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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9화 (9/240)

009화 고인물의 육성법(3)

힘법사.

보통 RPG류 게임에서 등장하는 극한의 컨셉 중 하나로.

마력 혹은 지력을 위주로 찍는 보통의 마법사와는 다르게, 힘만 오질라게 찍어 만들어낸 극한의 혼종이다.

힘법사에 관해서는 비단 게임뿐만이 아니라 창작물에서도 여럿 볼 수 있는데, 주로 쓰라는 마법은 안 쓰고 주먹질을 하거나 스태프를 몽둥이처럼 휘둘러 몬스터의 뚝배기를 깨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곤 한다.

그리고 <이스페리아>에서는 무려 이 힘법사가 버젓이 공식설정으로, 거기다 히든 클래스로 존재한다.

‘…미친 게임 같으니라고.’

보통 히든 클래스라함은 타 직업군에 비해 좋은 성능과 높은 포텐셜을 자랑하며, 이모저모 매력 넘치는 팔방미인의 포지션이다.

허나 <이스페리아>에서의 히든 클래스, 그중에서도 힘법사는 뭐랄까.

타의 상식을 불허하는,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는 클래스였다.

그도 그럴게 이유는 간단했다.

‘힘법사는 어디까지나 컨셉질의 느낌이 강할 뿐, 어느 정신 나간 놈이 이걸 진지하게 연구해.’

보통의 경우.

차라리 마법을 쓰려면 아예 마법만 쓰고, 격투로 가려면 아예 격투만 가는 게 더 강하다.

누구나 아는 논리였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이미 격투를 배우고 있는데, 어중간하게 마법을 배운다고 깝치다가는 결국 이도저도 아닌 흔히 말하는 망캐가 되기 마련.’

그렇기 때문에 힘법사는 격투와 마법 두 개를, 아니 둘 중 하나라도 마스터한 사람이 아닌 이상 웬만한 효율을 뽑아내지 못하는, 그야말로 이도저도 안 되는 클래스였다.

‘한 마디로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육성은 육성대로 드럽게 까다로운 직업.’

그게 바로 힘법사였다.

과거 <이스페리아>를 플레이 할 당시 다른 플레이어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

이미 주인공으로 온갖 무쌍을 찍고 다니는데 굳이 힘법사를 키울 필요가 없다고.

맞는 말이었다.

거기다 힘법사는 신경써야할게 너무 많았다.

당장 체력과 지력을 동시에 키워야한다는 게 그랬다.

‘그리고 히든 클래스로 전직할 경우, 기존 클래스는 당연히 삭제되고 그에 따라 그간 배웠던 기술들은 전부 초기화.’

즉 게임을 1회차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러니까 간단히 정리하면 힘법사로 최고의 효율을 뽑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전제조건이 필수였다.

1. <이스페리아>를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할 의향이 있는 변태.

2. 격투와 마법을 모두 마스터한 고인물 중의 고인물.

3. 정상적인 루트로는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해 온갖 기행을 저지르며 가능성을 탐구하는 미치광이.

4. 딱히 잃은 게 없는 자.

그리고 놀랍게도 이 네 가지를 충족하는 사람이 바로.

이진성, 아니 지금은 유현성이라는 자였다.

삼류 악역.

총 평균스텟 3따리의 쓰레기.

아카데미 낙제생.

이 화려한 스펙을 보라.

그야말로 나락 중의 나락이자, 망캐의 끝.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현성이기 때문에 희망이 보였다.

잃을게 없다는 말은 반대로 앞으로는 뭘 해도 이득이라는 말과 같았다.

거기다 마법을 배운 경험이 있고, 격투술에 재능이 있다?

현성이 입맛을 다셨다.

‘아, 이건 못 참지.’

무엇보다 육성과 조건이 까다로울 뿐.

앞의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면 힘법사는 히든 클래스인만큼 다른 일반 클래스보다 훨씬 강력했다.

본디 어느 한쪽에 하자를 보이면, 다른 한쪽에서 그만큼의 강점이 있는 법.

힘법사는 방금 위에서 말한 극명한 단점이 있었지만 극명한 장점도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데미지.’

기존의 마법사나 격투가와는 궤를 달리하는 데미지 수치.

그만큼 반작용도 있긴 하지만 딜링 하나는 끝내주는 직업.

그게 바로 힘법사였다.

거기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빨리 강해지면 빨리 강해질수록 좋았다.

그만큼 생존확률이 올라가고 앞으로의 일들이 수월해지기 때문이었다.

즉 이런저런 모든 조건들을 종합했을 때.

지금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가 바로.

‘힘법사라는거지.’

그리고 어차피 지옥같은 <이스페리아>에서 생존할 거.

불지옥에서 고통 받는 것보다는, 불지옥에서 탭댄스 추며 즐기는 게 훨씬 낫지 않는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것이 그의 좌우명이었다.

그렇다.

이미 온갖 지옥불 난이도에 절여진 현성의 뇌는 이미 정상인의 사고범위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컨셉!

거기다 히든클래스!

지금 현성의 행복회로는 그야말로 과열되다 못해 불타오르고 있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긴다.’

그대로 현성이 당차게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의 자택, 그 아래 마련된 비밀스러운 공간.

마치 호러무비에 나올법한 분위기의 지하실에 현성이 중얼거렸다.

“…우리 집에 이런 곳이 있었어?”

그의 말에 수연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후훗, 저희 집이 괜히 관리비가 그렇게 많이 빠지는 게 아니랍니다. 그래서 일을 2개로 늘려야했지만….”

수연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절대 쓰지 않을 거 같던 이 공간이 쓰이다니.”

그러면서 수연이 벽을 쓸어내렸다.

그런 그녀의 손길에는 왠지 모를 그리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만약 가문이 망하지만 않았다면 더 자주 사용했겠죠?”

하지만 그도 잠시.

수연이 씩씩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의외네요. 도련님이 직접 훈련장을 열어달라고 부탁할 줄이야.”

튼튼한 회색 벽으로 세워진 지하실.

이곳은 일명 훈련장으로 과거 현성의 가문이 망하기 전, 훈련을 포함한 여러 용도로 쓰였던 공간이었다.

물론 가문이 망한 이후에는 창고로 전락한 신세였지만, 이렇게 본 용도로 쓰이는 경우는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그도 그럴게 현성은 그전까지 훈련의 훈자도 하지 않았고, 수연은 생활비를 버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무슨 바람이세요? 갑자기 자기가 어떤 학생이었냐고 물어보지를 않나, 마법연습을 할 공간이 없냐고 물어보지 않나. 그동안은 별 신경도 쓰지 않으셨잖아요.”

그런 수연의 말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냥 이제는…제대로 해보려고.”

그러면서 그가 주먹을 꾹 쥐었다 펼쳤다.

그 모습에 수연이 적잖이 감동한 듯 꿀 떨어지는 눈으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도련님. 드디어 가주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기로 하셨군요….”

“…하하.”

이에 현성이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가주에 걸맞은 모습은 무슨.

전부 생명연장의 꿈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건 뒤로 하고….’

이제 훈련장에 왔으니 본격적으로 해야 할 게 있었다.

“그럼 수연. 내 마법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했지?”

그것은 바로 힘법사로 전직하는 것.

그러기에 앞서서는 우선 현재 현성의 마법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야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중급 마법사인 수연이 제격.

무엇보다 수연이라면 여기서 한 이야기가 밖에 세어나갈 걱정도 할 필요 없으니, 그야말로 지금 딱 현성에게 알맞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말에 수연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음, 우선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도련님은 마법을 배웠지만, 마법을 제대로 쓰지는 못하세요. 그러니까 시동단계는 가능하지만 구현이 안 되는 거죠.”

“구현이라….”

“한번 직접 해보시는 게 어때요? 시작은 파이어볼 정도가 적당할거 같군요.”

“그러지.”

수연의 말에 현성이 천천히 손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파이어볼.”

그러자 그의 손을 따라 불씨가 일더니, 곧 불로 이루어진 구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스페리아>상에서 마법의 매커니즘은 이랬다.

<시동>, 그리고 <구현>.

마법을 배웠다면 그 시동어를 외쳤을 때 그에 따른 마법이 구현된다.

그 증거로 지금 현성의 손 위로 불의 구가 생성되었다.

‘…마법을 배웠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군.’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생성된 불의 구의 형태가 일그러지더니 그대로 요동치며 불의 구가 폭발했다.

-퍼어어어엉!

이에 현성이 미간을 찡그리며 재빨리 손을 뺐다.

무엇보다 그 직후 느껴지는 피로감과 두통.

현성이 비틀거리며 혀를 찼다.

“쯧. 이 정도인가….”

“도련님!”

동시에 수연이 그를 부축했지만, 현성이 걱정 말라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냐, 괜찮아.”

그대로 그가 자신의 손을 쥐었다 펼쳤다.

방금 전의 폭발과 직후 느껴졌던 피로감과 두통.

이것의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구현의 실패.’

마법을 시동하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구현하는 게 불가능했다.

다시금 현성은 수연이 했던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그는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하지만 현성의 눈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전부 예상하고 있었다는 눈.

시동만 가능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힘법사에게 필요한 건 구현이 아니니까.’

그렇다.

힘법사는 일반 마법사와는 달리 시동에서 구현으로 이어지는 단계에서 구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힘법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그건 다름 아닌.

시동 후 정확한 타이밍.

현성이 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연. 다시 한 번 해볼게.”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를 거야.”

“네?”

그대로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성이 다시 한 번 파이어볼을 캐스팅했다.

“파이어볼.”

그러자 그의 손을 타고 전과 같은 불의 구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방금 전처럼 불의 구가 폭발하기 직전.

현성이 과거 <이스페리아>에서 처음 힘법사라는 히든 클래스를 발견했을 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데일런트 때와 같이 몸이 기억하는 그 타이밍, 그 박자!

‘…지금!’

동시에 현성이 반 박자 빨리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에 인위적으로 불의 구가 일그러지며 불씨가 현성의 주먹을 감싸 올랐다.

형태가 일그러지는 것까지는 똑같았지만 뭔가 달랐다.

-화르륵!

파이어볼은 그 형태가 구에서 나선형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현성의 주먹을 휘감은 채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수연이 미간을 좁혔다.

“저건…!”

그때였다.

현성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투콰아아앙!!

그가 주먹을 내지르기 무섭게 주먹을 휘감은 불꽃이 몸집을 키우더니 그대로 폭발한 것이다.

심지어 방금 전보다 더 큰 폭발음과 함께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그리고 폭발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뻗은 그의 주먹 끝.

그와 함께 현성의 눈앞에 여러 개의 메시지창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

[축하드립니다. 파이어 볼을 응용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냈습니다.]

[기술명 : 파이어 펀치]

[축하드립니다. 히든 클래스를 발견했습니다.]

[히든 클래스 : 힘의 마법사(physical wizard)]

[업적달성 : 새로운 마도(魔道)의 길을 개척한]

이에 현성이 히죽 웃으며 불씨가 남은 주먹을 털어냈다.

“됐다…!!”

일명 평타 캔슬, 줄여서 평캔.

이것이 바로 히든 클래스 힘의 마법사로 전직하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평캔이란 무엇인가.

기존의 공격을 쓰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다른 커맨드를 입력해 기존의 행동을 강제로 캔슬하는 버그성 테크닉.

그리고 <이스페리아>의 경우, 마법을 사용하다 평캔을 하면 기존의 <시동-구현>의 순서가 <시동-변형-발동>으로 바뀐다.

‘만약 이걸 성공할 경우 뜨는 메시지는 보다시피 이 5개.’

현성이 처음 <이스페리아>에서 이를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한창 기괴한 테크닉을 연습하다 마법 평캔을 통해 새로운 업적과 히든 클래스의 발견했다.

그에 따라 당시 <이스페리아> 게시판의 반응은 말 그대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대부분 ‘저게 가능하냐!’, ‘미친놈 아니냐!’, ‘주작이다!’ 등등.

다양한 반응이었다.

이에 현성은 직접 인증샷과 평캔으로 파이어 펀치를 시전하는 모습을 라이브로 보여줬고, 덕분에 그 영상은 너튜브에서 게임 인기 동영상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세상에….”

그리고 지금.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지켜본 수연 역시 그때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눈을 크게 뜬 채 경악했다.

“지, 지금 제가 뭘 본 거죠?”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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