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화 F급 파이어 볼(7)
미하일의 말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어차피 이번 회의가 열린 경위는 현성 그 역시 미리 통보받아서 알고 있었다.
대련 중 도구사용과 등급조작이 의심된다.
그의 대련을 지켜본 교수가 이렇게 이의제기를 했다고 한다.
이에 현성이 회의실로 들어온 직후.
미하일을 중심으로 서있던 이클레아와 종학을 떠올렸다.
김종학.
아카데미의 검술학 교수이자, 성준을 편애한다는 설정을 가진 캐릭터.
‘…누군지 뻔하구만.’
보나마나 현성이 성준을 이기자, 종학이 이의를 제기한 게 분명했다.
실제로 그의 예상은 맞았으며, 곧바로 종학이 현성을 향해 물었다.
“우선 현성 군. 자네를 부른 이유는 이미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좋아. 그럼 길게 잴 거 없이 바로 물어보겠네. 이번 대련에서 불법적인 도구의 사용이나 등급조작이 있었나?”
사실 지금까지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지만 종학은 내심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다.
현성 그는 분명 불법적인 방법이나 아카데미의 검사를 교묘하게 피해 꼼수를 부렸다.
그도 그럴게 자신의 제자 종학은 검사 클래스 중에서도 발군의 실력.
그리고 마법학 교수 리플레카에게 물어본 결과, 눈앞의 현성은 마법사인 주제에 파이어 볼도 못 쓰는 실력.
거기다 다른 성적 역시 F인 퇴학위기의 학생.
만약 그런 현성이 성준을 이겼다면 분명 순수한 실력이 아닌 다른 도구의 도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저는 이번 대련에서 불법적인 도구의 사용이나 등급조작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뭐?”
현성의 대답에 종학이 미간을 구겼다.
그의 확신과는 전혀 다른 대답.
물론 한 번에 진실을 실토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보통 교수회의까지 왔다면 그 압박감에 조금이라도 긴장하기 마련.
하지만 눈앞의 현성은 긴장하는 기색은커녕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종학이 애써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다시 물었다.
“아무런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네, 맞습니다.”
그대로 현성이 다른 교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실제로 대련 전에는 이러한 불법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소지품검사와 상담을 진행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 역시 그 절차를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검사를 진행했던 이클레아 교수님이라면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죠?”
그런 현성의 말에 앉아있던 이클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실제로 현성 학생은 검사 결과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그때였다.
이클레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종학이 입을 열었다.
“이의 있습니다. 사전에 검사를 진행했다고 한들 혹시 모를 착오가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종학이 이클레아를 향해 이죽거리며 말했다.
“아. 물론 그렇다고 이클레아 교수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아카데미의 교수씩이나 되는 분이 설마 그럴까요.”
이에 이클레아가 표정을 찡그리며 종학을 째려보았다.
동시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리고 그런 둘을 지켜보던 현성이 작게 혀를 찼다.
보나마나 자신이 회의실에 오기 전부터 둘이 저렇게 싸웠을 게 분명하다.
거기다 현성이 알고 있는 이클레아의 성격이라면 이겼으면 이겼지, 절대 꼬리를 내릴 사람이 아니었다.
“…둘 다 그만하게. 학생 앞일세.”
싸해진 분위기에 보다 못한 미하일이 중재에 나섰다.
이어서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교수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의 질문에 회의실에 있던 교수들이 하나 둘씩 발언하기 시작했다.
“글쎄요. 아무리 이클레아 교수라고 하지만 조사를 대충할 정도로 책임감 없는 교수는 아닙니다. 거기다 현성 학생의 발언으로도 미루어 보았을 때 조사과정에서 문제는 없는 걸로 사료되는군요.”
“…아뇨. 전 다릅니다. 모든 조사과정에서 착오가 없었다고 확언하긴 힘듭니다.”
“저 역시 같습니다. 무엇보다 현성 학생이 당시 대련에서 보여줬던 수준은 모두 봐서 알고 있지 않습니까? F급 실력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대부분의 여론은 편이 갈렸다.
하지만 미약하게 조사과정에 착오가 있었다는 여론이 더 많았다.
그때였다.
이 여론에 쐐기를 박는 사람이 있었다.
“동의합니다. 현성 학생이 보여준 모습은 그동안 봐왔던 모습과 확연히 다릅니다. 제가 확신하죠.”
그것은 바로 마법학 교수 리플레카.
이에 현성이 작게 미간을 좁혔다.
알다시피 그는 마법학 강의를 수강한 적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F.
물론 이건 그가 빙의하기 전, 빡대가리 시절 현성의 실력이었다.
리플레카는 그때의 현성의 모습을 말하고 있었다.
“강의에 무단결석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게다가 3학년 중에서 유일하게 파이어 볼도 구사하지 못하는 학생. 그게 바로 유현성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현성 학생이 필기는 물론 실기 성적도 우수했던 성준 학생을 이겼다고요? 그것도 압도적으로?”
그대로 리플레카가 현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부분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의 말에 현성이 작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사실이다.
실제로 성적을 보아하니 출석부터 필기는 물론 실기까지 말 그대로 싹 다 망쳐 놨다.
뭐라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해야했다.
명실상부 과거의 현성은 폐급 그 자체였다.
이에 미하일이 물었다.
“현성 학생. 그 말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종학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거기다 제가 듣기로는 현성 학생은 학사경고도 받은 상태에다 퇴학위기라는데 맞습니까?”
그런 종학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꽃이 퍼지고 있었다.
동시에 여론은 급격하게 검사과정에 착오가 있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역시 평균 F. 학사경고. 퇴학위기의 효과는 대단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이클레아 또한 어떤 말도 꺼내기 힘들었다.
현성이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것 역시 사실입니다.”
현성의 대답.
그와 함께 종학이 씨익 웃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 그럼 이번 대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종학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제가 대련에서 승리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런 현성의 말과 함께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여론이 안 좋을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현성은 이제 슬슬 반격을 시작할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잠시 뒤.
정적을 깬 것은 종학이었다.
그가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현성 학생. 우리가 단순히 결과만 두고 그러는 게 아니지 않나. 과정을 두고 이야기 하자는 걸세. 실제로 자네 입으로 인정했지 않나?”
“맞습니다.”
현성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을 다음과 같았다.
“…F급은 평생 F급이어야만 합니까?”
“뭐?”
“퇴학위기라면 조용히 퇴학을 받아들이는 게 전부입니까?”
“지금 그게 무슨….”
그대로 현성이 종학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파이어 볼도 못쓰는 F급은 A급을 절대 못 이깁니까?”
“그, 그건….”
이에 종학이 잠깐 당황한 듯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가 지지 않고 말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지 않나! 자네의 등급이 그렇게 나왔지 않나? 그러니까 등급 결과가 그렇게 나왔….”
그와 동시에 현성이 재빨리 말을 꺼냈다.
“방금 단순히 결과만 두고 그러는 게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멈칫.
현성의 말에 종학이 순간 할 말을 놓쳤다.
제대로 현성의 페이스에 휘말렸다.
이에 종학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 말꼬리만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니잖나!”
“그럼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죠.”
“감히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그때였다.
미하일이 손을 들어 종학을 멈춰 세웠다.
“종학 교수. 멈추게나. 너무 흥분한 거 같군.”
“교장님!”
하지만 미하일은 그런 종학대신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성 군? 계속 말해보게.”
이에 현성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론을 뒤집을 시간이 왔다.
그러면서 현성이 종학을 포함한 다른 교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사실 별거 없습니다. 퇴학위기였기 때문에 노력했고, F급이었기 때문에 더 노력했습니다. 그 뿐입니다.”
“…그게 단순히 노력으로 가능한 일인가?”
그 말에 현성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손등을 보여줬다.
그런 그의 손등에는 밤새 허수아비를 때리며 생긴 상처와 굳은살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얀 피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흉한 상처.
그대로 현성이 말했다.
“말씀드린 대로 전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파이어 볼도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거라도 닥치는 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밤새도록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현성이 손바닥을 펼쳤다.
“저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동시에 그의 손바닥위로 불꽃의 구가 형성되었다.
파이어 볼이었다.
이에 종학이 미간을 좁혔다.
“…파이어 볼?”
하지만 현성의 파이어 볼은 너무나도 불안정해보였다.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형상.
그 순간이었다.
-꽈악!
현성이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손바닥 위에 있던 파이어 볼의 형태가 일그러졌다.
-움찔!
동시에 종학을 포함한 다른 교수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알 수 있었다.
구현의 실패.
그렇다면 그 결과는 폭발.
“다, 당장 멈추게!”
“지금 이게 무슨 짓…!”
허나 그 순간이었다.
폭발할 줄 알았던 파이어 볼이 현성의 팔을 휘감았다.
마치 회오리처럼 넘실거리는 붉은 불꽃.
-화르륵!
그대로 현성이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넘실거리던 불꽃이 일제히 한 점에 모이며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그때와 같은 그 불꽃.
그때와 같은 그 폭발.
대련장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기술이었다.
현성이 실내임을 감안해 어느 정도 위력을 조정했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리플레카가 덜덜거리는 손으로 안경을 치켜세웠다.
“저, 저건….”
그와 동시에 이클레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법변형.”
그녀는 아카데미에서 포션학을 담당하고 있지만 주 분야는 어디까지나 연금술.
그리고 연금술과 마법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
게다가 이클레아는 연금술이라는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천재.
이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했다.
곧 리플레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안정된 마법변형의 형태. 이런 방식은 저도 처음 봅니다…!”
그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흩날리는 불씨를 바라봤다.
그대로 그가 현성을 향해 말했다.
“정말이지 놀랍군요! 제가 보기에는 기존의 <시동-구현> 단계가 아닌 다른 단계로 변형한 거 같은데 맞습니까?”
리플레카는 교수이기 이전에 마법사였다.
그 중에서도 그의 학구열은 상당히 높은 편.
그리고 현성은 그런 그의 성격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여론을 뒤집을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마법의 시전.
결국 요지는 대련에서 보여준 것들이 전부 실력임을 증명하면 그만이었다.
거기다 아카데미에는 리플레카를 포함해 마법이라면 무조건 관심을 가질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현성이 성준을 쓰러트린 직후, 떠올랐던 메시지 창들의 향연.
‘…관심, 감탄, 기대 그 외 등등.’
당시 현성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앞에서 인정을 받아냈다.
그 증거가 바로 평판 상승.
동시에 그때 그 메시지에는 아카데미의 교수들의 이름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서 마법변형을 보여준다면?
‘그 결과는 보다시피.’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었다.
실제로 리플레카에게 있어 현성이 F등급이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학구열을 자극하는 방금 그 마법일 뿐.
이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방금 전 교수님의 말이 맞습니다.”
이어진 다른 교수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그, 그럼 저게 도구를 사용한 게 아니라 마법이라는 소리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군요.”
“이클레아 교수까지 인정했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마법변형이라니…그게 학생의 경지에서 가능한 일입니까?”
대부분의 반응은 놀라움.
하지만 그 중 단 한 사람만은 전혀 달랐다.
그것은 바로 김종학.
그가 주먹을 꾹 쥔 채 부들거렸다.
‘제, 젠장. 이게 아닌데….’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