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1)14. 미련의 끝 - 14
흔히들, 우리는 이리 논하곤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언젠가 다가올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지니지 않을 수가 없다고.
그렇기에 어리석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인간들은 불사(不死)라는 어리석고 허황된 꿈을 추구하게 되는 법이노라고.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생명으로서, 자신이 끝난다는 사실을 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의 죽음에 어떠한 두려움도 품지 않은 것이야말로 생명체로서 무언가 결락되어 있음을 명확히 알려주는 지표임이 틀림없겠지.
...허나, 불사라는 것 또한 인간들이 추구하고 바라는 것 마냥 그리 편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한 사실을, 키리에 엘 데나리스는 이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야 말로 이 세상에서 불사라는 개념에 가장 근접한 생명체임이 틀림없었기에.
인간 세상에는 엘프의 수명이 대략 천여년 정도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엘프의 실제수명만 보자면 분명 그들은 천여년 정도는 거뜬히 살 수 있지만, 하지만 그 중에서도 천여년을 꽉 채워 사는 엘프는 사실상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유는 다양하다. 때로는 병에 걸려 죽을 때도 있고, 운이 없이 일찍 죽을 때도 있지만.
대다수의 엘프들은, 기나긴 삶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권태를 참아내지 못하기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곤 한다. 물론, 죽음이라 표현하기 보다는 스스로 세계수에 동화(同化)된다는 선택을 내린다는 표현이 더 걸맞을 테지만.
엘프들은 반요정(半妖精)인지라 인간들과 세상을 보는 시야가 많이 다른 종족이긴 하다만, 그래도 엘프들과 인간들이 느끼는 시간 감각은 사실상 동일하다 보아도 무방하다.
백년이라는 시간이 인간에게 길게 느껴지듯, 마찬가지로 엘프들 또한 백년이라는 세월을 기나긴 세월로 인지한다.
처음 백년은, 그럭저럭 살아갈 만하다. 하지만 이백년부터는 차차 삶이 권태로워지기 시작한다. 사백년, 오백년에 이르러서는, 엘프들 또한 스스로의 삶에 진절머리를 내버리고 만다.
그 때쯤이면, 슬슬 깨닫게 된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에는, 어떠한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삶이란, 언젠가 찾아올 끝이 존재하기에 빛나는 것이다. 끝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한시라도 살아 있을 내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쳐 왔던 삶과, 앞으로 남아있는 삶이 너무 길어 스스로의 끝이 어디인지 제대로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엘프들은, 심지가 다 타버린 촛불마냥 자신의 삶에 대한 기대를 져 버리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가 바라지 않았음에도 불사라는 이름의 저주를 뒤집어쓰게 된, 키리에의 경우에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느리게나마 노화를 겪던 다른 엘프들과는 달리, 키리에의 몸은 세계수의 수호자로 임명을 받은 그 순간 육체의 노화가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단언할 수 있었다. 불사란, 참으로 비참한 것이노라고.
세상의 모든 것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자신 혼자만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홀로 남겨지는 듯한 결락.
자신을 구성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색이 바랜 끝에 마모되어 가는 듯한 원초적인 공포.
새하얀 설원 위에 발자국을 남기더라도, 끝없이 내리는 눈이 나의 흔적을 덮어 씌워가는 것처럼 스스로가 행한 모든 행동이 끝내 무의미해져 간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그녀는 끝내, 삶에 대한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삶을 무려 천 년 동안이나 견디고 버텨온 끝에, 키리에는 영원불멸이라는 것이 정말로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설사 몸이 강철로 이루어져 있다 할지라도 마모를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거늘, 하물며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정신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었다.
결국, 키리에 엘 데나리스는 정말로 지쳐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키리에라는 여인에게 안식이란 허락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에게 죽음은 꾸어서는 아니되는 꿈과 같았다. 그녀는 현재, 이 땅을 져버리고 사라져버린 여신들을 대행하는 역할을 떠맡고 있었으니까.
한 때의 숭고했던 맹세는 낡아빠진 의무로 변해버렸고, 이내 망집으로 전락하게 된다.
기쁨도, 노여움도, 슬픔도, 즐거움도, 전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변모해버리고 말았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무엇을 위해 삶을 연명하고 있던 것인가.
쳇바퀴와 같은 삶이 끝없이 반복되던 와중에, 전부 잊어버리고 말았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기나긴 여로를 걷는 기분이었다.
스스로조차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가 끝이 나는 날은 대체 언제인지, 나의 여정은 대체 어디가 종착점인 것인지, 이 구질구질한 목숨의 마지막은 언제쯤 찾아올 것인지-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삶의 끝자락에서 어느 한 남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스스로의 파멸을 향해 서슴없이 나아가는, 부나방과 같이 미련한 어느 한 남자를.
카인 폰 에스텔.
처음에는 그저 흥미있는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의 눈과 귀와 마음을 전부 빼앗아간 내 사랑스런 반려자.
너는 과연 나와 지옥을 함께 걸어가 줄 인간일까.
아니면 나를 이 무간지옥에서 꺼내줄 유일한 남자일까.
그것이 못내,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카인 너는 알고 있을까.
****
그 날은, 달이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휘영청한 달빛만이 남아 이 어둠을 고즈넉하게 밝히고 있는 광경 속에서, 사라는 에스텔 공작가의 뒤편에 위치한 후원에 조용히 서 있는 중이었다.
“.....”
그녀가 이곳에 서 있는 까닭은 단순히 후원에서 누군가와 만나기 위함이었으나, 이곳에 홀로 서 있으려니 왠지 모르게 스스로의 심장이 두근거려 오고 있음을 깨닫고 말았다.
한밤중, 어떠한 인기척도 존재하지 않는 후원에 홀로 서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우연의 일치일지 몰라도, 지금 그녀가 서 있는 장소는 과거 카인과 사라가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 처음 뵙겠습니다. 에스텔 공자님.
- ...세, 세르나드 영애.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주 어렸던 시절, 자신과 약혼을 맺게 될 소년이 대체 어떠한 사람일까 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에 에스텔 공작가를 찾았을 당시,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그저 쭈뼛거리만 하던 얼간이 같았던 그의 모습이.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한 첫 만남에 그녀는 조금은 실망해버리고 말았다. 고작해야 자신의 얼굴 따위에 홀딱 빠져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조금도 사내답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마냥 싫은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을 예쁘고, 아름답다 생각해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리 기분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 때 처음 깨닫고 말았다.
그것은 그간 사라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수많은 추억들 중 하나였다만.
요즘 들어 어째서인지, 그와 함께한 추억 하나 하나가 무척이나 소중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아쉬웠다.
만약 자신이 조금만 더 그를 세심히 눈 여겨 보았더라면.
가문이 주조해 낸 인형으로서 가문의 의지에 순종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의지로서 그를 사랑하였더라면.
어쩌면 지금쯤, 나는 보석으로 가득 찬 추억을 잔뜩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의 곁에서, 다른 여인들처럼 그의 사랑을 받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모든 것은 자신이 자초한 것이며.
그의 믿음을 먼저 져버린 것도, 그의 신뢰를 먼저 져버린 것도, 그의 사랑을 먼저 져버린 것도.
전부, 자신의 잘못에 지나지 않는데.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아주 약간 돌려보니, 마침 그녀의 바로 옆에는 유채꽃 한 송이가 파르르 피어있는 중이었다.
제철을 넘긴 탓인지, 주위의 꽃들과는 다르게 금방이라도 질 것 같이 시들시들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유채꽃은, 마치 그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았다.
제철이 지난 지 오래되어 이제는 퇴장할 때가 되었음에도, 어떻게 해서든 악착같이 생을 이어가려는 구질구질한 모습이 자신과 아주 쏙 빼닮았단 말이다.
너도 나도, 참으로 미련이 많은 삶을 질리지도 않고 이어가고 있구나.
그러한 생각을 하며 사라가 이제는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 놓여있는 유채꽃을 조용히 매만져보고 있을 무렵-
“상당히 이른 도착이로군요, 사라 세르나드. 아직 약속 시간이 되려면 멀었는데, 벌써부터 미리 약속 장소에 와 있었다니 말이에요.”
어딘가 모르게 차갑게 식은 듯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펴진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꼴사납게 지각만큼은 하기가 싫었거든요.”
유채꽃을 매만지던 손을 떼어 놓은 채,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주변에 활짝 피어있는 꽃들과 지독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어느 엘프 여인이 서 있는 모습만이, 사라의 두 눈에 비춰지고 있었다.
“대체 뭐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고작해야 카인과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그 이야기가, 제가 한평생 섬겨야 하는 분과 관련된 비밀이라면 중요하다고 밖에 표현을 할 수 없겠지요.”
사라의 침착하기까지 한 대답에, 키리에는 소리를 죽여 킥킥하고 웃음을 지어 보인다.
“당신이 섬긴다는 의미가, 그저 그를 주군으로서 섬긴다는 의미인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의미로 그를 섬기고 싶다는 뜻인 걸까요? 이런 건 조금 확실히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이래 뵈어도 저 또한, 그와 혼약을 맺기로 약조한 여인 중 한 명인지라 말이죠.”
언뜻 들으면 그녀를 조롱하는 듯한 키리에의 말에도, 사라의 얼굴에는 한 치의 미동도 존재하지 않는다. 애당초, 키리에가 자신을 왠지 모르게 탐탁지 않아 하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제와 그녀의 말에 상처를 입을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흥.”
의외로 무덤덤한 사라의 반응에, 키리에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뭐, 이런 것도 괜찮지. 너무 쉽게 무너져야 재미가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사라, 제가 당신을 굳이 이 장소로 부른 이유를 알고 있나요?”
“글쎄요. 저는 도저히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데요.”
키리에의 질문에 사라는 그저 시큰둥하게 답을 하기만 한다.
“이런, 짐작이 가는 바가 없다니. 카인이 들으면 꽤나 섭섭하게 느껴질 발언이 아닐 수 없네요. 이 장소는 카인과 사라 당신이 처음 마주했던 추억의 장소가 아니었던가요?”
툭-
키리에의 그 말에, 사라는 그저 말을 잃어버린 듯한 놀란 얼굴로 키리에를 바라보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키리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카인과 자신, 세상에서 오직 둘 만이 기억하고 있을 그 추억을 키리에가 대체 어떻게-
물론, 키리에는 사라의 의문에 답을 표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진실을 알고 싶다 했죠, 사라? 다른 여인들은 전부 알고 있지만, 오직 당신만은 공유하고 있지 못하는 그 진실을?”
그래, 나는 네게 진실을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고작 해야 언어 따위로 그것을 설명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금부터 내가 네게 보여주려는 것은 과거의 ‘카인 폰 에스텔’이 너를 바라보며 느껴야 했던 모든 감정.
비탄과, 슬픔과, 고통과, 애증-
너라는 여자가 그를 떠난 뒤, 그가 느껴야만 했던 모든 아픔에 대해서이다.
“그러니 어디 한 번.”
아아, 기대가 된다.
너라는 여자가 내 앞에서 어떤 추한 비명을 내지르고, 어떤 구슬픈 탄식을 내뱉을지 실로 기대가 된다.
그렇기에 일부러 이 장소에 너를 불러내기까지 하였다.
그와 처음 인연을 맺은 장소에서, 그와 처음으로 추억을 쌓은 이 장소야 말로.
너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최선의 장소가 아닐 수 없으므로.
“제대로 느껴 보시길.”
키리에의 손이 사라의 이마를 아주 살짝 하며 건드린 바로 그 순간-
그녀를 둘러싼 세상이, 전부 뒤바뀌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