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상실에 걸린 마녀를 주워버렸다-165화 (165/201)

(EP.165)15. 설월화(雪月花) - 12

폐허나 다름이 없던 허물어져 가던 오두막이 사람이 살 법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기까지 무려 이주라는 시간이 걸렸다.

제 아무리 타고난 손재주가 그럭저럭 괜찮다고는 하지만, 공작가에서 태어난 이래로 궂은일이라고는 일체 겪어보지 못했던 소공작께서 난생 처음 연장을 매만지게 된 나머지 그만 여러 가지 실수를 연발하신 탓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한 오두막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이음새가 꼼꼼하지 못한 탓에 여기저기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혹여나 비가 오기라도 한다면 비를 막아주기는커녕 빗물이 줄줄 샐 것만 같은 참혹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당분간은 오두막을 둘러싼 결계를 쳐두고 살아야겠군요. 혹시나 소나기라도 오게 된다면 집 안에 물난리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오두막의 완성도를 보며 아리엘이 여상한 어조로 그리 중얼거리자 카인은 차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던 나머지 고개를 푹하고 숙이고 말았다.

“...미안, 아리엘. 지금이라도 마을에 내려가 실력이 괜찮은 목수를 데려오는 것은 어떨까?”

카인의 회한이 가득 찬 듯한 중얼거림을 들으며 아리엘은 재미있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괜찮아요. 처음부터 뭐든 잘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요? 집이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며 차츰차츰 고쳐나가고, 수리해나가면 아무 문제없죠. 저는 말이죠, 개인적으로 집과 사람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실수도 많고 빈틈도 많지만,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고 점차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너무도 로맨틱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하거든요.”

아리엘은 카인의 팔에 매달리듯 팔짱을 끼어온다. 그 날, 결혼식 대신 사랑을 맹세한 이후 아리엘에게 생겨난 새로운 버릇 중 하나였다.

“제가 말했었죠? 저는 하나부터 열까지 당신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은 오두막이 훨씬 마음에 든다고. 그러니 저는 신경 쓰지 않아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보금자리는, 우리가 살아나가며 점차 완성시켜 나가면 되는 노릇이니까.”

그리 말을 하며 아리엘은 카인의 뺨에 자그맣게 입을 맞추었다. 카인은 왠지 그녀로부터 풋풋한 라벤더 향이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둘은 이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고 말았다. 실패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수 있는 것은, 젊은 청춘남녀들의 특권이 아닐 수 없었기에.

시간이 흘러간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다시 봄이 되고 말았다.

사람의 인기척이 나다니지 않는 곳에 지어진 오두막, 그곳에서 카인과 단 줄이서만 지낸 시간은 아리엘 티에르라고 하는 여인에게 있어서 참으로 행복에 겨운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계절이 세 번 지나갈 동안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 사람은 카인과 마을의 촌장, 그리고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한 상인 뿐. 그녀는 홀로 오두막 안에 앉아 카인만을 바라보고, 오직 그하고만 대화를 나누는 삶을 보내왔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오두막 바깥으로 출입하는 일조차 자제에 자제를 거듭하였다.

...하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곁에는 세상 모든 사람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고, 훨씬 더 사랑스러운 남자가 언제나 곁에 있어주고 있기 때문에.

아리엘 티에르라는 여인은 욕심쟁이가 아니었던지라, 그저 자신의 곁에 카인 폰 에스텔이라는 남자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할 수 있었다.

카인과 함께 밥을 먹고, 그와 함께 이 근방을 산책을 하고, 그와 얼굴을 마주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향해 ‘잘 자라’라는 인사를 하며 침대 위에 누워 잠을 청한다는-

실로 하잘 것 없고 시시하기만 한 일상이 되풀이되고 있었음에도, 아리엘이라는 여인에게 있어 그것은 하나의 기적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성녀(聖女)로서 추앙을 받은 이후 ‘겨울의 마녀’를 토벌하기 위한 원정길에 나서기 까지,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이라는 동안 아리엘은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려 한다면, 전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었다.

...그것이, 무서웠다. 언제나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만드는 강한 원동력이 되기는 하였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니, ‘아리엘 티에르’라는 여인을 위한 시간은 단 1초도 존재하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는 다르다. 카인의 곁에 있는 아리엘은, 그저 카인의 아내인 아리엘에 지나지 않다. 오직 그의 사랑을 받고, 그에게 사랑을 주는 것만을 신경 쓰면 되는, 그의 하나뿐인 아내.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은 정말로 가볍고, 마음은 그저 들뜨기만 하며, 세계는 이토록 평안해보이기만 한다.

지금 그녀는 그저 행복하기만 할 뿐이었다.

기적은 계속된다.

봄이 되었다.

“아리엘, 날씨가 풀린다면 우리 어디론가 놀러가지 않을래?”

“놀러간다고요?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요 앞의 개울가에 가서 놀다오자는 말씀이신가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리 질문을 하는 아리엘을 향해 카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흔든다.

“아니, 이 근방은 가볼 만한 곳은 전부 다 가본 것 같으니까, 이번에는 조금 더 먼 곳까지 나가보자. 가끔은 멀리까지 나가서 신나게 노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잖아.”

“...하지만, 그건.”

카인의 말에, 아리엘은 순간적으로 주저함을 나타내고 말았다. 최근에 너무도 안락하고 평온한 나날이 이어진 탓에 깜빡하기 쉬웠지만, 그들은 엄연한 도망자의 신세였다.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대륙 남쪽의 시골 마을에 숨어 살 듯 지내고 있었건만, 혹여나 사람이 많은 곳을 나다니다가 그들의 행방을 찾고자 하는 추격자의 눈길에 걸릴 위험성이 없다고는 결코 장담을 할 수 없었단 말이다.

“왜 그래. 설마 걱정이 되어서 그런 거야?”

카인은 아리엘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그리 속삭였다. 그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왠지 모르게 심신이 안정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조금은, 신경이 쓰여서요. 혹시라도 뭔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당신과 함께 하는 이 일상이,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리엘은 울상을 지어버리고 만다.

"아리엘."

그리 몸서리를 치는 아리엘을 아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카인은 아리엘을 스스로의 품 안에 꼭하고 안아주었다.

“...아.”

부부가 되어 한 침대 위에서 잠에 들고, 이미 여러 차례 몸을 섞은 그들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예고 없는 갑작스런 애정 표현에 결국 아리엘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고 말았다. 그녀에게 있어 남편의 사랑은 세상이 끝날 그 날까지 쉽게 익숙해지지 않을 무언가임이 틀림 없었다.

“전에 당신이 내게 이렇게 말을 했던 적이 있었지. 법황국으로 가기 이전에는, 어느 시골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었다고.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법황국 바깥을 나가본 적이 없노라고.”

카인의 갑작스러운 그 말에, 아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깜빡이고 말았다.

“...네. 분명히 그런 말을 하기는 했었죠. 그런데 그게 왜요?”

“나는 말이지, 그게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아.”

“네?”

“시간이 되돌려지기 전, 당신은 스스로의 생애에 걸쳐 성녀로서 추앙을 받았었다고 했었지. 여신의 대리인이자, 지상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으로서 숭배를 받았었다고 했었지.”

순간, 아리엘은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카인의 손이 아주 미약하게 흔들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 아리엘’로서의 삶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지? 만인에게 숭배 받고, 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끝내 그들이 원하던 우상으로서 자라나게 된 ‘성녀 아리엘’이 아닌, 인간 아리엘의 삶은 어디에 가서 찾아야하는 것이지?”

“.....”

“솔직히 말하자면, 무척이나 싫었어. 당신이 지금까지 겪고, 경험해오고, 알고 있는 세상이 알고 있는 세상이 그토록 협소하고 비좁기만 했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저 경험이 없는 지식만을 수없이 쌓아오기만 한 당신의 모습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

...느껴진다.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온기로부터, 오직 자신만을 생각해주는 그의 마음이 절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니 가자. 나는 말이지, 당신에게 조금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 당신이 조금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지금까지 당신을 둘러싼 협소한 세상이 아니라, 그 너머에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알게 해주고 싶어.”

정말로 원한다면, 세상에 가지 못하는 곳 따위 존재하지 않을 거라며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 아리엘 또한 따라 웃고 말았다.

아아, 기뻤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저 남자가, 자신을 이토록 신경써주고, 이토록 사랑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뻤다. 세상의 그 어떤 여자가, 이러한 상황에서 웃지 않고 배길 수 있단 말인가-

“...바다요.”

“응?”

책으로 습득한 지식으로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이 눈으로는 단 한 번도 눈에 담아보지 못했던 그 곳. 아리엘은 왠지 모르게 수줍고, 어딘가 쑥스러운 듯한 어조로 그리 속삭여온다.

“실은, 아주 예전부터 바다가 가보고 싶었어요.”

...아아, 그리고 그 때 그와 함께 나누었던 약속은, 분명-

기적은 계속된다.

봄이 되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그 둘은, 실로 오랜만에 둘만의 보금자리를 떠나 조금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말할 것도 없이, 바다였다.

“...아.”

난생 처음으로 본 바다는, 참으로 넓었다. 햇빛이 해수면에 반사되어, 마치 보석처럼 반짝반짝하게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녀가 두 눈으로 마주하고 있는 바다란,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들 중, 두 번째로 아름다운 것이 분명하다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어때? 너에게 꼭, 이 광경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리고 아리엘의 옆에는,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생각하는 사람이 쑥스러운 듯 웃음을 짓고 있었다.

“...카인...”

가슴이, 크게 두근거린다. 그는 언제나 그녀에게 감동을 선사해주는 남자임이 틀림없었다.

이 어찌나 가슴이 벅찬 일이란 말인가. 나를 이토록 신경 써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어찌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너와 함께하고, 너와 많은 것을 나누며, 나의 세상은 내가 알던 협소하던 세상은 넘어 이토록 넓어지게 되고 말았다.

나는 너라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 많은 것을 배웠다.

타인만을 위하는 성심을 배웠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을 배웠다.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 경험해 보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 두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 여러 가지 풍경들, 그리고 알지 못했던 생소한 감정들.

나의 자그맣던 세상은 너와 함께하며 어느새 이토록 넓고 커지게 되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 아리엘 티에르를 구성하던 세상은, 한층 더 넓고 광활하게 확장된 것이 틀림없겠지.

그리고 자신에게 이러한 선물을 선사해준 사람이, 다름 아닌 카인이라는 것이 그 무엇보다 기쁘기만 하였다.

“...카인.”

“응?”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요? 언젠가 당신과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당신과 함께 바다를 보러오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루어지지 않을 바람을 속삭이는 아리엘을 눈 앞에 두고, 카인은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향해 대답을 해준다.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리 말을 하며 카인은 아리엘의 손을 살며시 움켜잡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네가 원하면 언제든 이곳에 데려와주도록 할게. 언제까지도 너와 함께 이곳에 다시 찾아오도록 할게.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부부잖아.”

그리 말을 하며 나를 향해 웃어주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그대로 눈물이 흘러넘칠 것만 같았다. 어째서일까. 당신의 앞에만 서게 된다면, 이렇게 쉽사리 울보가 되어 버리게 되는 것은.

카인, 나는 아마도 당신을-

...꿈을, 꾸었다.

그와 함께, 다시 한 번 바다를 구경하러 간다는 꿈을. 그리고 바다뿐만이 아니라, 책으로만 보았던 여러 장소를 너와 함께 보러 간다는 꿈을.

꿈속에서 우리는 함께 걷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웃고, 서로를 위해주며, 함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즐거운 것 마냥,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할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만.

너와 함께하는 나날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라서는 아니 될 아름다운 소망을, 끝내 꿈꾸고 말았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끝내 사랑하게 되어 정말로 다행이다-

그것 하나만큼은, 이제 더 이상 신앙하지 않게 된 여신을 향해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말았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