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상실에 걸린 마녀를 주워버렸다-142화 (142/201)

(EP.142)14. 미련의 끝 - 05

찬찬히 돌이켜 본다면, 아리엘 티에르라는 여자의 일생은 참으로 운이 없었던 것만 같다. 적어도, 아리엘 본인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인생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며.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아리엘은, 고아였다.

부모를 모두 잃고 난 뒤, 어린시절을 고아원에 맡겨진 채로 자라나야만 했었기에.

물론, 날 때부터 고아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비앙카 델 카스타나와 같은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부모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이제는 체감 상 수십 년도 더 지난 일인지라 기억이 다소 흐릿해지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아리엘은, 어느 한적한 시골의 자그마한 농가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농민답게 투박한 생김새였지만 딸 앞에서는 언제나 전전긍긍하는 전형적인 듬직한 가장이었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한낱 농민의 부인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부유하지 못하였다. 대다수의 농민들의 삶이 그러하듯, 아리엘의 가정 또한 많이 궁핍하고 많이 가난하였기 때문에.

하지만, 행복했다. 비록 가진 것이 없고 많이 가난했을지라도, 적어도 아리엘에게 있어서는 그 시절은 참으로 행복하기만 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곁에는 자신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언제나 함께 있어 주었기에.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의 소소한 행복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마을 전체에 돌림병이 돌아, 마을 사람들 전체가 전부 죽어버리고 말았으니까.

정말 운이 없게도, 그녀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다.

“.....”

그렇게, 아리엘은 혼자가 되고 말았다.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병에 걸리지 않았고 죽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본능적으로 이해를 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사람은, 단순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죽어버린 것이며.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두 눈을 떠, 언제나 그래왔듯 자신의 머리를 자상하게 쓰다듬어 주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에 대해.

...눈물은, 나오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준 부모라는 사람이 죽은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다만, 이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그 사실이 그저 슬프게 느껴지기만 할 뿐이었다.

아리엘의 나이, 일곱 살 때의 일이었다.

혼자 살아남게 된 그녀는, 마을 한복판에 주저앉은 채로 그저 하늘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이미 돌아갈 곳도 존재하지 않으며, 따로 해야 할 일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아리엘은 그저 텅 빈 눈을 하며 멍하니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성직자가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리엘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겠지.

그렇게, 그녀는 죽지 못하고 살아남았다. 오직 혼자만이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아니, 살아남아 버린 것이다. 운이 없게도.

성직자는 어린 소녀가 자신의 몸 안에 약간이지만 신성력을 품고 있었기에 돌림병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를 법황국으로 데려가고자 하였다.

그녀는 순순히 성직자를 따라 나섰다.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버리고 그를 따라나선 것에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괜찮았을 뿐이었다.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는다면,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가족이란 사람들의 추억이 끝없이 되풀이 된 끝에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리엘은, 법황국에 존재하는 어느 한적한 교회의 고아원에 맡겨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고아원에서 키워지는 아이들은, 아리엘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었다. 부모를 잃거나,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혹은 애당초 부모의 온기를 알지 못하고 자란, 사랑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

고아원에서의 생활은, 그리 마음에 차는 생활은 아니었다만 그렇다고 해서 싫게 느껴지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기만 한 시간이 매일매일 반복되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름대로 마음에 차는 시간임이 분명했던 것 같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며, 아리엘은 마음속의 아픔이 점차 가셔 가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는, 자신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웃고 떠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리 하였던 것처럼, 자신도 평범한 가정을 꾸려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어버리고 말았다.

...허나 불행하게도, 그녀가 품었던 한 때의 꿈은 그저 꿈으로만 남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몸 한 구석에, 성흔(聖痕)이 나타나 버리고 말았기에.

성흔.

천상에 거하시는 여신께서,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단 하나 뿐인 물증이자 증표.

이 시대에 성흔이 출현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 소식을 접한 법황국 전체가 그대로 뒤집혀버리고 말았다.

아리엘은 단숨에 교황과 추기경들이 개최한 청문회에 끌려가고 말았으며.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몸에서 새어져 나오는 폭발과도 같은 신성력에, 모든 성직자들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박고 그녀를 향해 절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지상에 현신한 여신의 대리자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으며, 성녀(聖女)들에게만 붙여지는 성, ‘티에르’를 하사 받게 되었다.

그렇게 고아원에 굴러다니던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던 그녀는, 감히 인세의 권력자들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귀한 신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성흔을 가진 여신의 대리자는, 아무 때나 나타나지 않는다.

지난 천 년, 성녀가 대륙에 등장했던 적은 단 세 번. 인간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환란이 닥쳐왔을 때만 여신께서는 자신의 대리자를 지상에 보내셨다.

즉, 아리엘이 여신으로부터 선택을 받아 성흔을 내려 받은 그 순간 여신께서는 대륙 전체에 신탁을 내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이었다.

조만간 이 대륙에, 거대한 환란이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신탁을.

그렇게 아리엘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여신의 대리자이자 성녀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며, 그 순간부터 아리엘의 삶 속에서 자유 따위는 일절 주어지지 않게 되었다.

아리엘을 교단의 상징이자 여신의 대리자다운 위엄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어른들은 그녀를 강제로 교육시켰다.

그녀는 독방에 갇혀 경전을 강제로 외어야만 했으며, 신성력을 더욱 갈고 닦기 위해 매일과 같이 여신을 향해 기도를 올려야 하였으며, 여신의 현신과 같은 자태를 보이게 하기 위해 온갖 예의범절과 지식을 머릿속에 강제로 쑤셔 박히기에 이르렀다.

시간은, 촉박했다. 언제 어느 때 환란이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강박이, 모든 어른의 눈과 귀를 흐리게 만들었다. 그 어떠한 사람도, 여신의 대리자인 ‘아리엘’을 걱정할지언정, 자그마한 여자 아이 하나를 돌볼 생각을 하는 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경전에서 일컫기를, 온 세상에 빛과 여신의 은총이 가득하다고는 하였지만, 정작 그 빛은 아리엘을 비추고 있지 않았다. 아리엘의 세상에는, 그저 절망과 고통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대체 무엇이 여신의 대리자이고, 대체 무엇이 성녀란 말인가. 여신을 책망하기는 싫었다면, 아픔이 느껴질 때면 머릿속에 이러한 의문이 떠오르는 것만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대체 어찌하여 여신께서는, 자신과 같은 계집아이를 성녀로 임명하시어 나를 이토록 괴롭게 하시는 것인가-

그저 아팠다. 자신은 이런 이상한 상처 따위 단 한 번도 바란 적 없었는데, 신성력 같은 이상한 힘 따위 한 번도 바란 적 없었는데, 어른들은 자신을 단 한 번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고, 자신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들이 아리엘에게 허락해준 것은 오직 하나. 그저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아름다운 미소로 사람들을 마주하게 하는 것 뿐.

처음에는, 남몰래 많이도 울었다. 하지만 그것도 금새 익숙해졌다. 어느새 그녀는 그 어떠한 아픔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마음이 닳고 닳아버린 끝에 아픔 그 자체가 무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고통에 대해 익숙해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적어도, 속으로는 아파할 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미소를 지어보이는 법에 대해서도 아주 많이 익숙해져버리고 말았다.

...자신은, 정말로 괜찮았다.

왜냐하면 과거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되어버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꼭꼭 감추고만 있을 뿐인 이 아픔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자신의 어머니와 같이 자상한 엄마가 되기를 꿈꾸었던 한 여자아이는.

끝끝내, 모든 미소를 잃어버린 채 모두를 위한 예쁜 인형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아리엘은 그런 어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아니, 원망하고 싶지 조차 않았다.

자신에게 많은 짐을 떠맡긴 못난 어른들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자신의 육신에 성흔이 새겨졌다. 곧,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신음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자신은 여신의 대리자이며, 성녀이다. 여신께서 직접 택한, 이 시대의 모든 민초의 염원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희망 그 자체란 말이다.

그러니 참고 견뎌내야만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존재함으로서 사람들은 안심하고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희망을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그녀조차 너무도 힘이 들 때가 있었다. 지치고 또 지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때가 가끔 존재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언제나 매달고 있는 가슴의 십자가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매만지곤 하였다.

자신의 어머니가 남긴, 하나 뿐인 유품.

그것을 매만질 때면, 그녀는 잠시나마 모든 아픔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자신을 성녀라고 추앙하고 있는 사람들은, 알고는 있을까.

실은, 자신은 이토록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여자였다는 사실에 대해.

...하지만 괜찮다.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아니, 아프지 않다고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인다면, 틀림없이 견뎌낼 수 있다.

흔들림이 생겨날 때마다,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튼튼한 강철로 뒤덮어 간다면.

언젠가, 그 어떠한 고통에도 마음이 아프지 않을 날이 찾아오겠지.

보잘 것 없는 계집아이 하나와 이 세계 그 자체.

둘 중의 뭐가 더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니, 참아야지. 견뎌내야지. 자신은 성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희망이었으니까.

그렇게 굳세게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아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가지런히 손을 모아 여신께 기도를 올리며 이러한 소망을 꿈꾸곤 하였다.

누군가는 제발, 나를 바라봐주었으면 한다고.

누군가는 제발, 나를 돌아봐주었으면 한다고.

...누군가가 제발, 나를 구해주었으면 한다고.

알고 있다. 그것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라는 것을. 나는 언제나 운이 없기에, 나의 소망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빛으로 가득 찬 하늘을 올려다보며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헛된 소망을 꾸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행복해져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것만이, 성녀라고 불리던 그녀의 단 하나 뿐인 유일한 소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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