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상실에 걸린 마녀를 주워버렸다-186화 (186/201)

(EP.186)17. 여신(女神) 아리아 - 04

대수림의 결계 안쪽은, 바깥에서 보이는 풍경과는 달리 다소 온화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안은 이미 인세의 지옥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생각하던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이곳은 그저 평범한 숲과 다름없어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사방 어디를 돌아보더라도 먹음직스런 과일이 주렁주렁 달려 있으며, 각종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지만.

그래, 바깥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강풍은 그저 불청객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주장하는 것 마냥.

하지만 이곳은 적지나 마찬가지.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더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아니, 오히려 비앙카는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을 지으며 나를 힐끗 돌아본다.

“...카인, 혹시 눈치 챘니?”

“그래. 이쯤 되면 무언가 방해가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묘할 정도로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군.”

나와 비앙카가 대수림의 안쪽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은 지 그럭저럭 1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우리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주위에 생명의 기척 그 자체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이곳은 세계수가 위치해 있는 곳인 동시에 엘프들의 삶의 터전인 것이 분명할 터. 혹시라도 대수림 안쪽으로 몰래 침입하려는 얼간이들을 강대한 무력을 지닌 엘프 파수꾼들이 제거한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가 무색하게도 나와 비앙카의 앞을 가로막는 이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대략 두 가지. 첫 번째는 파수꾼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요격할 만한 상황이 아니기에 우리를 방치해두고 있는 것.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바로-

“...키리에.”

침입자를 배제하기 위한, 처형자가 이미 우리의 근처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전방 20미터 정도. 그곳에는, 다소 의욕이 없어 보이는 살기를 두르고 있는 키리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다소 느긋한 도착이로군요. 여기까지 당도하는데 어떤 장애물도 존재하지 않았을 텐데 이리 지각을 해버리다니. 신중함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나요?”

우리와 대면하고 있는 키리에의 모습은 다소 흐릿하다. 마치,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그녀의 모습을 우리들의 눈앞에 투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다면 그녀는 지금.

“우리 앞에 본모습을 드러낼 용기도 없어서 환영을 내보낸 여자의 입에서 듣고 싶은 말은 아닌데. 당신 같이 음흉한 여자에, 거기다가 상공에 저런 것까지 둥둥 떠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경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키리에를 향해 응수를 하는 비앙카의 목소리는 다소 가시가 돋혀 있는 것 같다. 새삼스럽지만, 그녀가 키리에와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해버리고 말았다. 아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애당초 비앙카는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여인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죠. 비앙카 당신만이 제 상대라면 또 몰라도, 지금 당신 곁에는 카인이 있잖아요? 제 전투 방침은 어디까지나 원거리에서 행하는 저격이지, 검을 들고 근거리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아무리 저라고 해도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검사와 두 번 맞붙어 이기기는 힘든 노릇인지라.”

입으로는 엄살을 떨고 있지만, 키리에의 목소리 속에 긴장감이라고는 한 톨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언할 수 있다. 그녀는 지금, 나와 비앙카를 한꺼번에 상대한다고 할지라도 승산이 충분하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키리에의 그것은, 자만감이 아니며 허세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제 아무리 손에 검이 들려 있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키리에에게 손도 발도 내밀지 못한 채 얻어터진 것이 바로 며칠 전이었으니까.

“키리에, 당신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우리를 가로막기 위해서인가? 아무리 봐도 우리와 담소나 나누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닌 것 같은지라.”

“뭐, 그렇죠. 저도 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지라. 무엇보다, 더 이상 당신의 접근을 허용한다면 제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거든요.”

“...소원?”

“예. 당신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아리아를 강제로 납치한 것도 모자라 여기까지 유괴를 해온 극악무도한 납치범이잖아요? 그리고 원래 범죄자들에게는 범행을 저지를 만한 범행 동기가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죠. 저의 경우는, 제가 줄곧 꿈꿔왔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그녀를 납치하고 상황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만.”

“그렇다면 아리아를 여신으로 각성시킨 것도, 당신의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한 모종의 일환이었던 셈인가?”

나의 그러한 질문에 키리에는 스스로의 시선을 가늘게 한다.

“아무래도 꽤 많은 것을 알아보고 오신 것 같군요. 아무리 힌트를 몇 가지 던져주었다지만, 공부를 꽤나 열심히 하신 것 같은데요?”

“당신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데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이곳까지 쫄래쫄래 따라올 정도로 멍청이는 아닌지라.”

나의 다소 시큰둥한 대답에도 키리에는 자신의 얼굴의 미소를 한 점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하죠. 예, 맞아요. 한낱 여신의 잔재라고 할 수 있던 그녀를 하나의 온전한 여신으로 각성시킨 것도, 아리엘을 유혹해 저와 동행하게 만든 것도, 한 때 세상의 모든 것을 얼려버렸던 겨울의 폭풍우를 해방되기 일보 직전인 상태에 놓이게 한 것도 전부 제가 원하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저지른 행동들이에요.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제가 이 모든 일의 흑막이었다는 이야기죠.”

“그래?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나도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무엇이죠?”

“당신이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등져가면서까지 추구하던 소원이란, 대체 뭐지?”

순간, 키리에의 얼굴이 아주 살짝 굳어버린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글쎄요, 다른 사람에게 당당히 밝힐 정도로 대단한 소원은 아닌지라. 더욱이 여자들이란 숨겨진 비밀 몇 가지가 있어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이거든요. 만약 정 알고 싶다면, 어디 한 번 힘으로라도 알아내보도록 하시죠. 물론, 어디까지나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지만요.”

순간, 키리에의 몸에서 새어나오는 무언가가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의 정체란 다름 아닌, 우리를 전력으로 격퇴하겠다는 다짐에서 비롯된 살기임이 틀림없었다.

“이제 저희 둘 사이에 밀려 있던 사교회화는 그럭저럭 끝난 것 같으니 당신과 비앙카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하도록 하죠. 현재 제가 맡고 있는 역할은 다름 아닌 문지기. 만약 당신이 왔던 길을 얌전히 되돌아간다면 굳이 당신에게 손을 대지는 않겠지만, 굳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면 그 때는 당신을 요격하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요.”

그 순간, 우리들의 전방에 위치해 있던 키리에의 환영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비앙카, 엎드려!”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비앙카는, 그것에 전혀 반응을 하지 못했다. 음속을 약간 넘는 속도로 소리 없이 날아든 화살. 제 아무리 강대한 마법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비앙카의 육신은 그저 평범한 여인에 지나지 않는다. 기습을 걱정해 스스로의 주변에 경계 마법을 펼쳐 놓았다고 한들 그녀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은 그녀의 반응속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를 자랑한다!

콰앙!

순간적으로 검을 뽑아들어 어디선가 날아온 저격을 튕겨낸다. 검에 오러를 두르고, 그것도 모자라 흐르는 별을 통해 화살의 위력과 속력을 최대한 낮추었음에도 검과 화살이 부딪히는 순간, 주위의 모든 것을 떨쳐 울리는 거대한 폭음이 발생하고 말았다. 방금 우리를 향해 내쏘아진 저격에는, 그 정도의 위력이 내포되어 있었다.

“...저, 저격...? 대체 어디서...?”

얼떨결한 목소리로 내 검에 가로막힌 화살을 바라보는 비앙카. 그녀의 두 눈에는,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경악만이 담겨 있었다.

“여기서 북동쪽, 화살에 담긴 힘으로 미루어볼 때 최소 1km이상 떨어진 곳에서 쏘아진 화살이야. 저격자의 위치가 어디인지 감지할 수는 있겠어?”

나의 다급한 말에 비앙카는 황급히 그 쪽을 바라보더니 이내 새파랗게 질린 안색을 하며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다.

“...무리야. 방금 전 반경 3km 내를 전부 탐색해보았는데 생명체의 반응은 감지되지 않았어. 그 말은 즉...”

...즉, 아무리 못해도 3km를 훨씬 넘는 곳에서 내쏘아진 초원거리 저격이라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3km를 훨씬 넘어서 적의 위치를 탐지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못해도 30초 정도.”

...방금 전 키리에의 화살이 음속을 살짝 넘기는 속도였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화살이 이곳까지 날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초 언저리일까. 그렇다면 나는 방금 전과 같이 부지불식간에 덮쳐드는 화살을 세 번 정도는 막아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쩌릿쩌릿하게 울리는 손을 가까스로 들어 주변을 경계하고 있자, 발원지를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는 목소리가 우리들이 서 있는 공간 전체에 웅웅 하고 울려 퍼진다.

“지금이라도 도망친다면 뒤를 쫓지는 않을게요. 제 역할은 어디까지나 침입자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지, 겁을 잔뜩 먹은 채 뒤로 물러나는 이들을 사냥하는 것은 아니니까.”

키리에의 목소리 안에는, 이미 어떠한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녀는 현재 우리를 확실히 ‘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아마, 그녀가 선심 쓰듯 내미듯 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녀는 다시금 우리를 향해 저격을 행하겠지.

“...웃기는 소리 하지 마, 키리에.”

하지만 나는 그녀의 제안을 단칼에 부정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적으로 돌려가면서까지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기에.

아니, 생각해보니 우리는 이미 적이었다. 그 이유가 어떠하건 간에, 그녀는 현재 내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며 내가 아리아를 구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일은 오직 하나.

“그건 내 쪽에서 할 말이야. 이번에야말로 너를 한 대 쥐어박아준 후,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못하게 꽁꽁 묶어 에스텔 공작가로 데려가도록 하지. 내게 한 대 맞는 것이 싫다면 지금이라도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편이 네게 이로울 걸.”

키리에 엘 데나리스라고 하는 여자가 나의 적이라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겨 넣는 것.

“...그런가요. 아무래도 각오를 다한 것 같군요. 진심으로서 저와 맞설 각오를 말이죠.”

울려 퍼지는 키리에의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 속에, 한 줄기 기쁨이 담겨 있다고 생각이 된다면 그것은 나의 단순한 착각인 것일까.

“카인, 나는 지금부터 저 여자가 서 있는 위치의 탐색에 나설게.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정신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너를 도와주지 못해. 그러니, 내 목숨 또한 네게 맡기도록 할게.”

그리 말을 하며 비앙카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후 자신의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키리에의 위치를 색출해내기 위해 정신을 최대한 집중시키고 있는 것일 테지.

“좋아요. 그렇다면 이건 승부 겠군요. 비앙카가 제 위치를 먼저 찾아낼지, 아니면 제가 당신을 먼저 제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승부 말이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 근처에 남아있던 키리에의 음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방금 전, 화살이 날아온 북동쪽 방향을 뚫어져라 살핀다. 결코 보일 리가 없기는 하지만, 나는 이 거리 너머 어딘가에서 우리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키리에의 모습을 확실히 인지하고 그녀와 시선을 한 차례 교환하였다.

오늘, 나는 키리에를 꺾고 그녀가 가로막고 있는 길을 넘어서 아리아를 반드시 구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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