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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12화 (12/240)

012화 고인물의 육성법(6)

정말이지 영광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일개 삼류 악역에 불과한 엑스트라가 무려 주연급 캐릭터를 만나게 되다니.

그것도 1부 메인 악역을 말이다.

그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하시연을 연모하여 그녀 앞에서는 유독 착한 척 연기한다는 사실이 있었지만 지금은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여기에는 하시연이 없으니까.

이런 상황에 현성은 당장에라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대로 그는 성준과 뒤에 있는 패거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냥 다 꺼졌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아카데미 퇴학 건으로 신경 쓸게 한두 개가 아닌데 그런 상황에 메인 악역 이성준과 엮이다니.

도대체 빙의하기 전 유현성은 무슨 짓거리를 했기에 그와 엮인 것일까.

그리고 그 이유를 알게 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야. 유현성. 내가 아카데미에서 어떻게 하라고 했지?”

그러면서 그가 현성의 어깨를 쿡쿡 찌르면서 말했다.

“거지새끼는 시궁창 냄새나니까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그의 말에 뒤에 있던 패거리들이 킥킥거리며 웅성거렸다.

“돈도 없는 새끼가 어떻게 아카데미에 들어왔대?”

“왜. 얘네 집에 메이드 하나 있잖아.”

“아, 그 다 망해빠진 가문에 남아있는 메이드? 그깟 몰락가문이 뭐가 좋다고는. 크큭….”

거지. 몰락가문.

현성은 단 두 개의 단어만으로도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아카데미는 온갖 유명가문출신의 자식은 물론 장차 미래를 이끌어나갈 인재들을 양성하는 곳.

그만큼 아카데미에는 유명가문출신, 그러니까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이 상당수이며 눈앞의 녀석들 역시 그랬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으며 현성과 같은 예외도 존재하였다.

이에 아카데미는 유명가문출신과 그렇지 못한 출신으로 나뉘었고 그 결과가 지금 보는 그대로였다.

‘…아카데미 내 괴롭힘.’

유명가문을 중심으로 생성된 파벌.

그리고 그들이 자신보다 못한 학생들을 괴롭히는 형태.

이는 현재 아카데미에서 만연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내 말 안 들려? 거지새끼.”

그 중에서도 성준은 꽤나 이름 있는 가문임과 동시에 그의 위나 아래에 별다른 핏줄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문의 후계가 된 몸.

그만큼 그는 가문에 대한 프라이드가 상당히 강한 인물이었다.

동시에 자신보다 아래인 학생들은 벌레 이하의 쓰레기 취급하는 성격도 상당히 강했으며, 이 둘 이 합쳐진 결과.

성준은 그야말로 아카데미 내 괴롭힘의 독보적인 1위.

현성이 그런 성준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 겉보기에는 착하게 생긴 녀석이 속은 이리 더러워서야….’

그의 말 그대로였다.

이성준.

작 중의 1부 메인악역이자, 아카데미 내 괴롭힘의 1인자인 그는 이런 명성과는 다르게 굉장히 수려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갈색머리에 깔끔한 가르마 펌과 안경.

보기만 해도 훈훈해지는 얼굴.

거기다 착한 심성까지.

그야말로 아카데미 학생의 표본.

이것이 <이스페리아> 내에서 이성준의 평가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 그의 겉모습.

그는 교수들 앞에서만 착한 이미지를 유지할 뿐.

그의 본 모습은 자신보다 약한 남을 괴롭히며 쾌락을 느끼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즉, 성준에게 있어서 현성은 그저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나 잘 쳐주면 시궁창의 생쥐정도.

현성을 괴롭히는 건 일종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놀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성준이 현성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현성아, 그래도 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대로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여러 장난감을 건드려봤지만 역시 너만큼 오래 버티는 녀석이 없더라고. 성적도 쓰레기야, 출신도 쓰레기야, 그렇다고 잘 싸우지도 못해. 그런데도 넌 끝까지 버텼잖아.”

그러면서 성준이 말을 이어나갔다.

“뭐 그대로 이제 곧 퇴학이겠지만 너만큼 잘 버티는 녀석은 없었어. 그러니까 내가 제안을 하나 할까 싶어.”

“…제안?”

성준의 말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이런 상황에서 제안이라니.

분명 그리 정상적인 것은 아닐 터였다.

“그래. 간단한 일이야. 너도 이제 3학년이잖아? 거기다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까지. 그럼 너도 어엿한 선배라는 거야. 그리고 선배라면 무릇 후배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법.”

그대로 성준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후배 중에서 한 놈 골라서 조져.”

“…뭐?”

“더도 덜도 필요 없고 딱 한 놈. 딱 한 놈만 니 손으로 직접 조져.”

그의 말에 현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성준을 바라보았다.

느닷없이 후배를 조지라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그런 현성의 얼굴을 보고 성준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머리를 툭툭 쳤다.

“하아…현성아. 이해를 못하니?”

그리고 이어진 성준의 말은 이랬다.

“너 대신 후배 조져서 퇴학시키라고. 그럼 3학년까지는 졸업하게 해줄게.”

그러니까 이번 3학년은 안 건드리고 무사히 졸업시켜줄 테니 그를 대신에 퇴학할 후배를 만들어오라는 뜻이었다.

그의 말에 뒤에 있던 성준의 패거리들이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이야! 그런 방법이 있었네!”

“크으, 성준아. 넌 진짜 천재다. 어떻게 그런 방법을 생각해내냐.”

이에 성준이 피식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닥쳐. 새끼들아. 니들이 멍청한 거겠지.”

그 모습을 보고 현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이지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맞았다.

그대로 성준이 현성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현성아, 어때?”

“….”

“왜. 등가 교환. 좋잖아.”

-움찔.

그런 성준의 대사에 현성이 미간을 좁혔다.

저 대사.

분명 주인공 유진으로 플레이할 당시 들어봤던 대사였다.

심지어 작 중 삼류 악역 유현성이 주인공 유진에게 시비를 털었을 때 들었던 대사.

이에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어….”

이게 이렇게 풀리다니.

현성 그가 처음 <이스페리아>에 빙의하고 나서 일주일.

그 사이 그는 유현성이라는 캐릭터 관련된 모든 행동, 대사를 기억나는 대로 짜내며 정리했다.

허나 작중 유현성의 비율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중후반부 중간 보스로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초반에 주인공에게 털리고 사라지는 게 전부.

그 상황에서 현성은 어떻게든 그때 말했던 사소한 행동, 대사까지 있는 대로 하나하나, 그야말로 머리를 짜낼 때까지 착즙하다시피 하며 정리해냈다.

그러면서 찾아낸 게 방금 전 저 대사였다.

‘왜. 등가 교환. 좋잖아.’

그리고 눈앞의 성준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때, 그 순간, 유현성이 유진에게 했던 대사를 똑같이 읊었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됐다.

처음에는 어째서 유현성이라는 인물이 유진에게 시비를 털었는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대충 흔히 주인공을 띄워주기 위한 소모성 캐릭터인줄 알았다.

물론 그렇다고 보기에는 그런 캐릭터를 왜 굳이 중후반부 보스로 등장시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하지만 지금.

모든 의문이 풀렸다.

다름 아닌 그 시발점은 눈앞의 1부 메인 악역.

이성준이었다.

이성준의 제안에 작 중 유현성은 이를 받아들이고, 괴롭힐 적당한 후배를 찾던 중 주인공 유진에게 시비를 걸었던 것이었다.

물론 결과는 처참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유현성이 그런 짓을 한 이유가 이성준에게 있었다는 것.’

지금 현성이 여기서 그의 제안을 거부한다고 한들, 성준은 다른 녀석들에게 계속해서 같은 제안을 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는 곧 그를 막지 않으면 제2의 유현성, 제 3의 유현성이 계속 생겨날 거란 말이었다.

‘혹 그렇게 되면 미래에 나를 대신해 다른 중후반부 보스가 등장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원래 <이스페리아>의 현성이 그랬으니까.

물론 지금 회차의 현성이 중후반부 보스가 되는 미래는 없다.

‘…내가 미쳤다고 주인공이랑 싸울 리가.’

알고 있다시피 보스가 된 현성은 주인공의 검에 머리가 잘린다.

즉 지금의 현성이 보스가 되는 선택지를 고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훗날 이성준의 제안으로 인해 제2의 유현성, 제3의 유현성이 중후반부 보스가 되어 돌아온다면?

원작대로라면 현성이 그랬으니 그들이 그러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현성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생존과 더불어 앞으로 주인공이 밟게 될 지뢰를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는 것.

그런데 그 지뢰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반갑다. 이 새끼야.’

원래대로라면 현성이 구태여 작 중 이성준을 막을 이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1부 메인 악역이기는 하나, 실질적인 보스는 아니기 때문이다.

원작의 전개는 이렇다.

이성준. 그가 평소에 연모하던 하시연에게 고백했다가 차이면서 그대로 흑화.

흑화 한 그가 가질 수 없다면 모두 부셔버리겠다는 마인드로 실습 중인 던전에서 봉인된 보스를 깨우게 된다.

이에 하시연이 위험에 처하지만.

‘주인공 유진이 그녀를 구해내고, 보스를 격퇴.’

이게 원작의 전개였다.

그렇기 때문에 현성은 단순히 성준이 하시연에게 고백하는 것만 막으면 그만이었다.

그가 하시연에게 차이지만 않으면 흑화할 일은 없을 것 이며, 자연스럽게 실습 던전의 봉인된 보스가 깨어날 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이놈으로 인해 제2의 유현성이 생겨나 중후반부 보스로 돌아오면 그건 그야말로 재앙.’

심지어는 원작에 없는 보스가 나올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현성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눈앞에 있는 재앙의 씨앗을 밟아 없애버리는 것.

“자, 그래서 현성아. 어떻게 할래?”

성준이 히죽 웃으며 재차 현성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그가 맨 처음 현성에게 집어던진 캔을 집어 들었다.

캔에는 아직 남은 음료수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대로 성준이 들고 있는 캔에 침을 뱉었다.

-카악…퉤!

그리고 성준이 침을 뱉은 캔을 현성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이거 마시면 내 말대로 하는 거다?”

그가 알고 있는 현성이라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는 기대하고 있었다.

개미가 다른 개미를 물어뜯는, 생쥐가 다른 생쥐를 물어뜯는 환상적인 그림을.

“….”

곧 현성이 아무 말 없이 성준이 건넨 캔을 받아들었다.

이에 성준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쓰레기는 쓰레기.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후 펼쳐진 그림은 성준 그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

-촤악!

현성이 그대로 성준의 머리 위로 캔을 쏟아 부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현성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마시기는 지랄. 너나 많이 드세요.”

그의 말과 동시에 성준의 머리 위로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주르륵.

“…어?”

그렇게 정적.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린 성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 이런 망할 거지새끼가…!”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화사한 미소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분노에 가득 찬 눈동자와 그에 따라 벌벌 떨리는 온 몸.

그가 이 수모를 받고도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 개새끼가!”

그대로 성준이 현성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아니 주먹을 내지르려는 찰나였다.

“거기 무슨 일이죠?”

현성의 뒤.

그러니까 복도 끝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다름 아닌 하시연.

“학생회장?!”

“하, 하시연이다!”

동시에 하시연이라는 말에 성준이 멈칫거렸다.

앞서 말했듯이 대외적으로 그가 관리하고 있는 이미지는 모든 아카데미 학생의 표본.

그런데 그가 연모하는 하시연의 등장이라니.

곧 시연이 성준을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이성준 학생?”

이미 얼굴까지 알아봤다.

그렇다면 성준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 뿐.

그가 천천히 주먹을 내렸다.

그러자 현성이 성준을 바라보며 방금 전 그가 그랬던 것처럼 이죽거렸다.

“…쫄?”

-으드득!

현성의 말에 성준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연이 보고 있는 앞.

결국 성준이 천천히 현성의 어깨를 잡으며 그에게만 들릴 만큼 작게 속삭였다.

“너 이 거지새끼. 지금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

“너 이번 공개대련에서 기대해라. 그때 내가 널 지목하고 거기서 공개적으로 죽여 버릴 거니까.”

공개대련.

아카데미 새 학기가 되면 열리는 연례행사 중 하나로 모든 교수와 학생이 보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행하는 대련이었다.

그런 대련에서 현성을 지목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선전포고.

이에 현성이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그때 보자.”

피하지 않겠다는 현성의 대답.

그의 대답에 성준이 어깨를 잡은 손아귀에 힘을 줬다.

“허! 이 거지새끼가 감히 누구 앞에서….”

하지만 현성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야. 치워라. 음료수 떨어진다.”

“….”

그대로 잠시 뒤.

성준이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그저 조용히 서있을 때.

그런 그를 보고 시연이 말했다.

“이성준 학생. 무슨 일 있습니까? 다른 학생은….”

그렇게 시연이 예의상 현성에게 안부를 물어본 찰나.

그의 얼굴을 알아본 시연의 눈이 크게 커졌다.

“…어?!”

그대로 시연이 반가운 듯 현성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 그때 그 사람 맞죠!”

그런 그녀의 반응에 일순간 성준의 얼굴이 구겨졌다.

평소에도 차갑기로 유명한 학생회장 하시연.

그녀가 다른 학생을 보고 이렇게 반응한 건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이에 뒤늦게 다른 학생들의 시선을 알아차린 시연이 헛기침을 하며 현성을 바라봤다.

“크흠. 그, 그쪽은 잠시 저랑 이야기 좀 나눌까요?”

그녀의 말에 현성이 그런 성준을 지나쳐 지나가며 말했다.

“…그럼 나 먼저 실례할게.”

그러면서 현성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아무래도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말하기 좀 그런데 이해하지?”

“네. 그럼 일단 자리를 옮기죠.”

현성의 말에 시연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둘은 그렇게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잠시 뒤.

아카데미 복도에는 오직 성준과 그의 패거리들이 덩그러니 서있을 뿐이었다.

“이런 망할…!”

성준이 현성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주먹을 꽉 쥐고 이를 갈았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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