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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3화 (13/240)

013화 고인물의 육성법(7)

아카데미 내 위치한 학생회실.

주로 학생회장을 포함한 임원들이 업무를 보는 장소지만, 오늘 그곳에는 현성과 시연 단 둘뿐이었다.

잠시 뒤, 시연이 간단한 차와 다과를 가져오며 현성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그대로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입학식이라 다른 학생들은 오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학생들은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해도 괜찮아요.”

“고마워.”

이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시연이 가져온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곧 산뜻한 향이 코끝을 감싸며 따뜻한 기운이 온 몸에 퍼졌다.

그리고 현성이 시연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말했다.

“그나저나 아까 전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보이던데?”

그런 현성의 말에 시연이 움찔거렸다.

동시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티 많이 났어요?”

시연의 대답에 현성이 작게 웃었다.

티가 안날 리가 있나.

복도에서 학생회실까지 오는 와중에도 시연은 계속해서 뒤에 있는 현성을 흘깃거리며, 말을 꺼낼까말까 머뭇거렸다.

오히려 그걸 눈치 채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그대로 현성이 시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아. 그전에 우선….”

시연이 갑자기 품에서 뭔가를 하나 꺼내 현성에게 들이밀었다.

그녀가 꺼낸 건 다름 아닌 곰돌이가 그려진 노란 메모지.

선천강 사태 이후, 병원에서 그가 퇴원하면서 남겨뒀던 메모지였다.

이에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모지를 바라봤다.

“…이건?”

그런 현성을 향해 시연이 말했다.

“이거. 당신이 남긴 거 맞죠?”

“그렇긴 한데 왜?”

“….”

그의 말에 시연이 아무 말 없이 현성을 째려봤다.

가뜩이나 무표정인 그녀가 째려보니 안 그래도 차가운 인상이 더욱 차가워졌다.

덕분에 현성은 알 수 없는 소름을 느끼며 앞에 놓인 따뜻한 차를 마셨다.

곧 따뜻한 차가 몸을 녹이고 나서야 현성이 입을 열었다.

“그때는 고마웠어. 사실 그대로 두고 갔어도 딱히 할 말은 없었는데 덕분에 잘 치료받았어. 신세졌네.”

“아니 그게 아니라…!”

현성의 대답에 시연이 뭐라 말하려다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게 아니라 제가 묻고 싶은 건 왜 먼저 갔느냐는 거였어요.”

“그야 꽤 바쁜 거 같아 보여서 먼저 퇴원했지.”

현성이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무리 병원비를 내줬다고 해도 병실에 계속 죽치고 앉아있는 건 실례였다.

거기다 나중에 기사를 보아하니 상당히 바빠 보이던데 그런 그의 입장에서는 구태여 바쁜 시연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에 시연이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웅얼거렸다.

“이름….”

“응? 뭐라고?”

“…이름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았잖아요.”

그대로 시연이 고개를 들어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그녀는 어딘가 약간 부끄러워보였다.

이 모습을 본 현성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하 가문 측에서 직접 이름을 물어보기는 좀 그랬을 수도 있겠네. 사과하지.”

이래보여도 하시연 그녀는 무려 검술명가 하 가문의 자식.

그런 입장에서 직접 나서 현성을 수소문하려드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아무리 현성이 몰락가문이라지만, 기본적으로 가문은 사소한 것도 신경써야할 일이 많은 건 알고 있었다.

태도, 행동, 용모, 심지어는 말버릇까지.

하물며 하 가문이나 되는 유명가문은 더더욱 이러저러 신경 쓸 게 많았다.

“네? 아니 그건 딱히….”

예상외의 반응에 시연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현성이 먼저 말을 꺼냈다.

“소개가 늦었어. 내 이름은 유현성. 너와 같은 아카데미 3학년생이야.”

“유현성….”

그리고 시연이 현성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사이.

현성이 시연을 향해 악수를 건넸다.

“앞으로 잘 부탁할게.”

그의 인사에 시연 역시 현성의 악수를 받으며 말했다.

“…제 이름은 하시연. 아카데미 3학년이자, 아카데미의 총 학생회장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인사를 주고받는 시간.

상대방이 소속을 밝히고 인사를 했다면, 그녀 역시 그에 맞는 예의를 갖춰야했다.

이것이 시연이 하 가문에서 어릴 때부터 줄곧 배워왔던 것이었다.

그런 만큼 그녀는 그 짧은 인사에서 마저 기품과 예의가 느껴졌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마친 뒤.

둘은 방금 전보다 조금 가벼워진 분위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 시작은 하시연이었다.

“그나저나 그쪽도 같은 아카데미 학생인줄을 몰랐어요. 영락없는….”

“일반인인줄 알았다고?”

현성의 말에 시연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맞아요. 죄송해요.”

“아냐. 충분히 그럴만해.”

사실 스텟만 두고 보자면 일반인보다도 못한 스텟이다.

그렇게 오해할 법하다.

역시 힘법사니 뭐니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스텟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응?”

그대로 시연이 물었다.

“선천강에서 데일런트를 쓰러트린 마지막 일격. 그 정도 실력이라면 아카데미에서 제가 당신을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그런 그녀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보였다.

시연이 현성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역시 뭔가 사정이 있어 힘을 숨기고 계신 건가요?”

“…뭐?”

“만약 실례되는 질문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시연이 현성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현성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아냐. 딱히 실례는 아니지만….”

이것 참 여러모로 난처한 상황이었다.

딱히 힘을 숨긴 건 아니지만 사정이 있어 숨기고 있는 사실이야 많았다.

당장 <이스페리아>에 빙의한 것부터 앞으로의 미래까지.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시연 앞에서 할 수는 없는 노릇.

곧 현성이 입을 열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노코멘트 할게.”

그의 말에 시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충분히 이해합니다.”

시연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고도 남았다.

방금 전 질문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질문.

내심 너무 궁금해서 물어보기는 했지만, 이런 대답이 돌아올 줄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본디 자신의 잘난 행동을 자랑하는데 안달난 사람들은 삼류이며, 구태여 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바로 일류이다.

오히려 자신보다 먼저 사람들을 구하려는 정의감과 그만한 실력을 가진 그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이었다.

“혹시 그거 말고 궁금한 건 없어?”

현성이 시연을 향해 말했다.

이에 그녀는 선천강에서 마지막 순간, 그가 휘두른 검에 대해 물어보려했지만 그도 잠시.

시연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작게 웃었다.

“아뇨. 괜찮아요.”

아마 그가 그때 그 검에 대해 알려준다고 한들.

시연은 자신 스스로 도저히 그 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분명 그때 현성이 쓴 검은 자신의 검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검이 아니었다.

물론 후에 시연 역시 그와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한 검을 쓰게 되지만 그건 어디까지 먼 미래의 이야기.

“아무튼 그럼 그쪽은 궁금한 거 없어요?”

이번에는 시연이 물었다.

그러자 현성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아, 그럼 아카데미 소개 좀 시켜줄래?”

“…아카데미 소개요? 3학년 건물은 크게 바뀐 게 없을 텐데 그래도 괜찮아요?”

현성의 말에 시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신입생이라면 모를까.

같은 3학년생이라면 아카데미 내 웬만한 건물을 다 알고 있을 터였다.

이에 현성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약간 사정이 있어서 말이지. 이것저것 살펴볼 것도 있고.”

물론 그가 정상적인 3학년이라면 그랬다.

하지만 현성은 따지고 보면 아카데미에 직접 돌아다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

<이스페리아>를 플레이 할 당시에는 아카데미 내에서는 길 찾을 거 없이 그냥 시스템 상 맵 이동을 지원해줘서 포탈로 이동했었다.

그런 만큼 그는 아카데미 내 정확한 시설의 위치와 구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당연했다.

거기다 하루빨리 아카데미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아카데미의 구조를 익히는 게 상당히 중요했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시간을 좀 쓰더라도 혼자 돌아다녀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눈앞에 학생회장인 하시연이 있다면 그야말로 더없이 좋은 찬스였다.

이에 곧 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어차피 오늘은 입학식인 만큼 별다른 업무도 없으니 소개시켜줄게요.”

“고마워.”

“아닙니다. 뭘 이런 거 가지고…혹시 따로 먼저 가보고 싶은 곳 있나요?”

시연의 말에 현성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편의시설보다는 교실이나 트레이닝 룸 같은 아카데미 생이 사용할 수 있는 곳 위주로 소개해주면 좋겠는데.”

지금 현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스텟의 성장.

그만큼 그가 우선적으로 알아야할 곳이 바로 트레이닝 룸이었다.

그의 말에 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어요. 그럼 따라오시죠.”

그대로 시연이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카데미 내 존재하는 대략적인 시설은 전부 다 돌아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아카데미의 자랑이라 불리는 트레이닝 룸.

트레이닝 룸은 아카데미 내 시설 중에서도 가장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음은 물론 차세대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곳인 만큼 자랑스럽게 소개시켜줄 수 있었다.

시연이 트레이닝 룸에 있는 모든 기구들을 설명하고, 맨 끝에 있던 기구까지 설명을 끝마치며 말했다.

“어때요? 정말 대단하죠?”

그러면서 시연이 방금 소개한 ‘배틀 시뮬레이션 룸’을 가리키며 말했다.

배틀 시뮬레이션 룸.

가상현실을 이용해 학생이 원하는 지형은 물론 원하는 몬스터와 무기들까지 설정한 채 모의전투를 할 수 있는 아카데미 내 최고의 시스템이었다.

그만큼 시연의 표정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심 자신감이 넘쳤다.

분명 이정도면 현성 그도 놀랄 터.

그렇기 때문에 맨 마지막에 이를 보여준 것이었다.

“그야말로 옛날에 쓰던 훈련장과는 차원이 다른 발전이죠.”

하지만 그런 시연의 설명과는 달리 현성은 별 감흥 없는 표정이었다.

아니 오히려 영 만족스럽지 못한 얼굴.

이에 시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왜 그러신가요?”

내심 자신감을 가지고 소개시켜준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보통 학생이라면 지금쯤 감탄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지금 당장 한 번 해봐도 되냐며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그렇지만 지금 현성은 감탄은커녕 어딘가 실망스러운 표정.

“아니. 다른 건 없나 싶어서.”

시연의 말에 현성이 말했다.

이런 좋은 걸 두고 다른 거라니.

그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흐음, 어떤 걸 말씀하시나요?”

“…그러니까.”

그리고 그런 현성의 말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완전 초기에 쓰던 훈련장 있잖아. 흔히 말하는 구식.”

“네? 구식…이요?”

“응. 허수아비 세워져 있고. 그런 거.”

구식이라니.

심지어 허수아비가 세워진 훈련장이라니.

확실히 아카데미가 창립된 초기.

그때는 이런 기술이 있을 리가 만무했으니 허수아비를 세워 훈련했었다.

그녀 역시도 어릴 적에는 허수아비에 목검을 휘두르며 검을 익혔다.

그런데 하필 지금에 와서 이런 좋은 훈련장을 두고 허수아비라니.

시연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그게 왜요?”

그런 시연의 말에 현성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난 그게 필요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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