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화 고인물의 육성법(1)
낯선 천장이다.
동시에 현성이 움찔거리며 재빨리 자신의 몸을 살폈다.
팔에 문제는 없는지, 다리는 제대로 움직이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상태창.”
현성의 중얼거림과 함께 그의 눈앞으로 불투명한 창이 펼쳐졌다.
[이름 : 유현성]
성별 : 남성
나이 : 17
종족 : 인간
업적 :
[데일런트를 쓰러트린 자]
[폭풍의 창을 받아낸 자]
체력 3
지력 4
민첩 3
행운 2
의지 3
*스킬상세
그리고 곧 상태창을 확인한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그대로군….’
현성은 혹시나 그새 또 다른 세계로 떨어졌다거나, 다른 누군가의 몸에 빙의한 줄 알았다.
정말이지 이제는 낯선 천장만 봐도 가슴이 철렁할 수준이었다.
‘내 살다보니 낯선 천장을 보고 이렇게 놀랄 줄이야.’
그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렇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현성이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새하얀 침대. 그리고 사방에 쳐져있는 커튼과 은은한 조명.
무엇보다 자신이 입고 있는 환자복.
이것만으로도 이곳이 어디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병원이군.’
그때였다.
커튼 너머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곧 간호사가 커튼을 열어젖혔다.
그대로 간호사가 침대에서 일어난 현성을 발견하고 말했다.
“어머, 일어나셨네요. 몸은 괜찮으신가요?”
그런 간호사의 말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딱히…큰 문제는 없는 거 같네요.”
사실 다른 몸으로 빙의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딱히 그게 아니더라도 푹 자고 일어난 덕분일까.
상당히 상쾌한 기분이었다.
이에 간호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네요. 같이 오신 보호자분께서 내심 걱정하는 것 같았거든요.”
“…보호자라고요?”
보호자라는 말에 현성이 되물었다.
설마 수연을 말하는 것일까.
그러자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머리 긴 여자분 있잖아요. 병원장님께서 직접 오신 걸로 보아하니 꽤나 유명하던 분 같았어요.”
“혹시 허리까지 오는 긴 흑발?”
“아! 맞아요. 이름이 분명….”
허리까지 오는 긴 흑발.
거기다 병원장이 직접 올만큼의 유명인사.
거기까지만 들어도 현성은 자신을 병원에 데리고 온 사람이 누군지 단번에 예측할 수 있었다.
“하시연?”
“음. 역시 아는 사이셨군요.”
간호사의 말에 현성이 피식 웃어넘겼다.
“네, 뭐….”
그의 마지막 기억은 피곤에 쩔어 벤치에 쓰러지듯 잠든 게 끝.
‘아무래도 시연이 날 병원까지 데려온 모양이군.’
사실 그대로 뒀어도 큰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역시 길바닥보다는 병원이 좋다고 생각하며,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럼 하시연은….”
“아. 급한 일이 있다고 먼저 가셨어요. 환자분 깨어났다고 알려드릴까요?”
그러자 현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간호사의 말마따나 꽤나 바쁜 모양인데 굳이 이런 걸로 연락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병원에 데려와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
“아, 아뇨. 그럴 필요는 없고…아무튼 아무런 문제없는 거죠?”
“네. 전신에 상처는 이미 치료해뒀고, 환자 분께서 딱히 불편하신 곳이 없다면 바로 퇴원하셔도 괜찮아요.”
“그럼 바로 퇴원할게요.”
간호사의 말에 현성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여기서 더 있어봤자 좋을 건 없고 오히려 집에 빨리 들어가는 편이 나았다.
데일런트를 쓰러트리고 얻은 아이템과 앞으로 이것저것 확인 해봐야할게 한둘이 아니었다.
거기다 벌써 저녁인 만큼, 수연도 그를 걱정하고 있을 터.
그렇게 현성이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그가 미간을 좁혔다.
‘…잠깐. 저녁?’
순간 무언가 생각난 그가 다급하게 간호사를 붙잡았다.
“아, 잠깐만요!”
“네?”
하마터면 가장 중요한 걸 빼먹을 뻔 했다.
그대로 현성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병원비는 어떻게 됐나요?”
그것은 다름 아닌 병원비.
지금 시간은 저녁.
그리고 보통 병원 진료마감시간이 6시.
여기서 병원장이 직접 내려올 정도에다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면 그 금액은 적지 않을게 분명했다.
물론 현성 그의 집안이 잘 나갔다면 모르겠지만 수연과 단 둘이 사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키며 간호사를 바라봤다.
본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건 귀신이 아니라 돈이라고, 현성은 방금 전 데일런트를 쓰러트리던 때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욱 긴장되었다.
그런 현성의 말에 간호사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 병원비라면 보호자분께서 전부 지불하셨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현성의 얼굴이 밝아지며 작게 두 손을 꽉 쥐었다.
역시 하 가문의 자랑!
하 가문의 얼굴!
‘최고다, 하시연!’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연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렇다면 이걸로 가장 걱정하던 병원비는 해결.
현성이 한결 편해진 얼굴로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네, 바로 퇴원하시면 됩니다.”
이에 현성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퇴원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그가 퇴원하기 직전.
현성이 나가려던 간호사를 다시 불러 세웠다.
“저기 잠깐만요.”
“네? 뭔가 필요한 거라도….”
그런 간호사의 말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메모지랑 펜 하나만 빌릴 수 있을까요?”
* * * * *
한편 기자들이 모여 있는 건물 안.
그 중심에는 하 가문임을 뜻하는 문장과 하시연이 앉아있었다.
그런 그녀의 뒤로는 쑥대밭이 된 선천강의 풍경이 영상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선천강에서의 일이 있던 후.
시연은 현성을 병원에 데려가자마자 급하게 기자회견이 잡혔고.
이에 그녀는 등 떠밀리다시피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시연은 마음 같아서는 현성이 깨어날 때까지 병원에 남아있고 싶었지만 하 가문에서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선천강에 등장한 데일런트. 그리고 이를 해치운 하 가문의 떠오르는 실력자.
하 가문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안 그래도 곧 아카데미가 개학하는 마당에 이런 이슈는 가문의 입지를 다지는데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곧바로 하 가문은 큰 기자회견을 잡았고, 그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주요 관건은 당연히 하시연 그녀의 활약과 시민을 구해낸 영웅적인 면모.
이미 너튜브를 포함한 여러 매체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내건 헤드라인 뉴스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건 당장 지금도 마찬가지.
북적거리는 기자들 사이.
맨 앞에 있던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시연님의 말씀하신 대로라면 선천강에 출몰한 데일런트를 쓰러트린 것은 시연님과 정체불명의 남성…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이에 하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그녀는 마음만 먹었다면 선천강 사태는 전부 자신이 해결했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시연은 구태여 그런 거짓말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녀가 원한 건 사람들의 인기가 아닌, 사람들의 안전이었기 때문이다.
“네, 맞습니다. 이번 선천강 사태는 저 혼자만의 힘으로 해낸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도움이 더 컸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럼 혹시 그의 정체는….”
그런 기자의 질문에 그를 포함한 주변의 다른 기자들 역시 눈을 반짝였다.
하 가문의 자랑, 하시연말고도 선천강 사태를 해결한 실력자가 있다니.
그야말로 좋은 이슈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말씀드렸다시피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 그럼 하다못해 외형이라도….”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혹시 다른 궁금한 건 없나요?”
계속되는 기자들의 추궁.
이에 시연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현성의 전체적인 외형도, 지금 그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연은 혹시라도 그가 불편해할까 봐 이에 관한 사실은 일절 밝히지 않았다.
애초에 데일런트가 언급한 기사단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의 공격을 맞받아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자가 지금껏 알려진 적이 없다면 그건 필시 그가 자신의 정체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먼저 사람들을 구하려는 그 올곧은 정의.
아무런 대가도 없던, 오직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행했던, 그의 정의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럼 다른 질문이 없다면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해도 될까요?”
그대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시연의 말에 다른 기사들 역시 서로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올 기사거리는 전부 나왔다.
남은 건 이제 기사화시켜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 뿐.
그때였다.
기자 하나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럼 마지막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만약 정체분명의 그를 다시 만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런 기자의 질문에 시연이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살짝, 아주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이름을 물어보지 않을까 싶어요.”
* * * * *
인터뷰가 끝나고 시연은 곧바로 현성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
그녀의 비서가 차를 운전하며 넌지시 물었다.
“…시연님.”
“응. 말해.”
“차라리 그자에 관한 걸 빼고 말씀하셔도 되지 않으셨습니까?”
당시 전투가 끝날 때까지 선천강에 있던 사람은 시연과 현성 단 둘 뿐.
그녀가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지 그 공을 독차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비서의 말에 시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맞아. 그런데 그러기에는 그의 활약이 너무 컸거든.”
“아가씨보다 더요?”
“응.”
단호한 시연의 대답.
이에 비서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그건…놀랍군요. 비슷한 나이대에서는 아가씨를 능가할 자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그자가 그렇게 강했습니까?”
비서 역시 현성을 병원에 대려다주면서 얼핏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강해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병약해 보일정도로 하얀 피부와 고운 얼굴.
그에 반해 시연은 하 가문 내에서도, 아카데미에서도 주목받는 인재였다.
특히 검에 관해서는 천재 그 자체.
이에 시연이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글쎄. 그렇게 강한 건 또 아닌 거 같았지만……지막 한 순간, 딱 그 순간에 압도되는 무언가가 있었어.”
그러면서 시연이 그 순간, 현성이 데일런트의 일격을 반격했을 때를 떠올렸다.
폭풍이 쏘아지던 그때.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도, 공포도, 망설임도,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완벽하게 몰입했을 뿐.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분명 그녀의 검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그때 그의 검을 따라하는 건 불가능했다.
검의 천재라고 불린 그녀조차 따라할 수 없는, 생전 처음 보는 검이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기억나는 건 그저 유려하게 움직이던 검 끝.
마치 단아한 검무(劍舞)를 보는 것 같던 그 움직임.
그저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은 일검(一劍)에 불과했지만, 시연은 도저히 그때의 검을 잊을 수 없었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따라할 수는 없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지만, 행할 수 없는 검.
그 때문에 더더욱 기억에 남는, 어쩌면 그녀 인생 마지막으로 본 검일수도 있었다.
‘…근데 그렇다고 또 검을 오래 잡은 것도 아닌 거 같았단 말이지.’
간혹 무언가 극(極)의 경지에 이르면, 다른 분야에서도 극에 다다를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렇다 치기에는 그는 얼핏 봐도 자신과 같은 나이대.
정말이지 이상하면서도 계속해서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자였다.
혹시 데일런트가 말했던 그 기사단.
정말로 그가 기사단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시연이 비서에게 물었다.
“혹시 내가 말했던 건 조사해봤어?”
“아, 그 기사단 말입니까?”
“응.”
그녀의 말에 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글쎄요. 과거 일류 중의 일류들이 모인 집단이며, 그 집단을 이끌었던 ‘기사왕’이라는 인물이 있던 것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지만…자세한 정보는 좀 더 알아봐야 할 거 같습니다.”
“기사왕이라….”
“아, 그리고 아가씨.”
“응?”
“도착했습니다.”
그대로 비서가 차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
어느새 병원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이에 시연이 창밖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네.”
“먼저 올라가계시죠. 곧 따라가겠습니다.”
“알겠어.”
그런 비서의 말에 시연이 차에서 내렸다.
그대로 그녀는 현성이 있는 층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시연의 입 꼬리는 알 수 없는 묘한 두근거림 때문일까.
평소와는 달리 약간 올라가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현성이 있던 병실에 도착한 순간.
그곳에는 텅 빈 병실뿐이었다.
‘…없어.’
동시에 그녀의 얼굴에 아쉬움이 맴돌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중에 온 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그는 이미 퇴원했다고 한다.
그때였다.
“이건….”
시연이 침대 위에 놓여있던 메모지를 하나 발견했다.
곰돌이가 그려진 노란 메모지.
그리고 그 위에 적힌 짧은 글씨.
‘고마워.’
그런 현성의 메모에 시연이 자기도 모르게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그 역시 그 나름대로 바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대로 그녀가 메모지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의 시연은 몰랐다.
머지않아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것임을.
그것도 훨씬 빠른 시일 내에 말이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