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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8화 (18/240)

018화 F급 파이어 볼(2)

한창 대련이 진행 중인 공개 대련장.

그 현장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불이 붙기 직전이었다.

한 자리도 빠짐없이 빽빽하게 홀을 채운 관중들.

그리고 이에 보답하듯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아카데미의 학생들.

그야말로 대련장의 분위기는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무엇보다 이번 경기!

이번 매치는 대진표가 공개되었을 때부터 모두가 관심을 가졌던 경기였다.

그것은 바로 [3학년 이성준 VS 3학년 유현성]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3학년끼리의 대련이었지만 그 이름이 듣는 순간 말이 달라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먼저 선수 소개하겠습니다. 3학년의 이성준!”

이번 매치 선수는 다름 아닌 그 유명한 이성준.

그리고 해설자의 말과 함께 성준이 대련장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갈색머리의 가르마 펌.

여전히 선해 보이는 미소.

그런 성준의 허리춤에는 그의 무기인 롱소드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그대로 그가 대련장위로 오르기 무섭게 스크린에 성준의 얼굴이 잡히며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이성준.

꽤나 이름 있는 유명가문 출신의 아카데미의 3학년.

거기다 대외적으로 착한 성품과 수려한 외모.

덕분에 아카데미에서 많은 교수들의 신임을 받는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홀을 뒤덮은 관객들의 커다란 환호.

성준이 이에 보답하듯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리고 잠시 뒤.

“자, 그럼 그 상대는…3학년의 유현성!!”

해설자의 말과 동시에 현성이 대련장 위로 걸어오며, 그 장면이 스크린에 잡혔다.

하지만 관중들의 반응은 방금 전과는 정반대였다.

고요한 정적.

이에 관중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대화는 주로.

“유현성? 걔가 누구야?”

“그러게. 처음 보는 놈인데 왜 성준 선배랑 싸워?”

“누구 쟤 아는 사람?”

이렇게 현성의 존재에 대해 묻는 사람들과.

“왜. 있잖아. 저번 학기에 학고 맞은 놈. 아마 이번이 퇴학 위기일걸?”

“아, 그래서 퇴학 피하려고 일부러 저러는 건가?”

보통 공개대련에서 이기면 성적에 가산점이 붙는다.

그리고 이 가산점은 서로 비등비등한 것보다 상대방과의 격차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점수가 컸다.

그래서 간혹 자신보다 높은 수준의 상대를 지목해 가산점을 노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단순히 가산점을 노렸다고 보기에는 그 격차가 너무 컸다.

“아니. 내가 볼 때는 그냥 카메라에 한 번 잡히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빼박이지.”

“푸하하! 하긴 상대가 성준 선배 정도 되는 유명인이면 한번쯤은 잡히겠네.”

이것이 대부분 이성준 VS 유현성에 대한 평이었다.

이성준은 아카데미 대외적으로 어느 정도 네임드니, 그런 그와 싸우면 대련에서 지더라도 생중계에는 꽤 많은 모습이 잡힐 수 있는 건 당연지사.

실제로 이런 목적으로 대련에 참가하는 아카데미 학생들도 있었다.

그리고 보통 이런 학생들을 부르는 호칭은 정해져있었다.

“뭐야. 그럼 그냥 관종 새끼잖아.”

“그렇지. 뭐.”

바로 관심종자.

지금쯤 현성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저 스크린에 잡히기 위해서 용을 쓰는 관종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전광판에 성준과 현성의 프로필이 공개되었다.

이름 : 이성준

클래스 : 검사

무기 : 롱소드

필기성적 : A 실기성적 : A

총 평가 : A

이름 : 유현성

클래스 : 마법사 무기 : 없음

필기성적 : F

실기성적 : F

총 평가 : F

그리고 각자의 프로필이 공개되는 순간.

관중들의 웅성거림은 단숨에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와하하하하!

당연히 그럴 수밖에.

저 처참한 등급차이를 보아라.

무려 A급과 F급의 대결이다.

오히려 웃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동시에 관중들이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배를 잡고 웃었다.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던 화면의 채팅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개관종 새끼였네ㅋㅋㅋㅋㅋ

-A랑 F는 솔직히 에바아님? 밸런스 똥망이네.

-ㄹㅇㅋㅋ-그럼 저 새1끼는 뭔 깡으로 나온 거임?

-걍 상대방 코인타고 관심 받으려 나온 거지. 무조건임ㅋㅋㅋㅋㅋ

-맞음. 우리 형이 아카데미 출신이라 아는데 저런 새1끼 은근 존나 많음.

끊임없이 올라오는 비웃음의 향연.

이에 대련장 위에 올라와있던 성준이 작게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였다.

아니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A급과 F급의 대결.

누가 봐도 승패는 정해져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혹여나 아카데미 측에서 제재가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결과는 지금 보다시피.

‘내심 걱정했지만 다행히 대련은 성사되었다.’

그동안 철저히 가면을 쓰고 행동해왔던 가식의 미소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몇몇 교수들은 끝까지 대련을 의심했지만 대부분의 교수는 성준이라는 그의 이름을 믿고 대련을 진행시켰다.

거기다 웬일인지 현성은 끝까지 도망치지 않았다.

지금도 그랬다.

관객들이 비웃음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저 뻔뻔한 표정.

‘…꼴에 하시연 앞이라 이거지?’

그러면서 성준이 위쪽에 따로 마련된 관중석에 앉아있는 시연을 바라보았다.

교수진과 학생회를 위해 마련된 대련이 가장 잘 보이는 1등석.

그곳에서 시연이 여전히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현성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꾸드득.

이에 성준이 허리춤에 찬 검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도 잠시.

성준이 피식 웃으며 반대편의 현성을 째려보았다.

‘…허나 어차피 오늘 여기서 짓밟아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대련에 들어가기 직전.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자, 그럼 두 선수. 각자 할 말이 있습니까? 먼저 이성준 학생?”

이에 현성이 항상 남들 앞에서 연기하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선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아카데미 측의 모두에게 감사 말씀드리며, 다른 학생들도 축제를 즐기며 이를 교본삼아 다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길 바랍니다.”

그야말로 아카데미의 모범생다운 무난한 인사.

그대로 성준이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현성아. 잘 부탁한다.”

이 말을 끝으로 성준의 인사가 끝났다.

아카데미와 학생들에게 전하는 마음과 상대방까지 배려하는 깔끔한 인사.

그의 인사에 관중들이 성준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다가온 현성의 차례.

“좋습니다. 그럼 유현성 학생은 할 말 있나요?”

사회자가 마이크를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현성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동시에 관중석을 포함한 홀 전체가 고요해졌다.

마치 물을 뿌린 듯 무겁게 착 가라앉은 분위기.

하지만 그도 잠시.

관중들이 일제히 그런 형성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우우우우!

그 모습을 본 성준이 입을 가린 채 그를 비웃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관객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줄곧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이에 성준이 미간을 좁혔다.

‘어차피 박살날 주제에 애써 태연한 척하는 꼴이 역겹군.’

저번 복도에서도 그랬다.

감히 시연과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수모를 안겨주다니.

성준은 그때 그 수모를 몇 배, 아니 몇 백배로 돌려줄 것을 각오했다.

아무튼 그렇게 양쪽의 인사가 끝나고 사회자가 뒤로 물러났다.

이제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대련이 시작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대련이 시작하기 전부터 분위기는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성준! 이성준!”

“박살내버려라!”

관중들은 전부 일방적으로 성준을 응원하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A급의 인재. 수려한 외모.

거기다 대외적으로 좋은 이미지까지.

이번 대련은 철저히 성준의, 성준에 의한, 성준을 위한 완벽한 독무대였다.

그대로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그럼 대련…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우렁찬 외침과 동시에 대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대련이 시작하기 무섭게 성준이 허리춤의 검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탐색전 따위는 없는 시원한 전개!

그 모습에 관중들이 환호하며 생중계를 하던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런 성준의 모습을 담았다.

-슈슉!

이에 현성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 있다가 성준이 달려오고 나서야 손바닥을 펼쳤다.

“파이어….”

그 모습을 보고 성준이 킥 웃으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뻔하다. 너무나도 뻔하다.

현성 그의 클래스는 마법사.

그렇다면 마법사와의 전투방법은 정해져있었다.

‘…마법을 캐스팅하기 전 거리를 좁힌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는 현성이 F급 마법사인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기초마법 파이어 볼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폐급 마법사.

그렇기 때문에 무서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쇄도하는 성준, 이제야 겨우 위태위태하게 파이어 볼을 만들어낸 현성.

어차피 만에 하나, 아주 만에 하나 그가 파이어 볼 캐스팅에 성공하더라도 이미 파이어 볼을 날리기에는 거리가 너무 좁았다.

결국 결과는 벌써부터 확정난거나 마찬가지.

‘내 승리다!’

그대로 성준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롱소드를 내질렀다.

아니 내지르기 직전이었다.

줄곧 가만히 서있던 현성이 그가 검을 내지른 박자보다 반 박자 빨리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만든 불의 구를 인정사정없이 움켜잡았다.

-꾸구국!

이에 현성의 손에 띄워져있던 불의 구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성준이 당황한 것도 잠시.

도저히 폭소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

“하하, 그깟 파이어 볼도 성공시키지 못하다니!”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일그러진 불의 구가 불씨로 변해 현성의 팔을 휘감았다.

회오리치듯 불타오르는 불꽃.

그 너머로 현성이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야. 어금니 악물어라.”

그대로 현성의 주먹이 성준의 안면에 직격하기 무섭게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투콰아아앙!

파이어 볼이 아닌 파이어 펀치.

마법에 격투를 접목시켜 만들어낸 희대의 괴작이자, 힘법사만의 전유물인 파이어 펀치가 발동했다.

그와 함께 성준이 괴성을 내지르며 저 멀리 날아가 볼품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커허어어억!!”

성준이 날아간 자리에는 매캐한 검은 연기만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런 공개 대련장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관중석의 그 누구도.

아니 심지어는 아카데미의 교수진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케헤엑…쿨럭!”

성준이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칼.

온 몸 곳곳의 흙먼지와 검은 재.

그리고 피범벅이 된 얼굴.

그런 그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그토록 자랑하던 사람 좋은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빠드득!

방금 전의 일격.

그건 분명 파이어 볼이 아니었다.

팔을 휘감은 붉은 불꽃.

파이어 볼보다 훨씬 강력한 폭발.

무엇보다도 그 파괴력.

아니 애초에 그게 마법은 맞는지도 의문이었다.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성준이 이를 악물고 현성을 향해 외쳤다.

“너, 너 뭐하는 새끼야!”

“…나?”

그런 성준의 말에 현성이 아무렇지 않게 손에 남은 불씨를 털어냈다.

-화르륵.

흩날리는 불씨너머.

그대로 그가 쓰러진 성준을 향해 대답했다.

“유현성.”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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