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화 얼음무덤(3)
“….”
현성의 말에 하린이 입을 앙다물고 그를 바라보았다.
첫 만남부터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좀 더 친해지면 풀릴 것만 같았던 궁금증은 오히려 알면 알수록 심해졌다.
당장 지금만 해도 그랬다.
‘어떻게 우리 가족만 알고 있는 사실을 선배가….’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선배가 죽은 자신의 오빠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선배에게서 오빠의 모습이 겹쳐보였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도 잠시.
하린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자신의 오빠, 유진은 그날 죽었다.
그리고 죽은 오빠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2년 전. 혼자 남겨진 그녀가 끊임없이 되뇌었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 다짐과는 달리 하린의 몸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앞섰던 걸까.
사실은 내심 죽은 오빠가 돌아오기를 바랐던 걸까.
마음 속 깊이 묻어두었던 그날의 기억이 자꾸만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결과.
아니란 걸 알면서도 하린이 입을 열었다.
“…오빠 맞아?”
하지만 그런 하린의 말에 현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하린이 그를 향해 다그치듯 외쳤다.
“대답해!”
“…알고 싶어?”
그 순간이었다.
가만히 서있던 현성이 돌연 그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런 그의 주먹에는 붉은 화염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에 하린이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꽉 감고 말았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작열과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들려온 것은 다름 아닌 좀비의 비명소리.
[끄어어어!]
그 소리에 잔뜩 움츠려들었던 하린이 재빨리 눈을 떴다.
그런 그녀의 뒤로는 어느새 좀비 하나가 쓰러져있었다.
하린이 이를 보고 움찔거렸다.
방금 전. 좀비가 자신의 뒤로 올 때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만약 현성 그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목덜미를 물렸을 터.
그대로 현성이 남은 불씨를 털어내며 말했다.
“…괜찮아?”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전투 중에 한눈을 팔다니.
부끄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다짜고짜 선배를 보고 오빠가 맞냐니.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분명 선배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에 하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 방금 전은 죄송했….”
하지만 그녀의 사과보다 현성의 말이 더 빨랐다.
“미안해.”
“…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천천히 말해주는 건데.”
그러면서 현성이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알고 있냐고 했지?”
“….”
“부탁받았거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달라고 말이야.”
부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
그대로 하린이 물었다.
“…누구한테요?”
“너희 부모님.”
곧 현성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지금은 우선….”
현성이 눈앞의 몬스터들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파이어 볼을 캐스팅했다.
“몬스터부터 다 처리하자.”
동시에 그의 손바닥을 타고 화염구가 타올랐다.
-화르륵!
* * * * *
그 후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이 마지막 좀비를 쓰러트리며 손을 털었다.
그의 주변에는 쓰러진 좀비들뿐이었다.
이걸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몬스터는 모두 정리했다.
“좋아. 이걸로 끝.”
그리고 잠시 뒤.
현성이 하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지?”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은 몬스터의 등장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현성이 했던 말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현성 그가 자신의 부모님에게 부탁받았다는 말.
그대로 하린이 스태프를 꾹 쥐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설명 해주세요.”
“알겠어.”
이에 현성이 흔쾌히 대답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하나….”
그리고 현성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러했다.
“우선 다시 소개할게. 내 이름은 유현성. 유 가문의 가주야.”
“…유 가문이요?”
“뭐 말이 가주지 사실은 몰락가문이지만…일단은 나밖에 없으니 가주라고 할게. 그리고 동시에.”
현성이 하린을 향해 말했다.
“너희 부모님에게서 너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가문이지.”
“그게 무슨….”
“좀 더 정확히는 우리 아버지에게 부탁했다는 말이 맞겠지. 하지만 아버지가 죽고 우리 가문이 몰락하는 바람에 상황이 어려워졌거든. 그래서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야.”
하린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정말인가요?”
그런 하린의 목소리를 타고 애써 감추고 있던 슬픔과 그리움이 새어나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과거 그녀의 부모님이 죽기 전 남긴 유언 때문이었다.
10년 전. 한창 게이트 너머에서 마족과 괴수들이 쏟아지던 시절.
일명 대변동.
하린의 부모님은 그런 전쟁터 속, 다른 능력자 가문들과 함께 마족과 괴수에 맞서 싸웠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대변동이 끝나던 날.
유독 햇살이 밝던 그 날.
하린은 부모님을 잃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끝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쓸쓸한 죽음뿐이었다.
그리고 유언의 내용은 이랬다.
‘너희를 남겨두고 죽는다한들 분명 다른 가문에서 너희들을 도와줄 테니 슬퍼하지 말고 기다리거라.’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다른 가문의 도움 따위는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싸워왔던 가문들은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결국 오빠와 단 둘이 남겨진 하린은 둘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희망 따위 이미 포기한지 오래였는데.
“…그게 설마 현성 선배였어요?”
이에 현성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늦어서 미안해.”
“….”
그런 현성의 대답에 하린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제야 모든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왜 현성이 선천강에서 자신을 구해줬는지.
어째서 이름을 알려주기도 전에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
자신이 신성력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부모님의 남긴 유언은 사실이었다.
동시에 그동안의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그동안 애써 밝은 척 살아왔지만, 오빠의 죽음까지 겹쳤을 때는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10년 전 대변동. 부모님의 죽음.
그리고 2년 전 사고. 오빠의 죽음.
겨우 15살인 하린이 버티기에는 너무 큰 슬픔들이었다.
그대로 하린이 울먹이며 말했다.
“…왜 이제야 왔어요.”
그런 하린의 한마디에는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이에 현성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
그리고 지금.
현성은 그 나름대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가 했던 말은 전부 거짓말이었다.
현성이 몰락가문의 가주인 것도, 하린의 부모님이 죽으면서 그런 유언을 남긴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 가문이 현성의 가문은 아니었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현성 그는 이 세계의 인물이지만, 동시에 이 세계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밝힐 수 없기에 그가 알고 있는 <이스페리아>의 설정을 통해 만들어낸 또 다른 설정.
그게 바로 지금의 거짓말이었다.
‘…물론 그 거짓말이 결과적으로는 잘 먹히기 했지만.’
울고 있는 하린을 보니 가슴 한편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임을 밝힐 생각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생존.
즉 해피엔딩을 이끌어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여기서 사실을 밝힌다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되겠지.’
현성이 품에 안긴 하린을 바라봤다.
‘실제로 작 중 하린을 찾아온 가문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대변동 당시.
하린의 부모님이 큰 활약을 한 것은 맞다.
허나 다른 가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의 약속을 저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린의 어머니는 다름 아닌 마족이었으니까.’
물론 하린의 아버지는 인간.
아이러니 한 사실이었다.
마족 때문에 발생한 전쟁에서 활약했던 게 인간 편에 선 마족이라니.
아무튼 이러한 사실 덕에 하린의 부모님은 대변동에서 큰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하린이 신성력을 쓴다는 사실을 감춘 이유도 이러한 사실 때문.’
하린은 인간과 마족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마.
그런데 그런 존재가 신성력을 쓰다니.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지면 위험해지는 건 당연히 하린이었다.
그러니 그 사실을 애써 감춰왔던 것이다.
심지어는 하린에게도 말이다.
‘…작 중 유하린은 부모님의 말대로 신성력을 감추고 살고 있지만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는 상태.’
즉 이 사실은 <이스페리아>를 클리어 한 현성 그만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현성의 선택은 지금과 같았다.
해피엔딩을 위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아무도 없었을 하린의 곁에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
그의 선택은 만약 눈앞에 있는 인물이 하린이 아니라 유진이었더라고 변함없는 선택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스페리아>의 메인 설정은 인간 vs 마족의 대립구조.’
또한 하린이 반인반마인 만큼, 주인공 유진 역시 반인반마이며 이 출생의 비밀은 후반부에 큰 분기점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마족 한쪽 진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만일 주인공이 마족 진형을 선택할 경우.
최종전쟁은 마족의 승리로 끝나며, 인간세상은 멸망한다는 배드 엔딩.
그리고 주인공이 죽은 지금.
만약 그나마 남은 하린이 죽거나 마족 편에 넘어간다면?
‘역시나 똑같은 배드 엔딩.’
결국은 해피 엔딩을 위해서는 끝까지 하린을 곁에 남아있으면서, 그녀가 마족의 편에 넘어가지 않도록 신경써야했다.
그대로 현성이 하린을 토닥이며 말했다.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게.”
현성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분명 해피 엔딩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하나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이곳이 게임 속이라 할지언정.
현성 그가 게임 속에 들어온 이상. 이곳 역시 그에게는 생존이 직결된 진짜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건 눈앞의 유하린에게도 마찬가지.’
그런 상황에서 10년 전 부모님이 죽고, 2년 전 오빠를 잃은 하린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물론 현성 그가 그녀의 모든 아픔을, 감정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적어도 울고 있는 하린을 격려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그동안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던 하린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녀의 눈은 빨갛게 부어올라있었다.
하지만 하린은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는 하린의 말에는 많은 뜻이 담겨있었다.
이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조금 진정됐어?”
“덕분에요.”
곧 하린이 아무렇지 않은 듯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동안 아무도 없이도 밝게 지내왔다.
물론 종종 슬픔과 그리움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모든 걸 놔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혼자가 아니야.’
드디어 곁에 같이 있어줄 사람이 생겼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와준 게 고마웠다.
동시에 자신감이 생겼다.
혼자일 때도 견뎠다면, 곁에 있어줄 사람이 생겼다면 더더욱 쉽게 견딜 수 있었다.
아니 식은 죽 먹기였다.
그대로 하린이 현성을 향해 손을 내밀며 웃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요.”
이에 현성이 그녀의 악수를 받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나도 잘 부탁해.”
“아. 그리고 하나 더 물어볼게 있는데 들어볼래요?”
하린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어볼 거?”
그리고 잠시 뒤.
하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고요한 얼음무덤.
하린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