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화 F급 파이어 볼(6)
현성과 성준의 대련이 있고 나서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에 따라 아카데미 안쪽에 위치한 교수 회의실.
그곳에는 교수들이 모여 뭔가 난감한 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바로 이틀 전에 있었던 대련의 결과 때문.
F급이 A급을 이겼다.
거기다 대련 중 성준이 제기한 이의.
확실히 대련 중 현성이 보여준 기행은 마법사라 보기도, F급이 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마법사가 아니라면 주먹을 내지를 때 보였던 불꽃은 무엇인가.
아니 애초에 과연 F급이 그런 공격이 가능한가.
이에 마법학 교수 리플레카가 입을 열었다.
“우선 그때 불꽃은 마법의 흔적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다만?”
“자세한 건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해봐야겠지만 적어도 제가 보이기에는 기존의 마법과는…그 형태와 발현방식이 확연히 다르군요.”
그의 말에 검술학을 담당하는 교수 김종학이 미간을 좁혔다.
“흠….”
검술학을 수강하는 제자 중 상위권이라 자부하는 성준이 겨우 F급에게 나가떨어지다니.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했다.
“그럼 마법이 아니라 다른 도구를 썼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마법이 아니 다른 도구.
실제로 불을 일으키는 방법에는 비단 마법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당장 라이터나 그게 아니면 불 속성 마법이 인챈트된 스크롤을 사용하는 경우도 충분히 불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공개 대련에서 이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실력을 겨룬다는 취지의 대련과는 어긋나기 마련.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에서는 이러한 도구의 사용을 금기하고 있었다.
종학이 이어서 말했다.
“게다가 불과 저번 학기 공개대련만 해도 이런 불법사례가 존재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만큼 사전에 소지품 검사를 철저히 했습….”
“그럼 그 학생이 절대 도구를 쓰지 않았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
“그, 그건….”
확실한 증거는 없다.
사전에 소지품 검사를 철저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현성이 도구를 쓰지 않았다고 확신하기에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현성이 명문가라면 모를까. 그는 몰락가문 출신.
괜히 현성을 옹호했다가 덤터기를 쓴다면 그건 그야말로 교수입장에서 최악이었다.
이에 다른 교수들 역시 서로 눈치만 볼 뿐.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자 종학이 다른 교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대련. 없던 걸로 하죠.”
“예? 없던 걸로 말입니까?”
“그 실력이 온전히 본인 실력일리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장 현성 군을 불러 통보를….”
그 순간이었다.
-철컥!
교수 회의실이 문이 열리며 누군가 종학을 향해 말했다.
“…누구마음대로?”
붉은 포니테일과 불만 가득한 눈동자.
그녀는 바로 아카데미의 포션학 교수, 이클레아였다.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없던 걸로 하기는 개뿔. 니가 무슨 자격으로 없던 일로 하라는 겁니까?”
이클레아가 검술학 교수 종학을 째려보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말에 종학이 미간을 움찔거리며 중얼거렸다.
“이클레아 교수….”
이번 회의는 크게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뉘었다.
종학과 같이 현성의 승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의견.
그리고 다른 한쪽은 현성의 승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
그리고 이클레아는 두 개의 의견 중 후자에 속하는 교수였다.
그녀가 종학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끄러운 줄 아십쇼.”
“…뭐?”
“그쪽이 아끼는 제자가 당한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학생을 끌어내리면 쓰나.”
이어서 이클레아가 다른 교수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다른 교수님들도 똑같습니다. 누구는 잘난 가문 출신이라 봐주고, 누구는 몰락가문 출신이라 무시하고. 적어도 교수면 중립의 입장을 지켜야 되는 거 아닙니까?”
포션학 교수 이클레아.
최연소 아카데미 교수이자, 연금술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자.
동시에 평소 행실은 제 마음대로 강의를 취소시키지 않나.
대놓고 일하기 싫다고 양호실에 오지 말라고 하지 않나.
얼핏 보기에는 이게 정말 교수는 맞는가 싶은 사람.
하지만 적어도 부당한 상황 속에도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자.
상대가 누구든 곧 죽어도 자기 할 말은 끝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게 바로 아카데미의 포션학 교수.
이클레아였다.
이에 일부 교수들이 움찔거렸다.
허나 모든 교수가 그런 건 아니었다.
“지, 지금 그게 뭐하는 짓인가!”
“감히 증거도 없이 다른 교수들을 욕보이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오!”
그리고 물론 그 중에는 종학도 있었다.
“맞는 말입니다. 방금 그 발언. 그냥 넘어가기에는 상당히 거북하군요.”
그 소리에 이클레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히죽 웃었다.
“그래요? 그럼 그냥 안 넘어가면 어쩔 겁니까?”
종학의 키는 180㎝가 넘는 훤칠한 몸.
그에 비해 이클레아는 165㎝.
족히 15㎝가 차이 나는 신장에도 불구하고 이클레아는 전혀 기죽지 않으며 말했다.
“…여기서 한판 붙기라도 하시게?”
그런 이클레아의 말에 종학이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허어! 그게 무슨….”
사실 종학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대련을 없는 일로 하자고 한 이유는 자신의 제자 성준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젠장, 하필 이클레아 이 미친년한테 걸려서….’
종학 그 역시 교수들 사이에서도 미친개라 불리는 그녀의 성질머리를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클레아 그녀가 현성을 옹호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수업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별 관심도 없는 그녀가 이 일에 끼어드는 게 의문이었다.
‘…그깟 F급이 뭐가 대수라고!’
별다른 연줄도 없을뿐더러 총합 F의 폐급.
심지어는 학사 경고까지 받아 퇴학 위기인 학생.
그렇기 때문에 그를 옹호하는 교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이대로 대련은 없던 일이 되는 게 정상이었다.
허나 일이 그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일이 꼬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갑자기 자신의 애제자인 성준이 유현성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버러지를 대련상대로 지목할 때부터 이상했다.
도대체 A급인 제자가 뭐가 모자라서 F급의 학생을 대련상대로 지목하느냔 말이다.
그렇지만 성준의 의견은 확고했다.
어떤 설득을 해도 자신은 무조건 현성과 대련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성준이 가문에서 받는 돈이 얼만데….’
그의 가문 측에서 차기 가주인 성준을 잘 봐달라고 찔러둔 돈 때문이었다.
흔히 말하는 로비.
한마디로 이건 어쩔 수 없이 받는 호의였다.
그의 선배도 그랬고, 그의 선배의 선배도 그랬고.
심지어는 현 아카데미의 다른 교수들도 그랬다.
아니 오히려 마땅한 대우였다.
아카데미의 교수가 누군가.
최고의 엘리트를 길러내는 최고의 기관.
그만큼 그에게는 프라이드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응당 아카데미의 교수라면 이 정도 호의는 받아야 마땅했다.
‘거기다 성준이잖아.’
A급인 성준이라면 한 손으로 싸워도 F급인 현성을 이기는 게 당연했다.
지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종학의 생각은 대련이 시작하고 180도 달라졌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기묘한 기술….’
단순히 격투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법으로 치부하기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기술이었다.
거기다 도저히 F급이라 믿을 수 없는 실력까지.
이를 시작으로 성준은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처참하게 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련이 끝난 후 이미 그의 꼴은 만신창이.
때문에 지금쯤 성준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터.
그에 비하면 현성이라는 놈은 말짱하다.
‘그래서 우선 대련을 없던 걸로 하려 했건만….’
종학이 자신의 앞에 서있는 이클레아를 바라봤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한 치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허나 그건 종학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물러나면 성준은 공식적으로 패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떤 수모를 당할지 모른다.’
차기 가주가 될 성준을 케어한다는 핑계로 그의 가문에서 받아온 돈이 얼만가.
그런데 여기서 성준이 지는 꼴을 방관하고 있으면 당장 돈은 물론, 그의 안위까지 위험해진다.
그만큼 그가 여기서 물러나면 그 끝은 나락이었다.
이에 종학 역시 지지 않고 이클레아를 향해 말했다.
“…외람되지만 포션이나 만지는 교수님이 대련에 대해 뭘 안다는 겁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적어도 대련에 관해서는 검술학 교수인 제가 더 잘 알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었다.
종학 그가 선택한 방법은 적반하장.
불행 중 다행히도 상대는 이클레아.
평소에도 미친개라 불리며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킨 만큼 오히려 이대로 밀어붙이면 결국 다른 교수들은 종학의 편을 들어줄게 분명했다.
실제로도 그의 생각은 반은 정답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대련에 관해서는 종학이 훨씬 우위에 서있었다.
그런 만큼 이클레아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
하지만 그런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었다.
“쯧.”
그것은 바로.
이클레아 그녀가 종학의 생각보다 훨씬 미친년이라는 것.
“…그럼 보여드리죠.”
“예?”
“대련에 관해서 뭘 아시냐면서요.”
동시에 이클레아의 몸이 사라졌다.
-스팟!
단순히 빠르게 움직인 게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는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이클레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종학의 뒤.
“…!”
이에 종학이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찬 검을 뽑으려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덜컥!
종학의 손이 허공에 멈추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종학을 포함한 대기실의 모든 교수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속박당한 것 같은 모습.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이런 일을 행할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다들 그만하게.”
바로 아카데미의 교장이자 대마법사의 제자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자.
미하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의 특기는 염동력과 중력제어.
그 때문에 항상 그의 주위에는 무거운 중압감이 흐른다는 소문이 존재했다.
실제로 지금 이 공간에서는 그를 제외하고 움직일 수 없는 자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쯤이면 충분한 거 같군.”
그대로 잠시 뒤.
미하일이 손가락을 퉁기자 공간을 짓누르던 중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동시에 종학을 포함한 교수들이 비틀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곧 미하일이 다른 교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카데미의 모범이 될 교수들이 아카데미에서 이러면 안 될 일이지.”
그렇게 미하일의 등장으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이에 종학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그럼 교장님은 어떻게 하시는 게 좋다고 보십니까.”
그런 종학의 말에 미하일이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자네의 요지는 현성 군에게서 불법적인 행위와 등급의 오류가 있는 거 같으니 대련을 없던 일로 하자는 거 아닌가.”
“네, 맞습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대련 전 소지품검사와 상담은 이클레아 교수가 진행하는 걸로 아는데 맞나?”
그의 말에 이클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그러자 종학이 미간을 좁히며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럼 이클레아 교수가 제대로 검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닙니까. 아시다시피 이클레아 교수는 평소에도 업무태도가 불량하기로 소문났지 않습니까.”
이에 이클레아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런 그녀의 주의로 싸늘한 공기가 맴돌았다.
그때였다.
미하일이 그런 둘 사이에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이클레아. 검사는 제대로 했나.”
그의 말에 이클레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소리입니다. 물론 상담 역시 확실히 진행했고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이클레아가 불량교수라고 한들, 문제가 생길정도로 일을 대충 넘기지는 않았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녀의 연구실적을 포함한 업무에서 문제가 발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자 미하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네. 그럼 이클레아 교수에 대한 의심은 지우도록 하지.”
“예? 하지만….”
“김종학 교수. 거기까지 하게. 더 이상 말을 꺼내면 그건 이클레아 교수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뽑은 나에 대한 의심으로도 간주하겠네.”
미하일의 단호한 말.
이에 종학이 하려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미하일이 다른 교수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종학교수가 한 말처럼 현재 현성 군의 실력도 의심스러운 게 사실.”
앞서 말했듯이 당장 F급이 A급을 상대로 승기를 잡았다.
그것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확실히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사도 확실히 실시하는 게 맞다 판단되네.”
“그, 그럼 역시 대련을 없던 일로….”
“아니. 그건 아닐세.”
종학의 말에 미하일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미하일이 양 팔을 벌리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회의가 열린 게 아닌가.”
“….”
“그에 따라 당사자에게 직접 말을 들어보는 게 옳다고 생각하네만?”
그러면서 미하일이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성 군. 들어오게.”
“예, 알겠습니다.”
그러자 현성이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현성이 들어옴에 따라 그에게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미하일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해보도록 하지.”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