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화 고인물의 육성법(9)
창밖으로 내리쬐는 아침 햇살.
그 아래로 어제와 다름없는 구식 훈련장의 모습이 보였다.
훈련용 허수아비와 낡은 기구들.
그리고 허수아비 바로 아래에는 현성이 죽은 듯 쓰러져있었다.
“…설마 그때부터 하루 종일 여기에?”
시연이 놀람과 걱정이 섞인 표정으로 허수아비와 그 아래 현성을 번갈아보았다.
만약 밤새 허수아비를 친 거라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훈련량이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주먹을 내질렀다니.
무슨 소설 속 주인공도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연습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러나 눈앞의 현성이 보란 듯이 증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땀에 젖은 머리칼과 그 아래 흥건하게 젖은 바닥.
그 흔적만으로도 어젯밤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한 훈련을 해낸 현성의 몸은 그야말로 녹초가 되어있었다.
‘호, 혹시 이대로 기절한 건….’
이에 시연이 만에 하나라도 혹시나 싶어 조심스럽게 현성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뒤척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으음….”
동시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시연의 몸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현성이 단순히 잠든 것임을 확인한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사람 놀라게 하기는.”
그대로 시연이 허수아비 아래 잠든 현성을 깨우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현성 학생.”
그렇지만 곤히 잠든 현성은 전혀 깨어날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시연이 이번에는 그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현성 학생. 벌써 아침입니다.”
허나 이번에도 결과는 똑같았다.
아무래도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
그런 현성의 모습에 시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곧 자신과 현성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야.”
그와 함께 시연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옅은 미소가 걸렸다.
이런 호칭은 그야말로 어릴 적을 제외하고는 처음 불러보는 호칭이었다.
거기다 하 가문에 들어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본 적 없는 호칭.
그녀에게 필요한 건 언제, 어디서나 기품을 유지하는 강직함과 예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아카데미 내 학생들을 대할 때도 언제나 존댓말을 사용했으며, 더불어 학생회장이라는 직위에 어울리는 자세를 보여야만했다.
그런 시연의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간만에 불러보는 호칭이었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약간 들뜬 시연이 옅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야!”
아무리 그동안 하 가문에서 기품과 예의를 강제로 주입 당하다시피 살아온 그녀지만, 그런 그녀도 결국은 어린 아이였다.
그렇게 잠깐 동안 소소한 동심을 즐기던 시연이 어느 순간, 퍼뜩 정신을 차렸다.
-흠칫.
잠시 뒤.
시연이 그동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뒤늦게 자각하며 괜히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런 그녀는 내심 부끄러웠던지 볼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제 시연이 정말로 잠든 현성을 깨우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그 순간.
-투욱.
현성이 뒤척거리며 그의 손이 시연 바로 옆에 떨어졌다.
그런 그의 손등은 살갗이 전부 까여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피가 흐르고 나서 채 상처가 아물지도 못했다.
도대체 밤새 얼마나 훈련했기에 이런 상처가 났을까.
시연이 아무 말 없이 빨갛게 물든 그의 손등을 매만졌다.
“….”
그대로 현성을 바라보던 시연이 그를 깨우는 대신 자신의 겉옷을 벗어 조심스레 현성에게 덮어주었다.
하지만 시연은 이렇게 두고 가기에는 뭔가 아쉬웠던지 주변을 둘러보다 좋은 생각이 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구식 훈련장으로 돌아온 시연의 손에는 방금 자판기에서 뽑아온 이온음료 하나가 들려있었다.
거기다 이온음료 겉에 붙여둔 메모지까지.
시연은 자기가 생각해도 이정도면 완벽한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메모지를 붙인 이온음료를 곤히 잠든 현성 옆에 두고나왔다.
마지막으로 나올 때마저 그녀는 현성이 깨지 않게끔 조심조심 움직이며 문을 닫았다.
-드르륵…탁.
창밖으로 내리쬐는 아침 햇살.
그 아래로는 시연의 겉옷을 덮은 채.
곤히 잠든 현성과 시연이 두고 간 메모지, 그리고 이온음료만이 남겨져 있었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미동도 하지 않던 현성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그가 천천히 눈을 뜨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대로 잠이 덜 깬 현성은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구식 훈련장과 허수아비.
그 아래 쓰러진 채 잠들어있던 자신.
‘분명 어제 밤새 허수아비를 치다가 잠든 건 기억나는데….’
현성이 자신이 덮고 있던 누군가의 겉옷을 빤히 바라보았다.
거기다 머리맡에 놓여있는 이온음료까지.
그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다 뭐야?”
하지만 그도 잠시.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현성이 크게 기지개를 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의 손에는 누군가의 겉옷과 이온음료가 들려있었다.
그대로 현성이 겉옷을 살폈다.
자신과 같은 아카데미의 교복.
무엇보다 명찰에 적힌 이름.
“…하시연?”
이에 현성이 창밖과 겉옷을 번갈아보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잠든 사이.
그녀가 왔다 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머리맡에 놓여 있던 이온음료.
그런 이온음료 겉면에는 메모지가 붙어있었다.
<다음부터는 바닥에서 자지 마요.>
메모를 확인한 현성이 피식 웃었다.
그것 참 고마운 조언이었다.
동시에 현성이 이온음료를 단번에 들이켰다.
곧 이온음료 한 통을 깔끔히 비운 그가 스트레칭을 하며 허수아비를 바라봤다.
허수아비에는 어제 밤새 하루 종일 때린 만큼 그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 결과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상태창.”
그와 함께 현성의 눈앞에 불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이름 : 유현성]
성별 : 남성
나이 : 17
종족 : 인간
업적 :
[데일런트를 쓰러트린 자]
[폭풍의 창을 받아낸 자]
[히든 클래스 : 힘의 마법사(physical wizard)]
[새로운 마도(魔道)의 길을 걷는 자]
[신화를 거머쥔 자]
체력 8
지력 10
민첩 9
행운 8
의지 10
*스킬상세
[파이어 펀치. LV1]
-기존의 파이어 볼을 변형시켜 새롭게 창조한 마법. 불의 기운을 주먹에 둘러 그대로 폭파시킨다.
밤새 허수아비를 때린 결과 지력과 의지는 모두 10을 찍는데 성공.
이제 남은 스텟은 체력과 민첩. 그리고 행운이었다.
게다가 그 셋마저 10까지 얼마 남지 않은 수치.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평균 스텟 3따리 시절은 가라.’
이제는 무려 평균 스텟 9.
목표인 평균 스텟 10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즉 적어도 전처럼 파이어 펀치 두 번 쓰고 쓰러질 일도.
체력 스텟이 후달려서 숨찰 일도 훨씬 적어진다는 뜻이었다.
현성이 다시 허수아비를 칠 자세를 잡았다.
‘평균 스텟 10. 오늘 안에 끝낸다.’
허수아비는 1000번에 랜덤해서 1의 스텟을 올려준다.
그럼 계산상 최소 횟수는 운 좋으면 5000번.
그리고 이제 와서 5000번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아무리 늦어도 운이 처참하지 않는 한, 밤까지는 끝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스텟을 올리는 것을 포함해 다른 것도 시험해볼 예정이었다.
그것은 바로.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
동시에 현성이 인벤토리를 열어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을 꺼냈다.
그러자 그때와 같이 여전히 휘황찬란한 건틀렛이 모습을 드러냈다.
밝은 은색과 고급스런 금색의 장식이 섞인 건틀렛.
허수아비를 치는 동안은 혹시 몰라 따로 빼놓았지만 지금은 건틀렛이 필요했다.
목적은 간단했다.
신화급 아이템 기사왕 티리카의 건틀렛에 담긴 특수스킬.
<투신(鬪神)의 길>을 사용해볼 심산이었다.
이유는 총 2가지였다.
첫 번째. [히든 퀘스트 : 기사왕의 길을 걷는 자]를 진행하기 위해.
그리고 두 번째. 공개대련에 앞서 이게 정확히 어떤 스킬인지, 스스로 얼마만큼 사용할 수 있을지 확인해봐야 했다.
이에 현성이 자신의 양 손에 건틀렛을 장착했다.
-철컥…스르륵!
처음 건틀렛을 장착했을 때와 같은 부드러운 감촉.
곧 건틀렛이 현성의 손에 딱 맞게 조절되었다.
그대로 현성이 허수아비를 앞에 두고 자세를 잡은 뒤.
마침내 그가 스킬을 발동시켰다!
“투신(鬪神)의 길.”
그 순간이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감각.
뒤이어 건틀렛을 타고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잠시 뒤.
“이건….”
현성이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
제3자가 봤을 때는 그저 빛이 번쩍이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을 터.
하지만 그의 두 눈으로 보이는 세계는 방금 전과 완전히 달랐다.
허수아비에 찍혀있는 수십 개의 빨간 점과 바닥에 보이는 발자국.
무엇보다 자신과 겹쳐있는 희미한 인형(人形).
은색의 갑옷.
거기다 사자의 갈기와도 같은 장식.
그 모습은 분명 생전의 ‘기사왕 티리카’의 모습이었다.
“기사왕 티리카?”
현성이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
하지만 현성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특수스킬 <투신의 길>이 어떤 스킬인지.
-스으으.
그대로 티리카의 인형이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이에 따라 현성 역시 똑같이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바닥의 발자국은 티리카의 경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현성이 해왔단 단순한 걸음이 아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음마다 이어지는 묘리(妙理)
상대방에게 다다르기 위한 최고의, 최적의 경로.
마치 물이 흐르듯 이어지는 발걸음.
그리고 그 끝에 가서는 티리카가 주먹을 내질렀다.
동시에 현성 역시 주먹을 내질렀다.
-퍼엉!!
그저 주먹을 내질렀음에도 손끝에 느껴지는 충격.
느낌이 달랐다.
밤새 수백, 수천, 아니 수만 번을 때려도 절대 나지 않았던 느낌.
지금 이 순간.
현성이 손끝을 타고 느껴지는 느낌은 단 하나뿐이었다.
-찌리릿!
한 치의 틀림없는 공격이 들어갔을 때 느끼는 그 짜릿함.
그대로 현성은 티리카의 인형을 따라 차례대로 순서를 내질렀다.
처음 느렸던 주먹은 점차 그 속도를 올려가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추고 싶지 않았다.
한 번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느껴지는 짜릿함!
경로 하나하나가 최적의, 최고의 타격이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연계.
흐르는 물은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가고.
폭포처럼 몰아쳤다.
-두두두두두!!
그리고 마지막.
현성이 허수아비의 명치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그와 동시에 허수아비를 중심으로 거센 풍압이 일었다.
그리고 호수에 파문이 일 듯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기세.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기세가 잦아들었을 때.
“…쿨럭!”
현성이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투신의 길을 발동시킨 순간부터 지금까지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그제야 이를 알아차린 현성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하아….”
곧이어 심장을 타고 느껴지는 격통.
“큭!”
이에 현성이 재빨리 심장을 부여잡았다.
잠시 몸에 무리가 온 모양이었다.
-스으으.
그리고 잠시 뒤. 통증이 가라앉았다.
이미 바뀌었던 시야는 원래대로 돌아온 지 오래였다.
그대로 겨우 몸을 추스른 현성이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펼쳤다.
‘체감 상 특수스킬의 지속시간은 대략 3분 정도.’
특수스킬 투신의 길.
그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스킬이었다.
무엇보다.
“방금 전 그 감각….”
그것은 분명 티리카의 주먹이었다.
그 위력은 다를지 몰라도,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방금 전 현성의 보법, 정권, 모든 것은 티리카 그 자체였다.
그 짧은 순간만큼은 현성의 몸에 티리카가 깃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게 바로 <투신의 길>의 효과.
그만큼 지속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충분히 납득할만한 효과였다.
만약 이런 효과에다 지속시간이 무한대였으면 그건 그거대로 밸런스 붕괴 그 자체였다.
“…아직은 이 정도면 충분해.”
어차피 지속시간은 현성이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레 길어질 것.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만족스러웠다.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부드럽고.
강과 약이 조화롭게 섞인 신묘한 보법.
그리고 쉴 새 없이 이어지던 정권.
이게 모두 현성의 발과 손끝에서 펼쳐졌다.
그야말로 생전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띠링!
알림음과 함께 현성의 눈앞에 금색의 창이 떠오르며 기존의 히든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히든 퀘스트 : 기사왕의 길을 걷는 자]
<기사왕 티리카의 전설을 마주한 자여, 그대는 티리카의 의지를 이을 자격을 충족하였다.>
퀘스트 내용
-스킬 : 투신의 길 사용하기. (완료)
-티리카의 업적을 따라 그의 흔적을 찾으시오.(진행 중)
발생조건 : 기사왕 티리카의 무구를 습득.
보상 : 티리카의 비전스킬.
*본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입니다.
[히든 퀘스트 첫 번째 조건달성의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 : 티리카의 영혼 조각]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