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화 고인물의 육성법(10)
동시에 현성의 손바닥 위로 새하얀 빛이 생성되었다.
그대로 잠시 뒤.
새하얀 빛이 반짝거리더니, 그의 손바닥위에는 금색의 구슬조각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방금 말한 보상일까.
현성이 자신의 손 위에 있는 구슬조각을 바라보았다.
‘…생긴 것만 보면 꼭 이누X샤에 나오는 사X의 조각처럼 생겼네.’
마치 당장에라도 동료를 모아 구슬조각을 모으는 여행을 떠나야 할 거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현성이 금색의 구슬조각을 집어 들었다.
[티리카의 영혼 조각]
설명 : 기사왕 티리카의 힘이 담겨있는 조각이다. 아직은 별다른 효과는 없지만 다른 조각들을 모으면 엄청난 힘을 얻을 수도?
그 설명에 현성이 히죽 웃었다.
정말이지 알기 쉬운 설명이었다.
그러니까 조각을 전부 모아 구슬을 완성시키면 기사왕 티리카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아마 이게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을 통해 처음 발동하는 히든 퀘스트이며, 퀘스트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조각을 수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게 분명했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건틀렛을 포함한 기사왕의 무구를 손에 얻을 수 있을 것이며.
그 끝에 가서는 [히든 퀘스트 : 기사왕의 길을 걷는 자]의 보상에 적힌 것처럼 티리카의 비전스킬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현성의 다년간 <이스페리아> 경력으로 다져진 게이머의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건 대박 중의 대박 퀘스트라고.
‘…드디어 튜토리얼부터 구른 고생이 빛을 발하는구나.’
현성이 선천강에서 데얼런트를 격파할 당시를 떠올리며 주먹을 꾹 쥐었다.
역시 그때 데일런트를 격파한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본 퀘스트는 아마 아카데미에서 스토리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자연스레 그 실마리가 보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쪽은 그리 조급할 필요 없고….’
그대로 현성이 다시 건틀렛을 빼려는 찰나였다.
그의 눈앞에 또 다른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투신의 길을 최초로 사용함에 따라 사용자 동기화가 진행됩니다.]
[3%…17%…38%…50%…]
이에 현성이 움직이는 퍼센트 게이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게이지가 거의 끝까지 차오른 순간.
[90%…97%…100%]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건틀렛의 사용자가 설정되었습니다.]
[사용자 : 유현성]
현성이 눈앞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작게 웃었다.
이게 바로 귀속아이템+성장아이템의 장점.
이걸로 이 건틀렛은 앞으로 현성이 죽지 않는 한.
가령 누군가 손을 댄다고 해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의 유일한 사용자.
그것이 바로 유현성이었다.
‘뭐 그렇다고 아쉬운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아쉬운 건 딱 한 가지였다.
바로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이 귀속 템임과 동시에 성장 템이기 때문에 지금은 현성 그의 수준에 맞춰 상당히 하향조정 되었을 터.
그걸 제외하고는 만족스러웠다.
사실 이미 히든 퀘스트부터 특수스킬은 물론.
앞으로 얻을 수 있는 티리카의 무구와 스킬을 고려하면 이 정도는 백 번, 만 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거기다 웬만해서는 박살나지 않는 내구성은 덤.
현성이 건틀렛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내가 강해질수록 건틀렛도 강해진다.’
이것이 바로 성장형 아이템의 장점이었다.
현성만 강해진다면 그에 맞춰 건틀렛 역시 강해질 터.
즉 지금 느끼는 잠깐의 아쉬움은 결국 나중에는 눈 녹듯 사라진다.
당장 장비 값만 굳는 것만 생각해도 그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후반에 가서 보스하나 잡겠다고 개처럼 벌어서 장비 살 필요가 없다니.’
동시에 현성이 과거 <이스페리아>를 플레이 할 당시를 회상했다.
보스 하나 잡아보겠다고, 장비 컷 하나 맞추겠다고 얼마나 생고생했던가.
하지만 신화급 아이템의 유일 사용자가 된 이상.
그는 그런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특수스킬도 시험해봤고, 히든 퀘스트도 진행시켰겠다….’
남은 건 단 하나였다.
스텟을 마저 올리는 것.
이에 현성이 상쾌한 마음으로 허수아비를 바라봤다.
“자, 그럼 계속해볼까.”
어차피 전에 말했듯이 남은 스텟의 총합은 고작 5.
운 좋으면 5000번에 끝난다.
그대로 현성이 허수아비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깔끔한 타격음이 훈련장 가득 울려 펴졌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구식 훈련장 한 가운데.
현성이 괴성을 내지르며 털썩 주저앉았다.
“으아아아! 미친 게임!”
그런 현성의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누가 보면 샤워라도 한 것 같은 모습.
그 후려 무려 5시간.
현성이 남은 스텟 5를 올리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계산상 스텟 1을 올리는데 1시간정도 걸린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순 이론상 스텟 1을 올리는데 필요한 횟수는 1000번이다.
허나 이것은 어디까지 단순 이론.
현성은 스텟을 ‘랜덤’하게 올려주는 시스템 덕분에 모든 스텟 10을 찍는데 5시간이나 소요된 것이었다.
‘어떻게 3천 번 때릴 동안 다른 스텟 하나가 안 오르냐.’
심지어 허수아비로 올릴 수 있는 최대 스텟은 10이라, 10이상인 스텟은 아무리 허수아비를 쳐도 오르지 않는다.
덕분에 남은 체력, 민첩, 행운 스텟을 올리는데 극악의 확률 지옥을 맞본 현성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계속해서 주구장창 허수아비만 때려 팼다.
이제는 허수아비의 허만 봐도 치를 떨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침내 해냈다.
현성이 바닥에 뻗은 채.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축하드립니다. 모든 스텟 10을 달성하였습니다.]
[업적달성 : 구식이 아니라 클래식]
아이템의 부가효과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모든 스텟 10 달성.
거기다 허수아비를 통해 스텟을 올린 그만이 딸 수 있는 업적.
이에 현성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상태창을 펼쳤다.
“상태창.”
[이름 : 유현성]
성별 : 남성
나이 : 17
종족 : 인간
업적 :
[데일런트를 쓰러트린 자]
[폭풍의 창을 받아낸 자]
[히든 클래스 : 힘의 마법사(physical wizard)]
[새로운 마도(魔道)의 길을 걷는 자]
[신화를 거머쥔 자]
[구식이 아니라 클래식]
체력 10
지력 10
민첩 10
행운 10
의지 10
*스킬상세
[파이어 펀치. LV1]
아름다운 10의 연속.
성적표에서 F의 연속을 발견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기쁨.
거기다 6개의 화려한 업적까지.
누가 이걸 이제 막 튜토리얼을 끝낸 초보자의 상태창이라고 볼 것인가.
현성이 가슴이 벅차오는 감격스러움을 느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그가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어느새 3시.
처음 현성이 구식 훈련장에 도착한 시간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24시간 정도는 이곳에 쏟아 부은 것이었다.
그대로 그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조금만…조금만 쉬자….’
그렇게 현성의 노력 끝에 찾아온 단맛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
-움찔!
뒤늦게 무언가를 알아차린 현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그가 재빨리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하였다.
시간은 정확히 3시.
그리고.
‘…오늘 아카데미에서 3학년 집합이 있는 시간은 4시.’
어제 시연이 말해줬던 3학년 집합.
본격적인 아카데미 시작에 앞서 3학년 내내 아카데미에서의 지켜야할 교칙과 사용할 필수물품을 제공하는 시간이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남는 물품은 어딘가 하자가 있는 물건이나 운이 나쁘면 아예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사비로 구매를 해야 하는데 알다시피 아카데미는 학비가 비싼 만큼 물품 가격도 장난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사비를 털어야 할 순간이 온다면 그대로 수연이 현성을 죽이려 들 터.
이에 현성이 곧바로 기숙사를 향해 달려갔다.
“젠장!”
* * * * *
정확히 1시간 뒤.
현성은 간신히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집합장소로 갈 수 있었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꼬박 하루를 쏟은 훈련 직후.
1시간 내에 씻고, 더러워진 교복을 세탁하고, 심지어는 시연의 겉옷까지 깨끗하게 세탁하여 집합장소에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집합장소.
그곳에는 이미 하시연을 포함한 다른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여기. 교복 고마웠어.”
현성이 시연에게 그녀의 겉옷을 건네며 자연스럽게 시연 옆자리에 앉았다.
이에 몇몇 학생들이 움찔거렸지만 그녀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뭘요. 아. 세탁까지 해주셨네요?”
“그게 예의지.”
“감사합니다.”
그 대화에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이 다시 한 번 움찔거렸다.
그 중에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시연과 현성을 번갈아보며 현실을 부정하는 녀석도 있었다.
“교, 교복을 줬어?! 왜?”
“시연님이 왜 저런 녀석이랑 같이…!”
무엇보다 이성준.
적당히 시연의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했으나, 앞에서 들려오는 현성과 시연의 대화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었다.
-우드득!
덕분에 성준의 손에 있던 애꿎은 볼펜이 박살났다.
그런 그의 표정은 평소의 모범생 이미지 그대로였으나, 이미 성준의 패거리들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주춤주춤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시연은 당연히 그런 성준의 심정을 알아차릴 턱이 없었다.
“그나저나 손은 괜찮아요?”
시연의 말에 현성이 자신의 손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정도야 괜찮아.”
“그럼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아프면 말씀해주세요. 양호실까지 안내해드릴게요.”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참고할게.”
그대로 현성과 시연이 대화를 나누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교수가 들어오며 본격적인 이번 아카데미 학기에 대한 설명이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현성은 종종 시연에게 보충설명을 부탁했고, 이에 시연은 흔쾌히 그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이건 어떻게 되는 거야?”
“아, 그러니까 이건….”
그리고 그런 대화를 듣고 있는 성준의 속은 그야말로 뒤집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역시 시연과 가까워지고 싶어 다가갔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똑같았다.
자신의 가문을 앞세워 어떻게든 만날 계기를 만들어내려 해도.
모범생의 이미지를 이용해 다가가려 해도.
심지어 성적을 빌미로 말을 걸어 봐도.
결과는 항상 시연의 일방적인 퇴장으로 끝났다.
무슨 말을 해도 시연은 항상 특유의 차갑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대응했다.
심지어는 대화하면서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참을만했다.
왜?
시연은 성준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대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아카데미 내 시연과 가장 대화를 많이 해본 학생이 학생회 임원일까.
그마저도 업무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인가.
시연이, 그 하시연이 다른 학생과 보란 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차라리 다른 학생이라면 모를까.
그 주인공이 현성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성준은 알 수 없는 패배감과 분노를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꾸구국!
그가 주먹을 꾹 쥐었다.
당장에라도 성준은 현성의 저 망할 얼굴을 박살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연뿐만이 아닌 교수님과 모든 학생이 보고 있는 자리.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 학기 공개대련 같은 경우에는 전 학기보다 빨리 계획된 거 아시죠? 아마 일주일 뒤에 본격적인 공개대련이 시작될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학생들은 전부 사전에 대련상대를 정해 오십쇼. 그게 아니면 아카데미 측에서 임의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의 입에서 나온 단어.
공개대련.
그와 동시에 성준의 눈빛이 바뀌었다.
앞서 말했듯 지금처럼 시연뿐만이 아닌 교수님과 모든 학생이 보고 있는 자리는 함부로 나설 수 없다.
‘하지만 공개대련이라면….’
그럼 사정이 달라진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대련.
그거라면 오히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현성을 박살내버릴 수 있었다.
대련의 규칙상, 승패를 가리는 것 이상의 상해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그거야 적당히 대련 중에 발생한 사고 정도로 덮어버릴 수 있었다.
그의 실력이라면, 그의 가문의 힘이라면 충분했다.
‘…아무리 못해도 다리 하나쯤은 평생 못쓰게 만들어주마.’
성준이 현성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게 아니면 평생 하시연을 보지 못하도록 실명시켜버리는 방법도 있었다.
대련 중 적당히 안보이게끔 눈이나 머리를 공격하면 그만이다.
거기다 방금 교수님이 말한 대로 이번 대련은 전 학기보다 빨리 예정되어있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자신을 위해 판을 깔아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그때 그 복도에서의 일만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감히…감히…버러지새끼가 내게 덤벼?’
자비롭게 기회까지 줬더니 그걸 이딴 식으로 차버리다니.
평생,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해주마.
성준은 현성을 향해 주먹을 쥐며 그렇게 다짐했다.
* * * * *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일주일 뒤.
아카데미 공개대련의 날이 찾아왔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