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상실에 걸린 마녀를 주워버렸다-166화 (166/201)

(EP.166)15. 설월화(雪月花) - 13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리엘이라는 여인은 아이를 낳기에 그리 적합한 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비단 아리엘뿐만이 아니라 성직자라는 직종에 종사하는 여인들은 전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지만.

타닥, 타닥.

아직까지도 똑똑히 기억할 수 있다. 그 날은, 창밖에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어느 날이었다.

오두막 한 가운데에 놓여 있는 난로에게서 피어오르는 열기가 거센 추위와 눈보라로부터 이 오두막을 보호해주고 있었으며.

그리고 어떤 남자는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스스로의 품 안에 끌어안고 있는 중이었다.

밤새 나뭇가지 위에 소복히 내려앉은 첫눈과 같이 가느다랗기만 한 그 아이는, 자신의 아빠의 품속에 안겨 새근새근 잠에 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흡사 유리로 이루어진 세공품을 만지듯 부들부들 떨리는 손길로 아이를 살며시 어루만지던 남자는, 이내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는 듯 품 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엄마의 옆자리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자신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게 된, 실로 감격스러운 날이었지만 이 방 안에 있던 어떠한 사람도 섣부르게 자신의 입을 떼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아이를 출산한 산모의 배가 반으로 쩍 갈라져 있는 끔찍한 모습을, 모두가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자연분만으로는 아이가 나오지 않았기에, 출산을 위해서 결국 여인은 스스로의 배를 가를 수밖에 없었으며.

자그마한 시골마을에 제대로 된 의사가 존재할리는 만무한 노릇이었기에, 한 때 도시의 의사 밑에서 도제 노릇을 했다던 의원은 결국 아이의 출산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였다.

그나마 여인의 신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막대한 신성력이 그녀의 자연치유를 돕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것이, 지금 이 순간 남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할 이유가 되어주지는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인이 아이를 낳기 위해 수 시간 동안 난산을 겪고, 저리도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빌어먹을 신성력 때문이었으니까.

“상당히 외람된 질문이지만, 혹시 부인께서는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성직에 몸을 둔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도제의 질문에 남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 이 순간에도 반으로 갈라진 복부가 스스로 자연 치유를 하는 모습을 그에게 들키고 말았으니, 숨긴다고 해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에 눈이 멀어 다른 남자와 도피를 하게 된 성직자 또한 의외로 많기도 하였고.

“저도 스승님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얻을 때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신성력을 가진 여인들은 대체로 아이를 출산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어째서입니까?”

“저도 자세한 원리까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만, 기본적으로 품속에 품고 있는 신성력이 몸을 가급적이면 ‘최적의 상태’로 복원시키려고 하는 성질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더군요. 거꾸로 말하자면, 부인께서 몸에 지니고 계신 신성력은 부인의 임신 상태를...”

남자는 차마 자신의 귀로 그의 말을 들을 수는 없다는 듯, 황급히 그의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가급적이면, 설명은 거기까지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자신과 그녀의 아이가 신성력에게 ‘불순물’로서 취급받았다는 말만큼은, 전해 듣고 싶지 않았다. 아리엘이 이 모든 대화를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 자리에서는, 더더욱.

“현재 부인께서는, 난산에 아이를 제왕절개 형식으로 출산하시느라 체내에 가지고 계신 모든 생기와 신성력이 고갈되신 상태입니다. 이번에는 어찌어찌 운이 좋게 산모와 아이가 전부 무사할 수 있었지만, 만약-”

만약 두 번째 출신이 존재한다면 그 때는 이런 형편 좋은 기억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생략된 그 말에, 남자는 스스로의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고 말았다. 그 또한 더 이상, 자신의 아내가 이리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안심해요. 전, 정말로 괜찮으니 말이에요.”

그리고 그 때였다. 방금 전까지 정신을 잃고 있던 여인이 눈을 뜨고, 남자를 향해 살며시 미소를 지어준 것이.

“아이 또한, 무사한 것 같군요. 정말로 다행이에요, 정말로-”

출산의 여파 탓인지 여인의 안색은 해쓱하기만 했지만, 그럼에도 여인은 자신의 현재 상태 따위는 아랑곳하지조차 않은 채 자신의 옆자리에 놓여 있는 아기를 아주 조심스레 매만졌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상태임에도,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아기는 잠결에 자그마한 손을 꼬물락 거리며, 그들을 향해 살그머니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여인의 눈에는, 그 모든 광경이 그저 경이롭고 눈부시게 보이기만 할 따름이었다.

어린 시절, 여인의 꿈은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누군가의 좋은 아내이자 누군가의 상냥한 엄마가 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었다.

법황국에서 나고 자라며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새장 속 인형에 불과했던 자신이.

시간을 넘어, 그리고 공간을 넘어, 마치 기적과 같이 어느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끝에 그 남자만의 여인이 되었으며,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하였다.

여인은 그 사실이, 못내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자신과 그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자신과 그의 아이를 긍정하고,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이 사랑을 긍정하며, 앞으로 자신이 받아들이게 될 운명마저 긍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미 한 아이의 어머니였으니까. 아이가 태어난 오늘, 자신이 이 아이의 탄생을 축복하지 않고서야 어느 누구도 자신을 대신해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동시에 무섭기도 하였다. 무섭고 두려워, 몸이 벌벌 떨리는 것이 멈추지가 않았다. 파멸이 예정되어 있는 미래. 끝이 없는 겨울. 모든 것이 종말로 접어드는 미래의 일이, 그녀의 뇌리 속에는 똑똑히 남아 있는 중이었다.

미래를 극복하기 위해 '겨울의 마녀'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닌, 모든 것으로 도망쳐 버린 선택을 내린 그녀에게는 그저 조용히 파멸을 맞이한다는 선택지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한 그녀가, 그 어떠한 것도 책임지지 못한 채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한 끝에 아이를 낳은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지금 이 순간에도 확신할 수가 없었단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고뇌와 번민을 알고 있는지, 남자는 그녀를 향해 조용히 위로의 말을 던져온다. 아니, 그녀의 죄를 사해주기 위한 축복의 말을 던져온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오늘은 그저, 아이의 탄생을 축하해주기만 하였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오늘은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경사스러운 날이잖아? 그러니 오늘만큼이라도 아이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사랑해주자. 왜냐하면 우리는 이 아이의 부모된 몸이니까.”

“...아, 카인.”

“...그리고 말이지, 사실 나는 기뻐. 당신이 내 아이를 낳아 주어서 정말로 행복해. 비록 우리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으며, 장차 행복할 시간 또한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아이의 탄생을 축하해주고 싶어. 지금 이 순간, 이 아이가 너무도 사랑스럽게만 보일 뿐이니까.”

“...저는.”

하지만 여인은 남자의 미소를 마주하며 그를 향해 도저히 웃음을 지어줄 수가 없었다. 비록 어머니로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추게 된 여인이었지만, 그녀는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을 도저히 두 눈으로 직시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행복 끝에 다가올 결말이 너무도 무섭게만 느껴지고 있었기에.

“...카인, 그러니까 저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를 향해 무언가를 고하려고 하는 여인을 향해, 남자는 그저 살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옆자리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기를 여인에게 살며시 건네준다.

“자, 어서 안아봐. 우리 둘의 아기를, 네 두 손으로 꼭 안아 줘.”

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뻗어 남자에게서 아이를 받아든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는 흡사 깃털처럼 가벼운 체중이었지만, 여인의 두 손에는 세상 그 어느 무엇보다 무겁게 느껴질 뿐이었다.

“정해줘. 아이의 이름을.”

남자의 재촉에, 여인은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쥐어짜 입을 열고 만다.

“...티아. 티아 폰, 에스텔.”

그 이름은, 이미 정해둔 이름이었다. 여인이 태기(胎氣)를 지니게 된 이후,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수십 수백 번의 고민을 거친 끝에 아이에게 붙여주기로 했던 이름.

고대어로 ‘희망’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

...그들의 아득하고 자그마한 희망이 담긴, 그 이름.

“이제 걱정하지 마, 아리엘. 우리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왜냐하면 우리는, 이 아이의 아빠와 엄마이니까.”

말이 아닌 행동으로서, 남자는 교차하는 만감을 내색하지 않은 채 손을 뻗어 여인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다.

남자가 전해주는 그 온기가, 여인에게 있어서는 단 하나의 위안이 되어주기만 할 따름이었다.

****

봄이 되었다.

봄이 되었다.

봄이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봄이 되었다.

“엄마! 엄마!”

오두막의 난로 앞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리엘은, 자신의 앞에서 깡충깡충 뛰는 티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티아. 엄마가 누누이 말했지. 집 안에서는 함부러 뛰어다니면 안 된다고. 그렇게 뛰어다니다가는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하지만, 밖에는 눈이 너무 많아서 뛰어다닐 수가 없는걸...”

침울한 듯 중얼거리는 티아의 말에 아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창밖을 내다보고 말았다.

때는 바야흐로 3월 초.

이제 봄이 무르익어 갈 시기임이 분명한데도, 창밖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아 주변이 새하얗게 뒤덮여 있는 풍경만이 보일 뿐이었다.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나쁜 생각을 머릿속에서 치워버리고 말았다. 저것은 단순히 최근 들어 날씨가 풀리지 않아 눈이 아직 녹지 않은 결과물에 불과할 따름이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확실히, 저렇게 눈이 많으면 도저히 밖에서 노는 것은 무리겠구나.”

“응,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집에서 뛰어다녀도 되는 거지? 그런 거지?”

엄마를 보며 눈을 반짝이며 그런 질문을 하는 티아를 향해, 아리엘은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대체 이 아이는 누구를 닮아 이리도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며, 이리도 천방지축인 것이란 말인가-

“안 돼. 엄마는 지금 바느질을 하고 계시잖아. 일하고 있는 엄마를 방해하지 말고, 아빠랑 밖에 나가서 놀다오자.”

마침 그 때, 티아의 등 뒤에서 심술궂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그래, 우리 공주님.”

잠시 밖에 나갔다가 이제 돌아온 아빠를 발견한 티아는, 아빠에게 덤벼들어 까르르 웃음을 지었다.

“아리엘, 그렇게 되었으니 잠시 밖에 나가 티아랑 놀아주고 올게. 이 근처에서만 놀 테니 그리 걱정을 하지는 말고.”

“네, 여보.”

남편이 티아와 있어준다면, 아무 걱정 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남편은, 무슨 일이 있어도 티아를 우선시 해주는 사람이니까.

그리 안심을 한 아리엘은, 티아가 아빠의 품에 꼭하고 안긴 채 함께 바깥으로 나가는 모습을 웃으면서 지켜보았다.

행복했다.

그와 함께하고, 티아와 함께 한 최근 몇 년,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이 맞나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하기만 했다.

더 이상은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자신은 그저 남편만 있으면 되고, 티아만 있으면 된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 둘만 있어준다면 아리엘이라는 여인은 세상이 끝나는 그 날까지 행복할 수 있을 터.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바느질에 열중하던 아리엘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창문 밖을 내다보고 말았다.

“...아.”

눈이, 내리고 있었다.

3월, 녹음이 트고 새싹이 돋아나야 하는 계절에.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마치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듯, 그녀의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명백히 정상이 아니었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여인으로서의 본능이,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본능이 지금 이 상황에 대한 단 하나 뿐인 대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말았다.

"...설마."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은 아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바느질 도구를 손에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마침내 시작되고 말았다.

...끝없는 겨울이, 그리고 끝이 없는 악몽이, 드디어 시작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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