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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3화 (3/240)

003화 튜토리얼이라며! 튜토리얼이라며!(2)

-부웅!!

데일런트의 창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뒤에 있던 나무가 박살났다.

-콰자자작!

현성은 박살난 나무와 데일런트를 번갈아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방금 전 공격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죽는다. 한 대만 맞아도 무조건 죽는다.’

그전에는 다행히(?) 날아갔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맞는다면 곧바로 사망.

주인공 ‘유진’이라면 모르겠지만, 삼류 악당 ‘유현성’이라면 죽는 건 무조건 확정이었다.

아니 애초에 주인공 유진이라고 할지라도 데일런트를 상대로 이기는 건 말도 안 된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데일런트는 잡지 말라고 만든 몬스터니까.’

튜토리얼은 그저 전투조작과 간단한 팁을 알려주는 게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일런트는 처음 주인공의 스텟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튜토리얼은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그건 또 아니었다.

‘이번 튜토리얼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는 총 4명.’

우선 첫 번째 주인공의 여동생 유하린.

두 번째는 현성의 눈앞에 있는 데일런트.

세 번째는 주인공 유진.

허나 현성이 유하린을 구해내면서 시스템 상 유진의 등장은 잠시 뒤로 미뤄진다.

즉 이 타이밍에서 유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에 따라 여기서 등장하는 마지막은 바로 <이스페리아>의 히로인, ‘하시연’.

‘하시연. 검술명가 하 가문의 딸로 아카데미 입학 전부터 두각을 드러냈으며, 아카데미 입학 후로는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캐릭터.’

그녀가 바로 이번 튜토리얼의 돌파구였다.

그대로 현성이 옆에 떠있는 퀘스트 창을 바라보았다.

[튜토리얼 :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를 상대하라.]

퀘스트 내용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와 맞서 싸우시오.(진행 중)

*본 퀘스트는 실패 시 사망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튜토리얼의 돌파구는 ‘하시연’.

이에 따라 퀘스트 내용 역시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와 맞서 싸우는 게 아니었다.

좀 더 정확히는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를 상대로 ‘10분간 버티는’ 것.

‘이런 걸 숨겨두다니 미친 개발사.’

정말 다시 생각해도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까짓 거 그냥 처음부터 10분 동안 버티라고 적어두면 되는 걸 이렇게 숨겨두다니.

덕분에 처음 <이스페리아>를 플레이하는 뉴비들은 멋모르고 데일런트와 맞서 싸우다가 역으로 끔살당하기 마련이었다.

이는 맨 처음 이스페리아를 플레이하던 현성도 마찬가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현성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 상황에서 현성이 해야 할 행동은 무슨 수를 써서든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이 자식, 이번에는 맞춘다!”

현성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한 번 데일런트가 창을 내질렀다.

동시에 현성이 반사적으로 냅다 몸을 내던졌다.

-퍼어어엉!

단순히 창을 휘두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땅이 움푹 파이며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방금 전만 해도 현성이 서있던 곳에는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현성이 그 위력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어.”

만약 저 창에 한 번이라도 맞으면 터지는 것은 땅이 아니라 그의 머리통이 될 터.

애초에 주인공의 스텟으로도 10분간 공격을 막는 게 전부다.

하물며 현성은 스텟 중 5를 넘어가는 게 단 하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스텟의 소유자.

상식적으로 데일런트의 공격을 받아치는 건 상상도 못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했다.

무조건!

*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던 선천강은 이미 쑥대밭이 된 지 오래였다.

크레이터를 연상케 하는 바닥과 사방에 쓰러진 나무와 콘크리트 파편들.

그야말로 폐허 혹은 전쟁터.

그리고 그 사이.

필사적으로 공격을 피하는 현성이 있었다.

“으아아아! 이번에는 기필코 죽여주마!”

“야랄 멈춰!”

이번에도 한 끝 차이로 데일런트의 공격이 빗나갔다.

이에 결국 참다못한 그가 마구잡이로 창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망할, 도대체 왜 안 맞는 거야!”

그런 데일런트의 외침에 현성이 피식 웃었다.

앞서 말했듯이 그의 스텟은 5가 넘어가는 게 없는 쓰레기 같은 육체의 소유자.

상식적으로는 지금쯤 현성은 데일런트의 공격에 당해 흙으로 돌아가야 함이 맞았다.

허나 데일런트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여기를 수백 번 넘게 트라이 했는데 니 패턴 하나를 모르겠냐?’

눈앞에 있는 그가 <이스페리아>의 고인물 중의 고인물, 썩은 물 그 자체라는 것.

물론 삼류 악당 ‘유현성’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삼류 악당 유현성의 몸에 빙의한 ‘이진성’이라면 가능했다.

그가 히든 업적을 깨겠답시고 트라이한 횟수만 해도 무려 980번.

그동안 데일런트의 공격패턴을 질리게 봐온 만큼.

현성이 그 패턴을 외우는 것 정도는 당연했다.

“네놈, 팔 하나만 주면 내 특별히 안 아프게 죽여주마!”

데일런트가 광기어린 대사를 외치며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전방돌진패턴. 그렇다면 그 다음은 오른쪽 상단 찌르기!

이에 현성이 왼쪽으로 몸을 틀며 중지를 치켜 올렸다.

“개소리 집어치워!”

-슉!

데일런트의 창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또 피했다!

하지만 정작 공격을 피한 현성의 얼굴은 이미 파랗게 질려있었다.

“허억…허억….”

공격패턴을 외운 것까지는 좋았다.

허나 스텟은 어쩔 수 없는 법.

벌써부터 쓰레기 같은 육체에 한계가 찾아왔다.

“빌어먹을 체력 3 같으니라고. 하다못해 6 아니 5만 됐어도….”

현성이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게다가 시간은 왜 이리 안 가는지 하시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체감 상 10분은 훌쩍 넘은 거 같은데.

‘설마 시간도 바뀐 거 아니야?’

혹시나 싶어 현성이 시계탑을 바라봤지만 시계는 야속하게도 이제야 9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젠장. 거지같은 시계탑….’

시계는 정확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버텨야할 시간은 1분.

과연 그때까지 몸이 버텨줄지 의문이었다.

‘…결국 시계탑을 쓸 수밖에 없나.’

현성이 시계탑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전에 말했듯이 <이스페리아>에서 시계탑은 단순한 시계탑이 아니었다.

시계탑은 일종의 세이브 포인트.

즉 시계탑에 저장만 한다면 다시 돌아온다.

원래대로라면 그럴 터였다.

그러나 위험성이 너무 컸다.

‘…만약 죽었는데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럼 현성은 그대로 사망.

그렇게 잠시 고심하던 그가 뭔가 다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이곳이 현성이 알고 있던 게임 그 자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좋아, 시도해보자…!”

그와 동시에 데일런트가 도약했다.

저 패턴은 내려찍기.

그럼 현성이 취해야 할 행동은 최소 3m반경 밖으로 벗어날 것.

이에 데일런트의 창이 바닥을 내려찍은 순간.

현성이 재빨리 몸을 던졌다.

덕분에 그의 발끝이 아슬아슬하게 3m밖으로 벗어났다.

“됐다…!”

현성이 주먹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일런트의 공격을 피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시계탑은 그러지 못했다.

“어. 잠깐만.”

-콰아아아앙!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땅이 폭발하며 서있던 시계탑이 와르르 무너졌다.

동시에 이를 발견한 현성의 억장이 같이 무너졌다.

그런 그의 입을 타고 거친 치찰음이 삐져나왔다.

“쒸…뻘…!”

시계탑이, 세이브 포인트가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이에 데일런트가 별 대수롭지 않게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쥐새끼같이 잘도 피하는 군.”

그런 데일런트의 말에 현성이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내 시계탑 돌려내….”

허나 그런다고 박살난 시계탑이 돌아올 리는 없는 법.

그렇다면 결국 남은 방법은 단 하나 뿐이었다.

10분까지 버티기.

불행 중 다행히도 이제 남은 시간은 대충 30초 남짓.

현성이 크게 심호흡을 하며 주먹을 꾹 쥐었다.

어떻게든 30초만 끌어보자.

-꾸욱!

그대로 현성이 데일런트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했다.

“…뭐해. 안 오고?”

그러자 데일런트가 창을 붕붕 휘두르며 달려왔다.

“좋다. 안 그래도 당장 그 머리통을 날려주마!”

그가 있는 힘껏 창을 내질렀다.

그에 맞춰 현성이 데일런트의 첫 번째 공격을 피하는데 5초.

두 번째 공격을 피하는데 10초.

세 번째 공격을 피하는데 15초.

-콰아앙! 콰앙, 콰아아앙!!

폭발음이 늘어갈수록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30초가 된 순간.

데일런트의 창이 현성의 턱 밑까지 쇄도했다.

“죽어라!”

그때였다.

-쉬이이익…채애앵!

어디선가 날아온 검이 데일런트의 창을 쳐내고 바닥에 박혔다.

이에 데일런트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대로 현성과 데일런트가 바닥에 박힌 검을 바라보았다.

검은 검신.

무엇보다 폼멜 부분에 달려있는 장식.

그 장식은 분명 하 가문의 표식이었다.

“어떤 망할…. 잠깐. 하 가문의 표식? 그렇다면…?!”

이를 발견한 데일런트가 미간을 구기며 검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거기까지입니다.”

허리까지 오는 긴 흑발.

거기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

한 눈에 봐도 시리도록 차가운 인상을 가진 한 소녀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검은색과 빨간 체크무늬가 어우러진 교복.

아카데미의 교복이었다.

동시에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하시연.”

“하시연!”

상반된 두 반응이 터져 나왔다.

물론 뒤늦게 말한 쪽이 현성.

드디어 하시연이 왔다.

* * * * *

-스으으.

하시연의 등장으로 단번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검술명가 하 가문의 딸. 하시연.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를 반증하듯 데일런트가 뒤로 물러선 채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하시연도 마찬가지.

“….”

데일런트를 경계하던 하시연이 흘깃 현성을 바라보았다.

곧 그녀가 그를 향해 짧게 말했다.

“당신. 지금이라도 도망쳐요.”

하시연의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현성이 기억하는 게임 속 그녀의 모습과 똑같았다.

긴 흑발과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

그리고 차갑기 그지없는 말투까지도 판박이였다.

거기다 눈앞에 떠오른 그녀의 상태창.

[이름 : 하시연]

성별 : 여성

나이 : 17

종족 : 인간

클래스 : 검사

업적 : [하 가문의 검], [검의 운명을 타고난], [검의 축복을 받은]

저 업적을 보라.

아무런 업적도 없던 누구누구와는 차원이 다른 업적이었다.

동시에 안심되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등장은 곧 튜토리얼 퀘스트가 끝났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튜토리얼 :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를 상대하라.]

퀘스트 내용

-망나니 기사 데일런트와 맞서 싸우시오.(완료)

*본 퀘스트는 실패 시 사망합니다.

실제로 현성이 퀘스트창을 펼치자 그곳에는 완료표시가 떠있었다.

그럼 이대로 데일런트는 하시연에게 맡기고 현성은 퇴장하면 끝.

그러나 이어진 현성의 행동은 전혀 예상 밖의 행동이었다.

-덥썩.

현성이 눈앞의 퀘스트 창을 무시하고 오히려 바닥에 박힌 하시연의 검을 뽑아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하시연은 물론 데일런트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뭘 그렇게 봐?”

현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의 손을 타고 [수연의 참치 샌드위치]가 딸려왔다.

현성은 그대로 참치 샌드위치를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히죽 웃었다.

“이제 2차전 시작해야지?”

[샌드위치의 효과로 체력이 일정량 회복됩니다.]

그와 함께 현성의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기존의 퀘스트 창과는 다른 금색의 퀘스트 창.

[히든 퀘스트 : 데일런트를 쓰러트려라!]

퀘스트 내용

-데일런트를 쓰러트리시오.(진행 중)

발생조건 : 하시연의 등장 이후. 도망치라는 제안을 거부.

*본 퀘스트는 실패 시 사망합니다.

그 내용을 확인한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린을 구해 배드엔딩의 초석도 막았겠다.

그 다음으로 노린 건 이거였다.

히든 퀘스트.

특정 조건을 달성했을 때만 나오는 숨겨진 퀘스트.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은 상상이상.

물론 그만큼 히든 퀘스트는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조건 역시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허나 현성은 <이스페리아>의 그 누구보다 이 조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히든 업적 깨겠다고 980번 동안 트라이한 게 바로 이 퀘스트였거든.’

현성이 히죽 웃으며 검을 고쳐 잡았다.

다시 생각해도 미친 업적이 아닐 수가 없었다.

잡지 말라고 설계해둔 보스몬스터를 잡아야만 얻을 수 있는 업적이라니.

하지만 개발사에서는 보란 듯이 이 미친 업적을 넣어뒀고, 의지의 한국인인 현성은 그걸 또 보란 듯이 깼다.

그것도 무려 980번의 트라이 끝에.

그리고 지금 여기.

선천강 둔치에서,

그의 미친 기행이 다시 한 번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게임 속 삼류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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