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상실에 걸린 마녀를 주워버렸다-199화 (199/201)

(EP.199)Epilogue. 행복의 끝 - 05

그렇게 길고도 길었던 겨울은 끝이 나고, 어느덧 우리에게 봄이 다가왔다.

창 밖에 그토록 휘몰아치던 눈보라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으며, 바깥에는 따스한 훈풍과 화사한 꽃만이 만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토록 우리를 춥게 했던 한겨울의 추위 또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공기는 이렇게나 따스하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심장의 고동 또한 이렇게나 온화하다.

그렇게 한참동안 봄으로 가득 차 있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와중, 언젠가의 그녀와 맺은 약속이 떠오르고 말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일이 전부 끝이 난다면, 그리고 겨울이 끝난다면 다함께 어디론가 놀러가자고 했던 그 때의 그 약속.

지금까지 모두가 한 곳에 모여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으며, 모두가 한 곳에 모여 재미있게 놀아본 기억 또한 우리에게는 없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조금 먼 곳으로 가보는 것이다. 뒷일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그동안 바빠서 미처 가보지 못했던 명소까지 나가 조금은 떠들썩하게 놀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무조건 찬성일세. 나는 개인적으로 바깥 날씨가 이렇게 화창한데 어디론가 놀러가지 않는 것 또한 죄악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저도 찬성이에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겨울 내내 눈보라를 보는 것이 조금은 지긋지긋했거든요. 화사한 꽃들이나 녹음이라도 보며 안구를 정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뭐야? 겨울의 여신님이면서 겨울은 대체 왜 싫어하는 건데? 이것도 일종의 자기혐오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동족 혐오라던가?”

“...비앙카, 자신의 무식함을 티내는 방법도 그 정도면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자신의 정체성과 호불호가 무조건 이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대체 왜 하는 것입니까? 당신의 잘난 머리통도 붉은색이긴 하지만 정작 당신 자신 역시 붉은색을 꺼려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하여간, 당신은 역지사지라는 단어를 모르는 불쌍한 생물임이 틀림없는 것 같군요.”

“헛소리를. 아리엘, 이 참에 당신 머리통도 붉은색으로 만들어줄까? 당신의 머리를 몇 대 쥐어박아 피를 좀 묻혀준다면 머리카락이 금방 붉은색으로 염색이 될 텐데 말이지.”

“사양하겠습니다. 제 보랏빛 머리카락은 당신의 말라붙은 피딱지 같은 붉은 머리카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거든요. 카인도 저번에 제 머리카락이 아름답다며 칭찬까지 해줬는걸요?”

...뭐어, 중간의 자그마한 소요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모두가 먼 곳으로 놀러가는 것에 찬성을 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모든 여인들과 함께 꽃놀이를 가기로 결정하였다. 그 날만큼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로,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기 위하여.

“와아, 굉장히 예쁜 곳인데요. 이 근처에 이런 장소가 있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봐요.”

“그러게. 북부에 이 정도로 경관이 수려한 장소가 있었다니...”

꽃놀이를 하기 위한 장소에 도착하자, 모든 여인들이 만개해 있는 형형색색의 꽃들을 바라보며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무엇보다, 사방에 가득 펴 있는 벚꽃들로 인해 근처의 경치가 전부 분홍색으로 가득 차 있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이곳까지 오길 잘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아.”

“아리엘, 오늘도 도시락 만들어 왔어? 다 좋은데 우리 황녀님께서 만드신 도시락은 무척이나 맛이 없더라고.”

“자기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주제에 상당히 뻔뻔스러운 말이로군요. 비앙카.”

각기 표현하는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가 웃고 있었다. 여인들은 평소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것을 내려놓은 채, 오늘 이곳에 찾아온 것을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변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꽃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또 아리엘이 정성들여 만들어온 도시락을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키리에가 상당히 심심함을 느꼈는지 주변에 만개해 있는 꽃들을 순식간에 피우고 지게 하는 재주를 선보이자, 아리아 또한 질 수 없다는 듯 봄에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한 꽃들을 창조해내어 우리 앞에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고, 떠들썩함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딱 한 명, 저들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 채 나무의 밑동에 가만히 걸터앉아 책을 보고 있는 한 명의 여인을 제외한다면 말이지만.

“...사라.”

모두가 나사가 하나쯤 빠진 것 같은 머저리처럼 굴고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독서를 즐기고 있는 저 모습에 나는 조용히 그녀의 옆에 다가가고 만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아, 카인.”

내가 자신의 곁에 다가오자마자, 사라는 자신이 보고 있던 책을 황급히 내려놓는다. 아무리 보아도 독서에 그리 열중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왜 그래, 혹시 오늘따라 몸이 좀 불편하다거나 이상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면, 다른 여자들과 어울리는 것이 거북하기라도 한 거야?”

일단 말은 그렇게 하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난 시간 동안, 사라 또한 다른 여자들과 함께 어울리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사라 나름대로 다른 여인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결과 다른 여인들도 전부 사라를 인정하는 기색을 비추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리스 또한, 자신들을 향하고 있는 애정의 조각 중 일부가 사라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주변 관계는 많이 안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야. 나는 그냥-”

나의 질문에 사라는 잠깐 우물쭈물하는 기색을 비추더니, 이내 나를 보며 아주 살짝 한숨을 내쉰다. 그녀의 시선은, 저편에서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다른 여인들을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내가 과연 이런 행복을 느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어서. 그리고 내가 과연 네 곁에 머물 자격이 있는가 싶어서. 그래서 여기서 잠깐 궁상을 좀 떨고 있던 것이었어. 미안.”

“...의문?”

“왜냐하면 나는, 다른 여자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여자잖아.”

그녀들을 향하고 있는 사라의 두 눈 속에는 열등감이 깃들어 있었고, 사라의 목소리 속에는 자신을 향한 자조어린 무언가가 내포되어 있었다.

“아이리스도, 비앙카도, 아리엘도, 키리에도, 아리아도 전부 다 자신들이 맡고 있는 방면에서는 특출나다고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확실한 목적의식도 가지고 있고, 언제나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여인들이잖아.”

“아마 저 여자들은, 설사 네가 없었다고 해도 자신들을 가로막고 있는 난관을 끝내 넘어설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 저 여자들이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어 먹을 수 있는 일종의 계기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야. 나는 어떠한 능력도 없고, 힘도 없으며, 너의 도움을 받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직도 과거에 갇혀 있었을 무력한 여자에 불과하거든.”

“과거, 내가 너의 하나 뿐인 약혼자였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그토록 협소하기만 하였으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아니지. 나는 이제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아. 애당초 비교해서는 아니 되는 일이며, 비교를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이렇게 주눅이 들고 말아. 과연 나 같은 여자가 저런 쟁쟁한 여자들의 옆자리에 선 채로, 너와 혼인을 올려도 되었던 것인지에 대해.”

“...사라.”

사라의 그 말에,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옆에 털썩하고 주저앉는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서로의 머리가 약간 휘날리고 말았다.

방금 전, 자신의 입으로 궁상을 떨고 있는 중이라고 했었나. 확실히 그 말이 옳았다. 이런 멍청한 주제를 가지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게 나쁜 건가? 혼자서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

“...뭐?”

순간, 사라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자신의 미간을 살짝 하고 찌푸렸다.

“사람이란 혼자서는 무언가를 해낼 수 없는 존재야. 애당초 자기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단체는 왜 만들어진 것이며 국가는 왜 만들어 진건데?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사실이 아니야. 정말 부끄러운 것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용기도 없이 운명에 수긍하고 좌절해 있는 일 그 자체이지.”

뭐, 사라의 태도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간다. 저기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여자들이 원체 보통 잘난 여자들이던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의 균형을 바꾸어버릴 수도 있는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는 여인들이 아니던가. 저런 여자들을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는다면 자기 자신에게 주눅이 드는 것 또한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리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사라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평범한 여인임이 틀림없다. 세상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어쩔 때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어쩔 때는 자신의 선택에 괴로워하기도 하며, 그를 반성해나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평범한 여인.

“만약 네가 처한 상황을 타파할 수 있던 사람이 오직 너밖에 없었더라면, 너는 변해야만 했겠지. 하지만 아니잖아? 네가 처했던 상황은, 외부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어. 그리고 내게는 너를 도와줄 힘이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거든. 저기 서 있는 여자들이 워낙 쟁쟁한 여자들이잖아? 저 여자들은 내 도움 같은 것은 필요 없이 잘 살 수 있지만, 너는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지. 그러니 너는 굳이 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여자의 현재 모습을, 변치 않고 포용해줄 수 있는 것 또한 남자의 능력이라 생각하니까.”

“.....”

카인의 그러한 말에, 사라는 문득 자신의 숨을 죽이고 말았다.

자신은 어릴 적부터 줄곧, 새가 부러웠다.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가 부러웠다. 구속 받지 않고, 자신이 갈 수 있는 어디로든지 날아갈 수 있는 새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렇기에, 자신 또한 그리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타인에 의해 구속된 삶이 아닌,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꿈을 꾸던 자신을 구해준 한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을 해주었다.

진심으로 네가 어딘가로 가기를 원한다면, 보내주겠다고. 강하게 소망한다면 세상에 갈 수 없는 곳은 없다며 그녀를 격려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이 좋았던 것 같다.

자신을 위하는 그의 말이 너무도 기뻐, 활짝 웃고 말았다. 그가 자신을 위해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은 이토록 고요하고 평안해지고 말았다.

그렇기에 그의 곁에 남고자 했다. 자신이 얼마나 그로부터 사랑받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 너는 또 나를 위해주고 있었다. 너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절실히 느껴져, 마음 속의 무언가가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만 같다.

자신에게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고, 내리쬐고 있는 햇볕은 그저 따스하게만 느껴져, 왠지 모르게 몸과 마음이 가볍게만 느껴진다.

아아, 그래. 그저 네가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게만 느껴지고 있다.

“거기서 대체 둘이서 무엇을 속닥거리고 있는 것인가. 여기로 오지 않고. 오늘은 다 함께 노는 자리가 아닌가.”

“맞아요. 개똥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이제 관짝에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라 생각했던 키리에가 꽤나 신기한 재롱을 보이고 있는 중입니다. 어서 와서 구경 좀 해보시지요.”

“...무식하기는. 이건 엘프들이 지닌 생득적 권능 중 하나입니다. 생명을 제한적으로나마 다루며 세계의 계통수를 전환한다는-”

“뭐, 그런 걸 내가 알 바 아니고. 우리 꼬맹이 여신님보다 뒤떨어지는 재주를 가지고 생색을 내는 꼴은 조금 우습긴 하네.”

“...저는 꼬맹이가 아니에요. 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죠. 결정적으로 현재의 제 키는 당신과 얼마 차이나지 않습니다만.”

“그래서? 나보다 작은 건 사실이잖아? 아니꼬우면 여신님의 권능인지 뭔지로 키를 늘려보던지.”

“당신, 정말...!”

평소와 같은 투닥거림이 이어진다. 요란스럽고, 떠들썩하며, 시끄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서로를 위하는 따스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정말로 안심이 되고 있었다.

“자, 시덥잖은 대화는 여기까지 하고 우리도 어서 가자. 잔소리꾼들에게 혼나기 전에.”

카인이 손을 내민다. 사라 또한 이번에는 그 손을 흔들림 없이 잡는다. 두 번 그의 손을 다시 놓치지 않도록. 아주 꽉.

그리고 그들을 향해 걸어가기 직전, 카인은 이제 막 생각이 났다는 듯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이제는 행복해, 사라?”

그 말에, 사라는 고개를 끄덕인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운 형태로서.

“...응. 아주 많이.”

돌아온 대답 속에는 망설임은 없었으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자, 하늘은 화창하기 짝이 없으며, 우리들의 소풍은 이제 막 시작이 되었을 뿐이다.

겨울의 넘어선 봄의 시작.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잊지 않고자 강하게 염원하며,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은 상태로 앞을 향해 걸어 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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