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상실에 걸린 마녀를 주워버렸다-174화 (174/201)

(EP.174)16. 끝이 끝나기 전에 - 03

그 날은, 아마 티아의 일곱 번째 생일날이었던 것 같다.

“생일 축하한다, 티아.”

“축하해, 티아.”

짝짝짝-

마을의 외곽, 한적한 곳에 지어진 어느 작은 오두막. 오두막 한 가운데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 세 명의 가족은 한데 모여, 그들만의 조촐한 생일파티를 치르고 있었다. 비록 그들 세 명 외에는 다른 손님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티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옆에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가 있었으니까.

하나뿐인 딸의 생일이라 그런지 엄마가 정성들여 만든 여러 가지 음식들이 식탁 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상태에서, 티아는 무언가를 찾는 듯 식탁 위를 한참이나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빠를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아빠, 그런데 케이크. 케이크는 어디에 있어?”

오늘따라 티아는 자신의 생일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배는 되는 듯한 기대 어린 눈빛으로 자신의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티아도 이제 어연 일곱 살. 일 년에 단 하루밖에 없는 생일이라는 날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날인지 정도는 훤히 꿰뚫어볼만한 나이이기도 하였다. 더욱이, 다소 투정을 부리거나 떼를 쓰더라도 어느 정도는 용인이 될 수 있는 날이라는 것 또한.

오늘을 위해 티아는 며칠 전부터 아빠의 귓가에 자신의 요구를 당당하게 속삭여 왔었다. 그것은 바로, 이번 생일날에는 꼭 한 번 케이크를 먹어보고 싶다는 참으로 귀여운 부탁이었다. 물론, 티아는 이런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설탕과 크림을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케이크는 평민들이 아닌 귀족들이나 입에 댈 수 있는 고급 음식이라는 사실 또한.

“으음, 케이크라...”

그는 자신의 딸이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듯 티아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더니 이내 엄마를 바라보며 아주 살그머니 눈짓을 하였다. 물론, 이제 막 일곱 살이 된 순진한 티아는 어른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비밀스런 시선 교환 따위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아빠는 표정을 한 차례 가다듬더니, 이내 침울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티아를 향해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미안하지만 티아, 약속했던 케이크는 조금 힘들 것 같구나.”

“...응? 왜애? 저번에는 생일날에는 먹을 수 있다며 약속했었잖아.”

아빠의 입에서 부정의 의미가 담긴 말이 나오자, 티아는 결국 실망의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말았다. 아무래도 오늘, 티아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케이크를 영접하는 일은 실패로 돌아간 듯 하였다.

“아빠가 최대한 노력을 해보았는데, 우리 티아가 바라던 자그마한 케이크는 결국 구할 수가 없더구나.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그래도 아빠와 엄마가 티아를 위해 나름대로 준비한 선물이 있는데 그거라도 받아줄 수 있겠니?”

“...으응, 괜찮아. 케이크는 나중에라도 먹을 수 있는 거고. 아빠하고 엄마가 준비한 선물이 있다니까 그걸로 용서해줄게. 원래 이 정도로는 용서해주지 않는데,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특별히 용서해주는 거야. 알았지?”

어딘가 모르게 의기양양한 기색으로 그리 말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어린 아이다보니 끝내 시무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티아를 향해 아빠는 애써 웃음을 참아내며 조금 커다란 부피의 상자를 탁자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이게 뭐야?”

“아빠랑 엄마가 티아를 위해 준비한 선물. 부디, 마음에 들면 좋겠구나. 티아.”

두 눈을 깜빡이며 별다른 생각 없이 상자를 개봉한 티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우와와, 케이크!”

케이크였다. 그것도 일반적인 케이크가 아닌, 무려 3단 케이크. 상자 안에 든 케이크의 웅장한 자태를 바라보고 있던 티아는 끝내 함박웃음을 짓고 말았다. 며칠 전부터 티아가 눈치 채지 못하게 보안 유지를 철저하게 하며 비밀을 지켜온 아빠와 엄마의 노력이 실로 빛이 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아빠의 말에 깜빡하고 속아 넘어가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선물이기에, 티아가 현재 받고 있는 감동 또한 방금 전까지 품고 있던 기대감의 세 배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 엄마가 티아를 위해 열심히 케이크를 만든 거지. 우리 딸이 먹고 싶다고 하는데 그 정도도 해주지 못할 리가 없잖니?”

엄마의 자상한 말에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티아는 이내 의자에서 내려와 도도도 달려가다니 이내 엄마의 품에 꼭 하고 안긴다.

“역시 엄마가 최고에요. 사실, 저는 엄마를 믿고 있었어요.”

“아빠는? 아빠한테는 뭐 없니?”

엄마의 품에 꼭 안겨 있는 티아를 향해 아빠가 질문을 던지자, 티아는 왠지 모르게 화가 난 듯 흥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몰라. 아빠는 오늘도 나한테 거짓말을 했잖아. 아빠는 맨날 그래. 엄마는 나한테 거짓말 같은 거 안 하는데, 아빠는 나한테 맨날 거짓말을 하고 나를 놀려. 아빠 싫어.”

“미안. 그래도 오늘은 티아의 생일인데, 아빠가 티아한테 거짓말 한 거 용서해 줄 거지? 왜냐하면 오늘만큼은 티아가 주인공이고 우리들의 공주님이니까.”

아빠의 반성 아닌 반성에, 티아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지어보이더니 이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좋아. 오늘 내 생일이니까 특별히 용서해주는 거야. 그럼 약속해. 앞으로는 이런 거짓말 안하기로. 그리고 엄마처럼 거짓말도 안하고 언제나 착한 일만 하기로.”

“그래, 약속. 아빠도 이제 엄마처럼 착해지도록 노력할게.”

티아와 남편의 그러한 대화를 들으며, 그녀는 내심 부끄러움을 느끼고 말았다. 그녀의 딸아이는, 자신을 세상 누구보다 자상하고 따뜻한 엄마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자신의 엄마가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 조만간 닥쳐올 파멸로부터 도망을 쳐온 추악한 여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티아는 자신의 엄마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마치, 언젠가의 그녀가 자신의 엄마와 같은 자상한 어머니가 되는 것을 꿈으로 삼았었듯이. 대체 왜 이러한 종류의 숙명은 마치 도돌이표처럼 반복이 되고 마는 것일까. 대체 왜.

그녀의 그러한 부끄러움을 뒤로한 채로, 드디어 셋 만의 생일 파티가 시작이 된다. 생일 케이크에 꽂혀 있던 촛불을 열심히 후후 불어 꺼뜨린 티아는, 자신의 앙증맞은 손으로 낑낑대며 케이크를 열심히 여러 조각으로 잘라내었다.

“자, 이건 엄마 꺼.”

티아는 자신이 잘라낸 조각 중 가장 커다란 조각을 엄마에게 먼저 건네준다. 그토록 먹어보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케이크를, 자신은 입도 대지 않은 채 엄마에게 먼저 양보를 한 것이다.

“응? 이건 너무 크지 않니? 그리고 엄마는 사실 케이크 별로 안 좋아해.”

딸아이를 위해 정성스레 만들어준 케이크다. 자신이 가장 커다란 조각을 먹는다면 주객이 전도가 되는 꼴이 아니던가. 그렇게 티아가 잘라준 케이크 조각을 보며 그녀가 난색을 표하자, 그런 엄마를 향해 티아는 활짝 하고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치만 엄마가 만들어준 케이크잖아. 아빠가 그랬어. 원래 맛있는 건 가족이랑 함께 나누어 먹어야 더 맛있다고. 그리고 엄마는 우리 가족 중에 제일 착한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엄마가 제일 큰 거 먹어. 알겠지?”

“티아.”

딸아이의 그러한 말을 들으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너무도 사랑스럽기만 한 딸아이를 힘껏 하고 끌어안아 주었다.

“...고마워. 엄마도, 엄마도 티아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다고 생각해.”

“맹세할게. 엄마는 꼭, 티아보다 착한 사람이 되기로. 우리 가족 중에, 제일 착한 사람이 되기로.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날, 아리엘은 분명히 이렇게 맹세를 했었던 것 같다. 도저히 속죄를 할 수 없을 만큼 죄를 범해온 나라고 해도, 앞으로는 네 엄마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굳게 맹세를 다짐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노력했다.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딸아이와의 약속이었기에, 어기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을 했었다.

10년 전으로 돌아온 직후, 곧장 카인에게 달려가 그에게 매달려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던 것도, 황녀가 자신의 딸아이를 들먹였을 때 그녀를 끝내 죽이지 못했던 것도, 키리에가 딸아이를 다시 보고 싶지는 않냐며 간교한 유혹을 귓가에 속삭였을 때도.

그것을 전부 이겨내고,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되는 길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딸아이와 그 날 나누었던 약속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리엘이 쉽사리 견뎌낼 수 없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었다.

“...티아.”

설사 세상의 그 모든 것으로부터 등을 돌린다고 할지라도, 아리엘은 도저히 자신의 딸에 대한 미련을 놓는 일만큼은 쉬이 해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한 아이의 어머니였으니까.

미웠다. 아니,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녀는 끝내 자신과 딸을 이별하게 만든 단 한 명의 원흉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마녀.’

어쩌면, 이것은 그녀에게 내려진 형벌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믿어온 모든 것을 배신하고, 스스로의 행복만을 추구했던 그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는 경험은 어찌 보면 너무도 적법한 처벌임이 아닐 수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옳음과 그름, 그리고 올바름과 바름을 두고서 결국 자신이 어떠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지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아리엘 티에르는 어머니였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번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자신 또한 한 때 딸이었기에. 엄마를 동경하고, 언젠가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리고 엄마였기에. 자신과 쏙 빼닮은 딸을 배 아파 놓고, 딸아이만을 위한 세월을 보내왔던 적이 있기에.

- 엄마는 우리 가족 중에 제일 착한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엄마가 제일 큰 거 먹어. 알겠지?

“티아.”

한 때 나의 전부였던, 사랑스러운 내 딸.

약속할게. 엄마는, 한 때 티아와 나누었던 약속을 꼭 지키기로.

그러니까, 나는-

“아리엘 티에르, 대체 무슨 생각에 그리 골몰히 잠겨 있는 거지? 원수를 눈앞에 두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감상이라도 솟구쳐 오르는 중인 것인가?”

키리에의 그 말에, 아리엘은 그제야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현재 서 있는 곳은 황량한 황야였다. 본래 그곳은 에스텔 공작가의 뒤편에 위치한, 울창한 숲이 존재하던 곳이었는데 방금 전 세 사람이 펼쳐낸 격렬한 전투 끝에 숲을 이루던 나무들이 모조리 꺾이고 불타버리고 부서진 나머지 이제는 황야라고 밖에 칭할 길이 없는 불운한 장소이기도 하였다.

“...정말로, 우리 둘 만이서 이 여자를 이길 수 있었다니...”

아리엘은 자신의 발치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아리아를 바라보며 그러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과거, 이 여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인세의 절대자인 네 명이 직접 나선 것도 모자라 합공을 해야 했었건만. 제 아무리 약점을 찌를 수 있었다고는 해도 이토록 쉽게 ‘겨울의 마녀’를 제압할 수가 있다니.

아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키리에를 힐끔하고 바라보았지만, 키리에는 그저 재미있다는 듯 아리엘을 보며 웃음을 짓기만 할 뿐이었다.

“어때, 이제 내 제안이 조금 현실성이 느껴지니? 나는 네게 거짓말 따위 하지 않았어. 우리 둘만의 힘으로 그녀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한 것도, 그녀를 공략할 수 있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 것도, 그리고-”

“...네 딸을 다시 볼 수 있다고 한 것도,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그래, 거짓말은 아니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입에 거짓을 담아본 적이 없는 착하고 순수한 엘프란다? 그러니까-”

“내 말에 순순히 따르렴. 내 말을 따른다면 기필코 티아와 다시 재회하게끔 해줄 테니까. 응?”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