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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30화 (30/240)

030화 얼음무덤(2)

-쉬이이이잉!

귓가에 들리는 것은 오직 살벌한 바람 소리 뿐이었다.

그 소리가 지금 자신의 몸이 끝도 없는 아래로 떨어짐을 알려주고 있었다.

동시에 머릿속이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선배가…선배가…나를!’

유독 오빠같이 느껴지던 선배가 자신을 떨어트리다니.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자신은 여기서 끝이라는 사실.

그대로 하린이 두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아프지도, 충격음이 들리지도 않았다.

귓가에는 여전히 바람소리가 들렸지만 그 뿐이었다.

이에 뭔가 이상함을 느낀 하린이 살짝 한쪽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보인 광경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이게 무슨…?!”

확실히 지금 이 순간에도 하린을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미끄러지고 있었다.

지금 자세히 보니 깊은 절벽은 경사면이 기울어져 마치 미끄럼틀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얼어버린 탓에 그 속도는 그야말로 초고속.

“흣…흐이잇!”

동시에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온 몸을 타고 느껴지는 가속도에 하린이 다시 눈을 꾹 감고 외쳤다.

“우아아악! 선배애애애애!!”

유하린.

<이스페리아>의 주인공의 여동생이자, 아카데미 1학년생.

귀여운 외모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녀였지만, 그런 하린에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롤러코스터를 싫어한다는 것.

이유는 간단했다.

어릴 적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안전바가 풀린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하린은 그 이후로 롤러코스터의 롤만 꺼내도 치를 떨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롤러코스터도 아니고 얼음슬라이드라니.

하린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쉬이이익!!

그리고 그 후로 1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얼음 슬라이드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하린이 바닥에 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잡았다!”

현성의 목소리와 함께 하린이 자신의 몸이 멈춘 걸 알아차렸다.

심지어 포근하다.

-포옥!

이에 하린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곧 그녀는 자신이 현성의 품에 안겨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성이 그런 하린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이제 괜찮아?”

“아니 어떻게….”

그대로 화를 내려던 하린이 순간 멈칫거렸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현성의 모습에서 오빠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그녀의 오빠 유진 역시 그랬다.

바닥에 떨어지려던 자신을 품에 안고 괜찮냐고 물어보던 미소.

둘은 너무나도 비슷했다.

심지어는 그때 롤러코스터의 안전바가 풀린 원인이 그녀의 오빠에게 있던 것마저 비슷했다.

‘…그런 것까지는 같을 필요는 없잖아.’

옛날 기억에 괜히 울컥한 하린이 눈을 비비며 고개를 숙였다.

“씨이….”

그 모습에 현성이 당황하며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미안해. 괜찮아? 많이 무서웠어?”

심지어는 달래는 모습까지 닮았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하린이 겨우겨우 진정하고 현성을 째려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무서워서 운 거 아니거든요.”

하린이 현성을 향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딱히 무서워서 운 건 아니었다.

다만 자꾸 오빠가 겹쳐 보이기도 하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울컥한 것뿐이다.

그렇게 말하는 하린의 모습은 마치 화가 난 병아리를 보는 듯 했다.

“미안. 방법이 이거 밖에 없었거든.”

현성이 연신 사과를 하며 품에 안고 있는 하린을 조심스럽게 내려주었다.

그러자 하린이 현성을 향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밥.”

“응?”

“미안하면 나중에 밥 사요. 비싼 걸로.”

그런 하린의 대답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꼭 살게.”

“약속했어요.”

“알겠어. 비싼 걸로 사줄게.”

그제야 하린이 한결 기분이 풀린 듯.

작게 한숨을 내쉬며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선배. 여기는 도대체 무슨….”

주변에는 온통 얼음과 고드름뿐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깊은 절벽사이 생성된 얼음동굴 같았다.

거기다 묘하게 기분 나쁜 한기까지.

얼음무덤에 이런 곳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이에 현성이 대답했다.

“…여기가 바로 숨겨져 있던 얼음무덤이야.”

그랬다.

얼어붙은 바닥 아래 존재하는 동굴.

이곳이 바로 진짜 얼음무덤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정신 나간 제작사였다.

‘이걸 이렇게 숨겨두다니.’

얼음무덤.

<이스페리아> 시즌투표 가장 적은 유저들이 들어간 던전 1위.

하지만 이곳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바로 그게 지금 현성과 하린이 있는 동굴.

‘즉 얼음무덤의 진가는 이 동굴을 발견하면서 드러난다.’

그리고 과거 <이스페리아>에서 그 비밀을 처음 찾아낸 것 역시 그였다.

때는 바야흐로 현성이 한창 게임 내 모든 npc들의 호감도를 최대로 올리는데 미쳐있을 당시.

그는 하나의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아마 이름이 절벽 위의 얼음 꽃이었나?’

절벽 위의 얼음 꽃.

서브 퀘스트 중 하나로 아카데미의 마법학 교수 리플레카의 부탁을 받아, 얼음무덤에서 꽃을 가져오면 되는 간단한 반복 퀘스트였다.

그리고 이 퀘스트는 그 난이도만큼이나 보상 역시 기대할 게 못되었다.

하지만 현성이 계속해서 이를 반복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리플레카 그 양반 호감작 한 번 해보겠다고 그랬었지.’

그래서 당시 현성은 얼음 꽃을 무려 100개를 따와 그걸 전부 리플레카에게 꼴아 박았다.

덕분에 그는 리플레카의 호감도를 최대로 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스페리아> 상에서는 npc의 호감도를 최대로 올릴 경우.

해당 npc와의 대화에서 특수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했다.

‘거기서 리플레카의 호감도를 최대로 올리고 얻은 정보가 바로….’

이 얼음무덤에 관한 정보였다.

‘리플레카가 해준 이야기는 얼음무덤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한 전설과 그 유래’.

그의 말에 따르면 과거 얼음의 창을 쓰던 용맹한 기사와 그의 부하들이 마지막까지 마족들과 싸우고 최후를 맞이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의 이름이 얼음무덤이었으며, 그만큼 얼음무덤 어딘가에는 그의 잔해가 존재한다고 전해진다.

여기까지가 리플레카가 전해준 이야기였다.

‘…그리고 보통 이런 전설은 진짜더라고.’

단순한 게이머의 감이었다.

그때부터 현성은 얼음무덤을 쥐 잡듯이 뒤지며 하루 종일 얼음무덤에 처박혀 온갖 곳을 탐색하였고.

그 결과. 드디어 이곳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는 당연히 그가 최초였으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현성이 눈앞에 뜬 메시지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최초로 얼음무덤의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업적달성 : 얼음무덤의 비밀을 알아낸]

[히든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최초발견의 진짜배기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뒤이어 올라오는 메시지 창들.

[히든 던전의 최초 발견자로 특전이 제공됩니다.]

[특전의 보상의 의지가 3오릅니다.]

[특전의 보상으로 아이템 드랍율이 대폭 상승합니다.]

[특전의 보상으로 2시간동안 스텟 성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이게 바로 현성이 노리던 것이었다.

바로 특전 보상.

의지 스텟의 상승과 동시에 아이템 드랍율과 스텟 성장치 대폭 상승.

무엇보다 이건 현성 그 뿐만이 아니라 하린에게도 적용된다.

그야말로 스텟을 올릴 수 있는 최고의 찬스.

이제 남은 것은 2시간 동안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

곧바로 현성이 앞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그럼 이제 진짜로 가볼까?”

* * * * *

그렇게 현성과 하린은 앞으로 걸어가며 본격적으로 얼음무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현성을 따라가던 하린이 말했다.

“…그런데 선배님은 이런 걸 어떻게 알고 계신 거예요?”

선천강때부터 공개대련에 이어 지금 얼음무덤까지.

그야말로 경이로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숨겨져 있던 얼음무덤.

알다시피 얼음무덤은 이미 탐사가 종료된 던전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이곳에서 숨겨진 공간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 말은 곧 현성 그가 전문 던전 탐사자들보다 예리한 시야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단순 아카데미 생이 탐사자들보다 더 수준이 높다니.

듣도 보도 못한 소리였다.

이에 하린은 눈앞의 현성이 놀랍다 못해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하면 믿어줄래?”

현성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하린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리고 단호한 그녀의 대답에 현성이 작게 웃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그러자 현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예전에 누나한테 들었던 이야기였어.”

“네? 누나…라고요?”

“응. 지금은 죽었지만.”

실제로 게임 설정 상 현성 그의 누나가 죽은 건 사실이지만 나머지는 거짓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경험상 탈룰라가 제일 효과가 좋더라고.’

수년간의 사회생활을 하며 터득한 일종의 지혜였다.

무엇보다 곤란한 질문이 들어올 때는 이쪽이 가장 효과가 빨랐다.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이 멈칫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하린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그런 곳을 왜 저랑 온 거죠?”

이에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꼭 너랑 오고 싶었으니까.”

“…네, 넷?!”

갑작스런 발언.

그와 동시에 하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현성이 이를 알아차릴 리는 없었다.

왜냐하면.

“온다. 준비해.”

그들의 앞으로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계열은 다름 아닌 언데드.

“어, 언데드?!”

갑작스레 등장한 언데드 몬스터에 하린이 재빨리 스태프를 소환했다.

-고오오.

얼음 무덤에서 등장하는 몬스터 좀비와 스펙터.

즉 언데드 혹은 유령.

그야말로 무덤이라는 기믹에 충실한 몬스터였다.

그리고 이게 바로 현성 그가 이곳에 유하린을 데려온 이유였다.

‘언데드의 약점 속성은 바로 성속성.’

거기다 유하린은 작 중 성속성 능력자들 중에서도 탑을 달리는 성녀가 될 운명.

그녀만 있다면 이번 던전 공략은 훨씬 수월해지기 마련이다.

방금 현성이 하린과 같이 오고 싶었다고 말한 것 역시 이런 의미였다.

물론 그걸 모르고 있던 하린은 약간 다른 뜻으로 해석한 모양이지만 차마 그걸 되물을 시간은 없었다.

우선 지금은 눈앞의 몬스터를 해치우는 게 우선.

동시에 현성이 하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린아. 어제 내가 마지막으로 말했던 거 기억나?”

“네? 마지막이라면….”

현성의 말에 하린이 어제 현성이 톡으로 말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내용은 분명.

‘…신성마법을 쓸 줄 아느냐는 말이었지.’

하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마법사.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저 장난으로 치부하고 넘겼다.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에 그런 이야기를 꺼내다니.

“신성마법. 쓸 수 있지?”

현성이 하린에게 물었다.

그 말에 그녀가 동요했다.

-움찔!

허나 동요하던 것도 잠시.

하린이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그때 그 소리. 장난이 아니었군요.”

“…물론이지.”

현성이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이에 하린이 들고 있던 스태프를 꾹 쥐었다.

-꾸구국.

하린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은 성(聖)속성 능력자임과 동시에 신성계열마법을 쓸 줄 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

그런데 현성은 지금 마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말하고 있었다.

하린이 나지막이 물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런 하린의 말에 현성이 대답했다.

“처음부터.”

“무슨….”

“라고 말하면 믿어줄래?”

현성이 싱긋 웃으며 하린을 바라봤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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