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상실에 걸린 마녀를 주워버렸다-182화 (182/201)

(EP.182)16. 끝이 끝나기 전에 - 11

“사라-!”

자신을 부르는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의 몸에 나뭇가지를 꽂아 넣는다.

소리는 없었다. 실제 재질이 어떠하건 간에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한없이 무딘 나뭇가지로 밖에 보이지 않았건만, 그 나뭇가지는 그녀의 가슴팍을 부드럽게 관통한다. 마치 처음부터 그러했다는 것 마냥, 나뭇가지는 너무도 자연스레 그녀의 심장 어귀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그러한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으면서도, 결국 그녀를 향해 소리치는 것 외에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어라?”

새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혹은 심장이 관통된 충격으로 인해, 고통으로 가득 찬 신음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는 일도 없었다. 나뭇가지가 그녀의 가슴을 관통하여 이 자리에 선혈이 가득 튄다거나 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이 자리에 존재하고 것은 그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사라의 의문으로 가득 찬 목소리 뿐.

...그럴 만도 하다. 그녀가 저리 당혹스러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옆에서 그녀를 가만히 보고 있던 우리들조차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아마 당사자인 사라는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지 않을까.

“.....”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분명히 나뭇가지가 그녀의 가슴 부근에 꽂혀 있는데, 정작 심장이 관통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사라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가슴 한복판에 나뭇가지가 꽂혀 있다는 사소한 점만을 제외한다면 그녀는 평상시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으며, 그렇기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상황을 지켜보았던 우리들도 당혹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아닌데...”

사라는 스스로의 얼굴이 울상이 된 채로 나뭇가지를 가슴 어귀에서 뽑아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녀의 가슴팍에 상처는커녕 방금 전까지 무언가가 관통되어 있었다는 일말의 흔적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다른 곳에서 저런 장면을 보았다면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며 박수라도 쳤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낯이 부끄러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장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가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녀의 죽음을 두고서 서로 옥신각신 했던 것이 무안할 지경이었다.

새삼스레 깨달았다. 장례식장에서 죽은 사람이 다시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문상객들이 당황스러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장한 태도로 스스로의 자살에 임하던 사람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자살에 실패하고 만다면 그것 또한 서로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촌극이로군. 정말로.”

그 때였다. 우리들 중에 가장 먼저 제정신을 차린 아이리스가 한숨을 내쉬며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사라의 등 뒤로 돌아가더니, 이내 그녀의 목덜미를 가볍게 가격하였다. 자신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은 나뭇가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사라는, 당연히 그녀의 움직임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였다.

툭-

“...아.”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애당초 일반인에 불과한 사라가 오러를 다룰 줄 아는 무인인 아이리스의 공격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할 터. 그녀의 몸을 떠받치고 있던 다리에서 힘이 빠지더니, 이내 스르륵하고 바닥에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문제의 저 빌어먹을 나뭇가지 또한, 그녀의 손을 벗어나 바닥에 힘없이 구르고 말았다.

“.....”

“.....”

허무하기 짝이 없는 그 결말에 나는 차마 어떠한 말도 잇지 못한 채 정신을 잃은 사라의 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말았지만, 비앙카는 얼굴색 하나 변치 않은 채로 사라를 향해 또각또각 걸어가더니 이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거, 아무래도 키리에 그 여자가 건네준 장난감인 것 같은데. 미약하긴 하지만 나뭇가지 안에 그 여자의 흔적이 남아있거든. 그러고 보니 이 여자에게 회귀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준 것도 키리에라고 했었지. 아마 과거의 일을 설명하면서 이 나뭇가지 또한 같이 준 모양이야.”

비앙카는 제법 흥미롭다는 기색을 표하며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해주는 설명은 현재의 내게 그다지 와 닿지 않고 있었다.

“...키리에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걸 사라에게 준 건데? 그녀를 무안하게 만드려고? 만약 그런 목적이었다면 정말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키리에에게 전해주고 싶군. 만약 내가 사라의 입장이었으면 쪽팔려서라도 두 번 다시 눈을 뜨기가 싫을 것 같으니까.”

나의 그러한 투덜거림에도 비앙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뭇가지를 자신의 손바닥에 찔러 넣는다. 그리고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나뭇가지는 비앙카의 손바닥을 손쉽게 관통하였지만 정작 그녀의 손에서는 피도 나오지 않았고 상처 또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가까이서 살펴보니까 이런 것을 왜 건네준 건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해. 키리에, 그 정신병자 같은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이 가기도 하고.

그리 말을 하며 비앙카는 자신의 손바닥에 꽂혀 있던 나뭇가지를 뽑아내더니 이번에는 가까이에 있던 탁자 위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푸욱-

“...어?”

나는 이번에도 당연히 저 나뭇가지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 마냥 탁자를 허무하게 관통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나뭇가지가 탁자를 꿰뚫었다. 아무리 봐도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비앙카 또한 그리 힘을 준 것 같지 않은데 대체 어떻게 단단한 원목으로 만든 탁자를 저리도 쉽게 꿰뚫을 수 있단 말인가?

“역시, 예상했던 대로구나. 사라, 저 여자는 처음부터 착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착각?”

내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비앙카는 그녀에게 도통 어울리지 않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대답을 해주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사람을 찌르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은 아닌 것 같거든?”

****

그것은, 흡사 세상 그 자체를 담아낸 것 같은 나무였다.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듯한 크기의 거대한 나무.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영험한 신기(神氣)를 드러내고 있으며, 무려 아홉 세상에 걸쳐 스스로의 뿌리를 걸치고 있다는 전승을 가지고 있는 나무, 세계수는, 흡사 세상 그 자체를 감싸 안을 것만 같이 스스로의 가지를 뻗어 하늘의 별 그 자체를 담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세계수는 결단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평상시의 따스한 온기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을 뿐더러,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만물을 그대로 얼어붙게 만들 것만 같은 싸늘한 한기.

하늘과 땅을 잇는다고는 하지만 정작 하늘은 땅 쪽에 두고 있으며, 느껴지는 기운은 만물을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발짝 뒤로 물러나게 하는 듯한 사기(死氣)뿐.

바람은 옛적에 멈추어 있고, 현세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질적인 대기가 가득하며, 사방에는 이미 시각화가 가능할 정도로 생생한 마력이 부유하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이곳은 인간이 방문해서는 공간이 아니었으며, 신(神)을 향해 구원을 갈구할 만한 장소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도저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높이의 나무 앞에는, 현재 세 명의 인영이 존재하는 중이었다. 아니, 그들을 ‘세 명’이라 칭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 중 한 명은 인간이 아닌 엘프였으며, 다른 한 명은 흡사 신에게 번제(燔祭)로 바쳐지기로 예정되어 있는 것 마냥 몸이 제단 위에 뉘여진 와중이었으니까.

“...날씨가 상당히 싸늘한데.”

아리엘은 하늘에서 내리는 자그마한 눈꽃을 손으로 매만지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바깥의 날씨는 이제 막 봄을 벗어난 여름의 초입에 지나지 않는데, 이곳은 이토록 싸늘한 한기로 가득 차 있을뿐더러 하늘에서 눈까지 내리고 있다니. 아무리 보아도 세계수를 둘러싸고 있는 현재의 대수림은 결코 정상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야 그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그녀는 현재 인간의 모습에서 스스로의 본질을 향해 회귀하고 있는 도중이거든. 더불어 현재의 그녀는 의식이 없으니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힘을 통제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거야. 그 결과, 세계수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는 대수림의 안쪽은 이 모양 이 꼴이 되어버리고 만 거지. 뭐, 그래도 몇 년 뒤에 우리가 겪어야만 했던 겨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라고 생각하는데?”

“...겨울, 이라.”

키리에가 어깨를 으쓱이며 그리 설명을 하자 아리엘의 낯빛이 다소 어두워지고 말았다. 겨울. 끝이 없는 겨울. 아리엘 티에르라고 하는 여자는, 겨울이라는 계절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겨울이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기억 속에 ‘겨울’이란 좋지 않은 의미로만 잔뜩 남아 있었으니까.

“뭐야. 혹시 걱정이라도 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아리엘 너를 그렇게 신경 쓰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어디, 내가 한 번 맞춰 보도록 할까?”

한편, 키리에의 목소리는 아리엘과 대조적으로 밝고 경쾌하기만 하다. 적어도, 겉으로 듣기에는 그리 느껴지기만 한다.

...하지만, 아리엘은 알고 있었다. 키리에라는 여자는,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그리 감정이 풍부한 여자가 아니다. 무수한 일생, 기나긴 삶 속에서 스스로의 감정이란 감정이 전부 마모되어 버린 닳아빠진 여자가 바로 키리에 엘 데나리스라는 여자일 터.

그럼에도 그녀가 경쾌하고 웃음이 많아 보이는 이유는, 그저 그러한 자기 자신을 의식해서 꾸며내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는 삭막한 표정보다는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는 표정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섞이기에 훨씬 용이한 얼굴이니까.

아리엘의 눈으로 보기에, 키리에라는 여인은 양의 거죽을 뒤집어 쓴 늑대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그녀의 정체가 단순한 늑대라면 다행이기까지 하다. 늑대는 오직 양을 잡아먹는다는 목적 하에 거죽을 뒤집어쓰고 다녔지만, 키리에는 고작해야 선악(善惡)의 가치관 따위로 움직이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말하자면, 그녀는 거울이다. 수면에 비친 그림자와 같다. 선도, 악도 아니며 오직 자신이 비추어내고 있는 인물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이다. 대상을 위해 어떠한 소원이든 실현시켜준다는 원숭이 손과 같은 존재가 바로 그녀일 테지.

...그래. 대상이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소원을 들어준다는 점까지 감안하자면, 정말로 정확한 비유가 아닐 수 없었다.

“당신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카인에게서 등을 돌리고, 나를 따른 보수를 제대로 받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 아니면, 자식의 원수를 눈앞에 둔 상태에서도 정작 그녀를 향해 손가락 하나 건드릴 수 없는 분함? 그것도 아니라면-”

키리에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마치, 처음부터 네 속내 따위는 전부 꿰뚫고 있었노라고 말하는 것처럼.

“...대체 언제, 그리고 어느 순간에 내 뒤통수를 쳐야 내가 가장 아파할까. 이런 종류의 의문 때문이라 생각하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떻지? 아리엘?”

“.....”

키리에의 말에 아리엘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답할 가치조차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대답 따위 없어도 이미 서로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침묵일 따름이었다.

“그걸 잘 알면서도, 지금 나를 곁에 놔두고 있는 이유는 대체 뭐지? 나 따위는 눈에 거슬리지도 않는다는 오만함인가?”

아리엘의 질문에, 키리에는 여상한 어조로 답을 한다.

“만약의 때를 대비한 보험을 몇 개 정도 놔두고 왔다지만, 영 미덥지가 않아서 말이야. 여차하면 나를 말려줄 사람이 한 명 정도는 곁에 있는 편이 낫지 않겠어? 아, 그리고 이게 결정적인 이유인데-”

“아직까지는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렇지 않아, 아리엘?”

“.....”

키리에의 질문으로부터 아리엘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확실히, 그녀의 말 대로였다. 그 둘은,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로서는 이상적인 정도로 궁합이 잘 맞았으니까.

그리 침묵을 지키고 있는 아리엘로부터 등을 돌리자 마자, 키리에는 아리엘 앞에서는 결코 보일 수 없었던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녀의 두 눈에는,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는 잠에 빠져 있는 듯한 아리아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여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키리에는 정말로 피곤한 듯 스스로의 두 눈을 아주 살짝 감아온다.

이제 곧, 여신이 부활하게 된다. 천 년 전, 데브하르트에 의해 지상에서 사라지게 된 여신 중 한 명이 다시금 지상에 현현하게 된다.

신대(神代)가 종료되고 인대(人代)가 시작된지 무려 천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현세에 다시금 여신이 출현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지상에 어떠한 여파가 발생하게 될 테지만, 그런 사실따위 키리에는 알지 못하며 알 바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현재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할 따름이니까.

하지만 정녕 이것으로 되는 것인가, 그녀는 정말로 그 어떠한 결말이라도 순순히 받아들일 자신이 있는 것일까.

앞으로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그녀가 지난 세월 그토록 바라였던 목적이 이루어지게 될 테지만.

정작 키리에의 표정은, 죽음이라는 형벌을 눈앞에 둔 죄인과 같을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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