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F급 파이어 볼(1)
공개대련 당일.
아카데미 내 분위기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게 공개대련은 아카데미 내에서도 전통적인 역사를 지니는 행사.
거기다 이번에는 신입생까지 들어온 학기.
그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전통에 따라 신입생들은 공개대련에 참가하지 않지만, 그 중에는 오히려 공개대련관람을 기대하고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신입생들도 꽤 있었다.
그러니까 공개대련을 하는 학년은 어디까지나 이번 1학년들을 제외한 그 위의 학년.
여기서 4학년은 보통 연구나 실습덕분에 스케쥴이 바쁜 관계로 웬만하면 대련은 2학년과 3학년 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선배들은 그동안 갈고 다룬 성과를 모두에게 보여주는 시간을 가지고, 신입생들은 그런 선배들의 대련을 보며 목표를 기른다.
이것이 아카데미에서 공개대련의 근본적인 의미였다.
‘…여기까지가 보통 공식적인 공개대련의 취지.’
그리고 이 전통이 계속되면서 앞서 말했듯이 공개대련은 아카데미 안에서 일종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전교생은 물론 교수들까지 전부 한 자리에 모이는 흔치않은 기회.
거기다 현재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
즉 아카데미의 내외적으로 인기 있는 유명인부터 떠오르는 슈퍼루키의 등장까지 볼 수 있는 최고의 볼거리였다.
‘이것이 지금 아카데미 공개대련의 이미지.’
그 때문에 공개대련에는 아카데미와 관련된 사람들 말고도 다른 외부인들도 흔치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장차 본인의 가문을 이끌어나갈 미래의 재목을 판가름하기 위해 참석하는 특정 가문의 사람들.
아카데미 졸업 후, 사회 다방면에서 활약할 인재들을 스카웃하기 위한 수많은 길드들.
그리고 혹시 직접 관람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를 생중계하는 방송인력.
심지어는 이런 축제라면 귀신같이 빠지지 않는 노점상들까지.
역시 구경 중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라고, 검부터 마법까지 온갖 화려한 이펙트가 넘쳐나는 아카데미 생들의 대련은 축제의 현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당장 스포츠 관람에도 환장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하물며 실제 공개대련은 얼마나 재미있을 것인가.
‘아, 이건 못 참지.’
그리고 그런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는 아카데미의 중심.
이 아니라 대련장과 멀리 떨어진 회의실.
그곳에는 한 명의 교수와 학생회장, 마지막으로 현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유현성이라고 했지?”
대충 묶은 붉은 포니테일과 안경.
풀어헤친 하얀 가운과 의자에 앉아있는 삐딱한 태도.
거기다 어딘가 항상 불만스러워 보이는 눈동자.
그녀가 현성을 흘깃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 탐탁치 않는 표정이었다.
동시에 현성의 눈앞에는 상태창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이름 : 이클레아]
성별 : 여성
나이 : 30
종족 : 인간클래스 : 교수업적 : [??]
*상세내용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아카데미의 포션학 교수.
이클레아였다.
곧 그녀가 현성을 향해 물었다.
“…그러니까 이 대진표가 서로 합의된 거라고?”
그녀의 물음에 현성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퍽이나 그러겠다.”
그리고 그런 현성의 대답과 동시에 이클레아가 손에 들고 있는 종이뭉치를 책상에 내던졌다.
-촤악!
그러면서 그녀가 손가락으로 책상에 내던진 종이뭉치를 툭툭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그러니까 니 말은 F급 퇴학위기인 너랑 아카데미 내 A급 이성준. 이렇게 둘이 공개대련을 하겠다고? 그것도 서로 합의하에?”
“네, 맞습니다.”
“…허어!”
이클레아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옆에 앉아있던 학생회장 시연을 바라보았다.
“시연아.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
이에 시연이 현성과 책상에 놓인 서류뭉치와 현성을 번갈아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적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불공정한 대련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 시연의 말에 이클레아가 옳다구나 싶어 책상을 탕! 치며 시연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 역시 학생회장 하나는 잘 뽑았단 말이지. 자, 들었지? 그러니까 순순히 포기….”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시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랬겠죠. 허나 전 이대로 대련해도 문제없다고 판단합니다.”
“…뭐?”
이어진 시연의 말에 이클레아가 미간을 구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시연이 너까지 이러면 어쩌니….”
그러면서 이클레아가 현성과 시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거야?”
현재 이클레아는 정말이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처음 시작의 발단은 공개 대련에 앞서 대진표를 검수하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보통 대진표를 정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첫 번째. 서로 간의 상의 하에 대진표를 작성하는 경우.
두 번째. 아카데미에서 임의로 대련 상대를 정해주는 경우.
그리고 역시 문제는 첫 번째에서 많이 일어나기 마련이었고.
그 중 가장 많이 벌어지는 문제가 바로 조작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서로간의 상의 하에 대련을 하면서 미리 승패를 정해두고 합을 맞추는 것이었다.
실제로 인기와 성적에 반영되는 가산점을 얻기 위해 승패를 조작하는 사례는 적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 내에서는 대련 상대를 각자 따로 만나보며 조작증거는 없는지, 둘의 실력편차는 어떻게 되는지 이런저런 검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이번 공개 대련 역시 대진표를 검수하는 도중.
심상치 않은 대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이 녀석과 이성준.’
물론 둘은 합의 하에 대진을 짰다고는 하는데 이클레아의 입장에서는 탐탁치 못한 구석이 한 둘이 아니었다.
우선 둘의 격차가 너무 컸다.
유현성, 몰락가문 출신으로 전 학기 성적 대부분이 F. 거기다 실전평가 역시 F등급.
담당 교수의 말로는 마법사인 주제에 파이어볼도 못 쓰는 마법계의 인간재앙. 줄여서 인재(人災)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하지만 그에 반면 그 상대는 어떤가?
이성준. 유명가문 출신으로 전 학기 성적 대부분이 A, 거기다 실전평가 역시 A등급.
담당 교수의 말로는 평소 행실이 바르며 교우들과 관계도 좋고 검사 클래스 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검술계의 인재(人才)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인재(人災)와 인재(人才).
정말이지 완벽하게 대비되는 관계가 아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봤을 때 승패는 이미 물 보듯 뻔한 대련.
그게 바로 유현성과 이성준의 대련이었다.
이에 이클레아는 먼저 대련의 조작 가능성을 눈여겨봤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다.
유명가문출신이 가산점을 얻기 위해 몰락가문에게 일부러 대련에서 져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이성준은 말 그대로 아카데미 내 타의 교본이 되는 모범생.
거기다 이미 필기, 실기 전부 A인데 그런 그가 구태여 승부조작을 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눈앞의 유현성이라는 이 학생.
“의심되는 건 이해갑니다. 그런데 대련과정에서 모종의 거래 혹은 조작은 전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줄곧 저런 태도였다.
보통 조작문제로 불러오면 조금이라도 움츠러드는 기세를 보이기 마련이지만, 그는 정말이지 아무런 떨림도, 불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한 저 말투와 태도.
거기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카데미에서 가장 신임하는 학생회장 하시연마저 그의 편을 들고 있었다.
‘뭐? 정확히는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그라면 믿어도 된다고?’
이클레아가 알고 있는 시연은 항상 차갑고 무표정.
그런 그녀가 다른 학생에게 이런 평가를 내리는 건 처음 봤다.
아카데미 내 회의실.
그곳에서는 지금 이클레아 그녀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에 연신 고민하던 이클레아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외쳤다.
“그래. 니들 맘대로 해라! 대신….”
이클레아가 현성을 가리키며 눈매를 좁혔다.
“너. 어디 다쳐서 오면 나한테 죽는다.”
그런 그녀의 말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해주시는 겁니까?”
“걱정?”
동시에 이클레아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다쳐서 오면 내가 케어해야 되잖아. 그러니까 귀찮게 하지 말라고.”
아카데미 포션학 교수 이클레아.
그녀는 전혀 교사답지 않은 언행과 달리 아카데미에서 포션학과 양호실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
간혹 어떻게 이런 교수한테 양호실을 맡기느냐라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포션에 관해서는 그녀보다 뛰어난 사람은 아카데미에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최연소 교수직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전에는 현대 포션과 연금술의 발전에 굵직한 공적을 세운 유명한 학자.
그녀가 바로 이클레아였다.
현성이 그런 그녀를 보고 작게 웃었다.
역시 이클레아라면 이럴 줄 알았다.
그가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이클레아에게 말했다.
“힘들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제가 아직 힘 조절이 서툴러서 상대방이 다칠 수도 있거든요.”
“…뭐라고?”
현성의 뻔뻔한 대답에 이클레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녀석 봐라?
이 말은 즉 대련에서 이성준을 이길 자신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힘 조절을 해야 할 정도로 여유롭게.
패기인지 허세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대답에 이클레아가 재미있다는 듯 쿡쿡 웃으며 바라보았다.
‘…이거 완전 웃기는 놈이네?’
그렇게 말하는 이클레아의 눈에 흥미가 일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손을 휘저었다.
“어차피 대련은 나도 보고 있을 테니까. 너나 상대방이나 서로 안 다치게 해라. 난 이런 축제날까지 일하기 싫거든. 됐으면 가봐.”
“네, 알겠습니다.”
이에 현성이 이클레아를 향해 꾸벅 인사하며 말했다.
“다음번에 올 때는 초코 츄러스라도 사오겠습니다.”
“…호오?”
그 말에 이클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현성과 시연이 회의실을 나갔다.
잠시 뒤.
혼자 남겨진 회의실.
이클레아가 피식 웃으며 현성이 앉아있던 자리와 밖을 번갈아보았다.
“재미있는 녀석이네.”
초코 츄러스.
그것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 * * * *
공개대련 대기실.
회의실에서의 일을 끝낸 뒤.
본격적인 대련이 이뤄지기에 앞서 현성은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한편 대련장에서는 열띤 환호소리가 대기실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그러면서 현성이 대기실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과거 검투장을 연상케 하는 넓은 홀 구조에 서있는 두 명의 학생들이 보였다.
경기장 위의 학생들은 서로 거친 숨을 내쉬며 서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채애앵!
마지막 일격이 오가고, 결국 오른쪽의 학생이 먼저 무릎을 꿇었다.
이에 승리를 쟁취한 녀석이 검을 들며 미소 지었다.
동시에 방금 전보다 더욱 큰 환호가 홀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고 있던 현성의 옆으로 시연이 다가왔다.
“……이 다음 차례였죠?”
그녀의 말에 현성이 그 옆의 대기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3학년 이성준 VS 3학년 유현성]이라고 적힌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슬슬 현성의 차례가 오가고 있었다.
시연이 말했다.
“회의실에서는 대놓고 말하지 않았어요.”
“…무슨 말이야?”
그의 물음에 시연이 잠시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당신의 정체요. 밝혀지는 걸 원하지 않는 거 같아서요.”
그런 시연의 말에 순간 현성이 ‘얘가 뭔 소리 하는 거람?’ 이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것도 잠시.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마워.”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선천강에서의 일 관련한 거겠지.
그때였다.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관계자가 현성을 불렀다.
“유현성군. 준비 됐습니까?”
벌써 그의 차례가 온 모양입니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대로 그가 대기실을 나가려는 찰나.
시연이 뭔가 큰 결심을 한 듯 현성을 불러 세웠다.
“…현성!”
그러자 현성이 등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곧 시연이 그런 현성을 향해 옅게 웃으며 말했다.
“꼭 이기고 와요.”
시연의 짧지만 진심이 담긴 음원.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렇게 그가 대련장으로 올라가고.
시연 혼자 남겨진 대기실.
그녀가 작게 주먹을 쥐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아카데미에 들어와 처음으로 다른 학생을 무려 이름으로 불렀다!
듣자하니 친구사이에는 이렇게 서로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
물론 현성은 이름으로 불린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자신에게도 친구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생겼다는 두근거림에 시연이 배시시 웃었다.
“헤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