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화 F급 파이어 볼(4)
처음 성준이 이의를 제기할 때는 일부러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섣불리 나섰다가는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성은 조용히 자리를 지켰고.
‘결과는 보다시피.’
현성이 작게 미소 지었다.
사실 성준을 포함한 관중과 교수들까지 자신이 F급인 걸 의심한다해도 딱히 어쩔 수 있는 건 없었다.
왜?
현성 그는 실제로 F급이었으니까.
거기다 클래스도 엄연히 마법사긴 했다.
‘…앞에 힘이 생략되었긴 했지만 뭐 어쩔 거야.’
거기다 아카데미 측에서는 이미 대련에서 불법행위가 일어날 것을 대비해 사전에 철저한 소지품검사와 상담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현성은 그 절차도 제대로 이행했으며, 물론 불법행위로 간주될만한 것도 전혀 걸리지 않았다.
그가 소지품 검사 중 유일하게 걸린 것은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
하지만 본디 대련에서는 보호구 혹은 무기를 포함한 이 정도 장비는 허용된다.
실제로 성준이 들고 있는 검 역시 그의 가문에서 가져온 장비였다.
물론 처음에는 마법사가 웬 건틀렛을 착용했는지 질문을 받았긴 했지만 보호구라고 말했다.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잖아?’
건틀렛은 전투 시 팔을 보호하는 용도로 쓰인다.
무엇보다도 공개 대련의 룰 중에 마법사는 건틀렛 사용을 금지한다는 룰을 없었다.
현성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는 만큼 대놓고 건틀렛을 착용하는 게 문제냐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검사관이 그런 건 아니라며 그대로 통과시켜줬다.
즉 룰에 위배되는 행동은 없었다.
‘결국 내가 착용한건 보호구인 건틀렛 하나 뿐.’
그러면서 현성이 자신의 팔에 장착하고 있는 평범한 검은 건틀렛을 바라보았다.
거기다 혹시 몰라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을 칙칙한 검은색으로 뒤덮어둔 상태.
이 정도면 누가 봐도 평범한 보호구였다.
-카앙!
그대로 현성이 건틀렛을 마주치며 성준을 바라봤다.
“그럼 더 말하고 싶은 건 없는 거지?”
이의를 제기해 대련을 중지시키려던 성준의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
그렇다면 성준은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검을 들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현성이 땅을 박차며 성준을 향해 달려갔다.
-파앗!
그 모습에 성준이 말을 더듬으며 황급히 자세를 취했다.
“제, 젠장…!”
* * * * *
중단될 뻔했던 공개 대련이 다시 보란 듯이 진행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대련장의 분위기는 뜨거워졌다.
절대 이길 리 없던 F급의 반격.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A급의 위기.
좀처럼 보기 힘든 최고의 반전에 관중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대련을 생중계하던 카메라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저기 검은 머리 쪽으로 카메라 돌려!!”
“PD님…그, 그럼 성준은요?”
“지금 분위기 보면 몰라? 카메라 돌리라니까!”
“예, 옛! 알겠습니다!”
이미 공개 대련장의 카메라는 현성을 위주로 화면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특별관람석에서 이를 바라보던 시연은 줄곧 현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다른 학생회임원이 중얼거렸다.
“…와. 어떻게 성준 선배를 저렇게 압도할 수 있지.”
“맞아. 저게 F급이라니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회장님?”
그런 후배의 말에 시연이 멍하니 현성을 바라보고 있다가 한 박자 뒤늦게 대답했다.
“…그러게.”
평소 그녀답지 않은 반응.
하지만 무려 F급이 A급을 압도하는 초유의 대련인 만큼, 다른 학생들은 거기에 신경이 팔려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시연 그녀 스스로 조차 대련에 집중한 나머지 평소와는 다른 자신을 눈치 채지 못했다.
‘대단해.’
시연이 현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프로필이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의아해했다.
현성 그의 클래스는 마법사.
그러나 대련 전 그녀가 본 현성의 모습은 마법사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선천강에서도 검을 썼던 건 물론. 훈련장에서도 계속해서 주먹을 내지를 뿐.’
그때까지만 해도 시연은 그가 틀림없는 전투계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련을 시작하고 난생 처음 보는 전투스타일에 시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제야 왜 마법사인 그가 그렇게 허수아비를 때렸던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선천강 때도 그랬어.’
그때도 현성은 보란 듯이 그녀의 예상을 깨고 남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신식 훈련장 대신 구식 훈련장을 찾을 때도 그랬다.
심지어 밤새 허수아비를 쳤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공개 대련 역시 마찬가지.
현성은 언제나 그녀의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시연은 그런 현성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는 기대하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대로 시연이 작게 미소 지었다.
물론 그 모습을 다른 학생들이 봤다면 놀랐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지금은 모두 대련에 집중하느라 그런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한편 특별관람석 아래.
길드 스카우터들이 모여 있는 관중석.
그곳 역시 지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 녀석. 이름이 뭐라고 했지?”
“유현성이라고 했습니다.”
“좋아. 계속 주시하고 있어.”
인재들을 스카웃하기 위해 온 수많은 길드의 스카우터들은 현성의 전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또한 그 중에서도 한국 최고의 길드라고 불리는 ‘청화’도 있었다.
특히 청화에서는 부길드장 진화연이 직접 참가해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껏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련을 볼 뿐이었다.
‘…전부 다 시원찮구만.’
이게 지금까지 그녀의 평가였다.
어째 최고의 인재를 배출해내는 아카데미의 명성치고는 별 볼일 없는 수준.
이에 역시 일부 최상위권 학생을 기대해봐야 하나 하던 순간이었다.
“…!”
줄곧 심드렁하던 화연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 기점은 바로 현성이 성준에게 공격을 먹였을 때.
그때부터 화연은 현성이라는 학생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대련은 그야말로 그녀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도저히 F급으로 보이지 않는 탁월한 전투센스.
근접전을 유도하는 마법사.
리치차이를 극복하는 유연한 대처.
거기다 무엇보다 저 전투방식.
기존의 학생과는 분명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
‘확실해. 내 직감이 말하고 있다’
심지어 대련이 진행되는 지금조차도 현성은 전혀 밀리는 기세가 없었다.
오히려 상대방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런 현성의 모습에 화연이 히죽 웃었다.
드디어 찾았다!
그녀가 현성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말했다.
“…야. 쟤 유현성이라고 했지?”
“예, 맞습니다. 그런데요?”
그대로 화연이 눈을 빛내며 주먹을 꾹 쥐었다.
“가족, 출신가문, 특기 뭐든 상관없으니까 관련된 거 싹 다 조사해.”
“…예? 어, 언제부터요?”
길드원의 말에 화연이 흥분되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
“지금 당장!”
* * * * *
갈수록 과열되는 공개 대련장.
성준이 검을 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허억…허억….”
그에 반해 눈앞의 현성은 아주 멀쩡해보였다.
이상했다.
뭔가 이상했다.
장기전으로 가면 무조건 자신이 유리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보는 대로.
“…왜? 무엇 때문에?”
사실 이유라면 수도 없이 많았다.
처음부터 허용한 2번의 큰 공격.
첫 번째 공격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2연속으로 나가떨어질 정도로 큰 공격을 허용했다.
그만큼 피를 흘리고도 모자라, 턱이 돌아갈 정도의 충격을 입었다.
이에 따라 성준의 체력은 지금쯤 반절 아래로 떨어진 상태.
지치는 게 당연했다.
거기다 지금 이 순간마저도 계속해서 근접으로 붙어오며 자신을 압박하는 현성까지.
“크윽!”
성준이 힘겹게 검을 휘두르며 끈질기게 붙어오는 현성을 떨어트렸다.
점점 그의 동작은 커져갔다.
동시에 성준은 자존심 때문에 애써 무시하고 있던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점점 내가 밀리고 있다.’
A급인 자신이 F급인 현성에게 밀리다니.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었다.
허나 그에게도 육체의 한계란 게 있었다.
“젠장….”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성준은 인정하기로 했다.
그동안 자신이 괴롭혀왔던 거지새끼 현성이, F급 나부랭이 현성이 자신을 이기고 있다고.
그와 함께 이미 진거 같은 패배감이 성준의 몸을 감싸 올랐다.
아마 현성 그가 아니라, 다른 학생이었다면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패배를 인정하면 그땐 정말로 마지막 자존심은 물론 그동안 쌓아왔던 이미지까지 한 번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하시연.
적어도 그녀 앞에서는 그런 추태를 보여주기 싫었다.
곧 죽어도 그건 싫었다.
그대로 성준이 자신도 모르게 시연이 있는 관람석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하시연 그녀만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멈칫.
시연이 시선이 향한 곳은 자신이 아닌 현성이었다.
동시에 검을 쥔 성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분노였다.
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성뿐만 아니라 시연에게도 향했다.
‘왜…왜 내가 아닌 저놈을…!’
그동안 시연에게 다가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가문을 내세우고, 알게 모르게 성준 그가 아카데미 내에서 얼마나 어떤 입지에 있는지 보여줬다.
허나 시연은 절대 넘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현성에게는 관심을 가졌다.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관심을, 시선을, 미소를.
현성은 너무나도 쉽게 자신이 원하는 걸 차지했다.
하필 현성이 그걸 차지했다.
이에 성준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검을 쥐었다.
“그래…인정한다.”
현성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만큼 여기서 철저하게 그를 박살낸다.
다리 한쪽이라도, 팔 한쪽이라도, 아니면 눈이라도.
도저히 어느 한 곳을 박살내지 않고서는 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 같았다.
동시에 그러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가문의 비전 검술.’
가문에서는 최대한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기라고 했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지금 눈앞의 현성을 박살내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성준이 검을 고쳐 잡았다.
-스으으.
그 모습을 보고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돌연 성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동안 줄곧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갑자기 음침하게 고개를 숙이고서는 저렇게 변했다.
무엇보다 이 느낌.
보통 <이스페리아>에서는 극적인 연출을 위해 인위적으로 집어넣은 요소가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위화감.
보통 이런 위화감은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시스템 상으로 알게 된다.
가장 큰 예시로 BGM이 변하는 게 그랬다.
그리고 데일런트 때.
그가 마지막 페이즈에 접어들 때도 그랬다.
비록 BGM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현성은 그 위화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게임 속의 등장인물이라면 느낄 수 없었다.
허나 현성 그는 <이스페리아>의 플레이어였기에 알 수 있었다.
즉 오직 플레이어만이 느낄 수 있는 그 감각.
‘그리고 보통 이런 경우에는….’
아주 높은 확률로 상대가 각성하거나 마지막 비기를 준비한다.
실제로 데일런트가 그랬으며, 게임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그의 게이머의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바로 지금이 대련의 마지막을 장식할 차례라고.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