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3)13.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 - 07
“그나저나, 조금은 아쉽군요. 발이 아니라, 주먹으로 그곳을 가격했더라면 아주 확실하게 보내버릴 수 있었는데 말이죠.”
아리엘은 입가에서 선혈을 흘리고 있는 아이리스의 모습을 보며 조금은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고 말았다. 단순한 위력만으로 따지자면 주먹보다는 발차기의 위력이 더 강하긴 하지만, 그만큼 섬세함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라 할 수 있었다. 방금 전, 마지막 순간에 아이리스의 하복부에 발길질이 아니라 주먹을 가져다댈 수만 있었더라면 아이리스의 피해는 결코 지금과 같이 입가에서 피를 토해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리엘이 구사하는 체술(體術)이란, 단순히 주먹질을 하거나 발차기를 날리는 등의 단순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맨손 체술 중에는 상대방이 단단한 갑옷을 착용하였더라도 그 위쪽으로 진동이 가미된 타격을 가함으로서 충격을 관통시키는 침투경(浸透勁) 계열의 기술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굉장히 섬세한 면모의 기술이기에 발이 아니라 손으로밖에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설령 방금 전과 같이 적이 방어태세를 취하더라도 그를 격하고 내부를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는 위력을 지닌 기술이기도 하였다. 만약, 그 일격을 아이리스에게 적중시킬 수만 있었더라면 그녀의 ‘내부’를 완전히 으스러뜨릴 수 있었을 텐데-
...두 번 다시 그 따위 망발은 지껄이지 못하도록, 아주 확실하게.
느껴지는 아쉬움을 애써 달래며, 아리엘은 방금 전 아이리스의 검격에 잘려나갔던 자신의 손가락들을 바닥에서 주워들어 그대로 왼손에 가져다 대었다. 그로부터 1초도 지나지 않아, 잘린 상처 부위가 재생을 시작한 끝에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 마냥 왼손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방금 전, 아이리스의 검격에 난자당하였던 전신의 자상(刺傷) 또한 마찬가지였다. 굳이 신성력을 구사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숨을 몇 번 쉴 사이 동안, 흡사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것 마냥 그녀의 몸에 나있던 모든 상처들이 씻은 듯이 치유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아이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팔다리가 잘려나갔음에도 그로부터 1초도 지나지 않아 재생을 시작하다니. 저 여자가 도마뱀이나 혹은 가재와 다른 점이 대체 무엇인지 분간이 가지를 않았다.
“...정말이지, 몇 번을 보아도 적응이 되지 않는 장면이로군. 설마 목이 잘리더라도 도로 달라붙는 것은 아니겠지?”
“글쎄요,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헌데 저하, 그런 사소한 것에 의문을 가지기 보다는 스스로의 건강을 우선시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입가에서 그리 피를 흘리시는 것을 보아하니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으신 것처럼 보이니 말이에요.”
입가에서 피를 흘리게 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아리엘이 뻔뻔스레 그러한 말을 늘어놓는 장면을 바라보면서도, 아이리스의 얼굴에는 미동 하나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아리엘의 얼굴을 바라보며 슬며시 웃음을 지어보이기까지 한다.
“무얼, 그리 걱정해주지 않아도 괜찮다네. 다행스럽게도, 내 안에 가득 들어 있는 것은 밖으로 흘러넘치지는 않은 듯 하니 말일세.”
그리 말을 하며 아이리스는 자신의 아랫배를 아주 살살, 그리고 조심스레 쓰다듬는다. 마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을 보듬는 듯한 그 태도는, 아리엘로 하여금 머나먼 옛날의 어느 기억을 강제로 떠올리게 만들고 말았다.
“...당신, 지금...”
싸구려 도발이다. 자신을 격동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개수작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 엄마아아, 같이 자면 안 돼? 응?
이젠 두 번 다시 볼 길이 없는, 지난날의 추억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만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 때 느꼈던 행복만큼, 현재 느끼는 아픔은 배가 되어 버린다. 그 고통이, 그 슬픔이, 아리엘의 가슴 속에 들불처럼 번져나가며 눈앞의 모든 것을 활활 불태워버리고 말았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일순간 꼴사납게 헐떡거리고 말았다. 머리가 금방이라도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머리는 처음부터 돌아버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제 보니, 제가 아주 커더란 실수를 저질렀군요. 아랫배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진작에 그 사특한 혀부터 뽑아버렸어야 하는 것인데.”
“그래, 이제야 좀 볼만한 표정을 짓는군. 그간 참으로 궁금했었지. 우리를 아래로 깔아보는 듯한 그 태도 아래에는, 도대체 어떠한 얼굴이 숨겨져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일세.”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리스는 아주 예전부터 저 여자의 여유롭고 느긋하기만 한 태도가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나는 너희들과는 다르다, 내게는 너희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있다라고 외치는 듯한 아리엘의 태도가,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단 말이다-
실로 건방지다. 그와 함께하였고, 함께 추억을 쌓았으며, 잊지 못할 시간은 보냈던 것은 비단 너뿐만이 아니란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한 빛나는 추억에, 귀천 따위가 존재할 리가 없거늘.
아이리스는 입가에 묻어 있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손에 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다시금 아리엘에게로 겨누어 보지만, 방금 전의 공방으로 인해 반으로 부러져 있는 나뭇가지는 방금 전보다 한층 더 볼품없게만 느껴질 뿐이다.
“무기 교체할 시간, 드릴까요? 주변에 굴러다니는 것이 나뭇가지니까 말이죠.”
아이리스의 그 초라한 모습에 아리엘은 자비를 베푸는 셈 치고 그러한 제안을 던졌지만.
“사양하도록 하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너를 상대하는 일에는 이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고도 남으니.”
아이리스는 끝내, 아리엘의 제안을 거부하였다. 아마, 자존심 때문임이 분명하겠지. 아리엘을 상대하는 일에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다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아이리스였으니까.
“...그 결정, 곧 후회하게 만들어 드리죠.”
“그럴 능력이 된다면, 얼마든지.”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던 것은 아주 일 순간.
그로부터 1초도 지나지 않아, 둘은 어느새 서로를 향해 주먹과 검을 교환하고 있었다.
키잉-
둘 사이의 싸움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소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소리가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붙지 못하였다. 그저, 극한까지 잘 갈린 상대방에 대한 적의만이 서로의 움직임의 이정표가 되어줄 뿐.
빛살과도 같은 주먹이 삽시간에 수십 발 내질러지며, 그에 대항해 부러진 나뭇가지가 공간을 누비며 상대방의 공격을 모조리 차단한다.
언뜻 보기에는 아까와 똑같이 흘러가는 전투 양상.
...허나, 이번에는 결정적인 무언가가 다르다. 아이리스가 들고 있는 나뭇가지는 부러져 반토막이 나있는 상태. 그로 인해 아이리스는 공격의 리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으며, 반면 아리엘은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적을 향해 거리를 한 걸음 좁힐 수 있었다.
그러한 사소한 차이 하나만으로도, 아리엘이 내밀 수 있는 수는 무궁무진하게 많아진다.
이 순간, 서로가 깨닫고 말았다. 승패는, 앞으로 3초 안에 판가름이 날 것이라는 것을.
1초.
아리엘의 연이은 영격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이미 반쯤 부러진 나뭇가지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또 다시 한 걸음 앞으로 파고든 아리엘의 움직임에, 결국 아이리스의 방어가 뚫리고 말았다.
한 걸음을 좁히는 대가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아리엘의 오른손이 아이리스의 왼손을 붙잡더니, 그대로 반대방향으로 꺾어버렸다.
콰직-
확실한 감촉이 왔다. 이로서 아이리스의 왼팔은 박살이 나버렸다. 지금 이 순간, 승리의 여신은 아리엘을 향해 미소를 지어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2초.
예상치 않은 부상에 아이리스가 반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반대급부로 아리엘은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지근거리에서 내쏘아진 아리엘의 발차기에, 아이리스는 그만 타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아이리스의 입에서 다시금 선혈이 흘러내리는 광경을 보며, 아리엘은 더더욱 머리를 차갑게 시키려 노력한다. 승리가 코앞에 있었다. 고작해야 감정 따위에 휘둘려,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는 승리를 놓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파고 들어오는 아이리스의 일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내며, 아리엘은 아이리스의 좌측에 수도를 창과 같이 꽂아 넣는다. 현재 그녀의 왼팔은 부러져 있는 상태. 반격이 들어올 턱이 없었다. 그러니, 이것으로 끝이다-
...헌데 승리의 직전, 이러한 의문을 품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이렇게 황녀와 싸우는 것에 대해, 카인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의문을.
3초.
순간, 아리엘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방금 전 완벽하게 부서뜨린 것이 분명할 아이리스의 왼팔이, 마치 마법처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흐르는 별.
일정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흐름’을, 시전자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가능케 하는 황실의 비전검술.
자신의 심장박동조차 뜻대로 조절할 수 있는 체술의 달인인 아리엘에게는 무의미하다 여겨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신체근육을 비롯한 ‘흐름’을 조절해 팔을 강제로 움직이게 하는 것쯤은 아이리스에게 일도 아니었다.
‘...수도?’
아이리스의 왼팔이 하나의 검으로 화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왼팔에 눈부시게 빛이 나는 오러가 맺히며,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의 날카로운 궤적을 그려낸다.
피잇-
예상치 못했던 반격에, 아리엘의 복부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아이리스의 기습적인 일격에, 아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리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서야 자신이 무슨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는지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지금, 검사 앞에서 충분한 여유 간격을 마련해 주고 말았다는 것을-
“.....!”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아이리스는 이미 한 쪽 발을 뒤로 빼고 자세를 잡고 있었다. 팔이 뒤쪽으로 팽팽하게 당겨지며, 그녀가 들고 있는 나뭇가지에 맺혀 있던 빛이 더욱 환하게 불타오른다.
“...간다.”
무음의 공간 속, 결코 들려올 리가 없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말았다.
이를 악문다. 동귀어진과 같은 고급진 전법 따위, 지금은 사치에 불과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뿐.
마치 앞으로 닥쳐올 스스로의 죽음을 애도라도 하는 것처럼 아리엘이 스스로의 손을 가슴어귀에 한데 모은 바로 그 순간-
구우우우우웅-
그들이 서 있던 야산의 윗부분이, 통째로 베여나가고 말았다.
거대한 높이를 자랑하던 산의 윗부분이 잘려나간 끝에, 지상으로 추락하는 장면은 참으로 현실성이 없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산이 베여나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이리스가 베고자 한 것의 등 뒤에, 산봉우리가 포함이 되어 있던 것에 불과했던 것일 뿐.
하지만.
"...대단하군. 아직도 숨이 붙어 있다니."
정작 아이리스가 베고자 한 대상은, 참격을 정면에서 받아냈었음에도 아직까지 살아 숨쉬는 상태였다.
“...휘광의 수호인가.”
아이리스의 참격이 자신에게 도달하기 직전의 순간, 아리엘은 자신이 여신으로부터 하사받은 권능인 ‘휘광의 수호’를 사용하여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휘광의 수호’는 순간적으로 아리엘을 현세에서 유리(遊離) 시킴으로서 모든 삿된 이치를 튕겨내는, 궁극의 방어 중 하나. 설사 아이리스의 검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베어낼 수 있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베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결과, 아리엘은 아이리스의 참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고도 아직까지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물론, 권능을 발동시키는 것이 한 발짝 늦은 나머지 몸이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잘려나갔으며 오른팔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상태 이다만, 어찌되었건 아직도 아리엘의 숨은 붙어 있는 상태였다.
“...정말, 지치는군.”
아이리스는 왼팔의 뼈를 강제로 끼워 맞추며 그리 중얼거리고 말았다.
과연, 아리엘 티에르는 난적이라 하기에 충분한 상대임이 틀림없었다. 만약, 아리엘이 마지막 순간에 방심을 하지 않았더라면 비참하게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은 자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 윽...!”
바닥에 누워있는 아리엘에게서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세히 살펴보니, 몸의 삼분지 일이 잘려나갔음에도 그녀의 몸은 벌써 재생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이리스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거야 원, 가재도 아니고. 이제는 징글징글하기까지 하군. 정말 머리를 부숴도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의심이 드는데.”
아이리스의 조롱과도 같은 말에, 아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고 말았다. 저 여자에게서 저 따위 조롱이나 듣자고 결투를 청한 것은 아니었다-
“자고로 패자는 유구무언이라지. 나는 자네와의 결투에서 승리를 하였으니, 내 뜻을 일방적으로 자네에게 관철할 권리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네.”
“.....”
“그렇다면 승자의 권리에 따라 선언하도록 하지. 카인은 내 것이라네. 그는 나만의 것이며, 그의 모든 것은 나에게 우선시될 뿐이라네. 자네를 비롯한 다른 여자들에게 카인을 조금쯤은 양보해줄 생각은 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베풀어지고 남는 사랑의 찌꺼기여야만 한다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나는 이토록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자네 말대로 나는 되먹지 못한 여자인지라, 내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
“어떠한가? 만일 자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자네가 카인의 곁에 머무는 것을 특별히 허락해주도록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비와 자애로 가득 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안이라 생각한다만.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
아리엘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저, 원독이 가득한 눈으로 아이리스를 바라보기만 할 뿐.
“협상은 결렬인가.”
사실, 아이리스 또한 아리엘이 순순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몸이 반쯤 잘려나갔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그에 대한 사랑이 얕지 않은 것만은 인정하고 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면 오히려 곤란하였다. 자신이나 아리엘이나, 그 따위 얄팍한 감정 때문에 이런 야산에서 흙먼지를 삼켜가며 나뒹굴고 있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자네가 내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자네의 불사(不死)가 대체 어느 정도인지 시험이나 해보려 한다네. 죽일 생각까지는 없으니, 비명 같은 것은 지르지 말게나. 뭐, 비명 같은 것을 지를 정도로 자네가 귀여운 여자는 아니지만.”
서서히 자신을 향해 뻗쳐오는 아이리스의 손길을 마주하면서도, 아리엘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저 여자 앞에서 만큼은 약한 모습을 내비추기 싫었다.
“...흥.”
아리엘의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그나마 멀쩡한 왼팔을 향해 손을 뻗으려고 한 그 순간-
“.....”
사라졌다. 자신 앞에 누워있던 아리엘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 마냥.
“...공간전이?”
아이리스가 알기로, 현 시대에서 공간과 관련된 재주를 부릴 수 있는 인물은 오직 한 명.
“...저하.”
그리고 그 때였다. 아이리스의 뒤편에서, 그녀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다가온 것이.
“이쯤에서 선수를 교대해도 괜찮겠습니까?”
카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