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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34화 (34/240)

034화 얼음무덤(6)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설명을 마친 현성이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야.”

그리고 현성이 하린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며 그녀를 내려다봤다.

“할 수 있겠어?”

“저는 괜찮지만….”

하린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빠야말로 괜찮아요?”

그런 하린의 물음에 현성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그렇게 말하는 현성의 두 눈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에 잠시 고민하던 하린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어요. 해볼게요. 대신 한 가지 꼭 약속해요.”

“약속?”

동시에 하린이 현성의 손을 꼬옥 잡았다.

부드러운 그녀의 손을 타고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다칠 거 같으면 바로 도망치기.”

“…좋아.”

“알겠죠? 약속한 거예요?”

하린이 연신 걱정되는 모양인지 재차 물었다.

그러자 현성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꼭 약속할게.”

하린은 그대로 한참동안 현성의 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마침내 그녀가 잡고 있던 현성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기다릴게요.”

그런 하린의 얼굴에는 여전히 걱정스러움이 가득했지만 현성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만약 현성이 크게 다친다면 그땐 상상도 하기 싫었다.

소중한 사람과의 작별은 2년 전 오빠를 떠나보낸 걸로 충분했다.

더 이상은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껏 보여준 그의 말과 행동.

무엇보다 현성이라는 사람을 믿는다.

“…그럼 이따 봐.”

현성이 하린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현성이 눈앞의 문을 힘껏 밀었다.

-끼익…!

그대로 문이 열리고.

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보스룸을 향해 발을 내딛은 순간.

현성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쿠웅!

* * * * *

현성이 보스룸으로 들어온 직후.

처음 느낀 것은 모든 것을 얼려버릴 것만 같은 한기였다.

그리고 그 사이 느껴지는 기분 나쁜 소름.

단순히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불길한 음산함.

보스룸에는 현성 그만이 느낄 수 있는 음산함이 흐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문을 경계로 안과 밖은 다른 공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것은 필시 게이머의 본능일터.

-사아아.

그와 동시에 현성의 눈앞에 붉은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벤시 퀸의 궁전에 입장했습니다.]

뒤이어 주변에 가득하던 새하얀 한기가 단번에 걷혔다.

그 순간이었다.

[꺄아아아악!!]

귀를 찌르는 불쾌한 비명소리가 보스룸 전체를 울렸다.

이에 현성이 미간을 찡그리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앞으로 커다란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장발의 여성.

그녀의 머리에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티아라가 씌어져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공중에 붕 뜬 채 흔들리는 몸.

삐뚤빼뚤 찢어진 입.

앙상한 두 팔과 족히 1m는 넘어갈 것 같은 날카로운 손톱.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저게 바로 얼음무덤의 보스 몬스터.

벤시 퀸이었다.

“…간만에 봐도 비주얼은 여전하구만.”

현성이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모습.

만약 공포영화에 저런 귀신이 나온다면 몇몇은 당장 자리를 뛰쳐나갈 정도.

정말이지 누가 디자인한 건지 몰라도 컨셉 하나는 잘 살렸다.

‘오히려 너무 잘 살려서 문제일 정도지.’

현성이 피식 웃으며 벤시 퀸과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곳저곳 박살난 얼음 기둥과 천장에 간신히 달려있는 샹들리에.

이곳은 말 그대로 폐허가 된 얼음궁전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중앙에 떠있는 벤시 퀸의 위용은 그동안 마주친 스펙터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그런 벤시 퀸의 뒤로 보이는 제단.

그 제단에는 시리도록 푸른 창 한 자루가 단단히 박혀있었다.

이에 현성이 히죽 웃었다.

‘…제대로 있군.’

저게 바로 헌리스의 창.

과거 마족과 맞서 싸운 용맹한 기사의 무기이자, 현성 그가 노리는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이를 얻기 위한 조건은 바로 눈앞의 벤시 퀸을 쓰러트리는 것.

현성이 주먹을 펼치며 파이어 볼을 캐스팅했다.

동시에 현성을 감싸던 한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붉은 불꽃이 타올랐다.

-화르륵!

그대로 그가 벤시 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퇴마(물리) 한 번 화끈하게 해보자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성이 벤시 퀸을 향해 달려갔다.

-파앗!

이에 벤시 퀸 역시 현성을 향해 날아들며 양 손을 펼쳤다.

그러자 마치 날카로운 칼을 연상케 하는 그녀의 손톱이 튀어나왔다.

그와 함께 벤시 퀸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괴성을 내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끼이이이익!!]

그런 벤시 퀸의 기세는 단숨에 현성을 쪼개버릴 듯 했다.

그리고 벤시 퀸의 손톱이 그에게 닿기 직전.

현성이 팔에 불꽃을 두른 채로 어퍼컷을 날렸다.

그대로 그의 불꽃과 벤시 퀸의 손톱이 격돌했다.

-콰아아앙!!

마치 대포를 격발하듯 터지는 폭발과 화염.

그때만 해도 벤시 퀸은 자신의 공격이 들어갔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현성 그의 주먹은 누가 봐도 물리공격.

그렇다면 물리공격을 무시하는 유령계열의 특성상.

그녀의 공격은 현성에게 들어가고, 현성의 공격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터.

하지만 그 순간.

현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막을 게 아니라 피했어야지.”

동시에 붉은 불길이 단번에 벤시 퀸을 휘감았다.

벤시 퀸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끼익?!]

그러나 벤시 퀸은 이미 한 발 늦었다.

곧 거센 불길이 그녀의 몸에 옮겨 붙었다.

이에 벤시 퀸이 냅다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쳤다.

[끼에에엑!]

그 모습을 보고 현성이 히죽 웃었다.

“왜? 이런 공격은 처음인가보지?”

잔뜩 당황한 벤시 퀸.

스펙터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벤시 퀸 역시 유령계열의 몬스터이기 때문에 웬만한 물리공격은 무시.

하지만 현성 그의 주먹은 어디까지나 마법이 결합한 상태.

그 사실을 모르는 벤시 퀸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온 몸을 휘감을 불꽃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악!!]

그러나 몸부림치면 몸부림칠수록 그의 불꽃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하지만 그도 잠시.

벤시 퀸이 손을 펼치자 그녀의 몸을 타고 푸른 한기가 터져 나왔다.

-사아아!

그런 한기는 순식간에 사방을 감싸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온 몸을 휘감고 있던 불꽃이 한기에 뒤덮였다.

그리고 불길과 한기가 만나면 벌어지는 반응은 단 하나.

-콰아아아!!

벤시 퀸의 몸을 따라 자욱한 연기가 폭발하듯 솟아오르며 얼음궁전을 가득 메웠다.

그야말로 단숨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이에 현성이 미간을 좁히며 연기 속을 주시했다.

그때였다.

[멍…청한…인간 같으니…!!]

손톱으로 칠판을 긁듯 찢어지는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자욱한 연기 사이.

벤시 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그녀의 몸을 타오르던 불꽃은 사라진지 오래.

그대로 벤시 퀸이 낄낄거리며 허공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겨우 이 정도로 이 몸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그리고 말이 끝나자마자 허공을 날아다니던 벤시 퀸이 수직낙하하며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쉬이익!!

그러자 현성이 재빨리 파이어 볼을 캐스팅하며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벤시 퀸이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춰 주먹을 뻗었다.

그런 현성의 주먹에는 방금과 같은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촤아아악!!

벤시 퀸이 모습이 단숨에 흩어지며 말 그대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

이에 현성의 주먹이 벤시 퀸 대신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벤시 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그런 현성의 뒤!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그대로 벤시 퀸이 흉하게 찢어진 입을 쩌억 벌리며 현성을 집어삼켰다.

-콰직!

벤시 퀸의 포식 패턴.

이 공격은 물리적인 피해는 없다.

하지만 이 공격의 가장 무시무시한 점은 상대방의 정신을 파괴하는 정신계 공격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것이 벤시 퀸을 공략하기 힘든 이유였다.

순식간에 사라진 뒤, 배후에 나타나 바로 정신계 공격을 날린다.

이 패턴은 아무리 플레이어가 마법계열로 데미지를 입힌다한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패턴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건 가불기니까.’

가드 불능 기술.

줄여서 가불기.

스펙터와는 다르게 벤시 퀸의 포식 패턴은 정신계 공격을 입힘과 더불어 속박에 걸린다.

무엇보다 이는 아무리 의지 스텟을 올린다 한들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이것만큼은 설령 고인물인 현성이라고 해도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차라리 정면으로 맞선다!’

그것은 바로 정면승부.

동시에 현성의 시야가 어두워지며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는 벤시 퀸 특유의 정신계 공격에 당했을 때 나오는 연출.

‘그리고 게임 상 정신계 공격을 깨기 위해서는 특정키를 눌러 자해를 해야 한다!’

스스로 몸에 충격을 주는 것.

이게 바로 벤시 퀸의 속박을 푸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허나 지금 이곳에는 특정키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면 현성이 내릴 선택은 간단했다.

-까득!

그대로 현성이 자신의 혀를 씹었다.

곧 입안을 타고 비릿한 맛이 맴돌았다.

그리고 현성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속박을 풀기위해 주먹을 있는 힘껏 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움찔!

굳어버린 현성의 몸이 움직였다.

이는 단순히 혀를 씹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 정도로는 이렇게 속박이 빨리 풀릴 리 없었다.

그럼 어떻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벤시 퀸의 공격은 가불기지만, 여전히 의지 스텟의 영향을 받는다.’

즉 의지 스텟이 높다면 그만큼 빨리 속박을 풀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현성의 스텟은 30라는 상당한 수치.

‘…할 수 있다!’

현성이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힘을 주었다.

-으드득!!

그러자 서서히 굳어있던 몸이 돌아오며 어두웠던 그의 시야가 걷혔다.

동시에 띠링-! 하는 경쾌한 알림음이 들리며 그의 눈앞으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불굴의 의지로 속박을 벗어났습니다!]

곧 메시지를 확인한 현성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게 바로 의지 스텟의 진정한 효과.

그러나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벤시 퀸은 현성의 주변을 빙빙 돌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끼히히히힉!!]

실제로 <이스페리아>에서도 그랬다.

벤시 퀸의 정신계 공격에 당하면 플레이어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벤시 퀸은 그런 플레이어를 농락하듯 주변을 유영하며 대놓고 어그로성 대사를 내뱉고는 했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끼히히힉! 아둔한 인간 같으니…어디 한 번 방금 전처럼 또 때려봐라!]

그런 벤시 퀸의 말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오냐. 원하는 대로 해주마.”

[…무, 무슨?!]

움직이는 그를 발견한 벤시 퀸이 적잖이 당황한 듯 공중에 멍하니 멈춰 섰다.

그리고 현성이 그 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곧바로 현성이 옆의 얼음기둥을 밟고 도약했다.

[어떻게 하, 한낱 인간 주제에 내 속박을…!]

허나 이미 현성의 발끝을 타고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을 본 벤시 퀸이 외쳤다.

[네, 네놈! 정체가 뭐냐!!]

“…나?”

현성이 킥을 날리기 직전.

그가 벤시 퀸을 바라보며 조소했다.

“유현성.”

그대로 현성의 킥이 정확히 벤시 퀸의 얼굴을 가격했다.

동시에 타오르는 작열과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콰아아아앙!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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