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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5화 (5/240)

005화 튜토리얼이라며! 튜토리얼이라며!(4)

“기사단?”

기사단이라는 말에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의 고개와는 달리 현성의 눈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곧 현성이 조소를 띠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아, 레드후드 기사단 말이지?”

레드후드 기사단.

<이스페리아>의 설정 상 과거에 존재했던 왕실 기사단으로 특히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유명했던 기사단이었다.

그리고 데일런트 역시 과거 레드후드 기사단 소속의 기사였다.

하지만 이어진 왕실의 부패로 결국 기사단 내에서도 지금의 왕실을 반대하는 세력과 끝까지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세력이 부딪히게 되었고.

‘…그 결과는 반대파의 승리.’

이로 인해 왕을 지키는 기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의 손으로 왕을 죽이게 되었다.

그 후 많은 기사들이 회의감을 느껴 기사를 그만두고, 남은 기사들 역시 다른 기사들과 계속해서 마찰을 빚은 결과.

그 끝에 가서는 결국 왕실 기사단은 그대로 해산.

그 중에서 데일런트는 반대파에 섰던 기사로 지금은 마족의 회유에 넘어가 여기저기서 살육을 자행하고 있는 캐릭터였다.

물론 현성 역시 이를 알고 있었기에 그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니 입에서 기사단이라는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네?”

그대로 현성이 그를 향해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왕을 죽인 기사주제에 아직도 그 이름을 입에 담다니. 양심도 없나?”

그리고 그것도 잠시.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하긴 이미 대의를 잃은 주제에 양심 하나 없는 건 이상하지도 않겠군.”

-움찔!

그런 현성의 말에 데일런트가 눈에 띌 정도로 크게 동요했다.

그 이야기는 오직 기사단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며, 동시에 반대파였던 데일런트의 가장 큰 역린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런 역린을 감추기 위해, 그때 기억을 잊어버리기 위해 일부러 살육을 즐기며 망나니같이 행동해왔다.

허나 지금 그 역린이 드러났다.

-으드득!

데일런트가 분노에 온 몸을 떨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감히 네놈 따위가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때는…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그, 그래! 그때는….”

“그게 아니지.”

현성이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저 비겁한 변명일 뿐.”

“….”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현성의 말에 데일런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계속해서 작게 떨리고 있었다.

가장 들키기 싫은 과거가 드러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분노에 차 있기 때문일까.

그런 데일런트의 떨림은 한참동안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꾸구국.

마침내 데일런트의 떨림이 멎었다.

동시에 그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주변의 공기마저 변하고 있었다.

데일런트의 몸 주의로 부는 바람.

바람은 점점 거세졌으며, 돌풍으로 변한 바람은 스산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주변을 울리고 있었다.

-고오오오.

그대로 데일런트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으며 읊조렸다.

“…생각이 바뀌었다.”

이에 현성이 크게 심호흡을 하며 들고 있던 검을 꾹 움켜쥐었다.

[기사단]이라는 키워드.

그리고 데일런트의 주변으로 몰아치는 돌풍.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했다.

‘2페이즈의 시작…!’

무엇보다 2페이즈에 들어섰다는 뜻은 곧 그만큼 난이도가 올라갔다는 뜻이기도 했다.

현성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패턴을 외워 1페이즈를 넘긴다한들, 진짜 문제는 2페이즈.

실제로 현성 그가 980번의 족같은, 아니 지옥 같은 트라이 회수의 원인은 바로 2페이즈에 있었다.

그대로 현성이 시연을 향해 중얼거렸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집중해.”

곧이어 현성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데일런트가 돌풍을 일으키며 돌진했다.

“그 무엇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찢어 죽여주마!”

“온다!”

현성의 외침과 함께 지축을 울리는 돌풍이 그와 시연을 덮쳤다.

-콰가가가각!

그 충격에 온갖 표지판과 바리게이트가 날아가며 주변을 휩쓸었다.

이에 현성 역시 검을 들어 최대한 막아보려 했지만, 그의 보잘것없는 스텟으로는 역부족.

결국 현성은 돌풍에 휩쓸려 저 멀리 날아갔다.

-콰아아앙!

돌풍에 날아가던 현성의 머리를 타고 커다란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느껴지는 고통.

아무래도 날아가던 중 표지판에 머리가 부딪힌 모양이었다.

“크윽!”

덕분에 순간 시야가 흐려지며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때였다.

하시연이 돌풍에 날아간 그를 발견하고 재빨리 달려갔다.

“…안 돼!”

그 와중에도 몰아치는 바람이 그녀를 방해했지만, 평균스텟 10~15를 자랑하는 그녀는 평균스텟 3따리인 현성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그대로 현성을 향해 달려간 시연이 날아다니는 바리게이트를 밟고 도약했다.

-파앗!

시연이 날아가는 현성을 낚아채고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그 결과. 현성은 흔히 말하는 공주님 안기포즈로 그녀의 품에 안겨있었다.

곧바로 시연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다친 데는?”

그녀가 걱정스러운 듯 현성의 몸을 살폈다.

하시연이라는 캐릭터는 그랬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고 도도하기 그지없지만, 그 속은 겉모습과 사뭇 달랐다.

특히 어릴 적 사고로 인한 충격 때문일까.

시연은 다른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더 나아가 그녀의 힘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 했다.

이게 바로 그녀가 아카데미에 들어온 목적일 정도로 시연은 자신만의 정의가 뚜렷했다.

하지만 시연의 정의가 너무 뚜렷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으며, 따돌림까지 당할 정도였다.

때문에 시연은 사람을 싫어하게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을 좋아했다.

아무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는 세계.

그것이 바로 그녀의 정의이자, 소망이었다.

“…움직일 수 있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시연은 안절부절 못하며 불안해보였다.

혹여나 그가 크게 다친 게 아닐지.

그게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시연의 몸이 작게 떨렸다.

무서웠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다치는 게 무서웠다.

그리고 현성이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덥썩.

현성이 시연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미소 지었다.

“하시연. 난 괜찮아.”

“….”

맞잡은 두 손을 따라 전해지는 따뜻한 체온.

이에 놀랍게도 시연의 떨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를 진정시킨 현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좀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흐잇!?”

현성의 말에 깜짝 놀란 시연이 그대로 들고 있던 손을 확 놔버렸다.

덕분에 현성은 외마디비명을 남기며 떨어졌다.

“흐어억!!”

그리고 잠시 뒤.

현성이 비틀거리며 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났다.

다행히 표지판에 맞은 것치고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죽여주마…. 기필코…!”

그것은 바로 2페이즈에 들어간 데일런트.

아직 그를 끝내지 못했다.

하시연이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기는 하지.”

방법? 물론 있다.

허나 그 방법을 위해서는 약간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대로 현성이 시연을 향해 말했다.

“대신 조금만 시간을 벌어줘.”

“시간이요?”

“응, 공격패턴은 전처럼 내가 알려 줄 테니까 넌 최대한 데일런트에게 상처를 입혀줘.”

“하지만….”

“알아. 힘든 거. 그래도 내가 알려줄 테니까 충분히 할 만할 거야.”

현성의 말에 시연이 작게 심호흡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현성이 공격한다고 한들 별 효과도 없다.

아니 공격이 닿기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단시간 내에 시연이 공격을 하고 피해를 입히는 게 나았다.

오더는 현성이, 공격은 시연이.

이것이 지금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최고의 포지션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데일런트가 돌풍을 일으키며 창을 휘둘렀다.

“전부 찢어주마!”

이에 현성이 눈을 부릅뜨며 오더했다.

“왼쪽으로 피하면서 중앙에 생기는 소용돌이는 막아!”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은 마치 커다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모든 것이 찢겨져있었다.

그 사이에서 서있는 것은 시연과 현성, 그리고 데일런트 뿐.

“하아…하아….”

시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검을 쥐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손은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녀 역시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아무리 현성의 오더에 따라 움직였다고 한들 2페이즈에 들어간 데일런트의 모든 공격을 막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한 번, 두 번씩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지금 보는 대로.

참치 샌드위치는 진즉에 떨어졌다.

이제는 체력을 회복할 수단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시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언제까지…. 하아…. 계속해야 하나요?”

시연의 말에 현성이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이제 금방이야.”

그의 계산대로라면 이제 공략이 머지않았다.

지금 상황에 필요한 건 단 한 번의 클린히트.

이제 승부수를 던질 때가 왔다.

잠시 뒤.

줄곧 시연의 뒤에 있던 현성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잘 들어. 하시연.”

현성이 뭔가 결심한 듯 검을 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난 곧바로 데일런트에게 달려 나간다. 그럼 그는 무조건 나에게 관심이 쏠릴 거야. 그러면 넌 그 틈을 노려.”

“…네?”

“알겠지? 믿는다.”

곧바로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쳐나갔다.

-파앗!

그런 현성을 발견한 데일런트가 코웃음을 치며 창을 고쳐 잡았다.

“흥! 이제 별다른 방법이 없나보지?”

“직접 확인해 봐!”

“오냐! 그렇게 죽고 싶다면 죽여주마!”

데일런트가 현성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퍼어엉!!

동시에 공기가 폭발하며 돌풍이 그를 향해 쏘아졌다.

제대로 맞으면 죽는다!

현성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몸을 비틀어서 그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투에 지쳤기 때문일까.

패턴이 헷갈렸기 때문일까.

그의 몸은 한 박자 늦고 말았다.

-피잇!

데일런트의 돌풍이 현성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대로 현성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더니.

털썩! 그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하하! 꼴좋구나!”

데일런트가 그런 현성의 꼴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어젖혔다.

그리고 그가 마저 창을 휘두르려던 찰나.

현성 그가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 너라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바닥에 고꾸라진 것은 어디까지나 연기.

현성은 일부러 이런 상황을 연출했다.

전투에 지쳐? 패턴을 헷갈려?

애초에 그 정도로 흔들릴 거였으면 진즉에 죽고도 남았다.

지금까지 그렇게 어그로를 끌어뒀으니 공격에 당하는 척만 해도 데일런트는 눈이 돌아가 현성을 향해 달려들 터.

실제로 이때다 싶어 현성을 향해 달려든 데일런트.

그가 노린 건 바로 이 틈이었다.

동시에 현성이 있는 힘껏 소리쳤다.

“하시연!”

그러자 하시연이 총알같이 튀어나오며 빠른 속도로 데일런트를 향해 달려갔다.

마지막 기운을 짜낸 그녀의 속도는 폭발적이었으며, 눈 깜짝할 사이 데일런트에게 도달한 그녀가 검을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데일런트는 그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검을 피했다.

전장에서 단련된 기사의 감이었다.

이에 시연이 미간을 좁혔다.

“…?!”

검 끝에 감각이 없었다.

애석하게도 마지막 공격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결국 이대로 실패할 수밖에 없던 걸까.

‘이번에도 난….’

절망, 분함, 아쉬움.

시연의 검 끝을 타고 수많은 감정이 뒤섞였다.

그때였다.

“잘했어. 하시연.”

현성의 나지막한 목소리.

동시에 그가 쏜살같이 일어나 데일런트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런 현성의 검이 데일런트의 복부를 갈랐다.

-촤아악!

아무리 데일런트 그라고 해도 시연의 공격 직후 날아오는 기습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설령 그게 평균 스텟 3의 보잘 것 없는 공격이라도 말이다.

이에 현성의 눈앞에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의 피가 30%남았습니다.]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가 광폭화 상태에 돌입합니다.]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가 ‘폭풍의 창’을 준비합니다.]

그 메시지를 발견한 현성이 히죽 웃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타이밍이 왔다.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 그에게는 특별한 기믹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피가 30%까지 깎이면 광폭화가 발동하고, 그에 따라 과거 <폭풍의 기사>라 불리던 그의 필살기 ‘폭풍의 창’을 시전 한다는 것.

그리고 처음 <이스페리아>를 시작한 뉴비는 절대 이 스킬을 맞고 살아있을 수 없다.

‘…처음 <이스페리아>를 시작했다면 말이지.’

하지만 <이스페리아> 2회차라면 말이 달랐다.

후반부에 기사단 에피소드를 진행하며 밝혀지는 사실.

‘폭풍의 창’은 반격할 수 있다.

물론 그 타이밍이 더럽기로 유명하지만, 반격할 수 있다.

이것이 이진성 그가 980번의 트라이 끝에 데일런트를 쓰러트릴 수 있었던 이유이자.

동시에 그가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이걸로 마지막이다…!”

데일런트의 검은 창끝을 타고 매서운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돌풍은 멈출 줄 모르고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갔고,

마침내 그가 창을 내질렀다.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가 ‘폭풍의 창’을 시전합니다.]

그와 함께 지금껏 본 공격 중 가장 크고, 강력한 폭풍 그 자체가 현성을 향해 쏘아졌다.

“죽어라!”

쏘아지는 폭풍.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

이미 한계가 찾아온 육체.

그 사이에서 현성은 머리를 비웠다.

모든 생각을 지웠다.

그게 바로 980번의 트라이 끝에 현성이 배운 것이었다.

‘무념무상(無念無想)’

완벽한 반격 타이밍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계산이 아니었다.

0.1초의 타이밍이라도 빗나가면 반격은 실패한다.

상식적으로 이를 계산하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믿을 것은 오로지 980번의 경험 끝에 새겨진 육체의 감이 전부였다.

검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폭풍을 바라보는 눈을 믿는다.

-스으으으.

현성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검을 들었다.

그리고 폭풍이 그의 몸을 집어삼키기 직전.

순간 그의 검 끝이 흔들리더니, 현성이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사아악.

일검(一劍).

마치 장인이 한 획을 긋듯이, 그의 검로(劍路)는 유려했으며 동시에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0.1초의 기적.

그리고 전 서버 최초로 데일런트 공략에 성공한 그 날.

그때 펼쳐졌던 반격기가 지금 이 순간.

유현성의 손끝을 따라 펼쳐졌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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