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3)16. 끝이 끝나기 전에 - 02
언젠가, 카인은 비앙카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던 적이 있었다.
"비앙카, 너는 아리아라는 여자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참고로 말하자면, 그러한 질문을 들었을 때 비앙카가 지어보인 표정은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었다.
“...너 지금, 나한테 물어본 거야? 아리아가 어떠한 여자냐고?”
카인에게서 그러한 질문을 들은 비앙카는 질문의 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듯 스스로의 두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황당하다는 듯 카인을 바라보았다.
“왜 나한테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거야? 애당초 아리아는 네 전속 시녀잖아? 그런 것은 아리아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네가 가장 잘 알거라고 생각하는데. 설마 네가 알지 못하는 것을 내가 알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겠지?”
비앙카의 말도 안 되는 설레발에 카인은 그녀보다 한층 더 어처구니가 없는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아리아의 인간적인 면모 같은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지. 애당초 비앙카 너는 아리아와 어떠한 친분 관계도 없잖아. 내 기억으로는 대화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카인의 대답에, 비앙카는 어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대화 정도는, 해본 적 있어. 그것도 여러 번.”
“언제?”
카인의 질문에 비앙카는 섣부르게 대답해 주기가 조금은 머쓱한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답을 해주었다.
“...했을 때.”
“뭐? 잘 안 들리는데. 조금 크게 말해주면 안 돼?”
“...내가 너 납치하고, 아리아와 황녀님이 힘을 합쳐서 너를 되찾으러 왔을 때.”
“.....”
하긴, 다시금 머릿속의 기억을 되짚어보니 분명히 그 때 아리아와 비앙카가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았다. 비록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환장한 것 마냥 으르렁거리고 있었다는 사소한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지만.
“...방금도 설명 했었지만 나는 너와 아리아와 개인적 친분 관계에 대해 알고 싶어서 질문을 던진 게 아니야. 나는 그냥, 마법사로서의 아리아가 어떠한 수준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라고.”
“마법사로서의 아리아?”
그러한 말에, 비앙카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말았다.
“그래, 솔직히 고백하자면 마법에 대해서는 워낙 문외한이라서 말이지. 아리아가 어느 정도의 실력자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다고.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내게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너 말고는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런데 왜 번거롭게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아리아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는-”
그리고 그 순간, 비앙카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쓴웃음을 지어보이고 말았다. 카인, 이 멍청한 남자가 대체 무엇을 우려하여 아리아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는 것을 꺼려하는 것인지 너무도 잘 이해를 할 수 있었기에.
“...하여간, 너는 정말로 잡생각이 많은 남자로구나. 그런 시시콜콜한 배려까지 해주면서 살면 당신의 머리가 터져나가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하는걸.”
입으로는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비앙카는 내심 다른 사람을 그리 신경 써주고 배려해주는 카인의 씀씀이가 그리 기분이 나쁘지게 여기지지는 않았다. 그의 세심한 배려가 자신을 향해주고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거기만큼은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저, 그러한 배려가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향할 것이라는 사실 하나를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으음. 마법사로서의 아리아라니. 솔직히 고백해 보자면, 나로서도 그 여자가 현재 어떠한 영역에 발을 내딛고 있는지 전혀 갈피가 잡히지 않아.”
“왜?”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아리아와 내가 한바탕 크게 다투었을 때가 기억나?”
비앙카의 그 말에 카인은 자신의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기억이 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흡사 금방이라도 세상을 무너뜨릴 것만 같은 태도로 서로를 향해 미친 듯이 마법을 날려대는 두 여자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머리에 이상이 생겼는지를 먼저 의심해보아야만 할 것이리라.
“그 때 당시, 내가 아리아 그 계집애를 죽이기 직전까지 몰아가기는 했는데 그건 말 그대로 한 끗 차이로 승리한 것에 지나지 않았어.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가 더 우월하고 누가 더 열등했니를 따지기 이전에 그 여자의 마력 총량이 나보다 부족했기에 내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엄밀히 말하자면, 마전(魔戰)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마력의 총량으로 아리아를 찍어 눌러 승리를 거두었다는 비참한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카인에게 대답을 해주는 것을 주저했던 것이고.
“믿겨지니? 그러니까, 마법을 익힌 지 고작해야 1년 밖에 되지 않는 여자가 나와 동수를 이루었다고. 운이나 컨디션의 차이 등으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의 확실한 간극이, 그 여자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단 말이지. 결국 이 내가 마력의 총량으로 찍어 누를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할 정도의 힘이, 아리아 그 계집애에게는 있었단 말이지.”
키득거리며 그러한 말을 늘어놓는 비앙카의 어투 속에는, 도저히 숨길 수가 없는 자조적인 무언가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 이제는 아리아 그 여자가 얼마나 강해졌을지 쉽게 상상도 가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리아 그 계집애가 네 옆에 가만히 서서 가련한 척, 연약한 척을 할 때마다 온 몸에 닭살이 솟아오르는 것 같단 말이지.”
하지만 비앙카의 그러한 말을 들으며, 카인은 자신도 모르게 한 가지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실이 있는데.”
“뭔데?”
“내가 알기로 마법사들이 자신의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에는 최소 년 단위의 수련이 필요하다고 들어서 말이지. 아리아가 마법에 대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고작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너보다 훨씬 강해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섣부른 추측이 아닌가?”
카인의 타당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지적에, 비앙카는 피식하고 웃음을 지으며 반론을 펼쳤다.
“그래서? 네 말대로 따지자면, 이 세상에 나타하자마자 대륙 전체를 겨울로 뒤덮어 버린 ‘겨울의 마녀’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설마 ‘겨울의 마녀’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10년 동안 수련이라도 하고 난 뒤에 나타났다고 말할 심산은 아니겠지, 카인?”
...확실히, 그저 오래 수련을 한 것으로 최강자가 될 수 있다면 카를 영감이야말로 인세 최강의 마법사가 되었을 것이다. 마법의 경지와 수련의 기간은 결코 비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법은, 철저한 재능의 영역에 있는 학문이었으므로.
“.....”
비앙카의 타당한 지적에 카인이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그녀는 그 어느 때와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카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 뿐이야. 너의 시녀, 아리아는 단순히 기억을 잃어버린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가녀린 소녀인 것이 아니라, 한 때 세상을 겨울로 뒤덮어버렸던 ‘겨울의 마녀’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한 손가락만으로 우리 넷을 전부 상대할 수 있었던, 절대적인 강자였다는 것을.”
“...그러니, 언제나 명심하도록 해. 그녀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닌, 인간의 형상을 한 명백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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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언젠가 비앙카가 떠올렸던 생각을 어느 한 명의 여인 또한 그대로 떠올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의 의견은 매우 좋은 의견이라 생각해요. 겨울의 마녀, 아리아를 죽이고 티아의 원수를 갚는 것뿐만 아니라 그녀를 제물로 바쳐 티아를 다시 볼 수 있다니. 어떻게 보아도, 제게 있어서 참으로 완벽한 계획이 아닐 수 없군요. 헌데, 그런데 말이죠...”
그녀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비웃음이 가득한 목소리를 숨기려 하지 않은 채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한 가지, 현실적인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녀는 눈앞에 서 있는 키리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신이 드러내고 있는 경멸을 감출 생각을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체 무슨 수로 겨울의 마녀를 제압하고, 죽일 수 있다는 말이죠?”
그녀는 지금, 오직 단신의 힘으로 전 세계에 끔찍한 겨울을 불러온 ‘겨울의 마녀’의 힘을 떠올리고 있었다.
“제 기억이 틀림없다면, 우리 둘이 그녀에게 덤벼들었다가는 그저 개죽음밖에 당하지 못할 텐데요?”
아리엘의 신랄한 말에, 키리에는 여상한 어조로 대답을 할 뿐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우리가 이미 한 번 이겨본 경험이 있는 상대지. 그렇다면, 두 번째는 더욱 쉽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 때의 '겨울의 마녀'와 현재의 아리아는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 오히려 난이도만 따진다면 과거보다 더욱 쉽다고 생각하는데.”
키리에의 그 말은 확실히 진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동시에 그녀는 결정적인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 아니면, 아리엘에게 인위적으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거나.
“예, 당신의 말대로에요. 과거, 저희는 한 번 ‘겨울의 마녀’를 쓰러뜨린 경험이 있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리스가 전위를 맡아주고, 비앙카가 그녀의 마법을 상쇄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업적이 아니었나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시 인류가 동원할 수 있던 모든 절대자들이 그녀에게 덤벼들었던 끝에 이끌어내었던 최상의 결과라는 것을 아리엘이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제가 기억하기로, 겨울의 마녀의 손짓 한 번에 당신의 팔이 산산조각 났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만약 제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당신은 과다출혈로 죽어버렸겠죠.”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과거의 보은에 대한 생색이라도 내고 싶다는 건가?”
키리에의 심드렁한 대꾸에, 아리엘의 입가에 맺힌 냉소는 더더욱 짙어져만 간다.
“아뇨. 조금은 현실적으로 상황을 마주해보자, 이 말인 거죠. 황녀 저하, 저, 당신, 그리고 비앙카가 합공을 한 것도 모자라 카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결코 ‘겨울의 마녀’를 쓰러뜨리지 못했을 거 에요. 겨울의 마녀와 우리들의 사이에는, 그 정도로 절대적인 격차가 놓여있노라고 단언을 할 수 있겠죠.”
확실히, 그녀의 말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진실 그 자체임이 분명하였다.
“물론, 8년 뒤의 ‘겨울의 마녀’와 현재의 아리아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겠죠. 현재의 아리아는 상당히 미숙하고, 전투에 그리 능숙하지 못할뿐더러, 무엇보다 대륙 전체에 겨울을 불러올 만한 힘이 없는 것만은 확실하니 말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말이죠...”
아리엘은 키리에를 향해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오며, 그녀를 향해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아무리 현재의 그녀가 약해져 있고, 전성기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영락했다고 하더라도, 고작해야 우리 둘 따위를 상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들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고양이가 아무리 늙고 노쇠하여 전성기 때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쥐새끼 두 마리를 해치울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리가 만무하니까.
아리엘이 생각하기에 ‘겨울의 마녀’와 그녀들 사이에는, 그 정도의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다.
“쥐새끼 두 마리가 모여 고양이를 사냥할 방도에 대해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긴 한데...”
웃음기가 깃든 목소리가, 그녀들이 서 있는 공간을 뒤덮어 간다.
“쥐새끼가 둘이 모이건 열이 모이건, 고양이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아리엘의 타당한 반론에, 키리에는 피식하고 웃으며 스스로의 입을 열어간다.
“뭐야, 난 또. 당신이 혹시나 겁이라도 집어 먹은 줄 알고 그런 질문을 하는 줄 알았잖아.”
“...네?”
키리에의 이러한 반응은, 아리엘이 예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반응임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저 여자는, 대체 어째서 저토록 여유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나도 잘 알고 있어. 겨울의 마녀, 아리아가 얼마나 강하고 끔찍한 괴물인지. 그녀가 우리와는 격이 다른 절대적인 초월자라는 것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지. 하지만-”
키리에는 스스로의 품속에서 자그마한 무언가를 하나 꺼내어 들어 아리엘에게 보여주었다.
“...반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는, 특색없는 반지. 키리에가 꺼내서 보여준 반지를 바라보며, 아리엘은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말았다. 저 반지, 분명히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 반지임이 틀림없는데. 나는 대체 어디서 저 반지를 보았던 것일까-
“아리엘 티에르, 방금 전 네가 말했었지. 쥐새끼가 몇 마리가 모인다고 한들, 고양이를 사냥할 수는 없는 노릇이노라고. 그래, 그건 확실히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말이지.”
키리에는 손 안의 반지를 한 차례 살며시 매만지며, 유쾌한 듯한 목소리로 이리 중얼거린다.
“보잘 것 없는 쥐새끼들이라고 할지라도, 고양이에게 대항을 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추고 있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지 않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