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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6화 (6/240)

006화 튜토리얼이라며! 튜토리얼이라며!(5)

현성이 검을 내리그은 직후.

선천강에는 일순간, 정적이 맴돌았다.

허나 그 정적이 말 그대로 폭풍전야(暴風前夜)를 의미함을 모르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적어도 이곳에 있는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띠링!

그와 동시에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현성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의 폭풍의 창을 반격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현성의 사방으로 거대한 풍압이 일더니, 그의 검 끝을 따라 응축된 폭풍이 쏘아졌다.

방금 전 데일런트가 현성을 향해 날린 일격과 같은 폭풍.

아니 그보다 훨씬 날카로운 폭풍의 검격이 데일런트를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앙!!

현성의 검 끝을 따라 쏘아진 검격은 굉음을 토해내며 문자 그대로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갈아버리고, 데일런트 그마저 집어삼킬 기세로 달려들었다.

“이, 이게 무슨….”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폭풍의 검격.

그 사이 데일런트는 재빨리 창을 쥐어 날아오는 검격을 막아내려 했다.

허나 현성이 날린 검격이 그를 집어삼킨 순간.

그는 알아차리고 말았다.

도저히, 어떤 수를 부려도 이 검격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동시에 그의 검은 창을 타고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끼기긱…. 빠가각…!

창을 따라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된 균열은 창을 타고 오르며, 점점 그 범위를 넓혀나갔다.

지금껏 데일런트 그가 본적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었다.

만약 그가 전에 이런 풍경을 봤다면 이미 그의 패배는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니.

결국 그의 창이 산산 조각나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챙강!

흩날리는 검은 창의 파편.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폭풍의 검격.

그 사이에서 데일런트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다름 아닌.

“GG.”

현성의 회심의 미소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크아아아악!!”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

튜토리얼의 보스이자,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죽을 리 없던, 아니 죽일 수 없던 그의 마지막 외침이 선천강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런 마지막 외침조차 머지않아 폭풍에 휩싸여 사라지고 말았다.

-콰가가가가가각!

* * * * *

그대로 폭풍이 몰아치고 얼마나 지났을까.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오른 선천강 둔치.

그 속에서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주변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무엇보다 반격기를 날린 눈앞은 더욱 처참했다.

평평한 바닥을 자랑하던 땅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거친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위에 자라있던 나무들은 뿌리부터 가지까지 폭풍에 갈려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이에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어….”

정말이지 웃음밖에 안 나오는 풍경이었다.

만약 반격기를 실패했다면 그는 이미 온몸이 찢긴 채 휴지조각처럼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을 터.

만감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다시 한 번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눈앞에 여러 개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축하드립니다.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를 쓰러트렸습니다.]

[업적달성 : 데일런트를 쓰러트린]

[업적달성 : 폭풍의 창을 받아낸]

[히든 퀘스트 : 데일런트를 쓰러트려라!]

퀘스트 내용

-데일런트를 쓰러트리시오.(완료)

발생조건 : 하시연의 등장 이후. 도망치라는 제안을 거부.

*본 퀘스트는 실패 시 사망합니다.

메시지를 모두 확인한 현성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다. 살아남았다.

동시에 기분 좋은 고양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해냈다.

980번 끝에 해냈던, 다시는 보기 싫었던 그 업적을 다시금 깼다.

그것도 노 세이브 원 코인으로.

“…하핫.”

그대로 온 몸의 힘이 쭉 풀렸다.

만약 <이스페리아>의 제작진이나 유저가 본다면 그를 보고 미쳤다 했을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미쳤다는 소리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온갖 변태 같은 플레이를 넘어선 고인물의 기행을 선보인다는 것부터 일단 제정신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건 둘째 치고,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터벅터벅.

쑥대밭이 된 눈앞.

현성이 방금 전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이 멈춰선 곳은 다름 아닌 데일런트가 쓰러진 자리.

그곳에는 무언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물건은 다름 아닌 반지하나와 낡은 건틀렛.

이를 발견한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렇지.’

이것이 바로 이곳 선천강 둔치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이었다.

누누이 말했듯이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를 잡으라고 만들어둔 몬스터가 아니었다.

허나 그를 잡는 방법은 존재했으며, 그런 말도 안 되는 기행을 해낸 경우 떨어지는 보상은 당연히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바로 데일런트를 죽였을 때만 드랍 되는 아이템.’

그게 이 반지와 낡은 건틀렛이었다.

동시에 현성의 눈앞에 아이템 설명창이 떠올랐다.

[기사단의 반지]

[등급 : 레어]

설명 : 영광스러운 레드 후드 기사단임을 나타내는 반지이다. 기사단의 증표라고도 불린다. 착용 시 의지가 15오른다.

[누군가의 낡은 건틀렛]

[등급 : ???]

설명 : 상당히 오래된 건틀렛이다. 과거 기사단이 사용하던 건틀렛과 비슷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지만, 너무 오래된 탓에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할 것 같다. 동네 철물점에 가져다팔면 고철 값 정도는 받을 수 있을지도?

아이템 설명을 읽은 현성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게임에서 본 그대로였다.

우선 ‘기사단의 반지’.

설명대로 레드 후드 기사단의 증표이자, 의지를 15나 올려주는 꿀 아이템이었다.

간혹 의지를 올려주는 게 뭐가 대단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였다.

<이스페리아>내에 존재하는 스텟은 총 체력, 지력, 민첩, 행운, 의지 5개.

그리고 이 중 가장 좋은 스텟을 뽑으라고 하면 단연 의지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지는 말 그대로 무언가를 해내는 마음으로 모든 상황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텟이었다.

예를 들자면 전투 시 의지 스텟이 높다면 체력 1로 공격을 버텨낼 수도 있고, 다른 스텟을 올릴 때도 의지가 받쳐준다면 그 속도에 박차를 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환각과 같은 정신계 공격에 저항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스텟이라는 점이었다.

‘덕분에 정신계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의지만 높다면 웬만한 공격은 전부 막을 수 있다.’

<이스페리아> 상에서 정신계 공격은 의지를 제외한 모든 스텟을 무시한다.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의지 스텟은 그 중요성이 더더욱 커진다.

그만큼 의지 스텟을 올리기는 어려우며, 해당 스텟을 올려주는 아이템 역시 희귀하다.

‘…이런 면에서 의지를 15나 올려주는 기사의 반지는 그야말로 꿀 중의 개꿀 아이템.’

그리고 낡은 건틀렛.

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설명만큼 쓸데없는 아이템이며, 등급은 어째서인지 물음표.

허나 무려 데일런트가 드랍하는 아이템이다.

‘당연히 보통 아이템일 리가 없지.’

현성 역시 나중에 온갖 뻘짓 끝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바로 이 건틀렛이 유일하게 <이스페리아> 상에서 최강급인물이라 불리는 기사왕과 연관된 퀘스트를 진행하게 해주는 아이템이다.

물론 그런 것치고는 그 생김새는 딱 고철을 연상케 한다.

‘덕분에 나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아이템인지, 도대체 어디에 써먹는 건지 꽤나 고생했었지.’

아무튼 둘 다 모두 큰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며, 앞으로 <이스페리아>에서 온갖 죽음의 위기를 넘겨야하는 현성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도움이 되는 아이템들이었다.

그대로 그가 기사의 반지와 낡은 건틀렛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걸로 여기서 얻을 건 끝.”

이젠 정말 끝이었다.

동시에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평균 스텟 3따리 육체에 엄청난 피로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당장에라도 길바닥이든 어디든 눕기만 하면 잘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현성이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침대를 상상하며 등을 돌린 순간.

-움찔!

그의 뒤에서 현성을 기웃거리던 하시연이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시연이 재빨리 도도한 표정을 관리하며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이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왜 그래?”

그의 말에 하시연이 슬쩍 현성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 그냥…괜찮나 해서요.”

“보다시피.”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시연이 그를 향해 걸어오며 다그치듯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죠? 거기다 방금 전 공격은 도대체….”

그녀가 말끝을 흐리며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확실히 데일런트와 싸우는 광경을 직접 본 그녀 입장에서는 걱정할만했다.

거기다 전에 말했듯이 시연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 다치는 것.

만약 현성 그가 이번 전투에서 죽었으면 시연은 그를 구해내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자신을 채찍질할 게 분명했다.

현성 역시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작게 웃으며 그녀를 어깨를 토닥였다.

“보다시피 괜찮아. 아, 그리고 이거.”

그러면서 현성이 한 손에 들고 있던 검은 검을 시연에게 건넸다.

이는 다름 아닌 시연의 검.

그동안 줄곧 시연의 검으로 싸웠으니 이제는 돌려줄 때였다.

그러자 그녀가 얼떨떨하게 검을 받아든 채, 빤히 현성을 바라보았다.

“….”

“됐지?”

“아, 아니 이게 아니라…!”

시연은 뭔가 그에게 물어볼게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현성은 설레설레 손을 휘저으며 폭풍에 날아간 벤치를 향해 걸어갔다.

“이걸로 여기는 안전할거야. 이제 다른 몬스터는 등장하지 않을 테고 아무런 문제없을 거야. 그러니까 안심해도 좋아.”

그대로 현성이 벤치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말에 시연이 검을 꾹 쥐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아니 제가 물어보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 방금 전 공격을 받아친 것도 그렇고, 그 전에도 공격패턴을 전부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잖아요. 그건 그 쪽도 알고 있다시피 보통 사람, 아니 웬만한 현역 능력자들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

그런 시연의 말에 현성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그를 이해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데일런트를 막아냈다.

아마 주변에 사상자가 없던 것 역시 그 덕택일 것이었다.

거기다 마지막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데일런트를 막아내던 그의 모습.

그 모습은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가 없었다면 그녀 혼자 데일런트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가 없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테고, 자신은 그런 위험을 막아내지 못한 걸 자책하고 자책했을 것이다.

아무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는 세계.

시연만의 정의를 지키기에는 지금의 그녀는 너무 약하고 작은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현성 그가 더욱 대단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몸을 던졌으니.

‘그런데 난….’

그런 그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실례일지도 모른다.

이에 그녀가 머뭇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알고 있어요. 말하기 싫을 수도 있다는 거. 그렇다면 이거 하나라도 알려주세요.”

그대로 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 이름이 뭐죠?”

“….”

하지만 이번에도 현성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러자 시연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웅얼거렸다.

“그, 그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않아요?”

그러면서 시연이 벤치에 앉아있던 현성을 바라본 순간.

시연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멈칫.

일말의 미동도 없는 저 자세.

아무런 대답도 없는 입.

그리고 무엇보다 굳게 감긴 두 눈.

“…설마 그대로 잠든 거야?”

시연은 어이없는 눈으로 벤치에 뻗어 잠든 현성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흙투성이가 된 옷과 상처가 가득한 그의 몸을 발견했다.

“….”

그대로 시연이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하긴 자신마저 그토록 지쳤는데 그 역시 지친 게 당연했다.

게다가 마지막 그 공격까지.

“그럴만하지….”

그러면서 시연이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그리고 잠시 뒤.

누군가 통화를 받았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곧바로 스마트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시연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응. 괜찮아. 위험요소는 전부 처리했고, 다행히 사상자는 없어.”

[저, 정말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곧 지원 병력이 도착할겁니다. 혹시 더 필요한건 없으십니까?]

“더 필요한 거라….”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시연이 벤치에 잠든 현성을 지그시 바라보고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럼 구급차 한 대만 불러줄래?”

[네? 아, 알겠습니다!]

그대로 통화가 종료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에 시연이 현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결국 이름은 못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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