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상실에 걸린 마녀를 주워버렸다-185화 (185/201)

(EP.185)17. 여신(女神) 아리아 - 03

약간 새삼스러운 이야기다만, 세계수가 위치해 있으며 엘프들이 거주한다고 알려져 있는 대수림이란 곳은 속세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장소이다.

세계수가 제공하는 무제한의 마력을 바탕으로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결계는 외부인의 무분별한 출입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대수림 안쪽의 기후를 언제나 온화하고 생명이 살기 좋은 날씨로 변화를 시키고 있었다.

운 좋게 대수림을 방문할 수 있었던 인간들의 증언에 의하면, 바깥에서 보기에는 그저 울창하고 거대한 숲으로 밖에 보이지 않다만 그 안쪽은 지상에 다시없을 낙원 그 자체라고 하던가. 하기야 그럴 수밖에. 사시사철 따스한 봄이 유지되고 있으며, 나무마다 탐스러운 과실이 맺혀 있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공간을 낙원이라 부르지 않으면 대체 무엇이라 지칭해야 할까.

더욱이 낙원의 안쪽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란 다름 아닌 엘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지상 아래 가장 아름다운 미형을 지니고 있으며, 한낱 인간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나긴 삶을 구가하는 완벽한 생명체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을 하곤 한다. 만약, 이 땅 위에 천국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면 그곳은 다름 아닌 대수림임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대수림은 다르다. 현재의 대수림은, 어딘가 꺼림칙하기 그지없었으며 인간의 발걸음을 거부하는 듯한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무언가, 질척하고 기분이 나쁜 감각이 전신을 맴돌고 있었다.

애당초 이곳은 엘프들의 영지. 그리고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세계수가 위치해 있는 신령스러운 곳. 인간들의 접근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신역(神域)인 만큼,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가 우리는 배척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나와 비앙카가 느끼고 있는 감각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감각은 인간이 감히 범접해서는 아니 되는 곳을 맞이한 우리에게 내려지는 경고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심장을 옥여 매는 듯한 불길함만이 존재할 뿐.

정체를 알 수 없는 백색의 빛이 대수림 전체와 하늘 저 높은 곳까지 뻗어 있는 세계수를 감싸고 있었다. 인간의 생존 그 자체를 불허하는 듯한 거대한 강풍이 사방에 휘몰아치고 있었으며, 숲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들은 무언가의 태동에 불안해하기라도 하듯 스스로의 몸을 술렁이고 있었다.

숲의 전체에는 생명력과 마력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전에 아리아가 내게 보여준 것과 같은, 시각화가 가능할 정도로 뭉쳐져 있는 엄청날 정도의 마력. 다만,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어떠한 마법의 작용도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 뿐.

대수림과 세계수를 둘러싸고 있는 마력은 너무도 거칠고 생생하여, 숨을 쉴 때마다 폐 속에 산소가 아니라 마력이 가득 차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자궁 안에서 탯줄에 의존해 숨을 쉬는 태아들이 이러한 감각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하지만 그 따위 사실은 그저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기도 하다.

대수림이 아니라, 하늘의 위쪽을 향해 끝없이 솟아있는 세계수의 상단부 쪽. 즉, 원래는 청명한 하늘과 구름밖에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머나먼 상공.

하늘의 저편에서는,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휘몰아친다’라는 표현은 다소 적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눈보라는 휘몰아치고 있는 중이 아니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구체(球體)에 갇혀 있기라도 한 것 마냥 타원형으로 상공의 위쪽을 끊임없이 맴돌고 있기만 할 뿐.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긴 하다만, 만약 저 눈보라가 저곳에서 해방이 되어 대륙 전체에 휘몰아치게 되기라도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예상대로구나. 저 눈보라는 분명 우리가 과거에 겪어야만 했던 혹독하고 차가웠던 그 때 그 눈보라. 그리고 하늘 위쪽에서 저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다는 말은 즉.”

“...아리아가, 결국 ‘마녀’가 되었다는 의미이겠지. 예전에 그랬던 것과 같이.”

나를 향해 말을 하고 있는 비앙카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우리가 최종적으로 누구를 상대해야만 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카인, 여기까지 와서는 아무 짝에 쓸모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네게 충고하도록 할게. 도망칠 거라면 지금 여기서 도망쳐. 설사 네가 물러난다고 해서 너를 탓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우리의 예상이 사실이라면 여기서 손을 쓰지 않은 채 한 발짝 물러나는 것 또한 결코 오답이라고는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리 말을 하며 비앙카는 손을 휘저어 우리들의 근처에서 넘실거리던 마력을 자신의 손 안쪽으로 끌어왔다. 어떻게 보면 연기와 같고, 어떻게 보면 투명한 끈과 같이 보이기도 하는 그것은, 역겨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생생한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깨달았다. 세상의 그 어떤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할지라도, 과할 정도로 넘쳐난다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구역질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보이니?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일반인들조차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시화된 이 마력의 다발이? 이 근방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척이나 단순해. 내가 문헌을 통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신대(神代)의 여신들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력을 생산해내고 근방의 환경을 천상(天上)과 유사한 이계(異界)로서 변모시킨다고 했었어. 이게 무슨 뜻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여신으로서 변모한 아리아는, 무제한이라고 할 수 있는 마력량을 지닌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겠지.”

비앙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아까부터 우리가 느끼고 있던 불길함의 정체란 다름 아닌, 우리가 자진해서 사지(死地)라고 할 수 있는 장소로 기어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근방에 육안으로 쉬이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넘실거리는 마력은 다름 아닌 아리아에게 있어 새어나오는 찌꺼기에 불과한 정도의 자그마한 마력일 터. 그렇다면, 그녀가 본신에 지니고 있는 마력의 양이 대체 얼마 정도일지는 쉬이 알 수 있었다.

현재 내가 피부로서 느끼고 있는 마력만 하더라도 도저히 계측이 불가능하다. 마력의 저장량으로만 따진다면 실로 파격적. 그렇기에 단언할 수 있다. 만일, 비앙카가 저 정도의 마력을 다룰 수 있다면 그녀에게 있어 불가능이란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걸.

더욱이, 그 정도의 마력을 소유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여신 아리아. 가라사대, 여신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며, 마법이라는 학문으로는 도저히 재현이 불가능한 이적(異蹟)을 아무렇지도 않게 발현하는 것이 가능한 존재라던가.

과거, 우리는 완전한 여신으로 각성한 것이 아닌 반쪽짜리 여신인 ‘겨울의 마녀’를 상대하는 것에도 고전을 금치 못했거늘, 고작해야 나와 비앙카 둘이서 그녀를 상대한다는 일은 그야말로 자살행위와 동등한 종류의 행위임이 틀림없었다. 아리아의 곁에 키리에와 아리엘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감안하자면 더더욱.

...하지만.

“아니, 나는 앞으로 갈 거야. 여기까지 와서 뒤로 물러날 수는 없어. 아무래도 아리아와 키리에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지 않고서는 분이 풀릴 것 같지 않으니까.”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나는 오히려 대수림 안쪽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래, 나는 앞으로 간다. 이미 아이리스와 약속하지 않았던가. 다시 만날 때는 다섯 명이서 함께 돌아오기로.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꼴사납게 나 하나 살겠다며 뒤로 꽁무니를 뺄 수는 없었다.

“...남자들이란, 정말 미련하구나. 그런 별 거 아닌 거에 스스로의 목숨을 걸다니.”

그리 말을 하면서도 비앙카는 내 뒤를 순순히 따라와 준다. 그것은 틀림없이, 나와 끝까지 함께 해주겠다는 신호임이 틀림없을 터.

그렇게 우리가 대수림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를 넘어, 숲의 안쪽을 향해 발을 내딛은 바로 그 순간-

“...드디어 와주셨군요. 카인님...”

대수림의 중앙, 세계수가 우뚝 서 있는 바로 앞.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원숙한 생김새의 아리아는 하늘을 바라보며 희열로 가득 찬 웃음을 짓고 말았다. 생생히 느껴진다, 그의 존재가. 저번 생, 그녀가 스스로의 신격을 바쳐가면서까지 그와 자신을 같은 인과율(因果律) 속에 포함시켰기에 그의 기척을 손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가 와주었다. 이곳이 명백히 사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을 구해주러 왔다. 비록, 지금에 와서는 그의 그러한 배려가 아무 짝에 쓸모없는 것으로 변모하고 말았음에도 자신을 위하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그녀의 마음속을 행복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리아는 그를 이곳까지 들일 마음이 추호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일어날 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 하늘 저 위편에서 광포하게 휘몰아치고 있는 눈보라를 제어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심력을 사용하고 있었건만, 그라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여기까지 당도하게 만든다는 것은 결코 아니 될 말이다-

“키리에.”

아리아가 자신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여인 중 한 명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자,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신을 향해 얌전히 고개를 숙인다.

“아무래도 손님이 오신 것 같구나. 나가서 정중하게 맞이를 해드리렴. 귀한 손님이니 무례를 범할 생각은 하지 말고.”

아리아의 그 말에, 키리에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답을 한다.

“당신께서 그를 직접 맞이할 생각은 없는 것인가요? 아무래도 그들이 이곳까지 온 목적은 다름 아닌 당신이 아닐까 추측됩니다만.”

“...실로 짓궂은 질문이로구나, 키리에. 그들을 이곳까지 당도하게 만든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세상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내게 그런 질문을 던지다니.”

그들의 침입을 이대로 허용하였다가는, 키리에가 아리아를 여신으로 각성시키면서까지 그토록 원하고 갈망하던 ‘소망’을 이루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할 터. 그 말인 즉 슨, 그녀가 수 백년에 걸쳐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무언가가 물거품마냥 허망하게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에도 키리에는 웃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이곳까지 발걸음을 내딛는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될지. 그들과 현재의 아리아가 마주하게 된다면 무슨 대화를 나누게 될지.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떤 식을 매듭을 짓게 될 것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한 결말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분에 넘치는 소망을 지니고, 스스로의 운명을 넘어서기 위해 발버둥치는 존재를 너무도 사랑하니까요.”

...그래. 이제는 없었던 시간이 되어버린 언젠가, 아무런 힘도 가지지 않던 무력한 남자가 ‘겨울의 마녀’를 베어버린다는 기적을 일으켰던 것과 같이.

“내가 아니면 이제 어느 누구도 네 소원을 이루어줄 수 없는데도 말이니?”

“고작해야 그 정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정 안되면 그와 함께 어딘가에 숨어들어 천년만년 알콩 달콩 함께 사는 길도 존재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저희 둘의 수명은 공유 중인 상태이니 말입니다. 아리엘 저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를 가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고.”

어깨를 으쓱이며 그러한 말을 늘어놓는 키리에의 언행에 아리아의 눈길이 이번에는 아리엘을 향한다. 그녀가 나아가 카인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이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죄송하지만, 저 또한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군요. 아내 된 이로서 부군의 앞길을 가로막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떠올려본 적이 없거든요.”

“...아리엘 너 또한 네가 원하던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될지라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아리아의 그 말에도 아리엘은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아리엘의 그 모습에 키리에는 재미있다는 듯 깔깔하고 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당돌하구나, 아리엘. 감히 여신의 부탁을 그리도 단칼에 거절하다니. 신을 모시는 신관을 자칭하는 주제에 그리 불경하게 행동을 해도 괜찮은 거니?”

“내가 모시는 이는 겨울의 여신이 아닌, 봄의 여신이야. 게다가, 그녀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한 네가 나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글쎄, 과연 어떨까?”

그리 말을 하며 키리에는 옆에 놓아둔 장궁을 챙겨 들고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녀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란 다름 아닌, 침입자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바로 그 방향이었다.

“호오, 내 제안은 거절한 것이 아니었나. 또다시 마음이 바뀐 것이더냐?”

“아니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그들이 이곳까지 순조롭게 당도하는 것 또한 그리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쿡, 하는 웃음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지며 키리에는 스스로의 입술을 위쪽으로 비틀어 올린다.

“공주님을 구하러 오는 용사 일행의 앞을, 마왕이라는 적이 가로막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그다지 재미없겠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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