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화 고인물의 육성법(2)
선천강에서의 일이 있고나서 하루가 지난 현성의 자택.
그곳에는 그가 머리를 싸맨 채 컴퓨터 모니터를 째려보고 있었다.
“으음….”
잠시 뒤.
현성이 그대로 의자를 뒤로 젖히며 착잡한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오늘따라 하늘에 떠있는 달이 밝아보였다.
“아, 담배 땡겨….”
금연을 결심한 이후.
이렇게 극심하게 담배가 땡긴 적은 없었다.
군대에서 말고는 느껴본 적 없는 흡연욕구.
그리고 그 원인은 단 하나였다.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모니터에는 그가 빙의하기 전, 아카데미에서 현성이 수강했던 강의가 줄지어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F가 아름답게 줄지어 서있었다.
거기다 책상에 놓여있는 학사경고장과 퇴학위기를 알리는 통지서.
거기 적힌 하나의 문장.
[당신은 경고대상입니다.]
이를 본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허허…허…허허허허…!”
그렇게 한참을 정신 나간 듯 웃던 현성이 순간 뒷목을 강타하는 고통에 목을 부여잡았다.
그야말로 보기만 해도 뒷목이 땡기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 현성의 눈에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이 들어왔다.
동시에 그는 순간 차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으드득!
그가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떤 개 같은 아카데미 생활을 보냈길래….”
하지만 그도 잠시.
지금 이런다한들 아무런 의미 없음을 깨달은 그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혹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겨우 성적가지고 웬 난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카데미의 생활이 곧 그의 생명연장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었다.
알다시피 그가 빙의한 곳은 다름 아닌 게임 <이스페리아>.
그리고 <이스페리아>의 장르는 바로 아카데미물.
그렇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은 웬만하면 아카데미와 연관되어있기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튜토리얼 역시 후에 아카데미에서 있을 일을 염두에 두고 관계를 구축하는 스토리였다.
즉 앞으로의 일은 전부 아카데미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래서 아카데미에서 벌어질 사건들과 그에 대한 공략법을 생각하고 있었더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목이 잡혔다.
‘퇴학이라니! 내가 퇴학이라니!’
그야말로 상상도 못한 경우였다.
당연히 현성 그 역시 아카데미의 학생이니, 아카데미에서 활동하며 앞으로 계획을 설계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대로 가다가는 아카데미에서 활동하기는 개뿔, 그전에 아카데미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현성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어디까지 주인공 위주.
초반에 주인공에게 시비를 걸고 사라지는 악역이 중후반부에 보스로 등장하는 건 알고 있었어도, 그 사이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누가 주인공으로 진행하면서 이딴 놈을 신경 써.’
근데 이런데서 발목이 잡힐 줄이야.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이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눈앞에 보이는 F의 연속.
“…이 새끼가 지력이 4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보통 아카데미생의 스텟 중 제일 낮은 게 5임을 고려하면 그의 스텟은 정말이지 보잘 것 없었다.
거기다 의지는 현성 그의 3.
낮은 지능과 의지박약의 시너지는 대단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조합!
차라리 체력이라도 좋았으면 실기에서라도 점수를 땄겠지만 체력은 3.
‘한마디로 제갈공명의 육체와 여포의 지능.’
조합도 이런 개 쓰레기 같은 조합이 없다.
만약 삼국지 게임에 이런 캐릭터가 있었으면 당장에라도 참수형에 처했을 터였다.
그렇게 현성이 과거 주식투자에 실패했을 때처럼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을 때.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도련님, 들어가도 될까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메이드 장 수연.
이에 현성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들어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대로 수연이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머지않아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참사와 테이블에 경고장을 발견한 그녀가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태연하게 표정을 관리하고는 현성과 모니터를 번갈아보며 중얼거렸다.
“도련님. 용의 꼬리가 될 바에는 차라리 뱀의 머리가 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수연의 말에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글쎄. 이건 뱀의 머리보다는 지렁이의 꼬리가 아닐까.”
“…그건 그렇죠.”
그러면서 수연이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그걸 아시는 분이 왜 그랬대요.”
“….”
수연의 말에 현성은 당장에라도 ‘내가 한 게 아니니까!’라는 말이 턱밑까지 튀어나왔지만 곧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게.”
“그러니까 제가 공부는 좀 해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도련님은 실전이 약하니 이론에서라도 점수를 따야한다고 제가 그렇게 말했는데…결국은 이런 결과가 나왔네요.”
그대로 수연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현성을 향해 묵직한 팩트 미사일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힘들게 돈 벌어서 아카데미에 보내면 뭐합니까. 돌아오는 것은 결국 경고장인데. 아무리 인생 공수래공수거라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같습니다. 아아, 야속한 세상 같으니. 이러다가 도련님이 아카데미에서 쫓겨나면 저와 도련님은 사이좋게 손잡고 길거리에 나앉는 게 아닐까 싶네요.”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모 영화에 나온 그대로 수연의 말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현성에게 꽂혔다.
이대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했다.
이에 현성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수연…나는 어떤 학생이었어?”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빙의하기 전, 현성이 도대체 어떤 녀석이었는지 알아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눈앞의 수연.
“도련님 말입니까?”
현성의 말에 수연이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그를 바라보며 자신의 손가락을 펼쳤다.
그대로 그녀가 새끼손가락과 엄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1단계부터 5단계. 얼마정도 세기로 말씀드릴까요.”
“5단계로 부탁하지.”
“….”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5단계를 외치자, 수연이 재차 그에게 물어봤다.
“후회안하십니까?”
“그래.”
“도련님의 선택이 그러시다면….”
동시에 수연이 현성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
“도련님 우선 밤하늘을 바라보십쇼.”
“…갑자기?”
“일단 제 말을 들어보십쇼.”
일단 현성은 수연의 말대로 밤하늘을 바라봤다.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밝게 떠오른 달과 차가운 밤공기.
그대로 수연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떠있습니다. 하지만 그 별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죠. 별은 많지만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다르니까요. 이처럼 여러 상황에 따라 빛나는 별은 보일수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그리고 도련님 눈을 감아보세요.”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설마 나도 노력하면 그 별을 찾을 수 있다던가 그런 말이야?”
이게 5단계라면 꽤나 실망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위로가 되었다.
그만큼 수연이 현성 그를 생각하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아무래도 수연 그는 자신의 도련님에게만큼은 쓴 소리는 못하는 착한 메이드인 모양이었다.
수연이 말했다.
“도련님, 지금은 뭐가 보이죠?”
그런 수연의 말에 현성은 적당히 맞장구쳐주기로 했다.
“웅, 밝게 빛나는 별이 보이….”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수연이 현성의 눈을 덥석 가린 채, 꾸욱 누르며 말했다.
“하하. 도련님, 헛소리하지 마십쇼.”
“수, 수연? 이게 뭐하는 짓…!!”
그대로 수연이 연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자, 도련님.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뭐가 보이시죠?”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네, 맞습니다.”
그러자 수연이 싱긋 웃으며 현성을 가리켰다.
“바로 그게 도련님의 미래입니다.”
-움찔!
수연의 말에 현성이 주춤거렸다.
그리고 잠시 뒤.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수연을 바라보았다.
수연 그녀는 도련님을 아끼지만 할 때는 하는 강단을 가진 프로 메이드였다.
“무엇보다 도련님은 마법사면서 쓸 수 있는 마법도 없잖아요.”
“…뭐?”
“제가 이제껏 마법을 가르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한 마디로 답이 없다는 거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도련님은 마법에 재능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현성이 수연의 상태창을 봤을 때 본 정보로는 그녀는 다름 아닌 중급 마법사.
그리고 그런 수연과 같이 사는 현성이라면 마법 교육을 한 번이라도 받을 만했다.
하지만 현성의 상태창에는 마법사의 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즉슨.
‘…마법은 배웠음에도 아무런 마법도 쓸 수 없다고?’
하지만 그도 잠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바로 현성 그가 마법을 배웠다는 사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이에 수연이 그런 현성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도련님? 안색이…괜찮으십니까? 그러게 제가 진짜 5단계로 하냐고 말씀드렸잖아요.”
“음?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무래도 수연은 생각에 잠긴 현성을 보고 자신의 꾸중에 풀이 죽은 걸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현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전 그런 도련님도 사랑할 수 있어요. 정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냐. 아냐.”
수연의 부축에 현성이 손 사레 치며 피식 웃었다.
그는 딱히 풀이 죽은 것도, 실망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잠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수연. 미안한데 잠시 나가줘.”
“도련님….”
그런 현성의 말에 수연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괜찮아지면 불러주세요.”
“알겠어.”
이를 마지막으로 수연이 방을 나갔다.
그렇게 현성 혼자 남겨진 방 안.
그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결국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차피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했다.
그리고 그가 누군가.
고인물 중의 고인물.
<이스페리아>의 살아있는 화석.
그야말로 <이스페리아>의 망령.
그렇기 때문에 강해질 방법 정도는 사전에 이것저것 구상해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어디까지나 이 모든 기준은 ‘주인공’으로 플레이 했을 때라는 것.
‘전부 괜찮다 싶은 건 지금 내 스펙이 너무 딸리고, 그렇다고 눈을 낮추자니 이거다 싶은 게 없단 말이지….’
즉 현재 현성의 스텟을 고려했을 때.
뭘 선택해도 큰 포텐셜을 발휘하는 방법이 없었다.
‘<이스페리아>의 주인공 유진은 주인공 보정 덕에 뭘 해도 되는 재능충이라 선택의 폭이 넓었지만.’
평균 3따리.
제갈공명의 육체와 여포의 지능.
의지박약.
이 저주받은 육체는 그만큼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방금 수연의 발언으로 일말의 가능성이 생겼다.
‘…만약 여기서 현성이 마법을 배운 경험이 있다면?’
무조건적으로 이득이었다.
왜냐하면 <이스페리아>에서 마법을 처음 습득하기 위해서는 그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이었다.
우선 마법 자체가 고학력 고스펙의 학문이라 배울 수 있는 장소도 한정되고, 배운다한들 숙련도를 쌓기 위해서는 검술처럼 죽치고 검만 휘두르는 단순노동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현실에서 기술직 혹은 고학력자가 우대된다면 <이스페리아>의 마법사는 이 두 가지가 결합한 형태였다.
‘그래서 사실 마법은 반쯤 버리고 갈 생각이었다만….’
현성 그가 마법을 배웠다면 말이 달라진다.
마법을 잘하고 말고는 상관없다.
마법이라는 문턱에 발만 걸쳐있다면, 나머지는 현성이 가진 고인물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일류 요리사가 음식을 만든다고 치자.
허나 아무리 일류라 하더라도 재료가 없으면 음식을 만들 수 없다.
그렇지만 재료만 있으면 가능하다.
즉 ‘마법을 배웠다.’라는 그 한 가지만 있으면 고인물인 그에게 불가능은 없다.
‘당장 마검사, 마창사같은 듀얼 클래스부터 마법에 관련된 계열은 다 가능하다.’
일단 클래스가 정해지면 그에 관한 정석부터 육성루트는 전부 그의 머릿속에 담겨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중 현성의 포텐셜을 가장 끌어낼 수 있는 클래스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바로.
-따악.
연신 탁자를 두드리던 현성의 손가락이 멈췄다.
“격투계열.”
유현성. 삼류 악역.
총 평균스텟 3따리의 쓰레기.
아카데미 낙제생.
그런 그에게도 일말의 가능성은 존재했다.
바로 현성이라는 캐릭터가 중후반부 보스로 등장한다는 사실.
물론 그 시점에서 마족에게 몸이 빼앗겨 등장하지만 중요한건 이게 아니었다.
그때 보스로 재등장한 현성의 무기는 다름 아닌 주먹.
‘공격은 금강(金剛)인지 뭔지로 다 막지. 정권 한 번 내지르면 데미지가 그냥 붕권이여.’
특히 기를 모아 정권을 내지르는 기폭발.
그 후 이어지는 연격은 그야말로 모 격투게임의 명언 그 자체였다.
<모르면 맞아야지.>
심지어 손 한 번 삐끗하면 그대로 속수무책으로 뚜드려 맞아야했다.
역시 거지같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이스페리아>였다.
아니 아무튼 그건 둘째 치고, 여기서 요지는 하나였다.
‘꼴에 이놈도 타고난 게 하나있다는 것.’
현성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지금은 스텟이 구려서 못 쓰니 이 부분은 일단 버리고, 나중에 스텟을 키우고 나서 살릴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다면 말이 달라진다.
마법을 배운 경험.
격투계열의 포텐셜.
이 둘을 합치면 나오는 건 정해져있었다.
“흐흐…흐흐흐….”
과거 <이스페리아>의 망령이라 불리던 그때.
온갖 미친놈과 같은 기행으로 공략게시판을 혼돈과 경악으로 채웠던 그때.
한창 광기에 취해있었던 그때와 같은 웃음소리가 현성의 입 밖으로 삐져나왔다.
그대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을 풀었다.
-뚜둑, 뚜둑!
그것은 바로.
“힘법사.”
그렇게 현성이 방 밖으로 나서며 히죽 웃었다.
“…이번 공략은 힘법사로 간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