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상실에 걸린 마녀를 주워버렸다-162화 (162/201)

(EP.162)15. 설월화(雪月花) - 09

그리하여, 그들은 대륙에 겨울을 불러온 마녀를 제압하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대륙에 휘몰아치던 끝없는 겨울은 자취를 감추었으며, 우러러본 하늘에는 오랜만에 따스한 햇살만이 가득하였다.

모두가 꿈에도 바라 마지않던 해피엔딩.

하지만 정작 ‘겨울의 마녀’를 제압하는 것에 성공한 원정대의 일원들 사이에서는.

“...카, 인.”

오직, 차갑고 싸늘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왜?”

격렬했던 전투의 마지막 순간, 겨울의 마녀는 최후의 발버둥인지 아니면 저승에 함께 갈 길동무를 만들기 위함이었는지 강대한 마법을 수도 없이 쏟아내었으며.

그 위력은 일시적으로나마 ‘휘광의 수호’를 발동한 아리엘의 방벽을 무너뜨리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목숨마저 위협하기까지 하였다.

자신을 보호하는 방벽이 전부 뚫려버린 절체절명의 상황 속, 그녀를 향해 빠른 속도로 쇄도하는 빛의 충격파를 보며 아리엘이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였을 바로 그 무렵.

- 아리엘!

마치 아리엘을 감싸 안기라도 하듯,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던 어느 한 남자가 존재하였다.

...그 이후의 기억 따위, 아리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투는 이미 끝이 나있었다. 다만, 이전과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

원래 죽었어야 할 그녀는 살아남았고, 그를 대신하듯 누군가가 죽어버리고 말았다.

“...아아.”

마지막 순간, 그녀를 바라보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는 대체 왜 웃음을 짓고 있던 것일까.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녀 따위를 감싸며 그리 환하게 웃음을 짓고 있던 것일까. 아니, 그 전에 전투에 끼어들지 않는다고 약속을 하였던 주제에 왜 그녀를 감싸 안았던 것일까. 자기 입으로 자신은 겁쟁이라고 말했던 주제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도망가겠다고 웃으며 말을 했던 주제에 어째서 그녀를 감싸 안고 대신 죽어버린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준 이유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제, 아리엘은 그러한 의문을 영원히 해소할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카인 폰 에스텔은 위기 속에서 아리엘 티에르의 목숨을 구해낸 대가로서.

“아아아아아악-!”

자신이 그녀 대신, 죽어버리고 말았으니까.

“카인, 카인-!”

겉으로 보기에 그의 모습은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전신에는 미약하나마 온기가 남아 있었으며, 겉으로 보기에 심한 외상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은 그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만 하였다.

...다만, 이제는 두 번 다시 눈을 뜰 일이 없다는 차이점만이 존재할 따름이지만.

“웃기지마. 아직, 아직 늦지 않았어요. 이 정도 상처 따위, 고친 적은 셀 수도 없이 많다고요. 저는 성녀에요. 제가 치유하지 못하는 사람 따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무릎을 꿇고, 마치 누군가를 향해 속죄라도 하듯 아리엘은 카인의 육신에 끊임없이 신성력을 밀어 넣는다. 카인의 몸이 빛으로 휘감기며, 전신에 남아 있던 자잘한 외상이 빠른 속도로 아물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효과가 없다. 지상 아래 가장 강대하다는 신성력도, 여신의 힘을 체현한다고 이름 높던 기적도, 평소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그녀의 손끝에만 머무를 뿐이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는 여전히, 눈을 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거짓말이야. 이상해, 이상하다고. 지금까지 이런 적 없었는데, 내가 원하면 그 누구라도 치료할 수 있었는데, 이건 아니야. 절대 아니라고. 그러니 구할 수 있어. 나는 실패하지 않아. 아니, 실패할 리가 없어-!”

끓어 넘치는 노호성과 함께, 아리엘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무시한 채로 더욱 강하게 신성력을 밀어 넣는다. 하지만, 끝내 신성력은 어떠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그의 몸은, 점점 차갑게 식어가기만 하였다.

천상의 여신께서 그녀를 사랑하는 증표라고 떠들어대던 강대한 신성력도, 지상의 온갖 이적을 체현한다던 기적도, 지금 이 순간 아무 짝에 쓸모도 없었다.

오직 그에게만, 신성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전신의 체온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왜, 대체 왜애...”

끝내, 아리엘은 그의 몸을 붙들고 울먹이고 말았다.

싫다. 그는 그냥 눈을 감고 있는 것에 불과한데,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일어날 것만 같은데.

그녀는 끝내, 꼭하고 감겨 있는 그의 눈을 뜨게 해주지 못했다.

“제발, 안 돼. 살려줘. 누군가 도와줘. 제발...!”

아리엘의 얼굴에, 슬픔이 더해져간다.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모든 것이 꿈과 같이 느껴진다. 그녀가 느끼고 있는 현실이 흡사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사락사락 빠져 나가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래, 이것은 꿈이다. 꿈이 분명하다. 그가 자신을 대신해 죽어버렸다는 비참한 현실이, 진짜일 리가 없다-

“...카인은, 안 죽었어.”

털썩.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카인을 감싸안고 있는 아리엘을 바라보며, 비앙카는 그녀의 옆에 털썩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아리엘을 바라보는 비앙카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멍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직 안 죽었다고. 안 죽었어. 죽을 리가 없다고. 그가 이렇게 쉽게 죽을리가 없잖아.”

그리 되내이며 비앙카는 축하고 늘어져 있는 카인의 손을 살그머니 매만진다. 그의 손끝에는, 아직 흩어지지 않은 자그마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이거 봐, 아직 따뜻하잖아. 그리고 방금 전 목울대가 살짝 움직이기도 했다니까. 진짜야, 내가 봤다고. 그래, 나는 믿고 있었어. 아리엘, 빨리 신성력을 더 밀어넣기나 해. 그는 지금 지쳐서 눈을 감고 있는 것이고, 조만간 정신을 차릴 것이 분명-”

“방금 전의 그것은, 사후경직이다.”

“...뭐?”

바닥에 주저앉아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뇌까리던 비앙카의 등 뒤에서, 냉정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인간의 신체는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 근육이 수축되기 마련이며, 방금 전 그것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근육이 이완된 것에 지나지 않아. 비앙카 델 카스타나, 현실을 받아들여라. 그는 이미 사망하-”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이리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콰아아앙-!

그 순간, 비앙카가 아이리스를 향해 거대한 불덩이를 날렸으며, 아이리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불을 베어 넘기느라 입을 다물어 버릴 수밖에 없었으므로.

“...비앙카 델 카스타나. 드디어 미쳐버린 것인가?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초리로 아이리스가 비앙카를 향해 검을 치켜세우자, 비앙카 또한 그에 질세라 전신에서 보랏빛 영기(靈氣)를 피어 올린다. 전신에 있는 모든 마력을 끌어 올려 눈앞의 적을 참살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히 나타나는 전조가 아닐 수 없었다.

“황녀님, 그 입 좀 닥치지 그래? 카인은 죽지 않았어. 그는 지금 그냥, 눈을 감고 있는 거야. 너무 지친 나머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한 번만 더 그가 죽었느니 어쩌니 헛소리를 한다면...”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건 너다, 비앙카 델 카스타나.”

머리카락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는 비앙카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아이리스는 한 치의 주눅도 들지 않는 모습으로 말을 이어나간다.

“언제까지 현실을 외면할 작정이지? 그는 죽었다. 그가 만약 살아있었더라면 아리엘 티에르의 치유를 받고 회복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스스로를 그리 속이고 부정해봐야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 그대의 행동은 스스로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기만에 지나지 않을 뿐.”

"그 입 닥쳐! 안 죽었어. 카인은 안 죽었다고!"

"내 말이 틀렸다면 어디 한 번 반론을 해보거라. 내 말이 어디가 틀린 것이며, 어디가 옳지 못한 부분인지 확실히 반론을 해보란 말이다."

아이리스의 말에 비앙카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끝내 어떠한 반론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죽었다는 사실 따위, 처음부터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므로.

“...당신은 정말 냉정한 사람이구나.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카인이, 카인이 이렇게 되었는데,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냐고, 비앙카는 말이 되지 못한 신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오만하군. 지금 이 자리에서 오직 너만이 슬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비앙카의 말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아이리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우리는 이곳에 놀러 온 것이 아니다. 인류의 존망을 걸고서 여차하면 스스로의 목숨을 내놓을 다짐을 하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란 말이다. 죽음을 맞이할 각오 따위, 그 또한 이미 옛날저녁에 하고 있었을 터. 지금 너는 추도라는 명목 하에 그의 명예를 모욕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모욕, 모욕이라고?”

아이리스의 냉정한 말에, 비앙카는 그녀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선다. 다른 어떠한 말을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일지언정, 방금 전의 그 말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웃기지 마. 명예니 뭐니 그따위 것이 뭐가 중요한데. 그가 죽었어. 그가 죽었다고. 그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해. 두 번 다시 나를 향해 말을 걸어주지 못해. 두 번 다시 나를 향해 웃어주지 못한다고. 그런데, 명예가 어쩌고 어째-!”

흡사 상처 입은 동물처럼, 비앙카는 아이리스를 향해 으르렁 거린다. 금방이라도 비앙카를 한 대 후려칠 기색이었지만.

주륵-

아이리스의 입술 사이로 흘러 내리는 한 줄기 선혈을 보며 비앙카는 끝내 아이리스를 향해 손을 올리지 못하였다.

“.....”

그리고 주변에서 누가 뭐라 지껄이고, 어떤 상황이 연출되고 있건 간에, 그의 몸을 조심스레 쓰다듬고 있는 아리엘의 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멍하니,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 같은 카인의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미안해.”

아리엘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한 채로, 고장난 인형마냥 사죄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미안해.”

가장 처음 너를 보았을 때, 겉모습만 보고 너라는 사람을 판단한 것이 미안하다.

“미안해.”

원정 기간 내내, 네게 조금 더 신경 써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미안해.”

어젯밤, 너를 보호하려는 명목 하에 네 마음에 상처를 입혔던 것이 미안하다.

“미안해.”

비앙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거무칙칙한 감정 때문에 끝내 네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하다.

“...미안해.”

마지막 순간, 네가 나를 감싸주었는데 정작 네게 목숨을 구원받은 나는 감사를 표하지 못한다는 것이 미안하다.

“미, 안해.”

이토록 네게 미안한 것이 많고 네게 사과할 것이 많은데, 정작 네게 어떠한 사과도 할 수 없고 설사 사과를 하더라도 너라는 사람은 이제 내 사과를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펐다.

“우, 아으, 아아아아-!”

주변에 통곡소리가 울려 퍼진다.

후회스럽다. 대체 무엇을 위해, 지난 20년간 스스로를 갈고 닦아 온 것인지 그저 한탄스럽기만 하다. 뭐가 여신의 대리자이고, 뭐가 성녀란 말인가. 다른 사람의 힘이 되어주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였건만, 자신의 옆에 있던 사람 한 명 구하지도 못하는 무능력한 자신이 너무나도 미웠다.

고작해야 이런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그토록 피나는 노력을 해온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던 것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고작해야-

“...카인...”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 때야말로, 나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나의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을 텐데.

“...그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그리고, 바로 그 때였다.

주변에 대고 그토록 도움의 손길을 울부짖던 아리엘을 향해.

여신을 대신해 그녀의 손을 붙잡아 준, 단 한 명의 여인이 그녀의 귓가에 구원의 목소리를 속삭인 것이.

“내가 도와줄까? 마침 네가 원하는 소원을 이루어 줄, 딱 한 가지 방법이 존재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키리에 엘 데나리스.

“너의 속죄를, 너의 구원을, 너의 소망을, 너의 미련을, 전부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 넌 어찌할 심산이지?”

되풀이 되는 어리석은 망집의 염원을 들어주고자 한, 아리엘만의 구원의 천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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