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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발 아래 은빛 눈-68화 (68/231)

68화

제 맞은편에 앉은 저 새까만 두꺼비 같은 사내가 울퍼라 하였나? 이가 거의 다 빠져 잇몸뿐인 입을 함지박만 하게 벌리고 웃으며 술을 내오는 여종들마다 허리를 껴안고 추파를 던지는 이의 이름이.

루이스는 카르낙이 대대손손 멀루아를 다스려 온 전 영주의 목을 베고 그의 의자에 앉아 저 벙어리 사내를 다음 영주로 지목할 때, 그 자리에 있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흙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벌벌 떨던 그때의 벙어리는 지금처럼 살이 뒤룩뒤룩 찌지도, 색욕에 번들거리는 눈꺼풀을 깜빡이며 발정기의 짐승처럼 여자만 보면 어쩌지 못해 안달하지도 않았다.

삐쩍 마르고 푹 꺼진 눈으로 그저 두려움에 떨며 차마 살려 달라 애원하지도 못하던 나약한 사내였다. 그런 자가 지금은 분에 넘쳐 저렇게 살찐 돼지처럼 변했단 말이지…?

“울퍼 님, 울퍼 님, 이제 그만 여종을 놓아주십시오….”

울퍼의 종자가 취한 주인을 손짓하며 말렸다. 잘못된 주인을 만나 그 종자만 진땀을 빼며 고생하고 있었다. 울퍼는 종자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종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의 뺨에 입술을 비벼 댔다.

여종은 차마 밀쳐 내지도 못하고 울상을 하고 있었다. 정도가 심한 것 같아 루이스는 들었던 잔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술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봐, 멀루아에서 온….”

“루이스 경.”

막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한 소리를 하려는데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그를 불렀다. 루이스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뒤를 돌아보았다. 무장을 하고 철모까지 쓴 모양새가 성내의 경비병이 확실했다.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던 근위병이 한 번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폐하,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폐하께서?”

“예.”

아무래도 이상하여 루이스는 다시 한번 물었다.

“…폐하께서 지금 나를 찾으신다고?”

“예. 루이스 경.”

“…….”

아니. 왜? 지금쯤이면 파니릴리와 침대를 한창 뒹굴고 있어야 할 때가 아닌가. 카르낙과의 첫날밤을 대비하여 파니릴리에게 부나비의 로리아나까지 공수해 주었다. 루이스는 그녀가 파니릴리와의 대면을 마치고 나와 저 혼자 웃음을 터트리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발투만 폐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내야. 엘버그에 저 아가씨보다 학구열이 뛰어난 신부는 찾을 수 없을 테니까!”

그 말인즉슨, 로리아나의 도움으로 파니릴리는 아무것도 모르던 처녀에서 진정한 테크니션으로 거듭났다는 뜻이 아니던가. 파니릴리라면 지금쯤 자신이 배운 것을 확인하고 싶어 카르낙의 사지를 묶어 놓고 이런저런 실험을 거듭하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런데 카르낙 발투만이 저를 찾는다고? 침대에 묶여 살려 달라고 읍소하고도 남을 시간에?

“서두르셔야 합니다. 매우 급히 찾으셨습니다.”

“…….”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오만 가지 잡생각이 다 들었다. 설마 뭐가 잘못됐나? 로리아나가 뭔가를 잘못 알려 줬나? 아니면 자신이 파니릴리에게 로리아나를 데려다 놓았던 것을 들켰나? 감히 순수하고 정숙한 파니릴리에게 창부를 소개했다고 진노한 건가.

시발. 어쩌지. 지금이라도 냅다 달아나? 배를 타고 카스티 제도로 줄행랑을 칠까? 그라타 같은 곳으로 도망가면 아무도 저를 찾지 못하겠지. 하지만 오래전 자신이 그라타에서 한 짓이 있지 않던가. 한 마을을 전부 불태우고 그 주민들을 살해하였다. 무일푼 거지로 들어가면 그들의 손에 흠씬 두들겨 맞다가 그대로 뒈질 것이 뻔하다. 퇴로가 없었다. 귓가에 울리는 악사들의 경쾌한 연주가 꼭 장송곡처럼 들려왔다.

“루이스 경.”

근위병이 한 번 더 그를 채근했다. 알았다 이 새끼야. 간다. 가.

“안내해라.”

에이. 시발.

근위병을 따라 당도한 곳은 카르낙의 침실에서 멀지 않은 방이었다. 그는 문을 열고 루이스를 그곳에 밀어 넣더니 냉정하게 닫아 버렸다. 마치 잡아 온 사냥감을 우리에 몰아넣듯이 말이다.

“루이스.”

저를 낮게 부르는 카르낙의 목소리에 소름이 쫙 끼쳤다. 마른 수건으로 제 손을 닦고 있는 카르낙의 헐벗은 몸에는 얇은 가운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미 한 번 일을 치르고 왔다는 의미다.

거 참 드럽게 빨리 끝나네. 사나이가 가오가 있지. 아직 달이 휘영청 떠 있는 밤이건만… 두세 번은 더 하든가. 아니면 좀 쉬었다가 다시 하든가. 이런저런 불만으로 저 혼자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카르낙과 눈이 마주쳤다. 안광이 시퍼런 것이 너무 무서워 오금이 저렸다. 그는 지레 찔려 먼저 선수를 쳤다.

“저는 누차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는데 도저히 그분의 고집을 꺾을 수가….”

카르낙의 미간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그것을 보니 마음은 더 다급해졌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주인을 받드는 충성스러운 캘던의 군인으로서….”

“무슨 개소리야. 루이스.”

엥?

카르낙은 초조한 듯 제 미간을 문질렀다.

“시간도 없는데 네 잡소리 들어 줄 여유 없어. 릴리가 씻는 동안의 말미뿐이야. 그러니 닥치고 묻는 말에나 답하란 말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이 짐작한 경우는 아닌 것 같아 루이스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 하문하옵소서.”

카르낙은 마른세수를 한 번 하고 아무 의자나 끌어다 앉았다. 초조한지 발끝을 달달 떨어 댔다.

“좋아.”

그러고는 한 번 숨을 크게 쉬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자를 기쁘게 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봐.”

“……?”

루이스는 머리통만 슬며시 들었다.

“네가 틈만 나면 사창가에 드나드는 것은 잘 알고 있어.”

과연…. 저를 자타 공인 엘버그의 창놈이라 칭한 것은 옳은 소리였다.

“핀이 없는 이상 이런 걸 물을 사람은 네놈 하나뿐이야. 그러니까 최대한 간단하게 답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루이스는 대체 카르낙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인을 기쁘게 해 주는 것? 여인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이 별건가?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낯부끄럽습니다만….”

“네놈이 언제부터 낯짝을 찾아 댔어? 평소 하던 대로 해.”

“…그냥 대충 가슴 좀 주물러 주다가 아랫도리로 쑤셔 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

찰나의 침묵이 억겁처럼 느껴졌다. 카르낙이 여자에게 목석처럼 군다는 것은 온 엘버그가 다 안다.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모두 카르낙이 동정일 것이라 짐작했다. 동정이 아니더라도 어린 치기에 몇 번 여자를 안았을 뿐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은 적은 없을 거라는 것이 지론이었다.

그가 여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을 본 적이 없어 몇몇은 그가 남색을 즐기는 게 아니냐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한 이유로 루이스는 카르낙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폐하, 사내의 양물이 말입니다.”

그는 왼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곧추세워 구멍에 넣었다 뺐다 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예? 이렇게 하면….”

“…….”

카르낙은 여전히 인상만 구기고 있었다. 다 큰 사내를 두고 이런 걸 가르치자니 정말 어색했다. 루이스는 ‘크흠’ 기침을 한 번 하고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여자에게는 말이죠, 폐하. 구멍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똥구멍 위에 사내를 받는 구멍이 있어요. 대충 침 좀 발라서 미끈미끈하게 해 준 다음에 그냥 넣으면 됩니다. 그다음부터는 그냥 본능에 몸을 맡기면 알아서 다 잘 됩니다.”

“…그게 여자를 기쁘게 해 준다고?”

“그럼요. 별거 있겠습니까?”

루이스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냥 그렇게만 해 줘도 계집들은 자지러졌다. 사창가 골목을 지나가기만 해도 자기와 하자며 치근대는 여자가 몇인데…. 자신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달아올라 매달리는 것이 여자들 아니었던가.

그러나 자신만만한 루이스의 답에 카르낙은 여러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시종에게 릴리가 몸을 다 씻고 슈미즈를 새것으로 갈아입으면 달라 했던 신호였다. 카르낙은 가운 앞섶을 갈무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루이스를 스쳐 지나 방문을 열다가 영 찝찝해 카르낙은 돌아보며 말했다.

“그 여자를 데려와.”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로라나인가, 로아나인가 하는 그 여자.”

“로리아나 말씀입니까?”

“그래. 그 여자.”

또? 별로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왕의 명이니 거역할 수는 없었다.

“예. 폐하.”

루이스는 공손히 답했다.

릴리는 다시금 단장을 마치고 침대에 앉았다. 시중을 들어 주는 이들은 모두 흰머리가 성성한 나이가 많은 시녀들뿐이었다. 아직 어리고 말 많은 시녀들이 저들끼리 모여 아무렇게나 지껄일 것이 걱정되어 미리 조치해 두었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에이가? 로로? 아니면… 카르낙?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제 남편이 돌아오자 릴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얇은 실크 가운 하나만 걸친 차림이었다. 저처럼 그도 다시 씻고 단장을 한 걸까.

“칼, 어디 있다가….”

어디 있다가 왔느냐고 물으려 했으나 카르낙이 전투적으로 입술을 겹쳤다. 그 기세에 밀려 릴리의 몸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 카르낙은 릴리의 입 안에서 혀를 굴리며 슈미즈 자락을 끌어 올렸다.

릴리는 그를 끌어당기지도 떠밀지도 못한 채 그의 어깨를 쥐고 밀려 들어오는 혀를 받아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카르낙의 손이 옷자락을 쥐고 그녀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스쳐 허리에서 가슴까지 올라갔다.

아랫도리가 훤하게 드러나는 것이 느껴져 릴리는 저도 모르게 허벅지를 오므리려 힘을 주었다. 그러나 제 다리와 다리 사이에 카르낙의 다리가 얽혀 있었다. 사타구니에 카르낙의 허벅지가 느껴졌다. 그것도 맨살이 오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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