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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25화 (25/240)

025화 F급 파이어 볼(9)

현성은 방금 전 자신이 나온 교수 회의실을 뒤돌아보며 작게 웃었다.

이걸로 모든 계획은 끝났다.

회의결과 대련은 공식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마무리.

거기다 마지막에 현성이 놓고 간 진술서.

이로써 성준은 병원에서 아카데미로 돌아오는 즉시. 절차에 따라 바로 학교폭력에 대한 조사가 시작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조사가 시작되면 아무리 성준 그가 사실을 부인한다한들,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터.

‘…무엇보다 이번 대련에서의 패배.’

모두가 보는 앞에서 F급에게 패배했다.

여기다 더 해서 학교폭력 가해자.

이 정도면 전처럼 대놓고 현성을 포함한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 자연스레 가장 우려하던 제2의 현성, 제3의 현성을 막을뿐더러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진 그가 하시연에게 고백할 가능성 역시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즉 모든 게 성공적으로 풀렸다.

“이제야 한숨 돌리겠네.”

현성이 한결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아직 축제를 즐기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이에 현성이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6시인가.’

동시에 그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 역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축제를 만끽할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오늘은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었다.

아마 교수 회의가 끝났다고 코코아 톡을 보내뒀으니 곧 연락이 올 터.

-지이잉!

그런 현성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액정에 찍힌 이름은 다름 아닌 수연.

이번에 아카데미에서 대련을 한다는 소식에 그녀 역시 아카데미로 온 것이었다.

곧 현성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러자 전화기너머로 익숙한 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도련님. 회의 끝나셨다고요?”

“응. 방금 끝났어.”

그런 현성의 대답에 수연이 꽤나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결과는요?”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아무런 문제없지.”

그와 동시에 수화기 너머로 수연의 안도의 한숨이 들려왔다.

사실 그녀는 현성에게는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처음 대련 결과에 이의제기가 들어왔다고 전해 들었을 당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혹시 도련님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이것으로 인해 앞으로 아카데미 생활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그야말로 수연은 속으로 수만 가지 생각을 하며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행히도 아무 문제없음.

“정말 다행입니다.”

그제야 줄곧 긴장하고 있던 수연의 목소리가 한결 편해졌다.

그대로 그녀가 활기차게 말했다.

“그럼 저는 말씀하신대로 공개 대련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알겠어. 금방 갈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종료되었다.

이제 수연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 * * * *

한편 한창 대련이 진행 중인 공개 대련장.

현성의 대련이 있던 날을 제외하고.

공개대련은 마지막인 오늘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그 전에 비하면 확연히 달랐다.

물론 아직도 대련을 즐기는 관중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틀 전 현성의 대련이 임팩트가 너무 강한 탓일까.

관객들은 대부분 별 반응 없이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그 이후 진행된 대련은 대부분 뻔한 결과에다가 이렇다 할 반전도, 볼거리도 없었다.

하지만 현성과 성준의 대련은 시작 전 등급부터 현성의 활약까지.

그야말로 지루할 틈이 없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관객들의 반응이 차이가 나는 게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는 타 길드의 스카우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서도 청화길드의 진화연은 아예 턱을 괸 채 무표정으로 마지막 날 대련을 관람하고 있었다.

“…화연님. 저 친구는 어떻습니까?”

“별로.”

“그, 그럼 상대방은요?”

“별론데.”

계속되는 심드렁한 대답.

이에 길드원이 참다못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진짜 더 관심 가는 학생 없어요?”

그의 말에 화연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응. 없어.”

이틀 째,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현성뿐이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전부 거기서 거기였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상대방을 끝날 때 치솟았던 푸른 불기둥.

그때 화연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청화(靑火)’

자신이 속한 길드의 이름처럼 말 그대로 청화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그녀의 머릿속에는 완벽한 그림이 그려졌다.

청화를 쓰는 슈퍼루키가 청화길드에 들어온다.

느낌이 좋지 않은가.

‘바로 이거지.’

물론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그냥 순 억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들어먹을 화연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녀의 직감.

속된말로 느낌이 왔다.

‘…저 녀석이야말로 우리 청화길드에 어울리는 인재.’

이미 그렇게 결정을 내린 화연의 눈에는 다른 학생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야. 그런 거 말고 내가 말한 건 알아봤어?”

“그 유현성이라는 학생에 대해 조사해보라는 거요?”

“응. 그거.”

이에 길드원이 턱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그게…조사는 해봤는데 나오는 게 별거 없더라고요. 기껏해야 아카데미 3학년생에다가 몰락가문 출신인거 정도? 그리고 부모는 전부 사망. 위에 누나가 하나 있는데 누나는 행방불명이래요.”

“몰락가문? 그게 끝이야?”

“…예.”

“진짜?”

“예. 그거 말고는 뭐 없어요.”

그의 말에 화연이 입맛을 다셨다.

“씁…”

그러자 길드원이 말했다.

“그러니까 다른 학생이라도 좀….”

그와 동시에 화연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

“아니 그래도….”

“싫어. 너 내 눈 못 믿어? 나머지는 전부 다 볼 거 없다니까.”

화연이 아래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그런 단호한 대답에 길드원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물론 화연님의 안목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진화연.

그녀는 청화길드의 부길드장이라는 직위에 맞게 상당히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무력만 두고 보면 길드장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의 실력자.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녀만의 기준은 너무나도 확고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갈 수는 없잖아요.”

“오.”

화연이 작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그거 좋다.”

“하, 하지만 길드장님이 기왕 온 거 끝까지 보고가라고….”

“그럼 끝까지 봤다고 하면 되지.”

뻔뻔한 그녀의 대답에 길드원이 난감한 듯 말을 흐렸다.

“그러다 걸리면 큰일 나니까 그러죠….”

이에 화연이 피식 웃으며 그의 등을 퍽퍽 때리며 말했다.

“짜아식! 괜찮아. 어차피 그 양반 이런 거 잘 몰라!”

“아악! 아파요! 아프다구요!”

동시에 화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야. 그만 보고 놀러가자. 보니까 밖에 먹을 거 많더라.”

“아니 그러니까 이렇게 그냥 가면….”

“아. 괜찮다니까.”

그대로 화연이 길드원을 덥썩 잡았다.

“아, 안되는데….”

길드원의 처량한 발악.

하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곧바로 화연은 그를 끌다시피 하며 관중석을 벗어났다.

“너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그래. 츄러스 먹자. 츄러스.”

“예…그래요. 그럽시다….”

이에 운명을 받아들인 길드원이 힘없이 대답하며 그녀의 손에 끌려갔다.

* * * * *

그렇게 밖으로 나온 화연은 길드원을 질질 끌며 츄러스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화창한 날씨.

그리고 여기저기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와 풋풋한 아카데미의 학생들까지.

그 모습에 화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청춘이구만.”

화연이 학생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딱 학생일 나이, 그러니까 10년 전에는 이런 풍경은 꿈도 꿀 수 없었다.

10년 전 한창 게이트 너머에서 마족과 괴수들이 쏟아지던 시절.

그때는 매일 매일이 지옥이었으며, 매일 매일이 전쟁터였다.

주변에는 온통 박살난 도시의 잔해와 몬스터인지 사람인지 모를 시체로 가득했다.

보이는 건 오직 절망뿐이었으며, 손에 쥐어진 것은 피 묻은 검이 전부였다.

당시 화연의 나이가 17살.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이는 방법을 배웠다.

그런 화연의 왼손은 어느새 오른쪽 팔을 매만지고 있었다.

지금은 옷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오른쪽 팔에는 긴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과거 전쟁세대라면 하나쯤 가지고 있는 상처이자 살아남았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화연이 츄러스 가게를 발견하고는 싱긋 웃었다.

그녀는 지금 이대로의 평화가 좋았다.

그대로 그녀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활기차게 길드원의 팔을 끌고 달려갔다.

“야! 저기 츄러스 판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양손에 츄러스를 든 화연이 환하게 웃으며 걸어 나왔다.

그러면서 그녀가 한 입 가득 츄러스를 베어 물었다.

-와삭!

동시에 입 안에 달콤한 맛이 퍼지며, 코끝으로는 계피향이 맴돌았다.

역시 이럴 땐 단 게 최고였다.

그리고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야! 이거 하나 더 사와…앗!”

그 순간이었다.

미처 앞을 보지 못한 화연이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

-쿠웅!

이에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츄러스를 떨어졌다.

아니 떨어지려는 때였다.

갑자기 떨어지던 츄러스가 공중에 멈춰 섰다.

“…?!”

그런 츄러스의 겉에는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그녀는 그게 마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도 상당히 세세한 마력컨트롤.

그대로 화연이 고개를 들자, 그 앞에는 메이드 복을 입고 있는 한 여성이 서있었다.

곧 그녀가 화연을 향해 츄러스를 내밀며 말했다.

“괜찮으신가요?”

하얀 머리에 부드러운 미소.

하지만 그녀의 오른손에는 부드러운 미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화연이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

묘하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기억하는 얼굴은 좀 더 차가운 인상이었던 같은데.

잠시 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요?”

그러자 퍼뜩 정신을 차린 화연이 허둥지둥 츄러스를 받아들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대로 화연이 츄러스를 받아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시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역시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기분 탓이겠지.’

아마 그렇다면 방금 전 떠올린 과거가 문제였을 것이다.

이래서 후유증이란 게 참 무서운 법이었다.

그때였다.

저기서 누군가 하얀 머리의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수연! 많이 기다렸어?”

동시에 화연이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의 눈이 커지며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불렀다.

“…유현성?”

그는 다름 아닌 유현성.

대련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관심을 끌었던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런 화연의 말에 하얀 머리의 여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 저희 도련님을 아세요?”

“도련님? 그럼 그쪽은….”

곧 현성이 하얀 머리의 여성, 그니까 수연에게 다가오고.

수연이 화연을 향해 꾸벅 인사하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전 현성님을 모시는 메이드. 이수연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화연이 작게 감탄사를 터트리고는 재빨리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대로 그녀의 손을 타고 나온 것은 청화길드의 소속임을 증명하는 명함.

화연이 수연을 향해 명함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전 청화길드의 부길드장. 진화연입니다.”

이어서 화연이 수연의 옆에 서있던 현성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 그래도 마침 현성을 노리고 있는 그녀에게 지금 같은 좋은 찬스가 없었다.

“그리고 현성 학생? 대련 정말 인상 깊게 봤습니다. 부디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같이 밥이나 한 끼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런 그녀의 말에 수연이 활짝 웃으며 현성을 바라봤다.

“세상에 도련님! 벌써 눈도장 찍어둔 건가요?”

“아니 난 아무것도….”

“무조건 받을 거죠? 무려 청화길드라잖아요.”

청화길드.

한국 최고의 길드라는 평가를 받는 곳.

그만큼 수연이 그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오히려 현성 그보다 수연이 더 신난 모양이었다.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

그대로 현성이 화연의 명함을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저야 영광이죠.”

“좋아요. 그럼 언제나 편할 때 연락주세요. 그리고 수연 씨라고 했나요?”

“네? 저요?”

화연의 말에 수연이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화연이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고마웠습니다. 츄러스.”

“아뇨. 그 정도 가지고 뭘요.”

그녀의 인사에 수연 역시 작게 웃으며 화연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화연이 현성과 수연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꼭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화연이 길드원을 붙잡았다.

이에 길드원이 현성과 화연을 번갈아봤다.

“아, 아니 화연님 기왕 현성 학생까지 만났는데 이대로 그냥….”

“하하. 녀석. 조용히 하고 따라오렴.”

화연은 길드원의 의견을 가볍게 묵살하며 현성과 수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쇼!”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츄러스 가게에서부터 곧바로 대련장 뒤쪽까지 이동한 화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 그녀의 주변에는 길드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뒤.

길드원이 그녀를 바라보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기껏 그렇게 관심 있어 보이는 현성학생까지 만났지 않습니까. 근데 왜 이렇게 급하게 자리를 피하시는 겁니까?”

그의 말에 화연이 숨을 돌리며 말했다.

“…됐고. 너 방금 전 수연이라는 사람 기억하지?”

“아. 그 현성 학생 옆에 있던 메이드 분이요? 무지 예쁘게 생겼던데…근데 그 분은 왜요?”

이에 화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사람 누군지 캐봐. 기왕이면 현성 학생의 가문과 연관 지어서.”

“…저희는 흥신소가 아닌데요?”

그의 대답에 화연이 표정을 구기며 손을 들었다.

“팍씨! 닥치고 캐라면 캐봐. 임마.”

“아니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알려주세요!”

그러자 화연이 미간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뭔가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야.”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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