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3)17. 여신(女神) 아리아 - 11
“이것 참. 이 나뭇가지, 키리에가 그녀에게 자살용으로 던져 준 물건이라지? 예전부터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것으로서 키리에 그 여자가 정신병자인 것이 증명된 것 같네. 이 정도나 되는 물건을 고작해야 자살하라고 선뜻 건네주다니.”
비앙카가 탁자 위에 꽂혀 있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자 그 광경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아이리스는 상당히 흥미롭다는 눈빛을 한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로 재미있는 묘기로군. 비앙카, 그대는 대체 어떤 트릭을 사용한 것이지? 그대의 자그마한 손바닥 하나 꿰뚫지 못하는 작은 나뭇가지가 단단한 원목으로 만들어진 탁자는 그토록 손쉽게 관통을 할 수 있다니. 설마 그 나뭇가지에 미리 마법이라도 걸어놓았던 것인가?”
아이리스의 말에 비앙카는 자신의 고개를 좌우로 살며시 내저었다.
“아니요, 저는 마법 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았어요. 저는 단순히 이 나뭇가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활용해본 것에 지나지 않아요.”
“...특성?”
비앙카의 말을 들은 아이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비앙카는 탁자 위에 꽂혀 있던 나뭇가지를 천천히 뽑아들더니 이내 자신의 손바닥에 그것을 다시 한 번 꽂아 넣었다.
소리는 없었다. 그리고 상처 또한 없었다. 흡사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을 관통한 것 마냥, 나뭇가지는 비앙카의 손바닥을 너무도 자연스레 투과하였다. 그 모습은 처음부터 비앙카의 손바닥에 나뭇가지가 꽂혀 있었다고 생각이 들 만큼 자연스러웠으며, 그렇기에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이기도 하였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저는 마법의 사용은 물론이거니와 마력 그 자체의 운용조차 하고 있지 않아요. 저는 그저, 이 나뭇가지가 저의 손바닥을 관통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
비앙카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설명에 내가 눈을 깜빡거리며 그녀에게 반문을 던진다.
“...그건 당연한 소리 아닌가? 자해라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세상 천지에 어떤 사람이 나뭇가지가 손을 관통하기를 원하겠어?”
나의 그러한 물음에 비앙카는 내가 지니고 있는 의문이 타당하다는 듯 스스로의 고개를 살며시 끄덕여준다.
“맞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몸에 나뭇가지를 쑤셔 넣고 싶다는 정신 나간 생각 따위를 할 리가 없지.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나뭇가지가 지니고 있는 능력의 핵심이야.”
비앙카는 자신의 손바닥을 관통하고 있는 나뭇가지를 뽑아들더니 그것을 내게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그녀로부터 받아든 나뭇가지는, 겉으로 보자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이 나뭇가지의 능력은 다름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찌르는 거야. 현재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 있는 소유주의 심상(心想)을 읽어내고, 그가 진심으로 찌르고자 마음먹은 ‘개념’을 파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나뭇가지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능력이지.”
“...본질을, 찌른다고?”
“그래. 키리에 그 여자가 신화시대부터 살아온 걸어 다니는 화석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대단한 물건을 뒷구멍으로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이런 물건은 현 시대의 마법으로는 도저히 재현할 수 없는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모르긴 몰라도 이 나뭇가지를 제작할 당시 천상의 여신 또한 어떠한 형태로든 도움을 주었던 것이 분명해.”
비앙카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비앙카가 왜 그렇게 감탄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본질을 찌른다고 하니, 언뜻 들으면 꽤나 대단해보이지만 실상은 사람 하나 제대로 관통하지 못하고 인체를 투과시키는 결함투성이의 물건이 아니던가? 내가 보기에는 그저 재미난 장난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은데.
“...과연, 그런 것이었군. 그래서 그 여자는 스스로의 자해에 실패하고, 자네 또한 스스로의 손바닥을 관통하지 못했던 것이로군. 재미있군 그래. 흡사 무술에서 이야기하는 심검(心劍)의 이치와 흡사하지 않은가.”
한편, 아이리스는 비앙카의 이야기를 전부 이해한 것인지 그녀와 유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이쯤 되니 이 방 안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던 것 같다는 울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카인,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도록 하게. 쉽게 설명하자면, 저 나뭇가지는 주인의 의지에 따라 예기(銳氣)가 변화하는 명검 같은 것일세. 주인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세상의 그 무엇이든 찌르고 파괴할 수 있지만, 동시에 원하지 않는다면 여인의 자그마한 손에조차 생채기를 내지 못하는 명검 말일세.”
“그 나뭇가지가 비앙카의 손을 관통하지 못한 것은 그녀 본인이 그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며, 탁자를 관통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비앙카가 그것을 진심으로 원하였기 때문이겠지. 본질을 포착하여 사물을 찌르기 위해서는, 그 전에 소유자의 심상을 읽어드림으로서 진심을 헤아릴 필요가 있으니 말일세.”
“.....”
이제야 아이리스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나뭇가지는 세상의 그 어떠한 갑옷을 두르고 있더라도 그 모든 것을 무시한 채 내가 목표하고자 한 본질만을 찌르는 날카로운 단검이라는 소리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녀가 저 나뭇가지로 스스로의 자해에 실패한 이유도 납득이 가는군요.”
그녀는 내게 이리 말하였다. 내게 용서 받기만을 바라였다고. 스스로의 죽음으로서 내게 속죄를 구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 말은 모순이다. 무릇 용서란 산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것. 스스로의 속죄를 위해 죽음을 택한다면, 결국 스스로가 용서를 받았는지 아닌지 확인을 할 수 없다. 이미 죽어 버린 사람을 위해 바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애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내면에 품고 있는 그러한 모순을 나뭇가지 또한 알아차렸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나뭇가지는 그녀의 심장을 투과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향한 용서를 추구하는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의 죽음을 진심으로 갈망하지 못하였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키리에의 진의가 이해되지 않는군. 정말로 그녀가 죽기를 바라였다면 날이 잘 드는 단검 한 자루라도 던져주었으면 될 텐데, 굳이 이런 거창한 물건까지 전해줄 필요가 존재하였던 것인가?”
아이리스의 의아함이 섞인 질문에 비앙카는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을 한다.
“뭐, 원래 정신이 나간 여자이니 평소 같으면 무슨 미친 짓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납득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 여자의 속내가 훤히도 들여다보이는군요. 이것도 그 여자가 지닌 악취미의 일종 같기는 하지만요.”
그리 말을 하는 비앙카의 두 눈은, 탁자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던 자그마한 반지를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그 여자는, 저희에게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한 가지 답을 제시해준 것 같군요.”
****
모든 것이 부서진다.
아리아가 스스로의 몸에 두르고 있던 강력한 결계, 끝을 알 수가 없던 무한한 마력, 그리고 지상의 만인을 압도하는 신력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들고 있는 나뭇가지 앞에서는 빛을 마주한 어둠마냥 안개처럼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본질을 찌르는 세계수의 나뭇가지. 주인의 심상을 헤아린 끝에 오직 한 가지 개념만을 파괴하는 능력을 지닌 이것은, 아리아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각종 요인을 모조리 투과한 끝에 그녀의 심장을 찌르는 것에 성공하였다.
내가 찌르고자 한 대상은 다름 아닌 아리아의 신성을 담아내는 그릇. 혹은 여신을 여신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무언가. 이 나뭇가지는 아리아의 심장을 정통으로 찔렀음에도 그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이 땅 위에 여신으로 메어두고 있는 본질만을 파괴하였던 것이다.
“...아리아.”
나는 잠이 든 것 마냥 정신을 잃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아리아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어본다. 내 품에 안겨 있는 아리아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평상시의 아리아임이 틀림없었다. 결국, 나는 아리아를 구해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리라.
“거봐. 내가 분명히 말했지. 너를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아무래도 이번에는 내가 널 이긴 것 같구나, 아리아.”
고개를 돌린다. 나의 뒤편에는, 무리하게 권능을 사용한 반동으로 인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아리엘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째서 나를 도와준 것일까. 아리아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목적은 겨울의 마녀의 죽음이었을 터. 내가 아리아를 구하려고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을 텐데도, 마음을 바꾸어 내 힘이 되어준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
솔직히 말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 또한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시간은 넘치도록 많다. 그런 이유쯤이야, 나중에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는 일 일터.
이곳에서 대략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마력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마법을 사용한 탓인지 탈진을 한 끝에 정신을 잃은 비앙카의 모습이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다. 여신 아리아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녀가 스스로의 죽음을 갈망하던 근본적인 원인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여신 아리아의 그릇에서 빠져나온 신성(神聖). 그리고 그녀의 잔여 신성에서부터 비롯된 통제할 수 없는 겨울. 그 모든 것을 없애고 해결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다시금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해결책은 이미 존재하였으니까.
반지. 여신 아리아가 손수 제작하였기에 그녀의 신성을 일부나마 담고 있었다는 반지. 아리아가 여신으로서 각성을 하는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였던 바로 그 반지.
아리아의 신성이 전부 빠져나간 현재의 그 반지는 빈 깡통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바로 그렇기에 의미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반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신성이라는 기운을 담아낸 전적이 있는 그릇일 터. 그렇다면, 아리아의 몸에서 빠져나온 신성을 이 반지 속에 다시금 봉인해내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는 흐르는 별이 있으니까. 흐르는 별이 정말로 여신이 만들어낸 검술이라면, 신성을 완전히 통제해내지는 못할망정 도로 반지 안쪽으로 되돌리는 것쯤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우웅-
남아 있던 모든 힘을 쥐어 짜내 마지막으로 흐르는 별을 시전 하였다. 다행히, 나의 판단은 옳았던 것인지 아리아의 몸에서 빠져나온 신성은 별다른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반지 안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아리아의 신성과 반지는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다시금 하나로 융합되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하고 말았다.
“...하아.”
모든 기운이 완벽하게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모든 긴장감이 풀린 나는 그 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이것으로 된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전부 끝났다. 아리아는 더 이상 스스로의 죽음을 갈망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장차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미래 또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이리스가, 잔소리를 잔뜩 하겠군.”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며 호언장담을 내뱉었는데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된 몰골을 보면, 그녀가 내게 무슨 말을 던질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게는 하지 않아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리 생각을 하며 바닥에 얌전히 놓여 있던 반지를 주워든 바로 그 순간-
“...어?”
쩌적-
아리아의 신성을 봉인한 반지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균열이 난 틈새로, 방금 전 봉인한 것이 분명한 아리아의 신성이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하였다.
“이, 이건...”
무엇이, 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던 것일까. 설마 아리아의 신성을 담아내었던 이 반지는 단순히 일회용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여신으로서 완전히 각성한 아리아의 거대한 신력을 담아내기에 이 반지는 너무나도 자그마했던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신성을 담아낸 이 반지가 지금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
“...이런. 빌어, 먹을-”
혹여 이 반지가 폭발이라도 하게 되면, 그 말은 즉 아리아의 신성이 다시금 세상에 해방된다는 의미일 터. 다시 말하자면, 아리아가 그토록 통제하려고 애를 썼던 저 눈보라가 세상에 풀려난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다.
안 된다. 그것만큼은 안 된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이러한 결말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고작해야 그 따위 이유로 모든 것을 망치게 놔둘 수는 없다!
“...윽, 크-”
어떻게 해서든 다시 한 번 흐르는 별을 사용해 신성을 반지 안에 쑤셔 넣으려고 하였지만, 지칠 대로 지친 나의 몸은 평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니, 설사 온 몸이 멀쩡하였더라도 반지 안에서 요동치는 신성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반지 안에서 휘몰아치는 힘은 거세고, 강렬하였다.
“하, 아-”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흐르는 별을 사용해 신성력을 내 몸에 봉인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저것이 세상에 풀려나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
“...하여간. 다 좋은데, 당신은 언제나 끝마무리가 시원찮군요.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놓고 방심을 하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어?”
그 순간, 반지 안쪽에서 휘몰아치던 신성이 거짓말처럼 조용히 가라앉았다. 마치, 주인이 기르는 번견에게 얌전히 있으라는 명령이라도 내린 것과 같은 순종적인 움직임이였다.
“아리아의 신성을 담아낸 반지 속에 다시금 그녀의 신성을 재봉인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힘을 인도하는 방식이 너무도 서투르고, 무엇보다 여신의 신성의 일부만을 담은 반지에 신성 그 자체를 봉인하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당신이 실패한 원인은 바로 그런 이유였습니다.”
나를 바라보며 충고를 해주는 듯한 보랏빛 머리카락의 그녀. 단아한 얼굴과, 나를 바라보는 보라색 눈동자. 그녀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아리엘 티에르임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달랐다. 현재의 그녀에게서는, 평소의 아리엘다운 느낌이 나지 않았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방금 전까지의 아리아를 바라보는 듯한 무언가 아득한 느낌. 나는 이 느낌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반지 안쪽에서도 눈앞에 있는 그녀와 똑같은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여신 아르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