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8)17. 여신(女神) 아리아 - 06
우리가 서 있는 숲의 한 가운데에, 미적지근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방금 전까지 이곳을 떨쳐 울리던 폭음도, 주위를 가르던 검격 간의 충돌도 이미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어떠한 소리도 동반하지 않고 있는 싸늘한 침묵 뿐.
허나 지금 이 자리를 감돌고 있는 침묵 속에는 방금 전과 비교하더라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극한까지 잘 갈린 듯한 날카로운 살기가 서로의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찌르고 있었다. 이미 한계 이상으로 부풀어 오른 듯한 풍선이 더욱 더 부풀어 오른 끝에 파열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비유하자면, 그것은 죽음과 죽음의 만남이었다. 키리에는 우리가 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기 위해, 그리고 우리는 그런 키리에를 뛰어 넘어 그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서로 간의 살기를 날카롭게 벼려내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아니, 여차하면 그녀를 죽인다는 각오도 없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지극히 오만한 생각임이 틀림없었다. 상대는 키리에 엘 데나리스. 세계수의 수호자이며, 동시에 수백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스스로의 무(武)를 갈고 닦아온 절대자.
고작해야 십 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검을 수련한 내가, 여차하면 키리에를 죽이겠다는 필사의 각오도 없이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 올려온 수백년이라는 시간과 맞먹을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니 굳세게 다짐을 한다. 지금 내 시야에 닿지 않는 곳에 서 있는 그녀에게 한 순간이나마 닿기 위해서, 여차하면 키리에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을 각오를.
“정신을 최대한 집중시켜. 긴장을 한 순간도 늦추지 마. 타이밍은 전부 네게 맞출게. 그러니까 너는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는 것에만 신경을 써.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 것인데...”
“...죽지 마. 절대로.”
방금 전, 비앙카의 ‘백염의 탄식’과 키리에의 저격이 충돌한 여파로 내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주위의 나무들이 전부 쓸려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 덕분에 시야가 탁 트이게 되었고, 적이 우리를 향하는 저격의 궤도 또한 파악하기가 용이하게 되었다.
눈에 오러를 최대한 집중시켰음에도 그저 자그마한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숲의 북동쪽에 우뚝 솟아 있는 한 그루의 나무. 아마 저곳이 키리에가 우리에게 저격을 행하고 있는 위치임이 틀림없을 터.
저격수의 위치를 알고 있고, 주변의 시야가 탁 트여 있다면 방금 전과 같이 적이 쏘아내는 저격이 내 사각지대를 향해 기습적으로 날아올 걱정만큼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오직 두 가지. 비앙카에게는 키리에의 저격에 대응할 만한 화력이 있을지언정 반응 속도는 없다는 것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장소와 키리에가 있는 장소 사이에 거리가 너무 먼 나머지 이쪽의 공격이 저쪽에 전혀 통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
만약 비앙카의 조력이 없다면 나는 5km라는 거리를 넘어 키리에에게 접근 그 자체를 할 수 없을 것이며, 반대로 내가 키리에의 화살을 처리해주지 않는다면 비앙카는 키리에의 저격에 반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금방 당해버리고 말 테지.
섣불리 키리에를 향해 공세를 펼칠 수도, 그렇다고 계속해서 수비에만 전념할 수도 없는 외통수에 걸린 상황.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만약 키리에의 저격이 비앙카에게 닿기 전에 궤도를 어긋나게 하는 것과, 저격수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에게 접근을 하여 어떻게 해서든 백병전을 유도하는 것을 동시에 처리하면 되는 일이 아니던가.
“...마법은 준비가 완료됐어. 현재 내가 구사할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섬광 계열의 마법. 속도는 대략 음속의 세 배 정도. 키리에가 서 있는 장소에 닿기까지 5초 정도면 충분할 거야. 문제점이 있다면 통상적인 마법의 시전 시보다 더 빠른 속력을 내기 위해 섬광의 위력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인데-”
그거라면 상관없다. 지금부터 비앙카가 쏘아낼 마법이 키리에의 저격에 비해 파괴력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내가 그만큼 보충해주면 되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으니까.
“.....”
아까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전신에서 땀방울이 흐른다.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이 우리를 감싸 안는다. 그녀가 행했던 마지막 저격으로부터 20초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키리에로부터 저격이 행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방금 전, 비앙카는 내게 이리 말을 했었다. 세계수의 백업을 받고 있는 키리에는, 충분한 시간만 투자한다면 지금까지 내쏘아진 저격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의 화살을 쏘아낼 수 있다던가.
지금까지 우리를 향해 내쏘아진 저격 사이의 시간차는 많아봐야 15초 정도. 4번이나 반복이 된 저격들 중 키리에가 이렇게 많은 준비 시간을 필요로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단 한 가지. 그녀가 이번에 쏘아낼 저격은, 방금 전까지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눈에 핏발이 서도록 모든 정신을 집중 시킨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맡은 역할은 다름 아닌 비앙카에게 내쏘아질 저격의 타이밍을 말해주는 것.
키리에가 우리를 향해 화살을 쏘아낼 바로 그 때가 바로 기회다. 동시에 키리에가 우리들의 책략을 눈치라도 챈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기회는 단 한 번. 이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고, 이 정도의 위력을 지닌 저격이 실패로 돌아갈 리가 없다고 자만을 품고 있을 때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이다-
3초 전.
2초 전.
...그리고, 1초 전.
“비앙카, 지금!”
순간, 보았다. 이 거리에서는 보일 리가 없었음에도 똑똑히 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키리에의 장궁으로부터 끔찍하다고 밖에 표현한 길이 없는 위력을 내포한 화살이 우리를 향해 내쏘아지는 그 광경을. 화살의 속도는, 일찍이 행해진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내쏘아진 저격이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겨우 3초 전.
그리고 그와 동시에, 키리에의 저격에 대항하기 위한 비앙카의 마법이 시전 된다.
순간, 5km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있던 키리에 또한 그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 자신이 저격을 감행하자마자 그것만을 기다렸다고 하는 듯 마법을 시전하는 비앙카의 모습을.
시전 되는 마법의 종류는 아마 섬광 계열의 마법. 저들의 노림수란 너무도 뻔해 그 속이 훤히도 들여다보이고 있었다. 모든 마법들 중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섬광 계열의 마법을 통해, 자신이 행하는 저격을 중간에서 요격하고자 하는 속내임이 틀림없겠지.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앙카가 치고 있는 발버둥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키리에가 이번 저격을 쏘아내기 위해 들인 시간은 무려 30초. 그 전까지의 저격에 걸린 시간에 배를 넘는 시간. 그에 비례해, 키리에가 쏘아내는 화살 또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을 자랑한다.
키리에가 생각하기에 저들이 이번 저격을 막아 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백염의 탄식’ 급의 마법으로 맞대응을 하거나 혹은 카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펼쳐내는 절기(絶技)를 사용해 방어를 굳히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고작해야 섬광 계열의 마법 따위로 그녀가 쏘아낸 필살의 저격이 가로막힐 리가 없었다. 그녀가 감추고 있는 패가 고작해야 저것 하나뿐이라면, 비앙카가 쏘아 보낸 섬광 따위는 흡사 바위에 부딪힌 계란과 같이 그녀의 저격 앞에서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게 되리라.
...그래, 그들의 노림수가 정녕 그것 하나뿐이었다면.
“.....!”
키리에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섬광을 쏘아 보낸 비앙카의 주위를 샅샅이 훑어본다. 하지만 없었다. 비앙카의 근처 어디에도, 카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설마 비앙카가 쏘아낸 섬광 마법은 미끼였으며, 카인은 비앙카가 벌어주는 시간을 틈타 자신에게 육박하고 있는 도중인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현재 그녀의 시야가 미치는 곳 그 어디에서도 카인의 기척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욱이, 카인은 비앙카의 안전이 확보되지도 않았는데 그녀를 미끼로 둔 채 자신을 상대하러 올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기이하다.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으며, 현재 어디에 있는 것이란 말인가.
순간, 키리에의 머릿속에 한 가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스치고 지나간다. 허무맹랑하고, 평상시에 들었다면 재미난 농담이었다며 웃고 넘겼을 법한 상상.
키리에의 떨리는 두 눈동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천상을 가로지르고 있는 새하얀 섬광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수 없다고 드는 것 마냥, 하늘을 밝게 물들이는 두 빛이 직격하기 1초 전.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몰라도, 섬광 그 자체를 발판으로 삼은 채 그 위에 서서 자신에게로 육박하려고 드는 카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큭!”
나의 아이디어는 비교적 단순했다. 이대로 방어를 굳히고 있기만 한다면 도저히 승산이 없으며, 그렇다고 그녀를 백병전으로 몰고 갈 방법도 존재하지 않고, 무엇보다 비앙카를 노리고 쏘아질 저격을 처리할 방법 또한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 딱 한 가지 방법을 제외한다면.
비록 유효 타격까지는 기대할 수 없다 하더라도 비앙카가 쏘아 보내는 마법은 고작해야 5초 만에 키리에가 있는 위치까지 도달할 정도의 속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내게는 일정 영역의 모든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는 검술인 ‘흐르는 별’이 있다. 그렇다면 비교적 간단한 이야기이지 않는가.
키리에가 쏘아낸 저격에 대항해 비앙카가 마법을 시전하면, 어떻게든 타이밍을 맞춰 흐르는 별을 사용한 뒤 섬광의 에너지를 한 쪽 방면으로 지향시켜 그 마법에 어떻게 해서든 ‘탑승’을 하는 것이다.
물론, 광자(光子)로 이루어진 섬광에 인간의 몸을 기댈 장소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섬광 계열의 마법은 순수한 빛이 아니라 마력을 빛으로 전환시킨 일종의 에너지와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비앙카가 약간만 도움을 준다면 오러와 마력 사이에 생기는 반발력을 이용해 어떻게 해서든 섬광 마법에 탑승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다행히도 나의 아이디어는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물론, 오러로 전신을 보호하기는 했지만 살아있는 인간의 몸으로 음속의 수배나 되는 속도를 내며 하늘을 주파한 대가로서 온 몸이 갈가리 찢어졌지만, 그것 정도는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다.
내가 키리에를 꺾기 위해서 돌파해야 했던 난관은 총 두 가지. 하나는 생각했던 대로 섬광 계열의 마법에 내가 ‘탑승’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섬광 마법에 탑승을 한 채로 키리에가 쏘아낸 저격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음속 따위는 옛적에 돌파한 초월적인 저격 속도, 그저 자그마한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화살의 크기, 그리고 인간의 몸으로 음속을 돌파한 대가로 전신에서 일어나고 있는 출혈이라는 삼중고(三重苦).
하지만 해내야 한다. 아니, 해내야만 한다. 내가 만약 지금 키리에의 저격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저 화살은 필연적으로 비앙카를 향해 질주를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녀가 나만 믿고 키리에를 향해 섬광을 쏘아낸 지 겨우 2초. 앞으로 1초 뒤 직격할 저격에 대항해 그녀가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 마법을 자아낼 틈 따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의 내게 실패 따위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순간, 나의 검이 거꾸로 뒤집혔다. 내 모든 마음을 담아내 날아드는 화살을 그대로 직시한다. 전에 없을 정도로 오러를 잔뜩 머금은 검은, 무언가에 명동(鳴動)하기 라도 하듯 강렬한 기세를 내포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떠올리고 있는 것은, 한 때 아이리스라는 하늘을 베어냈던 그 때의 그 검.
너무나도 빠르고, 너무나도 자그마한 나머지 제대로 직시조차 할 수 없는 그녀의 화살을.
극천(極天)이라는 이름의 나의 검이, 그대로 반으로 베어내 버리고 말았다.
"...아."
그리고 키리에 또한 분명히 보았다.
천상에서 빛과 빛이 교차하는 그 광경을.
한 줄기 섬광은 그 기세를 잃지 않고 북동쪽으로 나아갔으며.
다른 한 줄기 빛은, 다 타버린 별똥별과 같이 허공에 녹아들 듯 그대로 사라지고 마는 그 모습을.
쥐고 있던 시위에서 손가락을 놓은 지 4초가 되는 시점. 무언가 대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키리에-!”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는 음성은 그보다 한 발짝 늦게 도착한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당연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음속의 몇 배나 되는 속도로 그녀를 향해 육박하고 있었으니까.
그가 자신에게 도달하기 까지 아직 1초라는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그녀는 반격할 기색을 보이지 않은 채 스스로의 손을 아래로 내리고 있기만 한다.
승패는 이미 판가름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여기서 꼴사나운 저항을 이어나가는 것 또한, 지극히 추한 일이 아닐까. 적어도 키리에 엘 데나리스라는 여인은 그리 생각하였다. 언제나, 그리고 어디에서나 여인이란 존재는 자신의 남자 앞에서 멋진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법이었기에.
“...훌륭해요, 카인.”
키리에는 입가에 미소를 누그러뜨리지 않은 채 그를 향해 그리 중얼거렸다.
푸욱-
“당신의, 승리입니다.”
가슴팍에 무언가가 꽂히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듯 자신의 반려를 바라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