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상실에 걸린 마녀를 주워버렸다-196화 (196/201)

(EP.196)Epilogue. 행복의 끝 - 02

“...나 말이지, 아이리스 그 여자가 그런 식으로 웃는 거 처음 봐.”

아이리스가 에드를 출산한 직후, ‘산모와 아이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라는 아리엘의 논리에 우리들은 전부 방의 바깥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아리아와 키리에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으며, 사라는 남은 업무를 처리하러 집무실로 올라갔고, 엘레나는 에드의 몸을 씻겨주겠다는 명목 하에 그 방에 남아 있는 것이 허락 된 유일한 인물로 낙점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에스텔 공작가에서 한가하기로 따지자면 둘째라 해도 서러울 에스텔 소공작과 비앙카는 끝까지 방 안에 남아 있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고, 결국 아리엘의 손에 강제적으로 퇴출이 되기에 이르렀다. 순식간에 실업자 신세가 되어버린 나와 비앙카는 결국 갈 곳을 잃은 채 눈이 내리는 테라스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수다나 떠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방금 전의 일어났던 이야기의 전모가 되시겠다.

“그런 식? 아이리스가 어떤 식으로 웃고 있었는데?”

“...음. 뭔가, 굉장히 환하게 웃고 있었어. 상냥하고, 자비로운 얼굴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그리 말을 하던 비앙카는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다. 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한 채로 자신의 입꼬리만을 아주 살짝 비스듬하게 올린다. 그녀가 현재 짓고 있는 표정은, 평상시의 누군가가 웃는 얼굴과 굉장히 흡사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 여자는 이런 식으로밖에 웃지 못하는 딱딱한 여자라고 생각했거든? 그렇잖아? 무식하게 검이나 휘두르는 것을 좋아하는 야만스러운 성격에, 맨날 예법이 어떻고 황실의 권위가 어떻고 하는 고리타분한 잔소리만 늘어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기가 우리 중에 제일 잘났다며 모가지를 빳빳하게 세우고 다니던 여자가 바로 저 여자였거든?”

“.....”

,,,무서웠다. 아이리스의 앞에서는 언제나 ‘저하’라며 꼬박꼬박 존댓말을 붙여주던 주제에, 속으로는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란 말인가. 무릇 여자들의 관계 속에서는 진정한 친구도, 진정한 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격언이 정녕 사실이었다는 것인가.

“그런데, 방금 전에는 무척이나 다른 분위기를 내비추고 있었어. 그렇게나 자상하고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니. 그 여자만큼은 평생 동안 그런 표정과는 연이 없을 것이라고 내심 단정을 짓고 있었는데 말이지. 아니면, 어머니라는 존재는 전부 자기 자식을 향해 그런 얼굴을 짓게 되는 것일까.”

그리 말을 하고 있는 비앙카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중이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그런 그녀의 얼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바깥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눈보라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있지, 카인. 당신의 어머니도 당신을 향해 그런 표정을 지어주셨어? 당신을 긍정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당신을 사랑해주셨어?”

왠지 모르게 간절한 기색으로 나를 향해 그런 질문을 던져오는 비앙카를 향해, 나는 조용히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다.

“글쎄.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기억이 안나. 왜냐하면 어머니께서는 내가 굉장히 어릴 적에 돌아가셨거든. 아버지께서도 공작으로서의 업무가 워낙 바쁘셨던 지라, 내게 신경을 써줄 틈이 많지 않으셨거든.”

“하지만 언젠가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해주셨어. 어머니께서는 나와 엘레나를 낳은 뒤, 눈물을 글썽이셨다고. 자신의 아이로 태어나줘서 정말로 고맙다고 몇 번이고 되뇌이셨다고 전해 들었어.”

“...그렇구나.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 생각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조금은 부럽네. 어머니라는 존재가 자식을 사랑해준다는 것이.”

비앙카의 한탄을 하는 듯한 그 말에, 나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았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별 거 아니야. 실은, 나라는 여자에게는 부모라고 할 법한 존재가 마땅히 없어서 그런 것이거든.”

그러한 말을 늘어놓고 있는 그녀의 어조는 마치 오늘 아침에 먹었던 메뉴에 대해 논하는 것 마냥 평탄하기 짝이 없었다.

“...있지. 사실 나는 후작가의 영애 같은 대단한 여자가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귀한 신분으로 취급 받았을지 모르지만,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자의 실상은 마법을 좀 쓸 줄 아는 보잘 것 없는 계집애에 불과해.”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비앙카가 자신의 팔에 손톱을 꽉 하고 박아 넣는 장면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비앙카.”

그 뒤, 비앙카는 나를 향해 쉴 새 없이 이것저것에 대해 고백하였다. 실은, 자신은 카스타나 후작가에서 인공적으로 ‘제작’된 실험체 중 한 명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하지만 마법에 대해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카스타나 후작의 딸이 되었다는 것을. 자신의 핏줄 속에 카스타나의 혈통이 흐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후작의 친딸은커녕 실은 부모의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잡종에 불과한 여인이라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과거를 내게 낱낱이 밝혀 나간다.

“웃기지 않아? 과거, 네게 귀족답게 행동하라고 그리 잔소리를 늘어놓던 내가 실은 근본도 알 수 없는 천한 계집애였다는 사실이?”

“.....”

“조금 더 일찍 밝히지 못해서 미안해. 실은 너와 혼인을 올리기 전에 이런 말을 했어야 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무서웠어.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긴 하지만, 네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난 뒤 나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어.”

현재의 비앙카는 나와 두 눈을 마주하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흔들리고 있는 두 눈동자를, 내게 노출시키기를 꺼려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어머니의 자궁이 아니라, 어딘가의 실험관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나를 경원시했거든. 뭐, 그야 그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라도 목줄이 달려 있지 않은 맹견을 보면 경계부터 하기 마련이잖아? 하물며 사람의 머리통을 눈 깜짝할 사이에 구워버릴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버릇없는 계집애라면 두 말 할 필요도 없지 않겠어?”

비앙카는 키득거리며 스스로를 향하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래서 너라는 남자에게 끌렸던 것인지도 모르겠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유일하게 나를 사람으로 취급해주던 너라는 남자에게. 내가 어떤 여자인지 잘 알면서도, 나중에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던지던 그 때의 카인 폰 에스텔에게 말이지.”

그리고 그 때였다. 때마침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비앙카의 붉은 머리카락이 세차게 흩날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귀에 차고 있던 홍옥의 귀걸이가 내 눈에 들어오고 말았다.

“...카인. 네게 뭘 좀 한 가지만 물어봐도 괜찮을까.”

그녀는 자신이 차고 있는 귀걸이를 괜히 만지작거리며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귀걸이, 혹시 기억 나?”

“...네가 지금 차고 있는 그 귀걸이?”

그 질문에 나는 그녀가 차고 있는 붉은 귀걸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딱 봐도 그리 질이 좋지 않은 홍옥으로 만들어진 싸구려 귀걸이. 솔직히 말하자면 대륙에서 손꼽히는 부를 지니고 있는 카스타나 후작가의 영애가 차고 다니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한 귀걸이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저 귀걸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잘. 그리고 조금은 불명예스런 형태로서.

“그 날, 네가 야영지에 놓고 왔다며 나를 보고 가져오라고 시켰던 그 귀걸이?”

나의 대답에 비앙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스스로의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 야영지? 그건 대체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비앙카가 겪었던 미래 속에서는 내가 겪어야만 했던 부조리는 일어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것을 조금은 다행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딱 봐도 싸구려 귀걸이인데. 그런 건 대체 왜 끼고 다니는 거야?”

내가 최대한 가벼운 어조로 그리 대답을 하자, 그와 동시에 비앙카는 나의 정강이 쪽을 세게 걷어찼다. 아무래도 사심이 듬뿍 담겨 있던 탓인지, 그녀의 발끝에서부터 꽤나 강렬한 통증이 신경을 타고 올라오는 감각을 느끼고 말았다.

“...윽-! 너 지금 뭐하는...!”

“시끄러워! 넌 정말로 개자식이야. 너 같은 남자랑 결혼을 한 나도 똑같이 미친년이고.”

“.....”

그리 말을 하며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내게서 고개를 돌리는 비앙카. 예상 외로 격렬한 그녀의 반응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살짝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녀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비앙카. 사실, 나도 네게 고백할 것이 한 가지 있거든? 말해도 될까?”

“...뭔데.”

그것은 퉁명스럽긴 하지만 어디 한 번 마음대로 해보라는 긍정의 말투임이 틀림없었다.

“사실, 알고 있었어. 방금 전의 네가 말했던 것들. 네가 실은 실험체였다는 것부터, 후작의 친딸이 아니었다는 사실까지. 전부 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 말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두 번 다시 보지 않겠다는 기운을 뿌려대던 비앙카가 눈이 휘둥그렇게 변한 채로 나를 돌아보고 말았다.

“사실, 후작가를 떠나오기 직전에 네 후견인을 자처하는 그 노인네가 내게 전부 말해줬거든. 네가 어떠한 존재이며, 어떠한 비밀을 가지고 있고, 지금까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까지. 노인네의 입이 어찌나 가볍던지 내가 묻지도 않은 것까지 전부 상세히 말해주더군. 그러니까, 네가 내게 한 고백은 이제 와 새삼스레 충격을 받을만한 것도 뭣도 아니라는 말인 거지.”

“.....”

순간, 비앙카의 몸이 그대로 허공에 정지해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은, 할 말을 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잊어버린 사람과 유사하게 보일 뿐이었다.

비앙카가 가까스로 제정신을 차리고, 그리고 나를 향해 입을 열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꽤나 경과한 후의 일이었다.

“...그럼,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전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내게 진실을 감춘 이유는 대체 뭔데?”

“그야, 그 따위 것은 그다지 중요한 사실이 아니니까.”

나는 비앙카의 질문에 다소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를 하였다.

“내게 있어서는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자는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알아온 여인이며, 성격이 조금 파탄이 나 있으며,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이 의미가 있는 사실이었거든. 다른 게 대체 뭐가 중요한 사실이겠어.”

사실 성격이 조금 파탄난 수준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허용범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약간의 정서불안과 과격함을 지니고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물론 비앙카는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그 정도가 심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개성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터.

“그리고 고맙다, 비앙카.”

“...뭐가?”

“그 귀걸이. 아직도 가지고 있어줘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쭉 착용하고 있어줘서.”

그리 말을 하며 나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상자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사실, 조금 더 운치가 있고 분위기가 있는 환경에서 이것을 건네주고 싶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지금 그녀에게 이것을 건네주는 편이 올바른 선택인 것 같았다.

“...뭔데, 이건?”

“선물.”

딸깍-

내 말에 비앙카는 조심스레 내가 건네준 상자를 열었다. 내가 그녀에게 건네준 상자 안에는 귀걸이가 들어 있었다. 지금 비앙카가 귀에 걸고 있는 귀걸이와 같이, 홍옥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귀걸이.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녀가 귀에 걸고 있는 귀걸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물건이라는 점일까. 에스텔 공작가가 과거보다 훨씬 부유해진만큼, 이 정도의 지출은 허용범위라고 생각한다. 비앙카라는 여인이 나와 평생 동안 함께할 반려자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한 노릇이고.

“그 귀걸이. 내가 네게 선물한 지 10년은 훌쩍 넘었잖아. 그러니까, 언젠가 새 걸로 선물하려고 기회를 벼르고 있었거든. 실은 네 생일날 깜짝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네 생일 선물은 다시 고려해보는 수밖에 없겠네.”

“.....”

비앙카로부터 되돌아오는 대답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듯한 손길로, 상자 안에 얌전히 놓여있던 귀걸이를 꺼내들었다.

“한 번 껴보는 건 어때? 너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 말에 비앙카는 자신이 왼쪽 귀에 걸고 있던 귀걸이를 빼더니, 내가 선물해준 새로운 귀걸이를 착용하였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홍옥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귀걸이는 마치 처음부터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인 것 마냥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왼쪽 귀에만 새로운 귀걸이를 착용할 뿐, 오른쪽 귀에는 끝까지 새로운 귀걸이를 걸지 않았다.

“...새 걸로 바꿔 끼는 게 더 좋지 않아? 솔직히 말해 옛날 귀걸이는 너무 낡은데다가 싸구려라고 생각하는데.”

내 말에 비앙카는 자신의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내흔든다.

“아니, 나는 이런 형태가 더 마음에 들어. 앞으로도 쭉 이렇게 착용하고 다니려고.”

그리 말을 하며 비앙카는 웃음을 짓는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과 홍옥으로 이루어진 귀걸이는 내가 익히 예상했던 것처럼 너무도 잘 어울렸다. 그래, 예나 지금이나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인은 그리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미소를 짓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 생각한다.

“...카인.”

“...응, 왜?”

나의 반문에 비앙카는 아주 잠시 동안 스스로의 두 눈을 감더니, 이내 전에 없었던 똑바른 눈동자와 따스한 목소리를 한 채로 나의 이름을 부른다. 저리도 누군가를 향해 쑥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은, 분명히 내가 익히 알던 과거의-

“...고마워, 정말로.”

나를 향해 쑥스러운 듯 그러한 말을 하는 비앙카의 모습은, 어린 시절 내가 마주했던 언젠가의 소녀의 모습과 아주 많이 비슷할 따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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