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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29화 (29/240)

029화 얼음무덤(1)

그렇게 주말이 찾아오고.

아카데미에서 가까운 워프게이트 앞.

교복을 차려입은 하린이 현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주변으로는 다른 아카데미 학생들이 한둘씩 지나가고 있었지만 아직 현성은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하린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후우….”

그녀는 오늘 현성과 만난다는 사실 덕에 전날 밤 잠을 설쳤다.

고작 던전 탐사를 같이 가는 것뿐인데 알게 모르게 긴장이 되는 이유는 뭘까.

하지만 그도 잠시.

하린이 정신을 다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곧 약속시간이 다가온다.

그리고 방금 온 톡으로는 현성 그 역시 이제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익숙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

검은 머리칼과 하린과 같은 아카데미 교복.

현성이었다.

이에 그를 발견한 하린이 반가운 듯 인사하며 외쳤다.

“선배! 여기예요!”

동시에 하린이 자신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

그리고 푸른 눈동자와 밝은 미소.

한 눈에 봐도 귀여운 하린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남학생들이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나 그 순간이었다.

“먼저 와있었네?”

현성이 하린을 향해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남학생들이 그 주인공이 현성임을 깨닫고 아쉬운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에 하린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그저 ‘주말이라 그런지 다른 학생들이 많구나.’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약속했던 워프 게이트 앞으로 도착한 현성이 말했다.

“오래 기다렸어?”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사실은 하린은 워낙 긴장한 탓에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먼저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굳이 그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곧 현성이 하린의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워프게이트와 그녀를 번갈아봤다.

“그래? 그럼 바로 갈까?”

“네, 좋아요.”

이에 하린이 흔쾌히 대답하며 현성을 따라갔다.

던전에 필요한 허가증이나 준비는 전부 현성이 미리 준비해왔다.

그렇다면 이제 워프게이트를 통해 바로 얼음무덤으로 가면 된다.

“이쪽으로.”

그렇게 현성과 하린의 워프게이트 위에 서고.

현성이 중앙에 솟아있는 마나석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자 마나석이 푸르게 물들기 시작하며 워프게이트가 시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리고 잠시 뒤.

워프게이트를 타고 푸른 빛기둥이 솟아오르며 현성과 하린을 감쌌다.

* * * * *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과 하린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얼음무덤의 바로 앞.

그 앞에는 푸른 거울 같은 입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스으으.

그런 입구 너머로는 서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에 현성이 입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게임 속에서 본 그대로였다.

곧 현성이 하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들어가자.”

“…알겠어요.”

그 말과 함께 현성과 하린이 입구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입구가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현성과 하린을 집어삼켰다.

이와 동시에 눈앞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곧 어둠이 걷히며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이건….”

끝도 없이 드넓게 펼쳐진 설원.

그리고 그 위에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었다.

전부 얼어붙은 얼음의 땅 위.

움직이는 것은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눈 싸라기 뿐.

이곳이 바로 얼음무덤이었다.

“…와아, 이게 던전 내부인가요?”

그 모습에 하린이 신기한 듯 감탄사를 내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작 입구하나를 넘었다고 이렇게 달라지다니.

그야말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이론상 던전 밖과 안은 다르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

그리고 현성 역시 던전에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린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

현성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을 바라보았다.

‘…어느 세월에 눈 폭풍을 뚫고 저기까지 올라 가냐.’

하늘에서 아름답게 내려오는 눈.

그러나 지금 현성에게 이는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심지어 군대에서의 제설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이러니까 유저들이 여길 싫어하지.’

허나 그에게는 꼭 이곳에 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이에 현성이 마음을 다잡고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목적지는 저 꼭대기야.”

“네? 꼭대기요?”

“그러니까 그 전에 이거 먼저 받아.”

그러면서 현성이 인벤토리에서 미리 준비해왔던 두터운 로브를 꺼냈다.

“이건….”

“아카데미에서 파는 방한 로브야.”

아카데미에서 파는 이 물건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로브지만 이래보여도 방한마법이 부여되어 있었다.

그대로 현성과 하린이 로브로 갈아입은 뒤.

다 갈아입은 것을 확인한 현성이 말했다.

“이쪽이야. 가자.”

“네! 선배님!”

그 말에 하린이 씩씩하게 대답하며 현성을 따라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린은 그저 단 둘이 현성과 이곳에 왔다는 사실에 상당히 들떠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그녀의 들뜸은 오래가지 못했다.

-휘이이잉!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점점 더 매섭게 몰아치는 눈 폭풍.

그리고 그 사이.

두터운 로브를 뒤집어쓴 하린이 미간을 찡그렸다.

“크읏…!”

자꾸만 앞으로 걸어가면 걸어가려 할수록 눈 폭풍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위로 올라갈수록 부드럽게 내리던 눈은 어느새 얼음조각으로 바뀌었다.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그랬다.

이에 하린이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하아…하아….”

아무래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처음 현성이 같이 얼음무덤으로 가자고 할 때만 해도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그저 몬스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설원에서 발자국을 찍으며,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괜히 던전이 아니었어.’

하린이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며 주먹을 꾹 쥐었다.

얼음 무덤의 무서운 점은 몬스터가 아니라 그 자체의 자연환경이었다.

그대로 하린이 앞서 걸어가던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에 비해 현성 선배는….’

생각해보니 추위를 대비한 로브를 가져온 것도 현성이었다.

거기다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묵묵히 올라가는 체력까지.

모든 게 자신과 비교되었다.

이에 하린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앞서가던 현성이 멈춰선 하린을 발견하고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곧 그녀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아직…괜찮아요.”

“너무 힘들면 잠깐 쉬어갈래?”

하지만 하린은 그런 현성의 말에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현성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가 안일했던 자신의 생각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하린이 현성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뇨. 할 수 있어요.”

동시에 하린이 입을 앙 다물고 다시 앞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조금만 더 힘내자. 이제 금방이야.”

“…네!”

그 말에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도 그녀는 몇 번 씩이나 넘어질 뻔 했지만, 그때마다 현성을 생각하며 힘을 내었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하린이 설산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그와 함께 한발 먼저 도착해있던 현성이 그녀를 끌어올려주며 말했다.

“수고했어.”

그러면서 현성이 빨간 액체가 들어있는 병을 내밀었다.

“자, 이거 마셔.”

“이건….”

그것은 다름 아닌 체력 회복 포션.

아카데미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고마워요. 선배.”

이에 하린이 싱긋 웃으며 현성이 건넨 포션을 들이켰다.

그리고 포션을 마신 지 얼마 지나지 않자 약효가 돌기 시작했다.

-파아앗.

그대로 설산을 올라오면서 쌓여있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잠시 뒤.

현성이 하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위쪽은 괜찮지?”

“네?”

이에 하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어? 그러고 보니….”

정상에는 그렇게 매섭게 불던 눈 폭풍도, 얼음조각도 없다는 걸 깨달은 하린이 자신의 주변과 현성을 번갈아보았다.

“꼭대기는 괜찮은 건가요?”

그러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쪽을 가리켰다.

“응. 그리고 저기 봐볼래?”

그렇게 현성이 가리키는 곳에는 마치 얼어붙은 호수를 연상케 하는 바닥이 펼쳐져 있었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그 아래였다.

얼핏 보면 분화구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아래에는 물대신 끝을 알 수 없는 절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덕분에 현성이 있는 위는 투명한 얼음바닥을 두고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하린이 작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와아…이런 건 처음 봐요.”

현성이 그런 하린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얼음 무덤.

이곳은 전에 말했던 대로 얼어붙은 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던전.

하지만 얼음무덤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방금 본대로 설산 꼭대기에 위치한 얼어붙은 바닥.

동시에 이게 바로 현성 그가 얼음무덤에 온 이유였다.

‘…그럼 이제 슬슬 준비해볼까?’

그대로 현성이 하린을 향해 말했다.

“지금 몸 상태는 괜찮지?”

“네. 방금 포션 덕에 괜찮아요.”

“그럼 이쪽으로 와볼래?”

그런 현성의 말에 하린이 별 의심 없이 얼어붙은 바닥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투명한 바닥아래 깊은 절벽이 더 자세히 보였다.

다시 봐도 신기한 구조였다.

그때였다.

현성이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네? 그야….”

그의 말에 하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불의 둥지에 들어가기에 앞서 필요한 게 있다면서요.”

“맞아.”

“아. 그럼 그 필요한 게 이 꼭대기에 있는 거군요.”

“…뭐 비슷하지.”

그제야 하린이 왜 현성이 설산의 꼭대기까지 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뭔지는 몰라도 꼭대기에 찾는 물건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대로 하린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빨리 가요. 그건 어디 있는데요?”

그런 하린의 말에 현성이 싱긋 웃으며 아래를 가리켰다.

“여기.”

“…네?”

순간 하린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었다.

이 아래라면 바로 끝도 없는 절벽이다.

그런데 필요한 게 아래에 있다니.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에이, 선배 장난치지 말고 빨리….”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하린은 현성의 두 팔을 휘감은 불꽃을 발견했다.

그 불꽃은 공개 대련에서 봤던 것과 똑같았다.

그 모습에 하린이 멍하니 현성을 바라봤다.

“…흐에?”

그대로 현성이 하린을 향해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린아.”

“…선배? 아니죠?”

하린이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중얼거렸다.

에이. 설마.

그가 미쳤다고 자신을 아래로 떨어트릴까.

그러나 현성의 입을 타고 나온 단 한마디.

“그럼 아래에서 보자.”

그 말과 동시에 현성이 힘껏 양팔을 바닥을 향해 내리찍었다.

-퍼어어엉!!

현성의 양 팔을 타고 불타오르던 불꽃이 폭발하며 설산을 타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충격은 투명한 바닥아래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에 바닥을 타고 서서히 금이 가더니.

-쩌저적…콰아아앙!!

얼어붙은 바닥이 와자작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그 위에 서있던 현성과 하린 역시 아래를 향해 떨어졌다.

끝도 보이지 않는 깊은 절벽.

그곳에는 하린의 처절한 외침만이 울려 퍼졌다.

“선배애애애애애!”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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