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4)15. 설월화(雪月花) - 01
“우욱-!”
방금 전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상이 깨어져 나간 끝에, 사라는 다시금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굳이 상황 파악을 위해 주위를 둘러볼 필요는 없었다. 자신은 지금 분명, 에스텔 공작가의 후원에 주저앉아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 카인과 자신이 처음 얼굴을 마주한, 추억의 장소.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사라를 누구보다 먼저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몸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통째로 목구멍으로 올라온 것만 같은, 지옥과도 같은 구역질이었다.
“하윽, 하, 하아, 하아-”
머리가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것 같은 지독한 두통이 사라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알게 되었다. 이 지독한 두통은, 보아서는 아니 되는 것을 목격한 대가라는 것을.
하지만.
“...하아, 하, 으-”
지금 느끼고 있는 고통 따위보다, 방금 전의 목격한 것이.
훨씬 더-
아팠다.
사라가 방금 전 바라본 것은, 카인의 기억이었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카인 폰 에스텔과 사라 세르나드의 이야기였다.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인 동시에 미래의 이야기였다. 이미 지나가버린 이야기인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예정인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라 세르나드’는 자기 자신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라 세르나드’이기도 하였다.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면, 추하지 않은 인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떠한 이라도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 딱 잘라 판결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에 따라 선악의 가치관이 너무도 쉽게 뒤집히고 만다는 것은 그녀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하, 으... 우욱, 하악-!”
카인의 시점에서 바라본 자신은 이리도 역겹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과거의 ‘카인 폰 에스텔’이 그리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카인의 기억을 들여다본 사라 본인은, 그리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무엇이 올바른지,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소중히 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스스로의 아픔과 한탄만을 중히 여기며.
정작 자기 자신을 끝까지 바라봐준, 누군가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했던 자기 자신이 역겨워 미칠 것만 같이 여겨진다-
“하윽, 하, 아아아악-!”
구역질이 도저히 멈추지 않았다. 속에 있는 것을 모조리 게워냈음에도 구역질이 멈추지 않아, 결국 위에서 쓰디쓴 무언가가 올라오고 말았다. 이제는 안에 든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반복하였다.
...입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역겨움이 도저히 가시지 않았기에.
“...우욱-!”
피를 토했다.
...아팠다. 가슴이 너무 아파, 어딘가에 휑한 구멍이 하나 생겨 바람이 드나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버릴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사라에게 있어서 단죄의 아픔조차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십수년에 걸쳐, 자신 따위 보다 훨씬 아파했던 사람이 존재하니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사실이, 지금 이 순간 사라를 진정으로 아프게 하고 있었다.
“으, 아으...”
기억이 떠오른다. 아니, 강제로 떠올려진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되새겨진다.
‘카인 폰 에스텔’에게 제멋대로 기대하고, 제멋대로 실망하고, 제멋대로 떠나 간 누군가.
녹음이 푸르른 5월. 결혼식을 치르는 한 쌍의 남녀를 멍하니 바라보는 어느 한 남자.
결혼식의 끝, 모든 하객들이 그들을 축복하고 있는 가운데에서 그녀가 행하였던 행동은 다름 아닌-
“.....”
그렇다. 이제야 떠올리고 말았다.
혀, 혀다.
신랑과 신부가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그 때. 서로의 사랑을 마주하고 확인하는 그 끝에.
나는 이 혀를.
“...아.”
언어가 되지 못한 신음성을 흩뿌린다.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그녀는 본능적으로 스스로의 가슴팍을 더듬거린다.
분명, 분명히 여기 넣어두었던 것 같은데-
스릉-
“.....”
그녀가 가슴팍에서 꺼내든 것은 다름 아닌 은장도였다. 혹시 모를 불의의 상황에 대비해, 호신의 목적으로 들고 다니던 단 하나의 흉기.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려 하는지, 그리고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은장도를 한 차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은장도를 자신의 혀 쪽으로 천천히 가져가기만 할 뿐.
괜찮다. 전혀 아픈 일이 아니다. 나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그저, 청소다. 이물에 더럽혀지고 만 자신의 무언가를 깨끗이 도려내는 것이 청소가 아니고서야 대체 무엇이겠는가-
"...카, 인..."
나는, 나는 그저 너를.
그렇게 사라가 은장도를 들고 있는 스스로의 오른팔에 힘을 주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이런, 그러면 안 되지.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끼긱-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목표물을 한 치 앞에 둔 상태로 사라의 은장도가 허공에 정지를 하고 말았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를 마련했는데, 네가 그런 식으로 도망치는 것을 허락할 것 같아?”
흡사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인물은 다름 아닌.
“안 그래, 사라?”
키리에였다.
“...도, 망...?”
숨을 헐떡이는 소리와 함께, 사라가 키리에를 향해 의문을 표하고 말았다. 도망이라니, 그건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나는 그저 더럽혀지고만 나의 신체를, 깨끗하게 덜어내려고 한 것 뿐인데-
“그게 바로 도망이라는 거야, 사라. 정신은 똑바로 차려야지? 네가 본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동시에 현실은 아니란다. 방금 전의 그건,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으니까. 지금까지 일어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일이 없는, 무력한 환상.”
“...환상?”
키리에의 웃음 섞인 속삭임에, 사라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갸르릉 내뱉고 말았다. 환상이라고? 방금 전 그녀가 보았던 것이 거짓에 불과하다고?
웃기는 소리다. 방금 전의 사라가 보고, 겪고, 느끼고, 체험한 것은 결코 환상 따위가 아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며, 과거에 존재했던 일이며, 앞으로 일어날 미래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방금 전의 그것은, 카인의 기억임이 틀림없었지만.
동시에,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였다.
그것이 기묘하다. 기억이란 본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 아니었던가? 대체 이러한 모순이 어떻게 성립 가능한 것일까? 대체 어떻게?
“.....”
이야기의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이 된 지식에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이 아파온다. 사라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을 총동원해보더라도, 이 상황을 도저히 명쾌하게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궁금해? 진실을, 알고 싶어?”
그리고 그녀가 품고 있는 고뇌를 뻔히 짐작하고 있다는 듯, 간교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사라의 귓가를 어지럽힌다.
“알고 싶으면 고개를 끄덕이렴. 오늘은 아주 기분이 좋은 특별한 날이니, 네게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해줄 테니.”
그 순간, 사라는 똑똑히 보았다. 자신을 향해 자애롭게 제안을 던지고 있는 키리에의 입가가, 가로로 쭉 하고 갈라지는 소름이 돋는 모습을.
그녀는 지금 자신을 향해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 위한 마지막 한 수를 놓고 있는 것이란 걸.
...그리고 자신은, 키리에의 노림수를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자비를 애걸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을.
사라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와 어떻게 뒤로 물러 설 수가 있겠는가.
다른 것도 아닌, 그러한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마주해 버리고 말았는데.
자신이 당도하게 될 끝, 자신의 바라던 미래의 결말이.
그토록 추악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자신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의 힘이 되어 주겠다고 맹세를 한 자신이, 실은 그의 가슴을 어느 누구보다 갈갈이 찢어놓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어떻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사라의 얼굴을, 키리에는 그저 흡족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삭막하기 그지없던 황무지와 같던 키리에의 마음속에, 한 차례 활력이 불어 닥친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조만간이다. 이제 끝이 머지않았다. 자신이 그토록 공을 들여온 이야기의 결말이, 폐막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아아, 너무도 기대된다. 사라 세르나드. 최후의 순간, 너는 대체 어떠한 표정을 지어보일까. 가슴 아파하며 통곡을 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비탄으로 가득 찬 오열을 내비출 것인가.
욕망과 희열로 가득 찬 미소를 이제는 숨기려 하지도 않으며, 키리에는 사라를 향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선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이 무대를 관람하고 즐기고 싶었다.
“...나는, 나는...”
목이 타는 듯한 슬픔과 아픔으로 인해 끝없는 갈증이 일고 있었다. 저것이 유혹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라는 도무지 거절의 말을 자아 낼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사라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다.
“부탁해.”
사라의 대답에, 키리에의 부드러운 손길이 사라의 뺨을 조심스레 쓰다듬는다. 마치 지고의 예술품을 쓰다듬기라도 하는 듯한, 지극히 조심스러운 손길. 가슴에 들끓는 열기를 애써 억누르며, 키리에는 조용히 스스로의 입을 연다.
“카인은, 그리고 우리는 미래에서 온 회귀자(回歸者)란다.”
“...뭐?”
순간, 사라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미래에서 왔다고? 회귀자라고? 제정신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소리였다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키리에의 말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명백한 진실보다 그녀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데 더욱 효율적인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카인의 기억에서 너도 보았겠지만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 세계는 멸망의 위기에 쳐하게 된단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인간들 스스로의 업(業) 때문이었지. 뭐어,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해. 인간들이란, 원래 스스로의 손에 의해 멸망으로 치닫는 생물이기도 하니까.”
키리에는 무언가 그저 키득거렸지만, 사라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일이기도 했다. 앞으로 몇 년 뒤에 다가올 세계의 멸망 따위, 전혀 그녀의 알 바가 아니었기에.
“그렇게 멸망이 확정된 순간, 인류의 존폐를 걸고서 원정대가 꾸려졌단다. 대륙 위에 내노라하는 강자들이 서로 합심해 원정대를 구성하였지. 그 구성원은, 너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비앙카 델 카스타나,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 아리엘 티에르, 키리에 엘 데나리스.
그리고-
카인 폰 에스텔.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멸망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에 성공했지. 아니,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여신께서는 아직 인류의 멸망을 바라지 않으셨거든.”
차라리 그 때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을 텐데.
“그리고 멸망의 끝, 인류의 존망을 지켜내는데 성공한 원정대원들은 과거로 되돌아올 수 있었단다. 스스로가 자아냈던 이야기의 결말을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의미이지.”
...그랬던 것인가. 그렇다면, 방금 전 자신이 바라보았던 그의 기억은 전부-
"그래. 방금 전 네가 보았던 것은 원래의 역사. 시간이 거꾸로 되감기지 않았을 무렵에 일어난, 우리가 닿았을 지도 모르는 미래."
하지만 방금 전 사라가 훔쳐보았던 그 미래는 이제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회귀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버리고 말았으므로.
“그리고 지금 그의 곁에 있는 여인들, 그러니까 그와 결혼을 하기로 약조한 비앙카 델 카스타나,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 아리엘 티에르는, 자신들이 맞이한 결말 속에서 이곳에 다시금 당도한 회귀자란다. 그리고 너는-”
키리에의 얼굴이 한 줄기 미소를 그려 보인다. 너무도 아름답고, 너무도 성스럽고, 너무도 요염한, 그러한 미소를.
“모든 미래의 결말 속에서도 어떠한 예외도 없이 카인에게서 등을 돌린, 역겨운 배신자이고.”
"가문에 저항한다, 운명에 저항한다, 라며 입에 발린 소리는 잔뜩 늘어놓았던 주제에 사실은 스스로의 이득만을 생각하며 그를 위해서는 주저없이 다른 남자의 가슴을 찢어놓을 수 있는 비정한 마음을 가진 여인."
"그게 바로 너란다. 사라 세르나드."
"넌 언제나, 스스로의 의지로 카인을 배신했던 거야."
"...그래, 언제나 말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