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아랫니를 누르던 그의 손가락들은 어느새 욕망을 실어 그녀의 입안을 헤집고 있었다. 릴리는 도리질을 했다. 그만! 칼! 단호하게 외쳤지만 카르낙에 의해 뭉개져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이 되어 버렸다.
카르낙이 두 손으로 그녀의 볼을 감싸 쥐었다.
“릴리….”
저를 부르는 카르낙의 어조가 취한 듯 감미로웠다. 닿는 입가에 그의 숨결이 쏟아졌다. 달큼한 포도주 내음이 섞여 코끝까지 찡하게 만들었다. 카르낙은 숭배하듯 그녀의 뺨을 쓸고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에 걸어 주며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무너질 것 같았다. 카르낙의 음성에, 그의 숨결에, 그의 부드러운 손길에 하염없이 무너지고 말 것 같았다. 릴리는 구명줄을 붙잡듯 제 두 손을 포개어 꽉 말아 쥐었다. 카르낙은 그녀의 턱선을 따라 입술을 미끄러뜨렸다. 닿는 곳마다 향을 맡다가 그녀의 목덜미 깊이 제 얼굴을 묻었다. 둥, 둥, 맥동하는 곳에 입술을 붙이고 혀를 대고는 삼킬 듯 빨아들였다.
“칼.”
릴리가 몸을 비틀었다. 할 수 있는 저항은 그것이 다였다, 카르낙은 릴리의 목덜미를 빨며 치마 속 그녀의 보드라운 종아리를 움켜쥐어 보더니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지 다급한 손길로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칼! 시, 읍!”
그가 다시 입술을 겹쳐 왔다. 도리질을 치자 카르낙은 릴리의 뒷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힘을 주어 당기는 그의 손길에 ‘헉’ 소리와 함께 꼼짝없이 턱이 들렸다. 턱 끝에 카르낙의 이가 박혔다. 어느새 그의 손은 제 가랑이 사이를 파고든 채였다. 두려웠다.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이유로도 심장이 뛰었다. 무릎이 덜덜 떨리고 호흡이 가빠진 이유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카르낙의 이가 턱 끝을 긁어 댔다. 동시에 제 둔부 사이를 헤집은 그의 손가락이 뱀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각목같이 굴고 싶었다. 온몸을 뻣뻣하게 굳힌 채 아무런 반응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야 했다. 일말의 도덕이나 알량한 자존심이 있다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몸은 그렇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헐떡이며 허리를 들썩였다, 카르낙의 손길을 따라 몸이자꾸만 휘어졌다. 그의 손길에 아랫도리가 흠뻑 젖어 들었다. 그런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들었다. 발정이 난 짐승이 된 것만 같았다. 릴리는 간신히 한마디를 토해 냈다.
“그만!”
카르낙이 다시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몸을 섞으려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 몸을 섞더라도 자신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난 뒤일 것 같았다. 기어이 발정 난 암캐로 만들어 산산이 부서트리려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제발 날 범해 달라고, 제발 내 가랑이 사이를 채워 달라고 빌게 만들 심산인지도 모른다.
“칼! 멈춰요! 제발!”
그녀의 음부를 비비는 강도가 더 세고 빠르게 변했다. 왕은 제 아내의 몸을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만져야 젖어 드는지, 어디를 어떤 식으로 빨아야 느끼는지. 신체는 그 익숙한 손길과 온도와 향기에 열렬히 반응했다. 재촉하고 비비며 강렬한 종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릴리… 릴리…. 그가 속삭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참아 보려 해도 참아지지가 않았다.
“칼, 제발… 부탁이에요. 제발….”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카르낙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울며 떨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후드득, 눈물이 떨어지는 붉은 얼굴. 꽉 깨물어 터질 것만 같은 젖은 입술. 그는 릴리의 질구에서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다. 주르륵, 애액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는 구겨진 치맛자락을 곱게 펴내리며 아내의 뺨에 입술을 비볐다. 뜨거운 감촉에 짭조름한 맛이 났다. 아내가 슬퍼하는 것은 싫었다.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뻤다. 파니릴리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것이. 부끄러움에 흐느끼는 모습이 가련하고 애달팠다.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안아 보드라운 카펫 위에 눕혔다. 잔뜩 토라진 어린애처럼 몸을 말고 두 손에 얼굴을 파묻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팔베개를 해 준 후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러고는 쉬. 쉬. 아이를 어르듯 그녀를 얼렀다.
잠시 후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목소리로 릴리가 흐느끼며 속삭였다.
“이래선 안 돼요. 우린 서로에게 고통이 될 뿐이에요.”
함께 마음조차 나누지 못하는데, 더는 서로의 손길이 서로에게 희열과 기쁨이 되지 못하는데. 이런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서로를 쑤시는 칼이 될 뿐이라고.
그러나 카르낙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를 속박하고 가두어 내내 소유할 작정이니까. 네가 나의 고통이 되는 것도, 내가 너의 고통이 되는 것도 기뻐. 죽어도 너를 놓치지 않을 테니까. 죽어도 너를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카르낙은 릴리의 손과 발에 감긴 가죽끈을 아주 단단히 쥐고 허공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상관없어, 릴리. 나는.”
“…….”
“아무것도.”
***
리쿠스는 파니릴리의 건강이 걱정되어 밤새 약초를 찾아 찧고, 찻잎을 우렸다. 또한 어떤 음식이든 단 한 점이라도 릴리의 입에 들어갈 때 그녀의 식욕이 돋기를 바라며 궁합이 좋은 약초를 섞느라 밤을 새웠다.
그는 왕비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단지 왕궁의 치료사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음을 다해 왕비를 돌보고 싶었다. 그녀에게는 늘 끈끈한 애정과 연민을 느껴 왔다. 마치 자신의 혈육인 듯 말이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그는 동이 트기도 전에 자신의 막사를 나섰다. 파니릴리의 아침 식사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리쿠스는 모닥불 위에 솥을 걸기 위해 바지런히 움직이는 여종들이 무슨 재료를 준비 중인지부터 파악하기 시작했다.
“후추는 자극적이니 왕비 전하의 것에는 이것을 쓰게.”
리쿠스는 작은 유리병을 건넸다. 약초를 섞은 향신료였다.
“또 되도록이면 억센 채소는 넣지 말고, 감자도 가장 작고 부드러운 것을 넣도록 해.”
“예. 리쿠스 님.”
“고기는 아주 잘게 찢어야 해. 아랫것을 시켜 아주 잘게 다져 놓게.”
“예. 리쿠스 님.”
“리쿠스 님! 리쿠스 님!”
시녀의 목소리에 다급한 군인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리쿠스는 서둘러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사색이 된 사병 한 명이 헐떡거리며 멈추어 섰다.
“큰일 났습니다! 왕, 왕비, 왕비 전하께서…!”
왕비 전하께서? 사색인 얼굴, 헐떡이는 숨소리, 이미 그의 모습만으로 쭈뼛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뒷말은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리쿠스는 긴 로브의 허리춤을 움켜쥐고 왕의 막사로 뛰어갔다. 그 뒤를 따라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사병이 다시 뛰었다.
입구에 핀이 보였다. 제대로 착장을 마치지 못한 상태로 그는 초조하게 손톱을 뜯다가 리쿠스를 보더니 냉큼 천막을 열어 주었다. 그러고는 그의 뒤를 따르며 정제되지 못한 어투로 말했다.
“왕비 전하께서 출혈을 보이신다.”
그와 동시에 침실 내부 휘장이 걷혔다. 제일 먼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제 아내의 상체를 꼭 안고 있는 카르낙이 보였다. 넋이 나간 그의 가슴팍과 양팔 모두에 피가 묻어 있었다. 리쿠스는 큰 충격을 느꼈다. 왕이, 아니, 사람이 저토록 겁먹은 모습은 처음 본 까닭이었다.
카르낙이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있는 파니릴리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고, 입술은 핏기가 가신 짙은 푸른색을 띠었다. 리쿠스는 그녀의 슈미즈 아랫단을 흠뻑 적신 피를 보았다. 사타구니 사이에서 발목까지 이어진 붉은 선혈.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불을 지펴… 얼른 불을 지펴요!”
그의 말에 핀이 부하들을 재촉했다. 지체 없이 화로가 놓였고, 불이 잘 붙을 만한 마른 나뭇가지가 원뿔형으로 쌓였다.
“…리쿠… 리쿠스….”
저를 부르는 카르낙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습니다. 한기를 느끼고 계세요. 침상에도 데운 놋그릇을 넣어 두어야 할 겁니다.”
“왜… 왜….”
그의 떨림은 여전했다.
“하복부 출혈입니다. 최근 왕비 전하께서는 유독 입맛이 없으셨지요. 자주 기력을 잃고 침대에 누워 계셨고요. 혹 구토나… 아니면 헛구역질을 하는 걸 본 적이 있으십니까?”
카르낙은 도리질했다. 왕이 제 아내의 마지막 달거리가 언제였는지 알아챘을 리도 만무했다. 세일린을 캘던에 두고 오는 것이 아니었다. 전담 시녀의 청을 거절했어야 했다. 왕비의 성정상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에이가라도 그것을 수습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둘은 순순히 세일린의 청을 받아 주었지. 리쿠스로서는 도저히 이해 가지 않는 지점이었다. 그녀가 있었다면 좀 더 이 출혈의 원인에 확신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짚이는 것은 하나였다. 신방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청춘의 남녀가 매일 한 침대를 썼다면 당연히 아기씨가 태내에 자리 잡았을 터였다.
“…아무래도….”
리쿠스는 어렵게 입을 뗐다.
“유산인 것 같습니다.”
카르낙은 여전히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리쿠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지도 않았다.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영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이었다.
“무….”
그는 눈가를 파르르 떨며 간신히 말했다.
“뭐 같다고?”
“송구합니다, 폐하. 두 분께서 아기씨를 잃으신 그 상실감을 어떻게 위로해 드려야 할지… 그저 슬플 뿐입니다.”
“…….”
유산… 아기씨…. 카르낙의 시선이 그녀의 납작한 아랫배로 향했다. 설마, 릴리. 설마. 그는 아내의 아랫배로 손을 뻗었다. 차가운 피부 위, 까끌한 슈미즈 질감이 이질적이었다. 그는 균열이 간 유리잔을 만지듯 아주 조심스럽게 손끝을 대었다. 설마 아이를. 내… 내 아이를.
“릴리.”
카르낙은 제 아내의 파리한 뺨을 쓸더니 이내 그녀를 제 가슴 안에 꽉 품고 작게 맥동하는 릴리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났다. 그동안 자신이 아내에게 했던 모든 짓들이, 그녀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고 슬프게 했던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미안해.”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해, 릴리. 네가 이렇게 아플 줄 몰랐어. 너를 소중히 여기지 못했어.
자신의 아내를 늘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하였건만, 그는 자신이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지도, 또한 아끼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 귀하고 아름다운 여자의 자궁 속에 천하고 더러운 투로의 씨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그 귀한 곳에 어떻게 저 같은 놈의 아이를 잉태할 수 있겠느냐고.
파니릴리는 신의 아이이고 자신은, 자신은 신에게조차 버림받은 벌레만도 못한 것인데 어떻게 신이 그것을 용납하겠느냐고.
그래서 그랬다. 네가 내 아이를 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 후계를 낳아 늙어 죽을 때까지 엘버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윽박지를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씨가 자랐다. 네 예쁜 몸 안에 자리를 잡아 생명을 틔우고 있었다. 네가 그것을 품고 있었는데. 나는 네가 내 것을 품고 있는 줄도 모르고 너를 갖지 못해 안달하였다.
그러니….
“내가… 내가 잘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