 떠올랐다.

[벤시 퀸의 마법서]

[등급 : 레어]

설명 : 얼음궁전에 군림하는 벤시 퀸의 힘이 담긴 마법서. 사용 시 벤시 퀸이 쓰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마법서를 사용해 스킬을 습득할 경우. 해당 마법서는 소멸합니다.

그것은 바로 벤시 퀸의 마법서.

<이스페리아>에서 몇 없는 보스의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유용한 아이템이었다.

그대로 현성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마법서를 바라보았다.

‘이래서 첫 던전 발견이 좋다니까.’

원래대로라면 벤시 퀸은 데일런트와 달리 100%확률로 아이템을 드랍하지 않는다.

즉 이 마법서는 어디까지나 일정확률로 드랍되는 아이템.

그렇기 때문에 본디 이를 얻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같은 던전을 트라이하는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당연히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이것이 바로 게임의 국룰이었다.

하지만 현성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히든 던전을 처음 발견할시 주어지는 특전.

그리고 그 특전의 효과 중 하나가 바로.

‘2시간 동안 아이템 드랍율 대폭 상승.’

무엇보다 지금 이 시점.

현성의 클리어 타임은 대략 1시간 50분 정도.

오히려 10분의 여유시간까지 남겨두고 던전을 클리어했다.

즉 특전의 보상은 계속 적용된 상태.

그 결과 현성은 단 한 번 만에 벤시 퀸의 마법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에 현성이 감격스러운 듯 마법서를 매만졌다.

‘…내가 드디어 특전 빨을 받아보네.’

그동안 <이스페리아>를 플레이하며 그가 특전 보상을 받았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현성은 무슨 액이 꼈는지 남들은 한 번에 띄우는 그놈의 아이템을 몇 번씩이나 트라이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똥손.

‘진짜 내가 아이템 하나 띄우려고 온갖 지랄을 다 했었는데….’

보스룸을 들어갈 때 왼쪽으로 들어가라.

문 앞에서 잡템 하나를 떨어트려라.

막타를 때리고 3초를 기다려라.

이게 전부 <이스페리아>에서 떠돌아다니던 일명 ‘드랍확률을 올리는 미신’들이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말도 안 되는 헛소문.

허나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는 그런 미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현성도 마찬가지.

‘…다른 건 피지컬로 커버라도 할 수 있지. 운빨은 답도 없어.’

그러니까 현성은 이론과 피지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인물 중의 고인물이었지만, 운은 항상 별개의 문제였다.

덕분에 현성은 그만큼 몸으로 구를 수밖에 없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운빨이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아무튼 그런 현성이 오늘만큼은 그토록 그리던 특전 빨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 보상을 확인 안 해볼 수 없는 법.

현성이 곧바로 마법서를 펼쳤다.

-촤르륵.

동시에 그의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벤시 퀸의 마법사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이에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법서를 사용했다.

그러자 마법서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오며, 그대로 현성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알림창이 올라왔다.

[벤시 퀸의 마법서를 사용해 스킬 : 얼음폭풍을 습득하셨습니다.]

[얼음폭풍. LV1]

-한 점에 얼음의 기운을 집중해 얼음폭풍을 쏘아낸다.

그와 함께 현성의 손에 있던 마법서가 서서히 사라졌다.

이걸로 마법서의 효과는 제대로 받았다.

현성이 주먹을 쥐었다 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정도면….’

이번에 얻은 스킬은 얼음속성의 마법.

안 그래도 현성은 이제 슬슬 추가적인 마법을 배우려던 찰나.

거기다 얼음속성이라면 곧 있을 불의 둥지에서 좋은 시너지를 낼 터.

역시 얼음무덤에 온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직 현성에게는 얼음무덤에 온 목적이자 메인디시가 남아있었다.

‘그럼 이제 얼음의 창을 회수할 차례.’

그것은 다름 아닌 얼음의 창.

이에 현성이 얼음궁전 중앙에 있는 제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제단 위로는 얼음에 뒤덮인 푸른 창 한 자루가 박혀있었다.

-스으으.

창 주변으로 피어나는 한기.

얼음으로 뒤덮인 창에서는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듯 했다.

그대로 현성이 조심스럽게 창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 창은 이것이 생전 얼음의 기사가 쓰던 창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얼음의 기사 헌리스의 창(봉인)]

[등급 : 레어]

설명 : 과거 얼음의 기사라고 불리던 헌리스가 쓰던 창. 그의 이명만큼이나 이 무기에는 방대한 얼음의 힘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때문일까. 창에 담긴 얼음의 힘을 제어하기 전까지는 쉽사리 사용하지 못할 것 같다.

아이템 설명을 읽은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헌리스의 창은 습득했다고 한들 곧바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이유는 보다시피 봉인이 걸려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냥 창을 썼다가는 오히려 사용자가 창에 깃든 얼음에 역으로 당하기 마련.

한마디로 자체 디버프가 걸려있는 무기였다.

그래서 창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따로 봉인을 해제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현성 역시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만큼 아카데미로 돌아간 뒤 따로 해제 과정을 거칠 예정이었다.

‘갈 길이 멀다. 멀어….’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현성의 건틀렛이 작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뒤이어 제단에 박혀있던 얼음의 창 역시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 둘은 마치 서로에게 맞춰 공명하는 듯 했다.

이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이건….”

현성조차도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현성이 자신의 건틀렛과 창을 번갈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기사단?”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과 얼음의 기사 헌리스의 창.

그 두 개가 동시에 반응하고 있다면 지금 상황에서 추측할만한 키워드는 오직 기사단 하나뿐이었다.

이는 단순히 현성 그가 가지고 있는 게이머의 감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수년간 <이스페리아>를 플레이해온 그의 촉은 정확했다.

-띠링!

[특수 조건 달성]

[조건 달성에 따라 특수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그때였다.

현성의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며, 제단에 박힌 창을 따라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티리카님?]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한 기사의 흐릿한 형상이었다.

마치 영혼과 같은 모습.

하지만 곧 현성의 얼굴을 확인한 그가 다시 말했다.

[아니…티리카 님의 후계자인가.]

그런 그의 가슴팍에는 익숙한 문양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문양은 다름 아닌 레드 후드 기사단의 것.

거기다 방금 전의 대사.

이것들이 가리키는 바는 간단했다.

‘이 자가 바로 헌리스?’

이에 현성이 작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얼음의 기사. 헌리스 님을 뵙습니다.”

이에 눈앞의 영혼은 의외라는 눈으로 현성을 훑어보았다.

그대로 잠시 뒤.

그가 작게 웃으며 현성에게 말했다.

[눈치가 빠른 자로구나. 하긴 티리카님의 후계자라면 당연한 건가.]

“….”

티리카의 후계자.

그것은 분명 현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 메시지 창에 적혀있던 단어.

특수 이벤트.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히든 컷신이 확실했다.

‘…그에 따른 발생조건은 아마 기사왕 티리카의 아이템을 장착한 상태에서 헌리스의 창을 만질 것.’

그렇다면 현성 그가 몰랐던 것도 이해된다.

과거 현성은 얼음무덤을 클리어 한 적은 있었지만, 티리카의 건틀렛을 착용하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스페리아>의 메인 스토리는 기사단의 의지를 이어 마족과 대항하는 서사.’

이를 고려하면 지금 같은 상호관계에 따른 이벤트가 발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봉인된 얼음의 창.

그리고 거기 깃든 헌리스의 영혼이라니.

오히려 유령계열의 몬스터가 등장하는 얼음무덤의 기믹을 생각하면 상당히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곧 현성이 피식 웃으며 자신의 건틀렛을 바라봤다.

‘…이런 히든 이벤트가 있었단 말이야?’

정말이지 극악의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본 이벤트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크게 4가지.

데일런트를 처치할 것.

티리카의 건틀렛을 입수할 것.

벤시 퀸을 처치할 것.

그대로 헌리스의 창과 접촉할 것.

심지어 기사단의 반지의 사용법이나 얼음무덤 발견 같은 것들을 뺀 게 이 정도였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현성이 이걸 해냈으니까.

하지만 보통 유저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현성 이전에 이걸 시도한 유저가 있었을까.

‘…미친 개발사 같으니라고.’

현성은 개발사의 악독한 난이도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런 걸 숨겨두다니.

허나 반대로 말하자면 현성은 그 미친 개발사들이 숨겨둔 걸 또 찾아냈다.

정말이지 ‘<이스페리아>의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칭호가 이렇게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감상도 잠시.

헌리스가 현성을 향해 말했다.

[헌데 자네가 티리카님의 건틀렛을 가지고 있다면…역시 그 후로 많은 세월이 흐른 모양이군.]

그렇게 말하는 헌리스의 눈빛은 어딘가 슬퍼보였다.

평생을 바쳐 마족과 싸우던 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과거의 일.

지금의 헌리스는 그저 얼음무덤에 묶여 벗어나지 못하는 망령이었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헌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시대는 마족에게서 안전한가.]

시간이 지났음에도 헌리스의 정의는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망령으로 전락했음에도, 그런 헌리스의 대사는 그가 틀림없는 기사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에 현성이 대답했다.

“확실히 전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앞으로는…사정이 다를지도 모르는 일이죠.”

실제로 지금 시점은 모르겠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마족의 움직임은 수면위로 올라올 게 분명했다.

‘덕분에 내가 이렇게 구르고 있지.’

만약 이곳이 모 게임처럼 소소하게 농사를 지으며 힐링하는 게임이었다면 몰랐겠지만, 그가 들어온 게임은 어디까지나 <이스페리아>.

전에 말했듯이 자칫하면 몬스터든 마족한테든 목이 따일 수 있는 세계관이었다.

[그렇다면 자네가 이곳에 온 이유 역시 그와 관련이 있다고 봐도 되겠나.]

헌리스가 말했다.

그런 그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은 그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생존의 연장선이자, 미래에 대비하기 위함.

“맞습니다.”

긴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딱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 대화의 흐름대로라면 다음에 이어질 대화는 바로.

[…그럼 내 창을 넘겨주면 되겠나.]

이에 현성이 주먹을 꾹 쥐었다.

드디어 원하던 대사가 나왔다.

동시에 그가 헌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 현성의 말에 헌리스가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기사단의 의지를 잇는 자. 그 중에서도 티리카님의 후계자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겠지. 아니 오히려 내 쪽에서 부탁하고 싶군.]

그와 함께 헌리스가 현성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늙은 망령의 부탁일세. 부디…기사단의 의지를 이어주게.]

얼음무덤 안.

나지막이 울리는 헌리스의 목소리.

이어서 현성의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헌리스의 창을 받겠습니까?]

[Y/N]

곧 현성이 피식 웃었다.

이미 정해진 답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Y를 택하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맡겨주시죠.”

그의 대답에 헌리스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럼…잘 부탁하네.]

그의 짧은 한마디.

동시에 주변의 어둠이 단번에 걷혔다.

그리고 창을 뒤덮은 얼음이 깨지며, 그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쩌엉!

환한 빛 무리 속.

얼음파편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 모습은 마치 얼음비가 내리는 듯 했다.

그렇게 내리는 얼음비 사이.

헌리스가 마지막 말을 꺼냈다.

[만나서 반가웠네. 기사의 의지를 잇는 자여.]

그와 함께 밝은 빛이 날개를 펼치며 그의 눈을 가렸다.

-파아앗!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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