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13.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 - 01
아리아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불길함을 느끼고 만 것은, 아마 그 때쯤 이었던 것 같다.
“...카인님...?”
아리아는 자신의 감각에, 아니, 감각이라고 할 수 없는 육감(六感)의 끄트머리에, 굉장히 떨떠름한 무언가가감지되는 것을 느끼며 스스로의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 이유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알 수 없는 감각에 아리아의 기분은 굉장히 더러워지고 말았다.
굳이 비유를 해보자면, 저번에 카인이 자신에게 사준 마카롱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잠시 일을 보고 온 사이에, 동료 시녀가 홀딱 먹어치워 버린 그 날과 유사한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아리아는 누군가가 자신의 것을 건드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카인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고.
‘...하지만, 카인님께서 오늘은 방에서 얌전히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지금 당장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이 기분 나쁜 감각의 원인을 찾아 나서고 싶다. 하지만 카인이 자신에게 내린 당부 또한 쉽사리 어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상충되는 명제에 갈팡질팡하던 아리아가 의자에 걸쳐져 있는 카인의 외투를 발견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맞아. 최근들어,저녁이 되면 날씨가 다소 쌀쌀해지곤 하잖아.’
최근 들어 날씨가 많이 풀리기는 하였지만, 황궁이 위치해 있는 루멘티움은 저녁이 가까워지곤 하면 기온이 많이 내려가 사람에 따라서는 추위를 타기도 한다. 이래 뵈어도 카인은 에스텔 공작가의 소공작. 소공작쯤 되는 사람이 외투 하나 걸치지 않아 추위를 타게 놔두는 일은 그를 섬기는 전속 시녀로서 있어서는 안 되며 일어나게 놔두어서도 아니 될 일이리라-
그렇게 자신을 설득시킨 아리아는 그의 외투를 두 손에 걸쳐들고 연회장으로 향하였다. 물론, 카인이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이후로 고작해야 한기 따위가 그의 육신을 침범할 수 없다는 사실쯤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녀의 관심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혹시 몰라, 그가 정말 추위를 느낄지도 모르는 노릇이니까.
“...어라?”
헌데 정작 연회장에 도착한 아리아가 사방을 둘러보았음에도, 카인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회장을 샅샅이 둘러보았음에도, 결국 아리아는 카인을 찾아내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다.
“.....”
형체가 존재하지 않던 불안감이 슬슬 그 실체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한다. 아리아는 재빨리 눈을 돌려 연회장의 상석(上席)을 확인해 보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마치 처음부터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마냥 상석은 텅 비어있는 중이었다.
방금 전, 자신은 연회장으로 향할 테니 카인에게 빨리 뒤따라오라며 여유로운 태도로 방을 나서던 아이리스의 모습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건만.
이것은 단순한 우연에 불과한 일일까. 그저 우연히, 연회장에서 아이리스와 카인이 동시에 종적을 감춘 것일까.
‘...그럴 리가 없지.’
아리아는 아이리스라는 여자의 아닌 척하지만 쉽사리 감출 수는 없는 그 탐욕스러운 본성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도둑고양이는, 대체 카인과 함께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대체 무슨 음험한 흉계를 꾸미기 위해 이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고 만 것일까.
그렇게 아리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심에 빠져 있던 바로 그 때.
“...쯧, 연회장 한 가운데서 뭘 멀뚱멀뚱 서 있는 것이냐. 차려입은 것을 보아하니 시녀인 것 같은데, 사람이 나다니지 못하게 길을 막고 있으면 쓰겠느냐. 할 일이 없으면 저쪽에 가서 샴페인이나 가져 오거라.”
딱 봐도 술에 반쯤 취한 뚱뚱한 사내가, 아리아를 황궁의 시녀로 착각한 것인지 그녀의 어깨를 짚으며 그 따위 말을 나불거리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어깨를 만지작거리는 그 불쾌한 감촉에, 사내를 바라보는 아리아의 눈이 절로 사나워지고 말았다.
감히, 감히 어디에 손을 올리는 것이란 말인가. 이 옷은, 카인님께서 자신에게 가장 처음 선물해주신 옷이란 말이다. 너 따위 사내가 함부로 만져도 되는 옷이 아니란 말이다.
“...뭐, 뭐냐. 그 눈초리는. 허어, 한낱 시녀에 불과한 계집이 사람 하나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을 하고 있는구나. 네, 네 년은 이 몸이 누군지 알고는 있느냐. 이 몸은 바로-”
우드드득-
불행하게도 사내의 말은 그 이상 이어지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아리아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왼팔이 통째로 으스러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거대한 망치로 사내의 팔을 수차례 후려친 것 마냥.
“끄아아아아악-!”
삽시간에 박살이 난 자신의 왼팔을 붙들며 사내는 연회장의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 사내의 고통으로 가득 찬 신음소리가 연회장 전체를 가득 메우고 말았다.
“경비병! 경비병은 어디에 있느냐! 당장 이 계집을 붙잡...”
왼팔이 박살난 아픔으로 바닥을 나뒹굴던 사내가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자신이 이렇게 왼팔이 박살이 나 피를 철철 흘리고 있건만, 자신이 고통으로 가득 찬신음소리를 그토록 커다랗게 내질렀건만, 주변의 사람들은 사내와 아리아가 무얼하고 있건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연회를 즐기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사내와 아리아의 존재가 이 연회장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마냥. 사내와 저들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여, 그가 내지르는 목소리 따위는 저들을 향해 영원히 닿을 수가 없는 것 마냥.
"...이, 이건..."
그제야 깨달았다. 눈앞의 저 여자는, 시녀의 복장을 입고 있긴 하였지만, 결코 시녀가 아니라는 것을.
저것은, 여인의 형상을 한 자연 재해와 비슷한 부류의 무언가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결코 건드려서는 아니 되는 무언가를 병신 같이 나댄 끝에 건드리고 말았다는 것을.
터벅-
흡사 무기질이라도 바라보는 듯한 싸늘한 눈초리를 한 채로 아리아가 사내를 향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선다. 아리아와 눈을 마주하고 만 사내는, 순간적으로 왼팔의 아픔조차 잊어버린 채 뒤쪽으로 엉거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마침, 아주 잘 되었구나. 그간의 상황을 설명해 줄 입이 하나 필요하던 찰나였는데 말이지.”
아리아의 두 눈에서 기광이 번뜩인다. 그와동시에, 그녀의 전신에서는 반론 따위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추상과도 같은 기세가 새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아리아의 몸에서 새어져 나오는 기세를 정면에서 받고 만 사내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파리한 기색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묻겠다. 이 연회장 내에서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의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느냐?”
차려 입은 복장은 시녀였지만, 질문을 던지는 그녀에게서는 흡사 제왕과도 같은 기상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리아의 그러한 질문에,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어 더듬더듬 대답을 하고 말았다.
“...이, 있었습니다. 제국의 황녀,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는 방금 전까지 이곳에 존재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그것만큼은 잊어버릴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에스텔 소공작의 것이노라고 그리도 당당하게 선언을 하였던 그 장면은 어찌 잊어버릴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에스텔 소공작 또한 이곳에 있었는가?”
“그, 그렇습니다. 에스텔 소공작 또한, 이곳에 있었습니다. 하,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모습을 감추었다, 이 말이로군.”
“...네.”
실로 귀신같은 눈치가 아닐 수 없었다.
“...좋아. 원래 같으면 이 옷에 함부로 손을 댄 그 왼손을 잘라내려 했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봐주도록 하지. 너 같은 것과 놀아줄 정도로 상황이 여유로운 것만은 아니니까 말이지. 운이 좋다고 생각하도록.”
다음 순간, 사내의 시야에서 아리아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의 눈앞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마냥.
“...어?”
그의 왼팔은, 멀쩡하였다. 그냥, 처음부터 어떠한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하기만 하였다.
바닥에 우두커니 주저앉아 있는 그를, 주변의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듯 힐끗힐끗 쳐다보기 시작한다.
...백일몽을 꾼 것만 같았다.
****
사실 아무래도 좋은 일이기는 하다만, 제아무리 아리아가 인세를 초월하는 진리를 규명한 대마법사이긴 하다만, 황궁의 부지 내에서는 그녀가 구사할 수 있는 대다수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상당한 제한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물론, 황궁 내에서는 허락 받은 자 이외의 사람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도가 있기는 하였지만 고작해야 그 따위 인세의 법이 아리아를 구속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한노릇.
진짜 이유는, 천 년 전의 위대한 대마법사인 카스타나가 황궁 전체에 쳐놓은 결계 때문이었다. 황궁 전체를 감싸고 있는 카스타나의 결계는, 결계 내부에서의 마력의 구성 그 자체를 방해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마법에 의한 황족의 시해를 우려했기에 이따위 결계를 설치해놓은 것이리라-
물론, 아리아나 비앙카 정도 수준의 마법사쯤 된다면 결계의 작용을 어느 정도 무시한 채 마법을 구사할 수 있기는 하였지만 제 아무리 아리아라도 결계 내부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마, 카스타나가 설치한 이 결계는 그저 어떠한 일정 효과를 발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결계 내부에 한정하여 세계의 법칙 그 자체를 새로이 새겼기 때문이겠지. 이 결계 하나만 보더라도, 카스타나는 천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 있어서도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부여받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자격을 지니고 있었다.
“...하. 그 따위 얼간이가 천 년이 지난 작금에 와서는 대마법사라고 불리고 있다니. 고작해야 줄을 잘 선 신관(神官)에 불과한 쭉정이 같은 놈에 불과하였는데.”
하지만 그 얼간이 때문에 자신이 자랑하는 공간전이도 사용하지 못하고 카인의 행방을 찾고자 두 발로 직접 발품을 뛰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카스타나에 대한 분노가 점점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후손인 비앙카에 대한 분노는 덤이라고 할 수 있었고.
“그나저나 여기는 대체 어디야?”
황녀와 카스타나에 대한 분노를 쏟으며 무작정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그녀가 도착해 있는 곳은 어느 한적한 테라스 부근이었다. 이 근처에서는 카인의 흔적은커녕 인기척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이대로라면 카인과 그의 옆에 찰싹하고 달라 붙어있는 부록 떨거지 하나를 찾아내는 것은 참으로 요원한 일이 되고 마리라.
“...어쩔 수 없나.”
아리아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차고 있던 팔찌를 아주 살짝 어루만진다. 일찍이, 이스타드에서 카인이 그녀에게 사준 눈꽃 문양이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팔찌였다. 카인은 아리아가 팔찌를 착용하기를 바라며 장신구를 사주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리아는 카인이 자신에게 선물해준 팔찌를 단순한 장신구로 놔둘 생각이 없었다. 그가 자신에게 선물해준 소중한 장신구인 만큼, 유용한 기능 하나쯤은 덧붙여야겠다는 효율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카스타나가 쳐놓은 황궁의 결계가 방해하는 것은 마력의 구성 그 자체. 그러니 이미 하나의 완성된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마도구는 결계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쓰기는 아깝다만...”
그리 말을 하며 아리아가 품속에서 꺼내든 것은 바로 검은색 머리카락이었다. 아리아가 직접 개조한 이 장신구는, 찾으려고 하는 사람의 신체의 일부만 있다면 그 사람의 행방을 포착해낼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비앙카 델 카스타나 때와 같이 그의 행방을 찾아내기 위해 북부를 한 바퀴 일주해야만 했던 쓰라린 경험을 되살려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개발한 마도구였단 말이다. 단점이 있다면, 행방을 포착하려 할 때마다 마도구에 가져다 댄 그 사람의 신체의 일부가 소실되어 버린다는 점이라고 할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리아가 수집해 놓은 카인의 머리카락은 아직 몇 개 정도 더 남아있긴 했지만.
우웅-
카인의 머리카락을 게걸스럽게 집어 삼킨 장신구가 카인의 행방을 가리키기 시작한다. 위치는 서쪽. 그녀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대략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카인이 서있다고 장신구는 고하고 있었다.
아리아가 알기로 황궁의 서쪽 부근은 인적이 극히 드물어 사람들이 잘 지나지 않는 장소일 터. 그런 곳에, 카인과 아이리스가 단 둘이 있다는 것일까? 대체 왜?
“.....”
그래,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그저 카인은, 그 여자와 은밀히 이야기를 나눌 것이 있어서 서쪽 테라스를 택한 것이리라.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리아는 치밀어 오르는 불길한 상상을 애써 머릿속 한 구석으로 치워둔 채 결계의 방해 작용을 무시하며 마법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더블 캐스팅. 하나는 공중으로 떠오르기 위한 부유 마법. 그리고 하나는 그녀의 존재 그 자체를 세상에서 소실시켜버리는 직접 개발한 투명화 마법.
모습을 완전히 감춘 아리아가 공중으로 몸을 띄우며, 카인이 현재 위치한 곳으로 천천히 이동해나가기 시작한다.
100미터.
...심장이 떨려온다. 그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왠지 모르게 불안 그 자체가 현실성을 띠는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몸을 돌려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머릿속을 엄습한다.
50미터.
하지만 몸이 고장 나기라도 한 것인지,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아의 몸은 멈추지 않고 카인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만, 자신을 향해 웃음을 지어주는 그의 얼굴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그의 얼굴만 볼 수 있다면, 지금 자신의 전신을 감싸안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 따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30미터.
아닐 것이다. 그래,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제발 아니라고 해 달라. 카인님, 제발-
...10미터.
"....."
그리고-
“...하읏, 하앙...!”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내지르는 신음성에, 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정면으로 목도할 용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츄릅, 하읍, 아아...!”
“.....”
결국 아리아는, 결국 그 끔찍한 광경과 자신의 두 눈을 마주하게 해야만 했다.
카인과 아이리스가, 테라스의 난간에서 교성을 내지르며 정을 나누고 있는, 그 끔찍한 광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