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7)17. 여신(女神) 아리아 - 05
콰아아앙!
사방에 거대한 열풍이 휘몰아친다. 빛으로 인해 양단된 숲은 작게나마 스스로의 빛을 잃지 않고 있고, 폭발에서 비롯된 대기의 진동은 주위의 모든 것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우리의 주변은 이미 폭심지의 한 가운데처럼 움푹 패인 끝에 크레이터의 형상을 띠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은 오직, 키리에가 우리를 향해 내쏘아낸 화살과 그것을 받아치기 위해 전력으로 내질러진 내 검이 맞부딪힌 결과였다. 그렇다. 이것은 무척이나 단순한 이야기임이 틀림없었다. 키리에가 쏜 화살에는, 그 정도의 위력이 내포되어 있었다는 단순한 이야기.
“...하, 아...”
방심했다. 무엇을 방심했냐면, 제 아무리 속도가 빠르고 막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키리에가 내쏘는 것이 고작해야 ‘화살’에 지나지 않는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비앙카처럼 강대한 파괴력을 지닌 마법을 쏘아내는 것도 아니며, 아이리스처럼 막강한 오러를 머금은 검격을 내지르는 것도 아니다.
화살의 속도와 파괴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바꿔 말하자면 그것이 전부. 기본적으로 원거리 공격이란, 공격 이전에 표적을 미리 정해놓고 투사체를 발사해야한다는 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적이 쏘아 보내는 화살과 미련하게 정면에서 충돌할 필요성은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방금 전에 쏘아내진 화살은 부지불식간에 덮쳐온 화살인지라 그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고 말았지만, 지금은 키리에가 우리를 향해 저격을 시도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도의 힘으로 그녀가 내쏜 화살을 흘려보낼 수 있다는 말일 터. 저격자가 아무리 강한 완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내쏘아진 화살의 위력에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시간을 번 후, 비앙카가 저격자의 위치를 감지한다면 그녀의 도움을 받아 전진을 거듭해 키리에와 근접전에서 승부를 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나의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궁수들이 지니고 있는 상식 따위, 키리에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키리에로부터 제 2격이 내쏘아진 이후, 나는 스스로가 얼마나 오만한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내쏘아낸 2격은, 방금 전의 그것은 그저 인사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듯 음속을 훨씬 상회하는 속도와 방금 전의 배는 넘는 위력을 내포한 채로 우리를 향해 덮쳐들었으니까.
“빌어먹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비앙카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시키고 있는 상태였다.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설마 아직도 30초란 시간이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체감 상으로 따지자면 5분은 훨씬 지난 것 같은데?
게다가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저격이 소리 없이 덮쳐들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압박감. 음속을 훨씬 넘어서는 속도로 날아드는 저격에 내가 과연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는 불안감이 나의 정신력을 시시각각 갉아먹고 있었다.
또한 이곳이 울창한 숲의 한 가운데라는 점이 문제이기도 하였다. 탁 트인 개활지였다면 우리를 향해 덮쳐드는 저격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거대한 나무들로 인해 시야가 제한된 이곳에서 초음속을 넘나드는 저격을 미리 감지하라는 것은 무리나 마찬가지다-
그 때였다. 제 3격이, 아무런 소리도 동반하지 않은 채 대기를 미끄러지듯 날아온다. 우리를 향해 덮쳐오듯 날아오는 그 광탄을, 내게 직격하기 겨우 1초 전에야 인지할 수 있었다.
“.....!”
이제는 육안으로 시인할 수조차 없는 초스피드의 화살. 흘려내는 것은 도저히 무리다. 검신에 오러를 최대한 집중시킨 후, ‘흐르는 별’을 통해 대기의 진동을 가까스로 읽어내어 화살의 경로에 검을 가져대 댄다!
콰아아앙-!
검과 화살이 다시 한 번 충돌한다. 충돌의 여파로, 주위의 대기와 나무들이 찌르르하고 스스로의 몸을 진동시킨다. 아슬아슬하였다. 키리에의 저격은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위력을 완벽히 흘려내지 못하였기에 남는 파괴력이 주변을 철저히 초토화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큭...!”
위험하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위험하다. 키리에의 화살은 우리를 향해 내쏘아질 때마다 더욱 위력이 강해지고 있었고, 더욱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화살에 마력을 주입하고 있는 것인지, 정령의 도움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자신의 실력을 전부 발휘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몰라도 이대로라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패배뿐이다.
그녀가 쏘아 보낸 3격을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에 덮쳐들 제 4격이 이상으로 속도가 빨라지고 더욱 강한 파괴력을 내포하고 있다면 완벽히 막아낼 자신 따위 어디에도 없다. 설사 방어에 성공할 수 있더라도 몸 상태는 결코 멀쩡하지만은 않겠지.
즉. 그녀가 쏘아낸 저격에 대항해 방어를 굳히는 방법으로는 승산이 도저히 존재하지가 않았다. 그녀에게 승리를 거두고 싶다면, 나는 다른 방법을 고안해내야만 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수로?
적은 최소 3km 밖의 거리에서 우리를 저격하고 있다. 물론, 제 아무리 키리에라고 한들 이 정도 위력을 지니고 있는 화살을 무한대로 내쏠 수는 없겠지만 이쪽은 이미 한계에 가깝다. 애당초 우리는 저격자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끼리릭-
나의 단순한 착각일까. 어딘가에서 활의 현이 최대치로 당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내가 볼 수 있는 시야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어느 장소에서, 우리를 향해 살기를 집중시키고 있는 어느 궁수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체내에 존재하는 시계를 다시금 되새긴다. 지금 이 순간, 방금 전에 내쏘아진 일격으로부터 10초라는 시간이 경과하였다. 그렇다면, 현재 화살은 아직도 시위에 걸려있는 상태일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리기 위해 대기를 가로질러 날아오는 중인 것일까.
거듭된 충돌의 여파인지, 아니면 긴장 탓인지 검을 쥔 손이 떨린다. 그녀의 화살을 세 번이나 연속으로 튕겨낸 탓인지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나의 오른쪽 눈 위쪽으로 흘러내리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왼손을 들어 땀방울을 훔쳤으며.
“.....!”
다음 순간, 방금 전에 행해진 저격의 위력을 한참 넘어선 빛의 섬광이 나의 바로 앞에서 폭사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죽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일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고 말았다. 늦었다. 한순간이라도 긴장감을 늦춘다면 패배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끝내 자진해서 스스로의 방비를 푼 나의 패배였다.
...아니, 이대로라면 나의 패배로 끝날 예정이었다.
“카인-!”
나를 향해 덮쳐오는 빛의 섬광의 바로 앞을, 흡사 나를 보호하려는 듯 내 앞에 끼어든 초고열의 백염(白炎)이 가로막는다. 내쏘아진 두 빛의 위력은 완전히 동등. 두 빛은 각자 스스로의 우위를 주장하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발광(發光)을 거듭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창과 망치의 대결. 파괴력으로만 따지자면 백염 쪽이 우위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인간을 꿰뚫으려 하는 관통력만 따진다면 빛의 섬광의 우위였다.
허공에서 격렬하게 부딪히는 두 빛. 그 둘은 스스로가 내쏘아진 목적을 다하기 위해 길항에 길항을 거듭하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허공에 녹아들고 말았다.
“...비앙카.”
옆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전신의 모공에서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비앙카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 4격이 내게 직격하기까지 겨우 1초미만. 그 짧은 시간에 그녀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강대한 마법인 ‘백염의 탄식’을 시전하여 나를 보호하느라 전신의 마력을 일시적으로 한계까지 내딛게 한 여파임이 틀림없었다.
“...멍청하긴, 적을 눈앞에 두고 긴장을 놓치는 한심한 짓은 대체 왜 저지르는 거야?”
그리 말을 하는 비앙카의 목소리 안에는 왠지 힘이 빠져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가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뭔지 모를 무언가가 맺혀 있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건 그렇고, 적의 위치를 확인했어. 방향은 네가 말했던 대로 북동쪽. 거리는 이곳으로부터 대략 5km. 적어도 20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대한 나무의 꼭대기에서 키리에는 태세를 갖춘 채 우리를 저격하고 있는 중이야. 통상적으로 보자면 말도 안 되는 거리의 초장거리 저격이지만, 그녀는 현재 정령들의 도움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수의 백업을 받아 그 정도의 요격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추측하고 있어.”
“5km...”
헛웃음이 나온다. 말이 좋아 5km지, 일반적이라면 인간을 저격하기는커녕 그곳에 서 있는지조차 식별할 수 없는 머나먼 거리가 아니던가. 그 정도의 거리를 격한 상태로 이 정도의 정밀도를 지닌 저격이 가능하다니. 아무래도 키리에라는 여인은 내 예상을 한참이나 넘어선 괴물이었던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방금 전, 네가 키리에의 화살을 막아냈던 것처럼 그녀의 저격을 막아낼 자신은 있어?”
“...그건 무리야. 확실히, 그녀가 쏘아내는 저격 자체라면 막아낼 수 있지만, 나는 너와 같은 반응 속도를 가지고 있지 못한 걸. 방금 전에는 운이 좋아서 그녀의 저격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런 요행이 거듭되기를 바라는 것은 도박이라고 생각해.”
“네가 아리아와 싸울 때처럼 전신에 마력 장벽을 휘감는 채로 저격수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적은 세계수로부터 백업을 받고 있는 중인걸. 시간만 충분히 들인다면 그녀는 지금보다 열 배는 강한 저격을 행할 수 있어. 십중팔구 그녀의 앞에 도달하기도 전에 내 마력이 바닥나게 될 걸.”
“그렇다면, 현재 네가 사용 가능한 마법 중 키리에에게 닿을 만한 마법은 있어? 이쪽에서 역으로 키리에를 저격하는 방법은 가능할까?”
“당연히 있기는 하지. 하지만 내 마법은 현재 키리에가 행하는 저격만큼 빠른 속도를 내지 못해. 그녀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파괴력까지 내포한 상태라면 기껏해야 음속의 두세 배 정도? 그 정도 속도라면 마법이 목표물에 도달하기도 전에 키리에가 충분히 회피할 수 있을 테니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어.”
“.....”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기색의 비앙카가 내게 이리 약한 소리를 늘어놓는 장면은 처음 본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불가능하다니. 가라사대, 숲의 한복판에서 엘프를 상대한다는 우를 범하지 말라던가. 하물며 세계수의 바로 앞에서 세계수의 수호자인 엘프를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행동이었는지 지금에서야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무언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지금 이 상태라면 우리 둘의 힘을 합쳐도 키리에로부터 판정승을 거두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저격수를 상대하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다름 아닌 근접 거리에서 행해지는 백병전일 테지만, 키리에와 우리 사이의 거리는 무려 5km. 우리의 상태를 낱낱이 확인할 수 있는 눈을 지닌 저격수로의 섣부른 전진은 오히려 그녀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저격을 대비한 단단한 방패를 내세우는 것도 불가능하며, 역으로 이쪽에서 그녀를 저격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란 다름 아닌-
“비앙카, 마침 내게 한 가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게 뭔데?”
“그러니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나는 비앙카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그 ‘아이디어’라는 녀석을 말해본다. 내가 말을 내뱉으면 내뱉을수록 비앙카의 얼굴은 기묘하게 변화를 하더니, 내 말이 끝나자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왈칵하고 일그러뜨린다.
“너 미쳤어? 그런 정신 나간 생각은 대체 어떻게 떠올린 거야? 절대로 안 돼. 그건 너무 위험해.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나를 과부로 만들 생각이야?”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어. 조만간 키리에로부터 다시금 저격이 쏘아질 거야. 이대로 방어에만 치중한다면 결국 우리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지금 여기서 후퇴를 한 다음 태세를 정비한다고 한들 그녀를 꺾을 방법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그렇다면, 여기서 도박을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리 말을 하며 내가 상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백색의 눈보라를 가리키자 비앙카는 스스로의 아랫입술을 꽉 하고 깨문다. 아무래도 그녀 또한 나름대로 결의를 다진 것 같았다.
“...나쁜 자식. 혹시라도 네가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너랑 키리에 둘 다 내가 꼭 죽여 버릴 거라고.”
나를 사납게 바라보던 비앙카는 이내 키리에가 서 있는 북동쪽을 바라보며 마법의 시전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방금 전과 같이 키리에의 저격을 방어해내기 위한 마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쪽에서 그녀를 향해 치고 나가기 위한, 영격을 위한 밑준비였다.
그와 동시에, 나 또한 검을 들고 정신을 최대한 집중한다. 이번에는 방금 전과 같은 얼빠진 실수를 저지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스스로의 정신을 바늘 끝까지 잘 갈린 무언가라고 생각해라. 기회는 오직 한 번. 재시도 따위는 생각지도 마라. 여기서 키리에라는 난관을 넘어서지 못하면, 아리아를 구해낼 기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해라.
“...간다.”
순간, 직감하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몇 초 후, 나를 향해 내쏘아질 키리에의 저격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승패의 행방을 좌우하는, 최후의 저격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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