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발 아래 은빛 눈-102화 (102/231)

102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없는 것 같아요.”

“하나도?”

“네. 없어요.”

“자유는 어때?”

카르낙이 등받이에 편히 기대며 다리 하나를 반대편 다리 위에 얹었다. 커다란 덩치는 고압적이면서도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릴리는 옅게 웃음을 토했다.

“그건 빼앗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빼앗을 수 있지, 릴리. 네가 나를 죽이거나 나를 협박하거나 나를 궁지로 몰아서 강탈해 갈 수 있어. 만약 그럴 기회가 온다면 잡을 수 있어. 오지 않는다면 네가 만들 수도 있지.”

“제가 그러길 원하세요?”

릴리는 그런 말을 하는 카르낙의 저의를 알고 싶었다. 가끔 시험하듯 던지는 말들에 어떤 대답을 원하는 것인지 말이다.

“아니.”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난 그저 네가 원하는 것을 알고 싶은 거야.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절히 원하는 것. 지금 당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는 거요.”

카르낙이 실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릴리는 즉시 반박했다.

“정말이에요, 칼. 이 여행을 무사히 마쳤으면 좋겠어요. 별 탈 없이요.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어요?”

카르낙이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욕심을 좀 부려 봐, 릴리. 아무거나 좋아. 예쁜 옷,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보석,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아름다워지고 싶다거나, 아니면 좀 더 강해지고 싶다거나, 그게 아니면 뭐라도 말이야. 무엇이라도 좋아.”

“…….”

릴리는 무어라 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건 이상한 것일까? 그녀는 늘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했다.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 덕에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되었고 보잘것없는 것에도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욕심내는 것은 괴롭다. 끊임없이 갈망하며 고통받는다. 릴리는 그런 것들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거기서 멀어지면 세상은 충분히 풍족하고 아름답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삶은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나 릴리는 무엇이든 욕심을 내 보라는 카르낙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은 삶에서 도망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욕망에 충실하지 않은 것은 상처받고 싶지 않아 외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카르낙은 타인에 의해 거세되어야만 하는 욕망을 마주 보며 살아왔다.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운다. 그래서 늘 뜨겁고 위험하고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그렇기에 빛나고 열정적이며 강인하다. 카르낙이 원하는 것은 그것일까. 좀 더 삶에 전투적으로 뛰어들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 그렇게 한 발 더 다가서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으로 그와 가까워질 수 있다면 기꺼이 욕심내고 싶은 것은 하나 있다.

“폐하와 가까워지는 거요.”

“.....”

“그래서 폐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건 너무 소박한데. 릴리.”

“제겐 가장 어려운 것인데요.”

카르낙은 미소 지었다. 그가 원하던 답은 아니지만 그를 기쁘게 하기엔 충분한 답이었다.

“좋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릴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그녀의 옆에 풀썩 앉아 자신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상대방의 숨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이 정도는 어때?”

호흡을 가다듬을 때마다 파니릴리의 가슴팍이 평소보다 더 부풀어 올랐다가 내려앉았다. 카르낙은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드레스 안의 살결을 그리는 듯한 눈길이었다. 릴리의 볼에 붉게 열이 올랐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들숨과 날숨이 뜨거웠다. 카르낙의 라벤더 빛 시선이 그녀의 벌어진 입술 위에 놓였다.

“이 정도면 원하는 만큼 가까운가?”

릴리는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러자 카르낙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더 가까이 다가왔다. 닿을 듯 말 듯 그의 입술이 릴리의 입술을 간지럽혔다.

“이 정도는?”

그의 커다란 손이 릴리의 허벅지를 지나 그녀의 손등에서 팔뚝까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 정도면 어때?”

릴리는 몇 번이고 입을 뻐끔거렸다. 무거운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으려 했고 몇 번이고 대답을 하려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릴리는 자신이 무엇에 취한 것인지 제대로 자각할 수가 없었다. 다만 무척이나 뜨겁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레 허리 부근에 해방감이 느껴졌다. 릴리는 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카르낙이 그녀의 허리띠를 풀어 바닥으로 던지고 있었다. 온몸에 삐죽 솜털이 서는 것이 느껴졌다.

“키스해 줘, 릴리.”

카르낙이 속삭였다. 그 음성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제 사지에 족쇄를 건 것도 아닌데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 릴리는 기꺼이 제 턱을 들어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는 카르낙의 아랫입술을 간신히 제 입술 사이에 담았다. 그의 혀가 제 윗입술을 살짝 핥고 사라졌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릴리는 저도 모르게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충분치 않아. 더 많이 원했다. 더 많은 것을.

그의 멱살을 쥐듯 옷자락을 틀어쥐고 그것을 당겼다. 카르낙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벌어진 입술을 그녀는 삼킬 듯 빨아 당겼다.

카르낙의 무게에 이기지 못하고 풀썩 릴리의 등이 침대 위로 넘어갔다. 몇 번이고 고개를 틀어 다른 각도로 그녀의 입술을 맛보고 혀를 얽더니 그는 제 머리 위로 블리오를 벗어 버렸다. 릴리는 흐트러진 차림새로 그의 골격이 불빛 아래 선연히 빛나는 것을 보며 침을 삼켰다.

“원래… 가까워지고 싶다는 것이 이런 뜻은 아니었는데요….”

본의 아니게 잠긴 목소리로 그녀가 우물거렸다.

“나도 알아.”

그는 블리오를 침대 발치로 던지고 제 허리끈을 풀며 말했다. 무엇이 그토록 재미나고 즐거운지 낯빛은 환했고 표정에는 활력이 넘쳤다.

“넌 내가 이기적이란 걸 늘 기억해야 돼, 릴리.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듣지.”

릴리의 신발을 벗겨 내고 탐스러운 젖가슴이 보일 때까지 치맛자락을 밀어 올렸다. 새하얗고 보드라운 피부가 드러났다. 홀쭉한 배를 지나 동굴처럼 흉부를 감싸는 갈비뼈가 보였고 그 위에 탐스러운 젖가슴 두 덩이가 푸딩처럼 놓여 있었다.

카르낙은 그중 한쪽을 손으로 그러모아 움켜쥐었다. 그것은 곡선을 그리며 일그러졌다. 도독하게 튀어나온 유두가 채 잡히지 않고 삐죽 솟구치자 카르낙은 그 모양새에 군침을 삼켰다. 누구든 이것을 보면 맛보지 않고는, 핥아 보지 않고는, 빨아 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리라.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치고는 그 모양이 너무 아름다웠다. 차라리 사내를 발정토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더 이치에 맞다고 그는 생각했다.

카르낙은 몸을 굽혀 뾰족이 솟은 릴리의 유륜과 유두를 달칵 입안으로 삼켰다. 움찔 새하얀 몸이 떨렸다. 그녀의 살결에서는 단 맛이 났다. 아니 맛이라기보다는 감촉일 것이다. 혀에 닿는 감촉은 버터보다도 푸딩보다도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감미로웠다.

뾰족이 솟아 혀를 간지럽히는 유두는 그야말로 천상의 별미였다. 카르낙은 두 손 가득 릴리의 가슴을 담고 그것을 정신없이 핥고 빨았다. 양물이 잔뜩 기립하여 그의 아랫배에 닿았다. 달아오른 것은 그저 부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가슴을 물고 군침을 흘리듯 말간 액체를 흘려 댔다.

카르낙은 그녀의 쇄골을 혀로 핥고 그녀의 아래턱을 물어 제 잇자국을 낸 다음 그녀의 벌어진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릴리가 매달리듯 그의 목을 껴안았다. 단단히 감기는 구속감이 황홀하여 그는 신음을 흘렸다.

참을 수가 없어 그는 릴리의 허벅지를 벌리고 그 안으로 손을 넣어 보드라운 음모 안쪽을 매만졌다. 작고 도독한 클리토리스가 뜨거웠다. 둥글게 문지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그녀의 아래가 촉촉하게 젖어 갔다.

카르낙은 몸을 일으켜 손에 침을 바른 뒤 제 양물에 펴발랐다. 그녀의 몸을 가르고 들어갈 때 혹여 아파할까 그는 릴리의 질구에도 그것을 바른 뒤 제 페니스를 그곳에 맞췄다. 그러고는 붉게 달아오른 릴리의 얼굴을 보며 아주 천천히 그것을 밀어 넣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아랫도리가 그의 것을 삼킬수록 릴리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가, 메마른 입술을 혀로 한번 축였다가, 미간을 찡그렸다가 눈을 감았다가 마침내 뿌리까지 밀어 넣자 그녀는 턱을 젖히며 신음했다.

천천히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달아오른 몸은 뜻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또다시 허리가 멋대로 움직였다. 퍽퍽, 하고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릴리가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질러 댔다.

카르낙은 릴리의 턱을 잡아 저를 보게끔 고정했다. 그러고서는 그녀의 표정을 읽어 보려 골몰하였다. 찌푸려진 미간과 벌어진 입술이 말하는 것이 고통인지 아니면 환희인지…. 흐릿하게 반쯤 감긴 눈은 무엇에 취한 것인지.

그러나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아직 저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카르낙은 릴리의 입술을 달칵 삼켜 힘껏 빨아 보고는 그녀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은 채 허리를 움직였다.

마치 질주하는 말 위에 앉은 듯 릴리의 몸이 무기력하게 흔들렸다. 눈앞이 아찔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새하얀 이빨이 때때로 쇄골 위에 박혔다. 릴리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그의 거친 허릿짓을 참아 내려 이를 악물었다. 참아 내지 않으면 제 몸이 바스라질 것 같았다.

속도가 더 거세지더니 그의 페니스가 제 안에 들이닥쳤다가 완전히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더 급해지고 더 거칠어지는 피스톤 운동이 무엇을 말하는지 릴리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침내 쿵, 하고 저를 그녀 안에 처박고 부르르 떨며 무너졌다. 갑작스레 그의 무게가 릴리의 몸 위로 내려앉았다. 그녀는 헐떡거리는 제 남편의 어깨를 안았다. 땀으로 미끄덩거리는 뜨거운 육체는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릴리는 달래듯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카르낙은 사정감이 쉽게 가시지 않은 듯 계속해서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더 파고들 수 없을 만큼 깊게 파고들려 했다.

“칼.”

릴리가 제 남편을 불렀다. 그는 여전히 사정감에 몸서리를 쳤고 릴리는 숨을 고르며 부드럽게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다. 이대로 자려는 걸까.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대로 잠들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잦아들었던 몸짓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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