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12. 흐르는 별 - 16
한창 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황궁 중심처의 연회장으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둔 채 떨어져 있으며, 그렇기에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실로 적합하다고 평할 수 있는 서쪽 테라스.
주위의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한적한 장소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황녀를 정면에서 마주한 채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고말았다.
“...저하, 아무리 생각해도 손속이 너무 과하셨습니다.”
“흐음, 카인. 그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네만.”
하늘을 가득 수놓고 있는 달빛과 별빛에 젖어 있는 황금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우수로 가득 찬 하늘빛 눈동자가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황녀의 그러한 자태에 마음이 살짝 동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겉으로는 결코 드러내지 않은 채, 입을 열어 방금 전의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보잘 것 없는 애송이 하나를 상대로 너무 진지하게 손을 쓰셨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희도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희보다 한참은 어린 이십대 초반의 풋내기가 입을 잘못 놀렸다고 해서 사람들 앞에서 그토록 망신을 주는 것은 조금...”
...하지만, 극히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이상 멋대로 입을 놀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황녀의 전신에서 아까 전과 비교해도 그다지 손색이 없는 칼날과도 같은 살기가 새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카인. 그대와 나는 아직 파릇파릇한 이십대임이 분명하다네. 본디 정신이란 육체에 종속이 되는 법. 비록 내가 몇 년 후의 미래의 일을 아주 조금 알고 있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억이 전승된 것에 불과하다네. 즉, 현재 나의 이 육신은 스물이니 나의 나이 또한 스물임이 분명하다는 소리이지. 나는 현재 여자로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시기를 지내고 있는 중이라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네. 이해하였습니다. 저 또한 저하께서는, 아직 방년(芳年)의 나이임이 분명하다고 생각을 하던 와중이었습니다.”
나의 목덜미 뒤쪽으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내가 그리 답을 하자, 그제야 황녀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황녀는 자신의 나이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기준에서 보자면, 나의 손속은 결코 과하지 않았다네. 그저 순수한 목적으로 내게 춤을 신청하였다면 나도 그냥 넘어갔을 테지만, 녀석은 감히 나를 향해 사사로운 정욕을 내비추었으니까.”
그리 말을 하며 황녀는 나를 향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순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짝 흩날린다. 제비꽃 내음이 묻어있는 그녀만의 달콤한 향기가, 나의 비강을 간지럽힌다.
“카인. 이 몸은 오직 자네의 소유이며, 자네만의 것이라네. 다른 사내들은 결코 나를 함부로 바라봐서도, 만져서도, 범접해서도 아니 된다네. 하늘 아래 오직 한 명, 카인 폰 에스텔만이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를 탐할 자격이 있을 뿐이니.”
황녀가 자신의 두 팔을 나를 향해 뻗쳤다. 그녀의 움직임은 하나의 나긋나긋한 날개 짓이되어 나에게로 다가온다. 나의 가슴을 살짝 더듬던 그녀의 두 손이 나의 어깨를 거친 끝에 나의 뺨을 아주 조심스레 쓰다듬는다.
“헌데 나는 스스로가 그대의 소유라는 사실을 이리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그대에게는 그러한 자각이 없는 것 같군. 그것은 아주, 슬픈 일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네.”
그리고 아이리스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네가 아직까지도, 어느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알고 있다. 그 여자와 헤어진지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네 마음속에는 어느 여자의 발자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단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증거를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말았으니까.
“카인, 현재 우리 둘이 서 있는 이 장소가 대체 어디인지 그대는 알고 있는가?”
아이리스의 뜬금 없는 질문에 카인은 어리둥절한 기색을 내비추면서도 한편으로는 순순하게 그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그야, 서쪽 테라스 아닙니까?”
“그래, 서쪽 테라스지. 내가 이곳으로 같이 바람이라도 쐬러 오자고 하였을 때, 그대는 어떠한 반문도 없이 나를 따라 순순히 이곳으로 함께 와주었지. 그대는 대체 왜 그러한 행동을 하였던 것인가?”
아이리스의 영문을 알 수 없는 질문에, 카인은 두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다. 고작해야 바람을 쐬러 테라스에 나오는 정도의 일에 불과할지 언데, 그녀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 아니셨습니까? 그런데 고작해야 그 장소 따위에 이토록 의미를 두고 계신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카인의 무신경한 말에, 아이리스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나오고 말았다.
장소 따위? 장소 따위라고?
...카인, 너는 그새 모든 것을 잊어버린 것이로구나. 이 장소에서 네가 무엇을 행하였는지 고작해야 1년이라는 시간 만에 모든 것을 새카맣게 잊어버리게 된 것이로구나.
아아, 그래. 머리로는 이해가 간다. 네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고작해야 장소 따위가 아니라 이곳에서 만남을 가졌던여자였을 것이며, 여자와 나누었던 시간 그 자체였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다. 네게 있어서는 1년이나 되는 시간이 지났을지 몰라도, 내게 있어서는 고작해야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내가 어찌 그 날의 일을 잊어버릴 수가 있겠는가. 너라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난생 하지 않던 화장을 하고, 한 번도 걸치지 않았던 드레스를 손수 입으며, 네게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비춰질 수 있을까 고심을 하던 그 날의 설렘을.
네가 ‘흐르는 별’을 사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네가 나와 같이 과거로 회귀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당시 내가 느꼈던 그 날의 기쁨을.
...그리고, 너와 내가 같은 하늘 아래 있음을 느끼기 위해 바람을 쐬러 난간 쪽으로 나선 순간, 나의 눈에 들어오고 말았던그 끔찍한 광경을.
내가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느냔 말이다. 카인.
“...그래. 그대의 말대로 이곳은 그저 테라스에 불과할 따름이지. 하지만 나와 그대에게 있어서는,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네.”
아이리스의 손이 카인의 뺨을 다시 한 번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순간, 카인은 그녀의 손끝에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어떠한 감정이 포함되어 있음을 깨닫고 말았다.
“여기서 잠시 한 가지 옛날이야기를 해보도록 할까. 카인, 그대가 나의 하나뿐인 청객이 되어주어야만 할 것 같군. 물론, 거절은 사양하도록 하지.”
“...옛날,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무얼, 그렇게 노골적으로 지루할 것 같다는 티는 내지 말게나. 자네도 듣다보면 분명히 흥미를 지닐 법한 이야기임이 분명하니 말일세.”
아이리스는 쿡쿡하며 웃음을 짓더니 이내 카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기라도 하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이곳 황궁에 아주 우둔한 사내가 한 명 있었다네. 그 사내는 우둔하기만 할 뿐만이 아니라 배알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 과거에 자신과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약혼을 파기한 어느 계집이 만남을 가지자는 전언을 보내오자 쫄랑쫄랑 약속장소로 나오기까지 했다네. 정말이지, 다시 한 번 생각해도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는 사내가 아닐 수 없었지.”
“.....”
카인은 황녀가 말하는 ‘이야기’라는 녀석이 왠지 모르게 익숙한 것 같다는 감상을 받고 말았다.
“헌데 그 사내는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하였다네. 사내와의 만남을 원하던 그 계집은, 아주 교활하기가 말로 다할 수 없는 독사 같은 계집이었거든. 그 계집은, 남자를 사로잡는 방법에 대해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지. 필요하다면 자신의 약한 면모를 살짝보임으로서, 사내의 동정심을 유발한다는 역겨운 방법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정도로 말이지.”
사락-
옷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아이리스는 카인을 향해 다시금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이제 그들 사이의 거리는, 고작해야 손가락마디 하나만큼의 거리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계집이 머저리 같은 사내와 밀회(密會)를 가지기로 약속한 장소가 바로 이곳, 테라스였다네. 그들은 타인의 눈을 피해 만남을 가지는 것도 모자라, 서로의 귓가에다 달콤한 밀어(蜜語)를 속삭이기까지 하더군. 그리고 극히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서로에게 밀착하여 달콤한 말을 속삭인다는 그 끔찍한 광경을 어느 여인은 목도하고야 말았지.”
이야기가 거기까지 진행이 되고 나서야, 카인은 그녀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골치가 아파온다. 하필이면 그 때, 사라와 만남을 가졌던 모습을 황녀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인가.
카인의 입에서 다급하게 변명이 쏟아져 나온다.
“...저하, 저와 사라는 그저 대화만을 나누었을 뿐입니다. 저하께서 무엇을 보신 것인지는 몰라도 그것은 전부 오해...”
그리고, 그 때였다.
“...카인.”
아이리스가, 그에게로의 마지막 한 걸음을 좁힌 것과 동시에, 그의 몸을 꼭하고 끌어안은 것이.
느껴진다. 그녀의 풍만한 감촉이. 그녀의 체향이. 그녀를 이루고 있는, 그 모든 것이.
“...이것도 오해라고 할 수있겠는가. 그 날, 그 여자를 품에 꼭 끌어안았던 것도, 전부 오해였던가?”
“.....”
“내 전부 목격했다 하지 않았는가. 그래, 전부 보고 있었다네. 그 계집이 그대를 향해 다가와, 그대의 품에 안겨 그대의 몸에 자신의 냄새를 묻히는 그 광경을, 나는 전부 목도하고 있었다네. 내가 그 광경을 보며, 어찌나 나의 마음이 아팠었는지 자네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겠지.”
아이리스는 그를 끌어안고 있는 자신의 팔에 힘을 더한다. 마치, 다시는 그를 끌어안고 있는 이 팔을 놓지 않겠노라고 맹세를 하는 것 마냥.
“그거 알고 있는가. 자네의 몸에는, 아직까지도 사라 세르나드의 흔적이 남아 있다네. 그 계집이 자네에게 묻히고 간 흔적이, 냄새가, 자취가, 체향이,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네. 나는, 그것이 정말로 싫어. 그래, 정말로.”
아이리스의 말은, 진심이다. 그녀의 말은 흡사 강철과도 같아, 무엇보다 진심으로서 그의 마음을 세차게 울리고 있었다.
“...아.”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 꼭하고 끌어 안겨 있는 그녀의 몸의 감촉이,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너무도 선명하고 확연하게만 느껴지고 있을 뿐이었다.
“굳이 연회를 개최한 목적도 그것이었다네. 자네와 그 여자가 이 테라스에서 만남을 가졌을 때도 연회가 한창 벌어지고 있던 와중이었지. 나는 말이지, 그 여자와 동등한 조건에서, 동등한 승부를 겨루어보고 싶었을 뿐이라네.”
서로와 서로의 새하얀 숨결이, 서로에게 맞닿는다. 서로를 향한 열기도, 살갗의 감촉도, 그리고 서로를 향해 와 닿는 이 마음도, 전부-
“...저, 하...”
“저하라고 부르지 말게. 아니, 제발 부르지 마.”
“...그럼.”
“카인. 나를 아이리스, 라고 불러 줘.”
“부디 나를, 이름으로 불러 줘...”
애가 타오르는 듯한 목소리. 하지만, 카인은 그것이 그녀 나름대로 용기를 낸 행위라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아아, 카인. 제발 그 여자가 네게 새기고 떠난 모든 자취를 지울 수 있도록 도와줘. 네게 남아 있는 그 여자의 모든 흔적을 없앨 수 있게 도와줘...”
...아직까지도, 그녀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회귀 전, 그와 나누었던 어떠한 대화에 대해.
- 경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나? 약혼녀였던 여자가, 다른 사내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보고도 그녀를 용서할 수 있는가?
- ...사랑했으니까요. 그리고, 이제는 다 끝난 일인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그 말. 하지만 나는, 너의 그 말에 참으로 가슴이 아팠었다. 네 가슴 깊숙한 곳에 그토록 참혹한 흉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아팠었고, 그 계집이 네 가슴 속에 그토록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슬펐으며-
네가 너의 무거운 짐을 덜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았을 뿐이었다.
카인, 나는 말이지. 네가 행복했으면 한다. 너를 괴롭게 하던 그런 계집 따위, 나라는 여자로 하여금 통째로 덮어 씌워버리고 싶다. 네가 그 여자 때문에 아팠던 날의 열 배, 천 배, 아니 만 배는 행복했으면 한다.
...그 끝에, 그런 여자 따위는 잊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나라는 여자로 가득 채웠으면 한다.
아이리스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머리를 살며시 붙잡는다.
“...카인, 눈을 감아 줘.”
“...그래.”
다음 순간, 서로의 입술이 맞닿는다.
키스.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찬, 그녀의 맛. 봄의 제비꽃을 닮은 듯한, 그녀의 향기.
“...하, 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가 서로의 입 안을 유린하기 시작한다. 다음 순간, 카인이 아이리스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서며 아이리스의 목이 뒤로 꺾이려 하자, 카인은 손을 뻗어 그녀의 목덜미를 받쳐주었다.
서로와 서로의 타액이 섞인다. 그의 혀놀림은 왠지 모르게 능숙하기 이를 데가 없어, 어떻게 보면 짐승과도 같이 저돌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였으며 또 한 편으로는 여인을 다루는 것에 능통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흐, 읏...!”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의도하지 않은 신음성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부끄러움에, 자신도 모르게 그를 가볍게 밀쳐 내고 말았다.
“...읏, 으...”
서로의 혀와 혀를 이은 타액이 길게 길게 이어진다. 순간, 아이리스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말았다. 서로를 연결하고 있는 타액의 실 때문이 아니라, 그의 혀가자신의 입에서 떠나간 순간 왠지 모르게 느껴진 아쉬움 때문이었다.
“...이, 나, 쁜놈...”
아이리스는 숨을 헐떡이며 카인을 향해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능숙한 거야. 하아, 나는, 처음인데. 너라는 남자가, 처음인데. 너는 왜 이리, 키스에 능숙한 거야...”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그 빌어먹을 붉은 머리카락의 마법사와, 이미 정을 나눈 전적이 있었으니까.
...짜증이 났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며, 그런 사실 따위 신경 쓰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었거늘, 이제와 그 따위 사실이 자신의 신경을 이토록 거스르다니.
“흐응...”
순간, 아주 좋은 생각이 났다. 자신이 지금 사라 세르나드가 남기고 간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와 이러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비앙카 델 카스타나의 자취를 그대로 덮어버리면 되는 노릇이 아니던가?
...카인이, 비앙카 델 카스타나의 속살이 어떠했는지 더는 떠올리지 못할 만큼. 아주, 확실하게.
“읏...!”
순간, 검을 휘두르던 그 어떠한 순간보다 빠르게 그의 입술을 향해 다가간 아이리스는, 그의 아래 입술을 아주 살짝하고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혀가 그의 안쪽을 살짝 핥아 치켜 올린다.
이번에는 그에게 리드당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주도적으로 하는 키스였다.
“응...”
그녀의 손이 그의 손목을 붙잡더니, 이내 자신의 가슴을 매만지게 한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매만지는 그 감촉에, 카인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꿈틀거리고 말았다.
“...여기까지 와서 빼려는 건 아니지, 카인?”
아이리스는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너도 알다시피 이곳은 인기척이 극히 드문 곳이야. 우리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건, 그 어떠한 사람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란 말이지...”
착 하고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 허나 카인은 그녀의 목소리 속에, 약간이지만 흥분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쉽사리 눈치 챌 수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이번이 처음이야.”
그녀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어지럽힌다. 그녀의 말 속에는, 마치 묘한 열기가 내포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부탁할게. 부드럽고, 상냥하며, 그리고 다정하게, 나를 리드해줘. 내가 이 날을 평생토록 잊지 못하도록-”
“나를, 안아줘.”