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네놈이 말한 구멍이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단 말이다! 대충 아무 말이나 지껄이면 된다는 거야? 네놈이 좆물을 아무렇게나 싸지르는 것처럼!”
“내 좆물 내가 싸지른다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폐하한테 싸지르는 것도 아니잖아욧!”
“좆같은 말을 싸지르니까 그렇지!”
“폐하의 귀가 좆같이 알아 처먹는 것 아닙니까! 구멍이 왜 없어! 구멍이! 세상에 구멍 없는 여자가 어딨어! 계집들이 다리만 벌리면 보이는 게 이따시만 한 구녕인데!!”
“네놈의 후장이나 그만 하게 뚫렸겠지.”
“아니, 시발. 진짜 아까부터….”
“로리아납니다, 폐하.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둘의 싸움이 갈무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로리아나는 알아서 싸움에 끼어들어 인사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내들의 저급한 말싸움을 계속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카르낙 발투만은 잔인하고 비천하기 짝이 없다더니 잔인한 것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기품 있는 왕은 아니었다. 그 점이 더 마음에 들긴 하지만 말이다.
“…….”
그 말에 둘의 싸움이 멈추었다. 로리아나는 상태를 완전히 소강시키기 위해 곧바로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폐하께서 직면하신 문제는 여인의 몸을 잘 모른다는 것이지요?”
왕과 그의 기사는 난잡한 말을 마구잡이로 뱉어 냈으나 부나비의 창부인 로리아나는 최대한 완곡한 표현으로 에둘러 말했다. 보고 있자니 실소가 나오려는 것을 리쿠스는 한숨을 짧게 내쉬는 것으로 대신했다.
“짐이 모르는 것이 아니다. 저놈이 주둥아리에서 나오는 대로 뱉어 낸 탓이지.”
카르낙이 다시금 으르렁거렸다. 루이스는 기가 막혀 눈알을 굴렸다.
“하늘에 맹세하건대 전 진실만 말합니다! 내가 틀렸어, 로리아나? 사내가 여인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이 뭐가 어려워! 대충 박고 싸면 끝이지!”
하여간 그놈의 구멍이 문제다. 누구는 그 구멍을 똥구멍으로 알지를 않나, 누구는 그게 없다고 하지를 않나, 또 누구는 어디서 배워 먹었는지 넣고 싸면 끝이라고 하고 있지. 이놈의 캘던성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집구석인가. 로리아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아주 천천히 하나하나 문제를 짚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루이스, 그건 네가 창녀들만 상대했기 때문이야. 손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연기가 필요하지.”
“하!”
하고 카르낙이 루이스를 비웃었다. 네놈이 그렇지, 하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루이스의 얼굴은 삽시간에 붉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내가 거쳐 간 계집들은 다 좋지도 않으면서 좋아하는 척했단 소리야, 어?”
로리아나의 표정이 난처하고 떨떠름해졌다. 대답하지 않아도 대답이 되고 말았다.
“헛소리! 헛소리야!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 거짓을 고하고 있어! 똑바로! 똑바로 말하지 못해!”
“…네가 왕이냐, 루이스?”
“가, 감히 페하의 앞에서 거짓말을 하잖습니까!”
“난 괜찮은데?”
“왕실의 근위병으로서 명예가 크게 실추되는 일입니다! 맹세코, 저는 계집들을 매번 만족시켜 줬다 자부합니다! 로리아나는 당사자가 아니니 거짓부렁을 일삼는 겁니다! 게다가 로리아나와의 동침은 단 한 번으로, 그땐 아무것도 모르는 숫총각이었고 지금은 완전 환골탈태하여 제 이름만 들어도 사창가의 계집들이 침을 질질….”
“그쯤 해 둬라, 루이스. 네놈의 더러운 야사 따윈 그다지 듣고 싶지 않으니.”
“으으….”
억울해…! 억울하다! 분하고 억울하다! 믿을 수 없어!
“루이스가 말한 것은 대개 사실입니다, 폐하. 모든 여인들의 몸에는 사내를 받는 곳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씨물을 받고 아이를 수태하지요.”
“그것 보십쇼!”
이번엔 루이스가 ‘하!’ 하고 쾌재를 부르며 거들었다.
“그러나 여인은 그것만으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기쁜 것은 사내뿐이지요. 게다가 루이스가 상대한 여인들은 모두 사내에게 닳고 닳은 계집들뿐, 한 번도 처녀를 겪어 본 적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요, 루이스 경?”
그건 그렇다. 계집들이라고 해 봐야 창부들뿐이었다. 어떤 이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약탈한 영지의 계집들을 겁간하기도 했다. 그것도 어린 계집들만 골라서 울고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루이스는 헐떡대며 아무것도 모르는 계집 위에 올라타 우는 것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럴 힘이 있다면 한 놈이라도 더 죽이는 게 좋았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전쟁의 죽거나, 죽이거나의 또렷한 선명함과 극한의 자기 통제였다.
이성을 잃은 채 되는대로 사람을 썰고 겁탈하는 것으로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순간에서도 냉정을 지키는 것. 어떠한 순간에도 삶과 죽음을 분명히 선택하는 것. 흰 것은 살리고 검은 것은 모조리 죽이는 그 선명하고 단순한 순간들이 그가 전쟁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계집들은 그 이후에 찾아오는 호사이다. 술에 취해 질펀하게 즐기다가 서로 가랑이를 얽는 것. 나붓한 손가락과 낭창한 허리를 흔들며 저를 유혹하는 것. 루이스에게 계집질은 그런 것이다. 뻣뻣하고 빽빽 우는 어린 계집은 질색이다.
그러한 연유로 그는 아직 숫처녀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평생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이왕이면 결혼을 하더라도 사내에게 능한 여인이 좋았다.
루이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로리아나는 말을 이어 갔다.
“대게 처음 남자와 동참하는 처녀들은 첫날 밤 피를 흘리기 마련입니다. 사내들은 그것으로 아내의 처녀성을 확인하지요.”
카르낙이 미간을 찌푸렸다.
“피? 피가 난다고?”
“예, 페하.”
카르낙은 리쿠스와 루이스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두 사내는 그저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한 명은 캘던성의 치료사이고, 한 명은 자타공인 엘버그의 창놈인데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서. 당최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다.
“들어본 적 없나, 리쿠스?”
“물론 들어본 적은 있지요. 다만 경험해 본 적이 없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 알려 주지 않았어?”
“폐하께서 계속 구멍만 찾으시기에…. 거기에 대해서만 골몰했나이다.”
게다가 계속해서 기분이 안 좋아 보였고, 장검까지 들고 있으니 오금이 저려 무슨 말이라도 제대로 할 수가 있어야지. 사람이 욕구를 못 풀어 미치면 살인도 저지르는구나 싶어 겁이 덜컥 날 뿐이었다. 피 이야길 잘못해서 피를 보면 저만 손해 아닌가.
카르낙은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피를 안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네. 없습니다, 폐하.”
어떤 형태로든 피는 반드시 고통을 동반한다. 그것에 예외는 없었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여인을 기쁘게 하는 것일 뿐 거기에 피나 고통은 포함될 수 없었다. 그러나 반드시 봐야 한다라.
과연 그것은 무엇을 위한 고통인가. 왜 몸을 섞는 것은 둘인데 한쪽은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한쪽은 온전히 느껴야 하는가. 카르낙은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섭리가 여자들에게 무척 가혹하다 생각되었다.
“알기로 엘버그의 관습대로라면 부부가 동침하는 첫날, 남편이 처녀 혈로 아내의 순결을 증명한다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로리아나의 말에 리쿠스가 고개를 끄덕였으나 카르낙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걸 어디에 증명하는데?”
“사람들에게요.”
“…그러니까 사람들 누구?”
리쿠스가 대답했다.
“대개 첫날밤을 치른 후 남편이 아내의 혈이 묻은 시트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 그것을 하객들에게 보여 줍니다.”
“…….”
카르낙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반쯤 입을 벌리고 리쿠스를 보았다.
“그러면 하객들은 환호를 하며 잔을 들어 신랑을 축하해 주지요.”
“…그러니까, 내 아내가 고통으로 흘린 피를 잘 알지도 못하는 놈들에게 보여 준다는 거야? 적장의 모가지라도 따 온 것처럼?”
“…아마도요.”
리쿠스는 확신이 없는 듯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르낙의 얼굴에 서려 있는 것은 분명 노기였다. 왕의 얼굴빛은 더욱더 맹렬하고 잔인한 빛을 띠었다. 로리아나가 대신 설명했다.
“불행하게도 엘버그에서 여인들은 모두 사내의 재산입니다. 그러니 아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재산인지 증명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래서 처녀 혈이 증명해 주는 것이 뭔데? 아내도 노예와 다를 것이 없다?”
“…….”
“감히 저 더러운 종자들에게 내 아내의 피를 보여 주고 난잡한 상상을 하며 환호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고? 꿈 깨시지.”
“오랫동안 지켜져 온 엘버그의 전통으로….”
“전통은 무슨 개 같은 전통! 미친놈들이 만든 전통 따위 지킬 생각 없어!”
“…그러나 하객들은 분명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연회장에 차고 넘치는 알코올 향이 느껴졌다. 사내들이 역겨운 소리를 하며 제 아내의 처녀 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감히 누구도 내 아내를 욕보일 수 없다, 리쿠스. 감히 누구도 사내라는 이유로 파니릴리 발투만을 능멸할 수 없어. 좆같은 엘버그의 영주와 그의 식솔들에게 전해라, 리쿠스. 왕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만일 왕비의 피를 보려 기다리고 있다면 먼저 네 연놈들의 피로 연회장을 가득 채우게 될 거라고.”
“…….”
“지금. 당장.”
“에, 예! 예, 폐하!”
멍하게 넋을 놓고 있던 리쿠스는 카르낙이 한 번 더 힘주어 말하자 나서야 파랗게 질린 채로 방을 뛰쳐나갔다.
로리아나는 쿵, 하고 닫히는 문을 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카르낙 발투만은 엘버그의 재앙이라고. 그러나 그렇기에 기뻤다. 단숨에 왕좌를 차지한 비천한 투로가 아무렇지 않게 엘버그의 전통과 관습을 짓밟고 찢어발기는 것에 로리아나는 희열을 느꼈다.
그리하여 마땅히, 카르낙 발투만은 마땅히 엘버그의 왕이었다. 로리아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결코 꿈꿔 보지 않았던 가장 엘버그에 합당한 왕. 그는 엘버그에겐 날카로운 창이었다. 낮고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자들을 대신해 엘버그를 찌르고 쑤시고 피를 흘리게 할. 확실히 바라던 것 이상이다. 비틀린 기쁨이 그녀의 가슴속에 굽이쳤다.
“폐하, 여인을 기쁘게 하고 싶다 하셨지요?”
로리아나는 환히 얼굴을 빛내며 카르낙에게 물었다. 전에 없이 활기가 도는 눈동자는 맹렬하였다. 같은 투로이기 때문일까, 카르낙은 로리아나의 윤기 나는 갈색 피부와 호리호리한 몸매도, 날카로운 콧날과 잘 벼린 뾰족한 눈매도 저와 비슷하다 생각하였다.
한 사람은 왕이 되었고 한 사람은 창부가 되었지만 서 있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모두 자신이 내쳐진 길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빛나는 자리임에는 매양 같았다. 로리아나는 기꺼이 투로들의 왕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부디 이 미천한 창부가 폐하를 돕게 해 주십시오. 허락하신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돕겠습니다.”
아아, 우리들의 왕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