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화 얼음무덤(4)
-띠링.
그와 함께 알림음이 울려퍼지며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유하린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등장인물 유하린의 상태창이 갱신되었습니다.]
이에 현성이 하린을 바라봄과 동시에 그녀의 상태창이 보였다.
[이름 : 유하린]
성별 : 여성
나이 : 16
종족 : 반인반마
클래스 : 마법사
업적 : [마족의 피가 흐르는], [성혈(聖血)을 타고난]
맨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물음표 표시가 되어있던 종족과 업적부분이 드러났다.
이는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른 결과.
스토리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거기다 호감도 상승까지.
이걸로 스토리 전개가 꼬일 걱정은 잠시 접어둬도 될 거 같았다.
그나저나 다름 아닌 오빠라니.
“….”
하린의 말에 현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소리를 다름 아닌 던전 안에서 들을 줄이야.
그것도 언데드가 득실거리는 던전 속이라니.
그야말로 생전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던전 안에서 과거사를 푼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물어보는데 어떻게 해.’
원래 생각대로라면 얼음무덤을 클리어 한 이후.
천천히 말할 생각이었지만 말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뭐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거 같으니….’
현성이 피식 웃으며 사소한 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가 하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편한 대로 불러.”
그러자 하린이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오빠!”
현성은 그런 하린을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여동생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는 하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오빠라고 불렀을 뿐인데 정말로 오빠가 생긴 기분이었다.
단순히 호칭덕분에 그런 건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 대상이 다름 아닌 현성이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남긴 유언.
실제로 나타난 사람.
무엇보다 말뿐이 아니라, 직접 자신을 구해준 사람.
그게 전부 현성이었다.
오빠가 죽은 후.
악착같이 살아온 그녀에게 처음으로 의지할 사람이 생겼다.
그만큼 하린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그녀가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시간 좀 내줘요.”
“시간? 그거야 어렵지는 않은데 왜?”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못한 이야기가 많거든요.”
이에 현성이 헛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번 던전이 끝나면 당분간 하린에게 잡혀있어야 할 거 같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현성이 하린과 던전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빨리 클리어 해야겠네.”
무엇보다 얼음무덤을 클리어해야 그 다음에 뭘 하든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 말에 하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럼 출발할까요?”
“그래.”
그렇게 현성과 하린이 다시 얼음무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 *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은 어느새 반짝이는 얼음들 뿐.
안쪽으로 들어올수록 서늘한 기운은 점점 더 심해졌다.
단순히 이곳이 얼음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언데드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하린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런 하린의 말에 현성이 대답했다.
“이곳은 오래 전 과거에 얼음의 창을 쓰던 기사와 그의 부하들이 마지막까지 마족과 싸웠던 곳이야.”
현성이 리플레카가 얼음무덤의 유래를 알려줬을 때 했던 이야기 그대로 말했다.
이에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도 마족이 있었군요.”
“그래. 결국에는 기사들이 모든 마족을 봉인하며 전쟁이 끝났다고 전해지고 있지.”
기사들과 마족과의 전투.
이게 바로 <이스페리아>의 설정에 존재하는 과거의 역사였다.
지금보다 훨씬 전.
마족은 인간계를 침략하려 들었고, 이에 기사라고 불리는 자들이 이들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 기사들을 이끌었던 자가 바로 현성이 착용하고 있는 건틀렛의 주인이었다.
‘…기사왕 티리카.’
과거 기사들과 마족의 전투는 기사왕 티리카의 활약으로 인간들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마족들은 호시탐탐 다시 인간계를 집어삼키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에 따라 <이스페리아>의 메인 스토리는 인간계를 노리는 마족에 맞서 싸우는 전개였다.
‘물론 지금은 조용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슬슬 마족들이 등장할 것이다.
마치 10년 전 대변동 때와 비슷하게 말이다.
그래서 히로인들을 공략하며 마침내 마족을 쓰러트리는 것이 <이스페리아>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기사들과 마족간의 전투라면 확실히 역사 시간에 들어본 적 있어요.”
하지만 그도 잠시.
하린이 현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오빠는 여기에 무슨 얻을 게 있어서 왔어요?”
하린의 질문.
이는 그녀가 전부터 계속 궁금했던 것이었다.
‘분명 얼마 뒤 있을 불의 둥지 탐사에 앞서 필요한 게 있다고 했었지?’
그러나 현성이 말한 필요한 물건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하린의 질문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방금 말했지? 이곳이 과거 얼음의 창을 쓰던 기사와 마족간의 전투가 있던 곳이라고.”
“그랬죠.”
“내가 필요한 건 그 기사의 창이야.”
“…창이요?”
그렇다.
현성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헌리스의 창’이었다.
헌리스의 창.
얼음무덤의 보스몬스터를 쓰러트릴 경우에 얻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얼음속성치가 상당히 높은 무구였다.
그리고 현성이 그 창을 얻으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불의 둥지 공략을 위해서는 그만한 무기가 없거든.’
전에 말했듯이 불의 둥지는 화산지형의 던전.
그에 따라 던전의 보스는 다름 아닌 전설 속 불을 먹는 도마뱀 ‘샐러맨더’.
여기서 현성 그의 기억대로라면 이번 던전 탐사의 목적은 바로 이 샐러맨더 토벌.
하지만 샐러맨더는 그 이름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화염계 공격은 거의 안통하며 온몸에 두르고 있는 불꽃 덕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몬스터. 거기다 화염 브레스까지.’
현성이 과거 <이스페리아>를 플레이할 당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도 샐러맨더 하나 잡겠다고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걸로 기억한다.
주인공으로 플레이할 때도 그렇게 애먹었던 녀석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 현성 역시도 마찬가지일게 뻔했다.
‘심지어 내가 쓰는 기술은 불 속성.’
아무리 현성 그가 데미지가 강한 힘법사라 할지라도 상성이란 게 존재했다.
화산지형에 살면서 불꽃을 뿜는 몬스터를 상대로는 불 속성 공격이 통할 리 만무했다.
그렇기 때문에 불의 둥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얼음 속성의 기술 혹은 무기가 필수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얼음 속성 마법을 배우기에는 제약이 너무 크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단 하나.
얼음 속성의 무기.
그래서 현성이 얼음무덤의 클리어를 목표로 삼은 것이었다.
‘…물론 나 혼자 왔으면 보스 클리어까지는 힘들겠지만.’
현성이 자신 옆에 서있는 하린을 바라보았다.
얼음무덤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전부 언데드.
여기서 언데드의 약점속성은 다름 아닌 불과 신성.
그야말로 현성과 하린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조건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와 동시에 현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슬슬 등장할 때가 됐는데.’
그 순간이었다.
현성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서 좀비 울음소리가 삐져나왔다.
[우워어억….!]
그리고 머지않아 곧 좀비무리와 스펙터가 현성과 하린을 발견하고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곧 현성이 파이어 볼을 캐스팅하며 하린을 바라보았다.
“하린아.”
“이미 준비됐어요.”
그런 하린의 손에는 벌써 스태프가 들려있었다.
이에 현성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번에는 신성력 쓸 수 있지?”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이 작게 웃으며 스태프를 꾹 쥐었다.
“물론이죠.”
“그럼 그쪽은 믿고 맡길게.”
그와 함께 현성이 파이어 볼을 움켜쥐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싸울 시간이다.
-파앗!
동시에 맨 앞에 있던 좀비 하나가 그런 현성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좀비가 입을 쩌억 벌린 순간.
현성이 히죽 웃으며 그대로 좀비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현성의 주먹을 타고 불꽃이 치솟으며 시원하게 폭발했다.
그 충격에 달려오던 좀비는 단번에 즉사.
그의 주변으로 붉은 불씨와 자욱한 연기가 솟아올랐다.
* * * * *
전투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과거 평균 스텟 3따리 시절의 현성이라면 모를까.
이미 진즉에 평균 10을 넘은 현성은 쉽사리 좀비의 공격에 당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주 공격은 언데드의 약점속성인 불.
그에 따라 데미지 보정치가 더해지며 안 그래도 강력한 힘법사 특유의 공격이 더 강해졌다.
이에 현성은 좀비를 상대로 무쌍을 찍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악!!]
현성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좀비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힘법사.
데미지 하나는 끝내주는 직업이었다.
힘법사로 전직한 그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현성이 뒤에 있는 하린을 흘깃 쳐다보았다.
-파아앗!
그곳에는 하린이 손을 뻗을 때마다 그녀의 손을 타고 밝은 빛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는 신성 계열의 기초 스킬 힐이었다.
힐은 기본적으로는 치유의 빛이지만, 언데드에게 있어서는 파괴의 빛 그 자체.
동시에 그녀의 빛이 닿기 무섭게 하린에게 달려들던 언데드들이 몸이 무너지며 먼지처럼 흩날렸다.
-사아아….!
말 그대로 언데드들은 하린의 털끝하나 건드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주변으로 끊이지 않는 밝은 빛.
역시 성녀의 운명을 타고난 등장인물답게 대단한 신성력이었다.
그렇게 현성과 하린의 활약으로 주변에 있는 언데드들이 빠른 속도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끼에에에!]
스펙터 한 마리가 현성의 뒤를 잡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현성은 앞에서 달려드는 좀비를 막 처리한 상태.
꼼짝없이 스펙터의 공격에 당할 위기였다.
이에 하린이 재빨리 현성을 향해 소리쳤다.
“오빠! 위험해요!”
스펙터.
유령계열 몬스터로 상당히 위험한 몬스터 중 하나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유령계열인 만큼 물리 데미지는 거의 안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펙터가 날리는 정신계 공격.
<이스페리아>에서 정신계 공격은 기본적으로 물리방어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야말로 공격과 방어 모든 물리계열을 무시하다시피 하는 특성.
이러한 특성 때문에 스펙터는 전사나 격투계열이 가장 잡기 힘든 몬스터 중 하나였다.
즉 지금 아무리 현성의 스텟이 올랐다고는 한들.
스펙터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면 그 충격이 상당할 터.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한 발 늦었다.
-촤아악!
스펙터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대로 현성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현성이 스펙터의 공격에 당했다.
[낄낄낄….!]
동시에 스펙터가 음산한 웃음소리를 냈다.
“오빠!”
이에 하린이 눈앞의 좀비들을 떨쳐내며 황급히 그를 향해 달려갔다.
만약 현성이 정신계 공격에 당했다면 빠른 대처가 중요했다.
그 순간이었다.
-터업!
현성이 돌연 손을 뻗어 스펙터를 ‘잡았다.’
그런 그의 손에는 붉은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스펙터가 당황한 듯 움찔거렸다.
[….?!]
그렇다.
스펙터가 아무리 물리공격을 무시한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물리공격.
마법공격은 예외였다.
그리고 현성 그의 클래스는 다름 아닌 ‘힘의 마법사’.
물리와 마법 속성을 동시에 가진 기괴한 클래스였다.
하린이 그 모습을 보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떻게….”
스펙터를 맨 손으로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더더욱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분명 방금 스펙터의 공격이 들어갔을 텐데?’
스펙터의 정신계 공격을 막는 방법은 강인한 정신력, 그러니까 의지뿐.
그리고 보통 사람이라면 이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하린 그녀는 물론 스펙터까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현성 그의 의지 스텟이 무려 30에 다다른다는 사실.
이 중에는 허수아비를 때려 올린 스텟 10중에는 의지 스텟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다 데일런트를 잡고 얻은 기사단의 반지의 효과로 15의 의지 스텟이 더해진 상태.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얼음무덤의 최초 발견 보상으로 의지가 3이 올랐고, 스텟 성장치 대폭 상승효과를 받아 몬스터를 잡으면서 추가적으로 2가 올랐다.
즉 총합 의지 스텟 30에 다다르는 현성은 지금쯤 웬만한 정신계 공격은 전부 버틸 수 있었다.
그것도 아무런 피해도 없이 말이다.
그야말로 정신계 공격에 한해서는 금강불괴(金剛不壞)와 같은 몸, 아니 정신력.
그대로 현성이 버둥거리는 스펙터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다 쪼갰냐?”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성이 스펙터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와 동시에 화염이 폭발하며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퍼어어엉!!
앞서 말했듯이 힘의 마법사는 물리와 마법속성을 가진 클래스.
그만큼 물리 데미지는 무시할 수 있을지언정 파이어 펀치로 인해 발생한 마법 데미지는 별개였다.
이에 스펙터가 억울한 비명을 내지르며 불에 타 사라졌다.
[끼이이이!!]
말 그대로 현성이 유령을 ‘때려잡았다.’
그 비법에는 힘법사만의 특이한 논리가 섞여있었지만 하린같은 제 3자가 보기에는 상식을 불허하는 행동.
그야말로 퇴마(물리). 그 자체였다.
이에 하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빠 주먹에 십자가 쥐고 때려요?”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