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상실에 걸린 마녀를 주워버렸다-131화 (131/201)

(EP.131)13.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 - 05

“카인님...”

아리아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나의 대답을 촉구하고 있었다.

“부디.”

세밀하게 조각된 자수정과 같이 반짝이는 그녀의 두 눈동자 속에는, 오직 나의 모습만이 깃들어있는 중이었다. 다른 것은 무엇 하나, 비추어져 있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자줏빛 눈동자가 나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내는 거울과 같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대답을, 부탁드려요.”

아리아는 현재 에스텔 공작가의 시녀로서, 혹은 세상의 진리를 오시하는 대마법사로서 내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 앞에서 만큼은, 별다를 것 없는 한 명의 평범한 여인으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한 명의 남자 앞에 선 한 명의 여자로서, 나의 대답을 바라고 있는 중이었다.

“.....”

아리아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대답을 해주기에 앞서 아리아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을 차근히 반추해보았다.

“...그래. 어느덧, 너와 내가 만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말았구나. 아리아.”

아직까지도,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겨울의 마녀’의 심장에 검을 꽂은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의 침대 위에 새근새근 잠들어 있던 아리아.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끝에, 세상 그 자체에 어떠한 기대도 품지 못하는 죽은 눈을 하고 있던 아리아.

고작해야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머무를 곳을 마련해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리아. 지난 1년, 내가 가는 곳이라면 그 어떠한 장소라도 마다하지 않으며 나의 곁을 지키기를 원하던 아리아.

그리고-

“.....”

...지난 1년, 생각해보니 정말 눈 깜짝할 정도의 짧은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간 나와 아리아는 어디를 가나 줄곧 함께하였으며, 많은 것을 나누었고, 서로를 향한 서로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였다고 생각했었다.

“...아리아.”

하지만, 그녀와 이리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제야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지난 1년, 나는 아리아와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것이 틀림없다 생각했지만.

...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리아를 대하는 나의 마음속에는, 아직까지도 자그마한 망설임이 남아있다는 것을.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며 아리아라는 여자에 대해 알만큼 안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녀를 향해 내가 지니고 있는 모든 비밀을 토로해도 되는 것인지 망설이고 있었으니까.

아리아가 어째서 내게 이러한 질문을 묻는 것인지는, 잘 알고 있다. 이스타드의 축제날, 나는 그녀와 단 둘이서 축제를 함께 하였으며, 그 끝에 우리는 비록 언어로 표현하지는 않았어도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주고받은 바가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아리아라는 여자를 향해 어떠한 감정도 품지 않은 채 그저 목석을 바라보듯 그녀를 대하였다면 그것이야말로 거짓말일 테지. 회귀하기 직전, 끝없이 눈꽃이 떨어지는 하얀 세상 속에서 우리를 처연히 맞이하던 그녀를 마주한 순간, 나는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 못할 어느 마법에 걸려들고 말았으니까.

그러니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었다.

지난 1년, 아리아와 함께했던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나는 내 곁에 있어주는 아리아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사랑스럽게만 느껴지기만 한다. 과거의 그녀가 어떠한 인물이었다 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파멸로 가득 찼던 미래는, 아리아가 내 곁에 있는 이상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아리아는 그저 아리아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였다.

...그렇기에, 망설여버리고 말았다. 내가 아리아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이, 정말로 그녀를 위한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나의 앞에 서서, 나의 대답을 촉구하는 저 하얀 머리의 여인이, 에스텔 공작령의 시녀 아리아인지, 대마법사 아리아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과거 세상을 얼어붙게 한 전적이 있는 ‘겨울의 마녀’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간 아리아를 향해 직접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다만, 어렴풋하게나마 눈치 정도는 채고 있었다.

내가 과거로 회귀하였을 당시,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아리아는 나와 함께 과거로 돌아오며 기억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마법을 배우기 시작하며, 그간 잃어버렸던 것들을 하나둘씩 되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개중에 어쩌면,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이 포함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의 성장세가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아리아가 제 아무리 미래에 대마법사가 되는 것이 확실시 되는 천혜(天惠)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녀가 마법을 익혀나가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켜 나가는 속도는 빨라도 너무도 빨랐다.

그녀가 마법을 익히고 나서 비앙카와 같은 대마법사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1년. 내가 아무리 마법에 대해 무지하다고는 하지만, 아리아가 마법을 익혀나가고 그것을 숙달시켜나가는 과정이 비정상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어떠한 재능을 타고 났다 하더라도, 아리아의 성장세를 설명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그녀의 성장세를 설명할 수 있는 경우가 한 가지 존재하였다.

사실 아리아는 마법을 ‘익히고’ 있던 것이 아니라, ‘되새기고’ 있던 것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한 번도 모르는 길을 오르는 것과, 한 번 올랐던 길을 다시 오르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하니까.

“.....”

그렇기에 무서웠다.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 무서웠다. 그녀가 어디까지,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였으며, 그렇기에 무섭기만 하였다.

만일, 내가 섣부르게 회귀 이전의 일을 들먹였다가 그 이유로 말미암아 지금의 관계가 파탄 나버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겁쟁이 같은 나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 내 곁에 존재하는 ‘아리아’가 사라지고, 모두의 악몽이었던 ‘겨울의 마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 끝에,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검을 겨눠야할지도 모르는 미래가, 그저 무섭기만 했다-

허나, 동시에 아리아의 질문에 답을 해주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회귀 이전의 일을 거론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비앙카에게 애정을 품고, 아이리스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까닭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서 발생하게 될 일들이 그 원인이었으니까.

나는 키리에와 연결된 ‘끈’을 통해, 여러 가지 기억을 엿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끈’을 통해 엿보았던 기억은 희미하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백일몽이라도 꾼 것 마냥, 군데군데가 흐릿하고 구멍이 뚫려있는 불완전한 기억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억 속의 ‘나’들은 도저히 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삶의 방식도, 궤적도,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도, 제각기 전부 달랐으니까.

허나 그렇다고 해서 마치 자로 재단하듯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구분하는 것은, 아니 될 일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전부 거짓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비앙카와 함께 했던, 서로 엇갈리기만 했던 가슴 아픈 시간도.

아이리스와 함께 했던, 서로 간에 주고받았던 그 때의 치열했던 검격도.

아리엘과 함께 했던, 오두막에서 보냈던 따스했던 나날도.

전부, 거짓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과거의 어떤 ‘카인 폰 에스텔’은 죽기 직전 아이리스를 향해 이리 고백 하였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러니, 당신의 손에서 죽기를 희망했었다고.

그리고 아이리스는 ‘카인’의 고백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카인이 곧 죽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사랑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의 고백에 응해주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아이리스에게 그것은 회귀 이전에 일어났던 일이니 전부 없었던 일이라 해버린다면, 그 때의 ‘카인’과 ‘아이리스’가 나누었던 그 때의 맹세는, 대체 어디로 가면 좋단 말인가.

비단 아이리스뿐만이 아니다. 비앙카도, 아리엘도, 키리에도, 전부 그러하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세계는 그녀들의 소원이 한데 모인 세계이다. 또한, 나는 불완전하나마 모든 ‘카인’의 기억을 이어받은 채, 지금 그녀들 앞에 서 있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은 결코 돌이킬 수 없지만, 나와 함께 했던 그녀들은 지금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 아직은, 그 어떠한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나는 비앙카를, 아이리스를, 아리엘을, 키리에를 사랑하려 한다. 사랑하고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 끝에, 그녀들을 전부 책임지려 한다.

결국,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리아에게 할 수 있는 답변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다. 아니, 그것 말고는, 그녀에게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전부, 나의 지독한 이기심에서 발로한 답변이었다.

“...그래. 나는 그녀를, 아이리스를 사랑한다.”

관계를 맺게 됨으로서 아이리스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사랑하였기에, 그녀와의 관계에 응한 것이다. 비록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니긴 하지만, 과거의 ‘카인 폰 에스텔’은,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라는 여인을 사랑했으니까. 그러니 나 역시, 아이리스를 사랑할 뿐이다. 그것 뿐인 이야기였다.

“...나를 원망해도 좋아. 네 말대로 내가 지조 없는 것도 사실이고, 다른 여자에게 함부로 손을 뻗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미안하다, 아리아. 네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니, 너무도 잘 헤아리고 있음에도, 이런 답변 밖에 해주지 못해서 너무도 미안하다. 네게 있어, 나는 이토록 못난 사람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아리아는 내 말에 그저 처연한 웃음만을 지어 보인다. 내 눈의 착각일까, 마치 그녀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이 느껴진다.

“...치사해요, 정말로.”

“.....”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런 표정으로 제게 말씀하시면, 뭐라 할 말이 없잖아요.”

“...한 가지만 더, 여쭈어 봐도 괜찮을까요?”

“...무엇을?”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를, 어째서 사랑하시게 된 것이죠?”

그것 또한, 대답할 수 없는 답변이었다. 그것은, 아직 우리가 맞이하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였으니까. 아리아에게만큼은 알려주고 싶지 않은, 미래의 파편이었으니까.

“...미안하다.”

나의 그러한 대답에, 무언가를 다시 질문할 기색이었던 아리아는 끝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나는 왠지, 그녀가 내게 물어볼 질문이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갈 것만 같았다.

“...괜찮아요. 전, 카인님을 믿으니까요. 그러니, 이런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을게요.”

그리 말을 하며 아리아는 나의 한 쪽 손을 꼭하고 잡아온다. 우리 둘의 손은 차갑기만 하였지만, 손이 둘이 겹쳐지니 따스하게만 느껴졌다.

“나중에, 아주 한참 뒤라도 괜찮아요. 그러니, 언젠가는 제게 꼭 그 이유에 대해 말씀 해주세요.”

괜찮아요, 설사 당신이 제게 감추는 것이 있다고 해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저 또한 당신에게 감추고 있는 것이 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 우리 둘 모두 서로에게 숨기는 것이 없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요. 겨울의 끝, 봄의 시작 속에서 당신이 저를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당신을 믿을게요. 제게, 거짓을 말하지 않아서 고마워요.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이 당신이라는 사실이 정말로, 다행인 것 같아요. 정말로-

그렇게 서로 마주잡은 손에 따스한 온기가 맺히기 시작한다. 말을 하지는 않아도 이어져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우리 둘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 또한 훈훈하게 풀어지려 하던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나의 귀에, 거대한 폭음이 들려오고 말았다.

깜짝 놀란 내가 폭음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실로 믿기지 않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구우우우우웅-

황궁 뒤편에 위치한 산의 봉우리가, 비스듬히 잘려나가고 있었다. 대충 보아도 높이가 500미터는 넘어 보이는 산의 윗부분이 케이크 자르듯 베여 나간 끝에 지상으로 추락을 하는 장면은, 참으로 현실성이 없는 장면이기만 할 뿐이었다.

“...설마.”

나의 목소리가 저절로 떨려 나오고 말았다. 내가 알기로, 제도에서 산을 케이크 자르듯 썰어버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라, 그새를 못 참고 시작되었나 보네요.”

한편 저 쇼킹한 광경을 그저 심드렁한 태도로만 바라보고 있는 아리아.

“...대체 뭐가?”

나의 질문에, 아리아는 실로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답을 할 뿐이었다.

“염치도 없는 도둑고양이들의 투닥거림이지, 달리 무엇이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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