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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4화 (4/240)

004화 튜토리얼이라며! 튜토리얼이라며!(3)

그런 현성의 모습을 보고 데일런트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확실히 내 공격을 피한 그 센스만큼은 인정해주지. 그런데….”

그가 검은 창을 겨누고 현성과 시연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하 가문 하나가 끼어들었다고 한들 진심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데일런트의 말에 시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데일런트를 향해 눈을 내리깔며 차갑게 말했다.

“…그쪽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크핫! 그래. 쉽지는 않겠지.”

데일런트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대로 그가 창을 고쳐 잡으며 중얼거렸다.

“허나 단지 그뿐. 조금 귀찮긴 하겠지만 내가 질리는 없다. 그것하나만큼은 단언하지. 거기다….”

그가 검을 들고 있는 현성을 향해 고갯짓하며 덧붙였다.

“다른 녀석이라면 모를까. 저 녀석을 끼고 싸운다면 오히려 네년이 더 불리할 텐데?”

“그건….”

데일런트의 허를 찌르는 말에 시연의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그녀가 조용히 검을 들고 있는 현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들었죠? 혹여나 도움이 될까 싶었다면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런 시연의 말에 현성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해한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만하다.

주인공이라면 모를까.

웬 일반인보다 못한 놈이 맞서 싸운다고 하면 기가 찰만하다.

허나 데일런트는 물론 하시연, 그녀마저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그가 <이스페리아>의 고인물이자, 모든 공략법을 알고 있다는 것.

“글쎄? 의외로 꽤 도움될 걸?”

“….”

현성의 말에 다시 한 번 시연의 눈이 꿈틀거렸다.

아마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시연의 성격이라면 지금쯤 알게 모르게 짜증을 낼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역시 현성의 예상대로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괜한 객기 부르지 말고 그냥….”

그때였다.

그녀의 말을 예상하고 있던 현성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어차피 너 혼자서 못 이기잖아.”

-움찔.

현성의 말에 시연이 살짝 자존심이 상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누가 누굴 보고….”

“그러니까 그냥 도와준다고 할 때 곱게 받아. 지금은 혼자 다니는 게 편할지 몰라도 나중에 가면 힘들어진다?”

“당신이 뭘 안다고…!”

하시연이 발끈하자, 현성은 그녀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데일런트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처억.

그대로 현성이 고개를 까닥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뭐? 내가 끼면 불리하다고?”

“…딱히 틀린 말은 아닐 텐데?”

“틀린 말이 아니기는 개뿔.”

현성이 데일런트를 향해 입 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했다.

“공격 한 대도 못 맞췄으면서 허세는 허세대로 부리기는. 그래서 한 대는 때려보셨나?”

명백한 도발.

거기다가 비아냥거리는 말투와 조소까지.

그의 도발에 곧바로 데일런트가 반응했다.

-꿈틀!

데일런트가 현성을 째려보았다.

“감히 애새끼주제에…!”

그의 말에 현성이 태연하게 귀를 후비며 말했다.

“응, 못 맞췄죠?”

그리고 현성과 데일런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시연이 눈매를 좁히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데일런트의 공격을 한 대도 맞지 않았다니.

겨우 일반인, 아니 일반인보다 병약해 보이는 그가?

그렇다고 데일런트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가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도 않았다.

거기다 자신이 도망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저 당당한 태도.

시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에 그녀가 현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혹시…정말로 강한 자라면….’

사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 혼자만으로는 데일런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선천강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사람들을 먼저 대피시키고,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만 버틴다면 추가적인 피해는 없을 터.

즉 그녀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데일런트를 이기는 것이 아닌 ‘데일런트 저지’였다.

그런 시연의 입장에서 만약 눈앞의 그가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전력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라면?

‘…거부할 이유는 없어.’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데일런트가 들고 있던 창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좋다. 그렇게 나온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마. 특히 네놈.”

그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널 절대 곱게 죽이지는 않겠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데일런트의 신형이 총알처럼 쏘아졌다.

이에 현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시연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시연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둘을 번갈아보았다.

“뭐, 뭐야. 근데 왜 이쪽으로…!”

그런 시연의 말에 현성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그럼 서포트는 제대로 해줄 테니까…”

그가 창을 휘두르는 데일런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공격은 대신 막아줘! 부탁한다!”

“다, 당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데일런트의 창과 하시연의 검이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앙!

방금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푸른 검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연의 옆에 펼쳐져있는 수십 개의 검.

수십 개의 검들은 저마다 공중의 검집에 보관된 채, 그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오, 이걸 막아?”

데일런트가 흥미로운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렇다면 계속해서 막아봐라!”

그가 손아귀에 힘을 주며 강제로 창을 찔러들었다.

그러자 시연은 부드럽게 데일런트의 창을 흘림과 동시에 공중의 검집에서 다른 검을 꺼내 공격을 막아냈다.

-끼기긱…채앵!

또 다시 그의 공격이 막혔다.

이에 잠시 당황한 듯 데일런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공격.

-쉬이익…서걱!

섬광과도 같은 쾌검.

동시에 데일런트의 뺨을 타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대로 하시연은 양손에 각각 검을 든 채, 데일런트를 향해 말했다.

“겨우 이 정도인가요?”

현성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저게 바로 하시연만의 전투방식.’

그동안 게임에서는 자주 봐왔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더욱 대단하였다.

하시연, 검술명가 하 가문의 딸인 만큼 상당히 유명했지만, 그녀가 유명한 이유는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하시연 특유의 화려한 전투방식.

그녀는 가문도 가문이지만 평소에도 수십 개의 검을 들고 다니며, 이를 상황에 맞게 사용하는 특이한 검술을 구사했다.

이는 각 검의 특징과 사용법을 모두 익히지 않는 한, 보통의 검사들은 불가능한 검술.

하지만 하시연은 이걸 가능케 했다.

‘……검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그걸 뒷받침해주는 천부적인 재능.’

작 중 주인공 ‘유진’ 역시 검을 썼지만, 단순히 재능만 두고 본다면 시연은 그야말로 세기의 천재였다.

물론 결과만 두고 본다면 검성이 되는 것은 유진이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주인공 보정이 들어간 어쩔 수 없는 결과.

만약 유진이라는 존재만 없었다면 검성의 칭호를 다는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차지일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현성의 눈앞에서.

세기의 천재라 불리는 그녀의 검격이 펼쳐지고 있었다.

-콰아앙! 끼기긱…채앵! 콰앙!

데일런트의 창과 시연의 검이 섞일 때마다 폭음과 살벌한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공방을 주고받는 창과 검의 싸움은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치열했다.

이에 시연의 등 뒤에서 그 모습을 직관하고 있던 현성이 감탄했다.

‘…이게 바로 메인 등장인물의 위엄인가.’

역시 스텟 중 5를 넘어가는 게 없는 쓰레기 같은 육체와는 달랐다.

현재 게임의 진행도를 생각해본다면 하시연의 스텟은 못해도 평균 10~15.

평균 3따리인 누구와는 격이 다른 전투였다.

‘나도 평균 6만 됐어도 공격 두세 번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갈 길이 멀었다.

아무튼 스텟이야 나중에 올리면 되고, 지금은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었다.

현성이 창을 휘두르는 데일런트를 보고 재빨리 시연에게 말했다.

“야! 오른쪽으로 들어온다!”

“이 개자식이…!”

현성의 경고에 데일런트가 이를 갈며 공격을 날리고, 그때마다 현성은 그의 공격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 이번에는 왼쪽! 또 왼쪽! 오른쪽!”

“크으윽, 이 쥐새끼 같은 자식이!! 정정당당하게…!”

“응, 안 들려.”

시연의 등 뒤에 바짝 숨은 채 계속해서 공격방향을 알려주는 얄미운 현성.

결국 이에 격분한 데일런트가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속도로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부웅! 붕붕! 부우우웅!!

그의 주변으로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음과 함께 매서운 공격이 전부 하시연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그런 시연의 등 뒤에는 현성이 있었다.

동시에 현성은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속사포 같이 지시를 쏟아냈다.

“야. 제대로 들어라. 왼왼오오왼 왼왼오오오 왼왼오왼왼! 마지막은 중단!”

“크읏! 조, 조금만 천천히…!”

다행히 시연은 완벽하게 현성의 지시를 따르며 기어코 데일런트의 모든 공격을 받아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린 데일런트의 회심의 찌르기마저 빗나갔다.

-피이잇!

모든 공격이 허공으로 돌아갔다.

“이런 우라질! 왜, 왜 안 맞는 거야!”

* * * * *

그 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전투가 길어질수록, 데일런트는 계속해서 둘을 공격했지만 오히려 상처가 늘어가는 것은 다름 아닌 그였다.

심지어 나중에 가서는 등 뒤에 있던 현성마저 그의 공격을 피하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서걱!

현성의 검이 데일런트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에 현성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데일런트 별 거 아니네!”

“저 개새…!”

물론 평균 스텟 3따리인 현성이 공격해봤자 데일런트에 들어가는 데미지는 고작 3에서 기껏해야 5.

하지만 이어지는 시연의 공격은 달랐다.

-촤아악!!

그녀의 검이 정확히 그의 팔을 가르며,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결국 데일런트가 미간을 구기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현성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인벤토리에서 참치 샌드위치를 꺼내 시연과 나눠먹기 시작했다.

“야. 회복타임이다.”

“…그래요.”

그리고 사이좋게 샌드위치를 나눠먹는 둘을 보고 있는 데일런트는 그야말로 이가 갈리다 못해 박살날 지경이었다.

-까드득!

“저 망할 연놈들이….”

아무리 적은 데미지라 할지라도 싸움을 계속한지 못해도 1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점점 데일런트의 피는 깎여가고 있었다.

거기다 가랑비 사이에 하시연이라는 날카로운 송곳까지 섞여있었다.

그새 샌드위치를 다 먹은 현성이 뒤로 물러난 데일런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대로라면 이제 슬슬 2페이즈로 넘어갈 시간인데….’

2페이즈의 조건은 데일런트의 피를 50% 이상 깎을 것.

물론 현성 혼자라면 불가능했다.

3씩 박히는 데미지로 언제 데일런트를 쓰러트리는가.

허나 하시연과 함께라면 말이 달랐다.

대충 현재 시연의 스텟을 고려해봤을 때 그녀의 공격은 못해도 100에서 치명이 터지면 180정도 들어갈 터.

무려 30배가 넘어간다.

그만큼 시간은 단축되고 그의 목표도 머지않았다.

그리고 회복을 마친 현성과 시연이 다시 자세를 다잡은 순간.

“…하나만 물어보자.”

데일런트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는 창을 부여잡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현성을 바라보았다.

“너. 도대체 어떻게 내 모든 공격을 알고 있는 거지?”

“….”

이에 현성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글쎄. 내가 그것만 알고 있을까?”

현성이 알고 있는 것은 단순히 그의 공격패턴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데일런트가 입고 있는 아이템과 스킬.

더 나아가 배경설정까지.

현성은 그의 모든 걸 알고 있었다.

허나 이를 알 턱이 없는 데일런트가 실소를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역시…그래. 그거 말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지….”

그대로 데일런트가 주먹을 꽉 움켜쥐며 현성을 째려보았다.

“네놈. 기사단과 연관 있구나.”

그렇게 말하는 데일런트에게서는 지금껏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증오와 분노가 느껴졌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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