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1)15. 설월화(雪月花) - 08
‘겨울의 마녀’를 토벌하기 위해 에스텔 공작령으로 향하는 여정도 어느새 반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고, 길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그 여행길 속에서 아리엘 티에르라고 하는 여인은 카인 폰 에스텔이라고 하는 남자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짐덩이에 불과한 보잘 것 없는 사내인 줄 알았다. 자신의 분수도 알지 못한 채 마녀를 토벌하였다는 허명에 집착하고자 하는 멍청이에 불과한 남자인 줄 알았다. 스스로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피에로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난 반년, 아리엘은 어떠한 ‘계기’로 말미암아 카인이라는 사람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카인 폰 에스텔이라는 남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공유하였으며, 그 결과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나약한 사람이었다. ‘겨울의 마녀’가 가져온 끝나지 않은 겨울을, 오직 자신의 영지에서 마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을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잘못한 것은 어디에도 없는데도, 그는 언제나 부채 의식을 떠맡고 있는 듯 보였으며 스스로를 죄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멍청한 사람이었다. 그는 원정대에서 가장 무능력하고 약한 사람이었다. 그가 대체 어떤 이유로 원정대의 일원이 되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설사 그가 원정대에 없더라도 ‘겨울의 마녀’를 상대하는 일에 지장 따위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단념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의 한계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황녀에게 다가가 검술의 단련을 요청하였다. 미약하게나마 자신 또한 힘이 되어주고 싶다며, ‘겨울의 마녀’를 토벌하는 일에 도움이 되어주고 싶다며 검을 잡는 그의 모습은, 세상 그 어떠한 사람보다 멍청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는, 검에 그다지 재능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는 남는 시간마다 쉴 틈도 없이 검을 휘둘렀지만 별다른 진척을 얻지 못하였으며, 황녀에게서 수련을 받던 와중 근육이 파열되거나 뼈가 뒤틀리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때로는 검을 놓치고 바닥에 추하게 뒹굴기까지 하였다.
아리엘 또한 무(武)를 수행하는 사람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카인의 저러한 모습은, 아무 짝에 쓸모없는 노력임이 틀림없다. 그가 지금 이 순간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아무리 많은 땀을 쏟는다고 할지라도 필경은 무위로 돌아갈 것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카인 폰 에스텔에게는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수없이 검을 휘두른다고 할지라도 그에게는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재능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반 년 간 황녀에게서 매일과 같이 훈련을 받았음에도 그는 그다지 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가 강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요원한 일임이 틀림없겠지.
허나 그는 미련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스스로가 행하는 노력이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는 자신의 손에서 끝까지 검을 놓지 않았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아무리 상처를 입고, 아무리 힘들어할지라도, 그는 결코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황녀와의 훈련 끝에 온몸이 부서져 헐떡이고 있는 그를 치유해주며 아리엘은 나지막한 어조로 질문을 던져보았다. 대체 어째서 이렇게 무의미한 일을 하는 것이냐고. 어째서 이렇게 멍청한 일을 하는 것이냐고. 끝까지 포기를 하지 않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고.
“저도 이 원정대에 힘이 되어주고 싶으니까요. 아주 미약한 힘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저라도 도움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앞으로 ‘겨울의 마녀’에게 당도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반 년 정도. 그 짧은 시간 안에, 당신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아요.”
“뭐, 그럴 지도 모르죠.”
미련한 남자는, 그녀의 걱정 어린 말에 소리 높여 웃음을 지으며 이리 대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설사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지라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것보다는 쓸모없는 노력이라도 해보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실망이라는 것도,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인 끝에 결국 성취해내지 못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리 말을 하며 그는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난다.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흐르는 손으로, 땅에 떨어진 검을 다시 한 번 움켜쥔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황녀를 향해 검을 치켜세우는 미련한 모습이 그녀의 눈동자 속에 담기고 있었다.
어리석다. 무의미한 일이다. 그녀는 그의 초라하고 꼴사나운 모습을 보며, 속으로 남몰래 비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니, 왠지 모르게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결코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끝까지 아등바등 거리는 그 미련한 모습이, 너무도 추해보이기에 짜증이 치솟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그녀 또한 그가 황녀와 검술을 훈련하는 모습을 매일 같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비앙카 대신, 그의 몸을 치료해주고 그의 부상을 쓰다듬어주며, 그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자신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새, 아리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이제 그만 포기해버리라는 조소에서, 포기하지 말라고 일어서라고, 무릎이 꺾이더라도 다시 한 번 일어나라고 마음 깊이 외치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자신은, 저 미련하고 멍청한 남자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란 말인가. 처음에는 그저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남자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대체 언제부터 저 남자는 자신의 마음속 한 공간을 차지하게 된 것이란 말인가.
“...비앙카 델 카스타나...”
그래, 생각해보니 분명 그 때부터였다. 비앙카 델 카스타나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아리엘 티에르의 두 눈은 줄곧 카인 폰 에스텔의 모습을 뒤쫓고 있었다.
왜냐하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너무도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저 오만하고 대단한 비앙카 델 카스타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것으로도 모자라 그녀가 일생에 걸쳐 사랑하고자 다짐한 저 남자가 대체 어떠한 남자인 것인지 호기심을 참아낼 수가 없었기에, 그녀는 줄곧 카인의 거취를 뒤쫓았으며.
그 결과, 아리엘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뒷모습을 두 눈으로 뒤쫓아버리게 되고 말았다.
어째서일까. 대체 어째서 자신은 카인 폰 에스텔을 이리도 신경 쓰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가 부상을 입기라도 한다면 어찌하여 자신 또한 부상을 입은 것 같은 아픔을 느끼는 것이며, 그가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는 그 모습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며, 그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를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자신은 그를-
“.....”
그럴 리가 없다. 자신과 그는 어떠한 사이도 아니다. 제대로 된 말을 섞어본 관계도 아니고, 변변찮은 친분을 맺은 사이도 아니다. 그와 자신과의 접점은 오직 ‘겨울의 마녀’를 토벌하기 위한 원정대에 소속된 사이라는 것과, 그가 부상을 입을 때면 그에게 치유술을 걸어준다는 것 외에는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법황국에 받아들여지고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남자를 가까이 한 적은 없다만 그런 그녀라도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남녀가 깊은 관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동기가 필요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멀리 갈 것도 없다. 저기 있는 비앙카 델 카스타나만 하더라도, 어릴 적에 카인 폰 에스텔과 나눈 추억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와 연결이 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자신은 무엇인가? 자신과 그는 어떠한 사이도 아니며, 어떠한 관계로도 맺어져 있지 않다. 그와 자신 사이에 친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형성된 시간은 고작해야 반 년 정도. 그런 찰나에 불과한 시간으로 ‘인연’이라는 것이 쌓였다고 주장을 한다면 아마 온 세상의 사람들이 그녀를 비웃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자신은 결코 카인 폰 에스텔을 남자로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감정은 그저 저 멍청한 남자를 향한 동정심이고, 미련한 남자를 향한 비웃음에 지나지 않다. 아리엘 티에르라고 하는 여인은, 결단코 카인 폰 에스텔을 향해 어떠한 감정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의 마음은 이토록 혼란스러운 것일까. 그가 다른 여자와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끓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이 그의 상처를 치유해줄 때마다 그가 고맙다며 인사를 하면 마음이 금세 잔잔해지곤 하며, 너를 생각하며 밤에 잠을 쉽사리 이루지 못하는 날은 이토록 많아지게 된 것일까.
비앙카 델 카스타나 대신 자신이 그와 어릴 적에 마주했더라면 자신과 그의 현재 관계는 어떠하였을까, 같은 무의미한 상상은 대체 왜 하게 된 것일까.
...하지만, 전부 무의미한 상상이며, 꿈꿔서는 안 되는 가정이 아닐 수 없었다.
현재의 자신은 해야 할 일이 있다. 많은 눈물이 있었고, 많은 아픔이 있었다. 아리엘 티에르는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그 지옥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20년간 스스로를 갈고 닦아왔던 것이 아니었던가.
고작 해야 남자 하나에 정신이 팔려 해야 할 일을 망각하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것들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또한, 카인 폰 에스텔이라는 남자는 비앙카 델 카스타나가 무려 20년 전부터 마음에 품고 사랑을 해오던 사람이 아니던가? 자신보다 먼저 그를 마음에 품고 사랑해왔던 여인이 버젓이 옆에 있는데, 그에 대한 발칙한 상상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 대한 배반이 아닐까?
물론, 아리엘 티에르와 비앙카 델 카스타나 사이에는 애당초 ‘배반’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만한 관계가 구축이 된 적이 없기는 하였다. 하지만 세간에서 ‘성녀’라고 불리는 아리엘 티에르가, 다른 여자가 짝사랑하는 남자를 가로채는 일이 과연 올바른 일이긴 하단 말인가?
...어지러웠다. 대체 어째서 자신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모든 것이 부질없는 생각이라며 단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의미가 없는 생각을 연속해서 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게 자기 자신조차 스스로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채,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간다.
아리엘 티에르라고 하는 여인은 원체 겁쟁이였던지라,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또다시 반년이라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원정대는 도착하게 되었다. 대륙의 그 어느 곳보다 눈보라가 세차게 휘몰아치는 곳. 모든 것의 시작. ‘겨울의 마녀’가 거하는 장소인, 에스텔 공작령에.
“.....”
결국 아리엘 티에르는 자신이 어떠한 감정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에스텔 공작령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겨울의 마녀’와의 결전은, 내일 치르기로 결정하였다. 일행 모두 눈보라를 헤치고 오느라 체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굳이 전투를 결행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을 하였으므로.
아마도 여행의 마지막이 될 것이 분명한 그 날 밤, 아리엘 티에르는 무언가에 흘리기라도 한 듯 모닥불 앞에 앉아 있던 카인의 옆에 살그머니 주저앉고 말았다.
제도에서 에스텔 공작령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결국,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것에 실패하였다.
지난 1년, 그토록 많은 땀방울을 흘려왔고 그트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결국, 그가 행한 모든 것은 무가치한 것으로 변화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닥불 앞에 있는 카인의 표정은 지극히 무덤덤하게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카인, 잠깐 이야기를 좀 나눠도 괜찮을까요?”
“...아, 성녀님.”
괜히 모닥불이나 뒤적이고 있던 카인은, 아리엘의 모습을 보자마자 살그머니 옆으로 이동하였다.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라는 그 신호에, 아리엘은 어떠한 스스럼도 없이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내일이 바로 결전인데,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라도 빨리 주무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겉으로 보기에, 카인은 그저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 1년간 자신이 피땀 흘려 노력해 온 그 결과가 무의미하게 변하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카인의 표정은 여느 때와 똑같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아리엘은 지금, 그런 카인의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입히려고 하는 중이었다.
“내일 있을 전투를 대비하여, 당신께 한 가지 충고를 드리려고요.”
“...충고, 말씀이십니까?”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인을 향해, 아리엘은 그의 마음을 가장 효율적으로 찢어놓을 수 있는 말을 내뱉어 버린다.
“카인, 당신이 1년간 그토록 노력을 하였음에도 당신은 결국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어요. 즉, ‘겨울의 마녀’와 대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조차 달성하지 못했다는 의미란 말이죠.”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 카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어딘가 모르게 씁쓸해하며, 어딘가 모르게 마음 아파하는 그 모습에, 아리엘의 마음이 절로 약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은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말이기에 아리엘은 이를 악물며 최대한 냉혹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즉, 당신에게는 내일 있을 전투에 끼어들 자격 따위 없다는 말이 되겠죠. 그러니, 내일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면 혹여나 끼어들 생각 따위 하지 마세요. 당신의 수준으로 끼어들다가는, 개죽음을 당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덩달아 우리의 발목까지 잡게 될 가능성이 더욱 크니까요.”
...그것은, 가혹한 말이었다. 지난 1년, 카인은 원정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셀 수도 없이 검을 휘둘러왔고, 셀 수 없이 땀방울을 흘려왔다. 그리고 그동안 그가 기울인 노력을, 아리엘은 오직 말 한 마디로서 ‘무가치'하다 단정을 지은 것이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참으로 가혹한 그 말.
하지만 아리엘의 그 말에, 오히려 카인은 웃으며 동의를 표하였다.
“성녀님, 저도 제 분수를 알고 있습니다. 저 같은 녀석이 내일 있을 전투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혹시 분수도 모르고 설치다가는 오히려 개죽음 당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것도 말입니다. 다행히 저는 겁쟁이에 불과한 사람이니, 어딘가 구석에라도 숨어 여러분들이 싸우는 것을 몰래 지켜보기라도 하겠습니다. 설사 무슨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도망치는 것 하나는 자신이 있으니 제 한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 말을 하며, 카인은 아리엘에게 감사를 표한다. 사실 전투 같은 것은 무서워서 참여할 생각도 없었다고. 오히려 제 한 목숨을 안전하게 부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더욱 좋은 일이 아니냐며, 소리 높여 웃음을 짓기까지 하였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세상에서 제 목숨이 제일 소중하며, 다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생각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으니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 날 밤 카인과 아리엘이 나눈 마지막 대화였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날, 원정대는 ‘겨울의 마녀’와 격돌하였으며.
격렬한 전투 끝에 그들은 마녀를 제압할 수 있었다.
다만 아쉽게도, 전투 과정 속에서 사망자가 한 명이 나오고 말았다.
사망자의 이름은 카인 폰 에스텔.
그는 한 순간 위기에 빠진 아리엘 티에르를 구해낸 대가로, 그녀를 대신해 죽어버리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