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상실에 걸린 마녀를 주워버렸다-157화 (157/201)

(EP.157)15. 설월화(雪月花) - 04

그리하여, 아리아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누워 있던 침대 위에서 살며시 두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침대 위에 누워 스스로의 두 눈을 꼭하고 감고 있었음에도, 그녀의 두 눈 속에는 졸린 기색 따위는 일절 남아있지 않았다. 그야 그것도 당연한 노릇이겠지. 왜냐하면, 아리아는 처음부터 침대 위에 누워 잠을 자고 있던 적이 없었으니까.

“.....”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불면증 따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처음부터 아리아라고 하는 여인은 잠을 잘 필요가 없는 몸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기억을 잃고 카인의 침대 위에서 눈을 뜬 이후부터 시작하여,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아리아는 단 한 번도 잠을 청한 적이 없던 것에 불과하였다.

아니, 단순히 수면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무언가를 섭취하여도 살이 찌지 않았으며, 아무리 몸을 격하게 움직여도 그녀의 신체가 피로를 호소하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2년 전, 그저 귀여운 소녀의 생김새를 하고 있던 아리아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직 조금 어린 티가 남아 있는 미인의 모습으로 성장하였기에 에스텔 공작가의 사람들은 그녀가 성장기였다고 추측을 하였지만.

사실, 자신의 몸이 성장 따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리아 본인이 더욱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저 마력을 쌓아나가고, 스스로를 더욱 높은 경지로 도야(陶冶)시켜나감에 따라 점차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무서웠다. 자신이 본질적으로 카인과 다른 것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도 무서웠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의 앞에서 무언가를 섭취하는 척을 하였으며, 밤이면 밤마다 잠에 드는 척을 하였을 뿐이다. 스스로를 인간이라 믿고, 스스로를 인간이라 생각한다면, 카인의 곁에 계속해서 머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기에.

“...아.”

그런데 오늘따라,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아니, 침대 위에 누워 잠을 자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너무도 복잡하였다. 가슴이 싱숭생숭한 느낌이었다. 머릿속이 이상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정작 그 생각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가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침대 위에서 한참을 뒤척거리던 아리아는 끝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리쉬더니 이내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아무래도, 오늘 밤만큼은 침대 위에서 한가롭게 ‘수면’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할 성 싶었다.

“...산책이라도 할까.”

어차피 잠깐 바람만 쐬러 나가는 것이다. 그리 중얼거리며 침대 위에서 살며시 빠져나온 아리아는 방금 전까지 걸치고 있던 가벼운 네글리제 차림으로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수면’을 취하기 위해 책상 위쪽에 잠시 풀어두었던, 눈꽃 모양의 팔찌를 자신이 깜빡하였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방 안으로 돌아왔다.

이스타드에서의 축제날, 그가 자신을 위해 사준 단 하나의 장신구.

설사 아주 잠시 바깥에 나갔다오는 것일지라도, 그가 자신에게 선물해준 이 팔찌를 몸에서 떨어뜨려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리아는 자신의 하얗고 가느다란 팔목을 매만지며 팔찌를 착용하려고 하다가, 그만 침대 옆에 놓여 있던 거울 속의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고 말았다. 거울 속에는 어느 누가 보아도 소녀라고 쉽사리 말을 할 수가 없는, 하얀 머리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지만.

콰직-

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거울을 매만지며 손끝에 힘을 가득 넣고 말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거울의 전면에 금이 살짝 하고 가고 말았다. 여러 갈래로 금이 간 거울 속에는, 아리아의 모습이 흡사 만화경처럼 여러 명 비춰지고 있는 중이었다.

...아리아는, 거울 속에 비춰지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도 싫었다. 아니, 저주스러웠다.

왜냐하면 거울 속에 비춰지고 있는 저 하얀 머리의 여인은, 현재 그녀가 섬기고 있는 주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전적이 존재하였으니까.

차라리, 그의 앞에서 만큼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소녀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과거의 자신이 어떠하였는지 따위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그저 그의 어여쁨만을 받기만 했던 그 시절의 자신이 너무도 그리웠다.

사락-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살며시 공작가의 후원 쪽으로 발걸음을 살그머니 옮겼다.

월광(月光)이 가득 쏟아지고 있는 후원 아래를, 그녀는 유유히 걸어 나간다. 어차피 시간은 이미 늦은 새벽인지라, 공작가의 후원에서는 그녀를 제한 다른 사람의 그림자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 하늘 아래 오직 그녀 한 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 모든 것이 그 때와 비슷하게 여겨진다. 모든 것이 눈으로 가득 덮인 새하얀 세상, 그녀를 제한 다른 생명이라고는 일절 존재하지 않는 혹한의 대지. 자신이 만들어낸 차가운 눈의 왕국 속에서, 그저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하던 사악한 겨울의 마녀, 아리아.

그리고 마지막 순간, 대륙 전체에 끝나지 않는 겨울을 불러온 사악한 마녀를 긍휼히 여겨준 어느 미련한 남자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가에 생생하다-

“그러고 보니, 벌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구나.”

아리아는 자신이 차고 있는 팔찌를 살짝 매만지며 그리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렇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정말 눈 깜짝할 사이의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스스로의 이름마저 잊어버린 자그마한 소녀가 그에게 ‘아리아’라는 이름을 지음 받고, 조금이나마 그의 힘이 되어주기 위해 마법을 익혀 나가며, 지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의 검이 되어 그의 몸을 지켜나갔었다.

비록, 그녀의 심장에 검을 꽂았던 남자가 그녀의 주인 행세를 하며.

세상 그 자체를 통째로 얼린 전적이 있는 사악한 마녀가 그의 시녀 행세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사이의 주종 관계였지만.

그러한 나날의 반복이, 아리아에게 있어서 어느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일평생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 여겨지던 스스로의 삶이, 어느새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 차 눈부시게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시녀 아리아’로서 그의 곁에 머무르게 된다면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행복 또한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였건만, 실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현기증이 나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조차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현재 그녀의 마음은 너무도 심란하기 그지없어서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 마치 눈으로 가득 덮인 새하얀 설원 위에 홀로 군림하고 있기만 하던,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버리게 된 것 마냥 공허하고 텅 빈 듯한 기분 나쁜 감각이 그녀의 마음을 꽉 하고 움켜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 아...”

...가슴이 아려온다. 왠지 모르게 심장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조차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방심(芳心)에, 아리아가 그저 멍하니 후원을 거닐고 있을 그 무렵-

“...아리아?”

그녀 보다 한 발 앞서 후원에 자리하고 있던 선객이, 아리아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른다.

“...카, 카인님?”

설마 이런 장소, 이런 시간대에 다른 사람과 마주할 줄은 몰랐다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카인이었다.

“이 시간에, 그리고 이런 곳에 대체 어쩐 일로...?”

아리아가 스스로의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리 질문을 던지자, 카인은 그저 쓴웃음을 지어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그냥, 오늘따라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서 그랬단다.”

“...네?”

“쉽게 말하자면, 마음이 어쩐지 싱숭생숭하였다는 의미이지.”

그리 말을 하며 카인은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의 옆을 탁탁하고 두드린다. 자신의 옆에 앉으려면 앉으라는 신호. 당연한 말이지만, 카인의 그러한 손짓은 아리아라는 여자에게 있어서는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애당초, 아리아 또한 그 유혹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았었고.

“...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결국 유혹에 넘어간 아리아가 카인의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자, 카인은 그런 아리아를 약간이지만 걱정이 되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복장을 보아하니 너도 잠이 잘 오지 않아 밤 산책을 나온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조금은 조심했어야지.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찌 하려고.”

그리 말을 하며 카인은 자신이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벗어 아리아에게 살며시 걸쳐 주었다. 순간, 아리아의 심장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거세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냄새, 냄새가 난다. 그의 옷에 묻어 있는 냄새가, 너무도 잘 느껴지는 바람에 아리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고 만다. 부끄럽다. 본인도 아니고, 고작해야 그의 옷에서 묻어 나오는 냄새 때문에 이리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럽다-

“...카, 카인님!”

“왜 그러니, 아리아?”

“그, 그런데 카인님은 어째서 잠이 잘 오시지 않으신 건가요? 요즘 들어 무척이나 피곤한 바람에 눈만 감으면 잠이 들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혹시라도 자신이 어떠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가 눈치라도 챌까봐 아리아가 입에서 나오는 데로 아무런 말이나 주워 삼키자, 그가 어쩐지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글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내 아이가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아이, 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방금 전까지 쿵쾅거리던 아리아의 심장이 거짓말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두렵기도 한 일이거든. 내가 따뜻하게 감싸주고, 내가 아주 많이 사랑해주고, 끝까지 책임져야 할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뭔가 내 마음을 떨리게 하니까 말이지.”

그리 말을 하며 카인은 밤하늘에 휘영청한 빛을 내뿜고 있는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현재,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스스로의 눈동자 안에 담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만을 사랑하고, 다른 누군가만을 바라보고, 누군가만을 생각한다는 것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정말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로구나.”

어딘가 모르게 아련함 그 자체를 담고 있는 그의 말에, 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입술을 꽉 깨물고 말았다.

이제야 깨닫고 말았다. 오늘 밤, 자신이 어째서 이토록 이상한 기분을 느껴왔으며, 어째서 이리도 싱숭생숭한 감각을 느꼈는지에 대하여.

...자신은 그저, 무서웠던 것이다.

만약 아이리스가 그의 아이를 낳고 나서, 그나마 자신에게 향하고 있던 카인의 모든 관심과 애정과 사랑을 전부 빼앗아 갈까봐.

그 사실이 너무도, 무서웠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그의 곁에서 눈을 떴을 무렵.

그의 곁에 있는 여인은 오직 자신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실로 충실한 시간이었다.

자신이 행하는 모든 노력,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 그리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그의 쓰임새가 된다는 실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는 것도, 그의 말을 가장 많이 듣는 것도, 그가 가장 말을 많이 걸어주는 사람도, 그가 사소한 지시를 내리는 것도, 그의 말벗이 되어주는 것도 전부-

자신 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찬란한 시간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의 곁에 있는 여인은 어느새 자신 혼자만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만을 귀여워해주지 않는다.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에게만 애정을 표해주지 않는다.

알고 있다. 그는 한 명이고, 반면 그가 사랑을 주어야 하는 여인은 여러 명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자신을 향하는 그의 사랑이 조금쯤은 줄어들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견딜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이 가지는 애정의 총량은 결코 유한하지 않다. 쪼개고 또 쪼개진 그의 애정 중에서, 자신이 가장 자그마한 용량의 파이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더 무서운 것은, 현재 자신에게로 향하는 사랑을 만족할 수 없어 하는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 아이리스가 그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리아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다름 아닌.

살의였다.

아이를 향한 살의가 아니었다. 아리아는 그저, 자신을 이외의 다른 여자가 그의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며 그의 곁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 아픔을 도저히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싫다. 너무도, 싫다. 단순한 질투 따위가 아니었다. 아리아는 마음 속 깊이, 카인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의 소유물이, 다른 여자와 함께 행복을 나눈다는 행위 그 자체가 너무도 싫었다-

...그것이 바로 현기증의 원인이었다. 현재의 자신은 명백히 정상이 아니다. 차라리 질투가 낫다. 카인을 향해 이런 음험하고 질척질척한 마음을 품어 나가는 자신이 너무도 무서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카인을 자신의 소유물이라 생각하고 있는 이 마음이 점차 커져가고 있었다. 그를 당연하게 자신의 물건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것이라 여기고 있는 스스로가 당연하게만 여겨지고 있었다.

사라 세르나드가 저리도 흔들리고, 가슴 아파하는 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자신 또한, 카인이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다면 저리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싫다.

왜냐하면 자신이 만약 과거와 같이 되어 버리게 된다면, 자신이 이상해져 버린다면, 그의 곁에는 다른 여자가 머물게 될 지도 모르니까.

과거의 자신처럼,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자신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너무나도 싫다-

“...아리아?”

그러한 자신의 들끓는 상념을 눈치 챈 것인지, 그가 자신을 조심스레 돌아본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오직 그녀를 향한 걱정만이 담겨 있었다. 자신을 향하는 그 애정에, 아리아는 숨을 살짝 헐떡이고 말았다.

“...카인, 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이토록 망가져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밝힐 수는 없었다. 그는 분명 상냥하니까, 모든 진실을 밝힌다면 분명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쏟아줄 것이다.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토록 매달리고, 애걸하며, 울부짖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자신만의 행복만을 바라는 추악한 욕망이, 과연 맞는 길이기는 할 것일까.

“...카인님.”

스스로의 모든 욕망을 애써 억누르며,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 가장 아름다운 것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다른 누구를 속일지언정, 그 앞에서 만큼은 거짓을 고하기 싫었다.

“제가 만약-”

세상을 홀로 멸망시켜나가던 사악한 마녀가 되었던 자신에게도 스스럼없이 검을 들이 밀었던 이 남자라면, 분명히 자신의 미래를 떠맡아 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으며.

“...제가 만약 옛날처럼 아주 나쁜 마녀가 되어버린다면, 부디 저를 책임져주실 수 있으신가요?”

스스로조차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한 때를 감히 입에 올리며, 아리아는 카인을 향해 그저 진심 뿐인 단 하나의 소망을 내뱉고 말았다.

“...마녀?”

아리아의 그 말에, 카인은 아주 잠깐 행동을 멈추고 머뭇거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 약속해 주마."

그는 아리아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답을 돌려주었다.

"네가 만약 나쁜 짓을 하게 된다면, 내가 기필코 가장 먼저 너를 혼내주도록 하마. 아리아."

장난스럽지만 진심어린 그의 대답에, 아리아는 안심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길게 숨을 들이 쉬어 보인다.

“...그것 참, 다행이네요.”

망설임이 없는 그의 대답에, 아리아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스스로의 눈을 지그시 감고 말았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서, 정말로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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